난 상암동에 살면서 최악의 상황과 최고의 상황을 느끼면서 살아온 세대다 여러분들이야 지금의 상암동을 생각하면 그저 아름답고 화려한 하늘 공원과 월드컵 경기장을 알테지만 나는 그뒷면의 정말로 어두운 모습과 함께 숨쉬며 살아온 토박이다. 60년대 세강이란 아담한 강이 흐르고 난지도 섬을 건네주는 나룻배가 있었지 난지도 섬을 가로질러가면 큰한강이 나오는데 그곳엔 한여름 " 조금" 이라해서 한강물이 다빠져 모래반 물반 일땐 민물조개 잡으러 너도나도 신발주머니 들고 가서 거의 줍다시피 해서 한자루 잡아오곤 했었구 동네 어른들은 삼박사일 조금기간 동안 조개채를 끌어서 수십가마씩 잡아다가 장에 팔아 먹구 살았던 어디 그뿐인가 가을이면 난지도 전체가 땅콩밭이라서 다수확을 한후에도 넋넋하게 땅콩을 내어주던 난지도 소위 먹거리 보물창고 라고 해도 될만큼... 그러던 동네가 78년 서울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되면서 모든쓰레기 들이 난지도 섬에 쌓이면서 결국 오늘에 하늘공원 두군데를 만들고 말았던 ... 78년부터 93년까지 온동네가 난지도 쓰레기 냄새로 고통받았던 악몽같은 시간들 ... 난지도에 들어가면 말할때 파리가 입으로 들어올 정도로 많았던 습습한 날에는 아직도 쓰레기 쾌쾌한 냄새가 베어나와 동네를 ...
그러던곳이 내가 근무하던 골재장 자리에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 98년 발표되어 세계적인 명소가 되면서 덩달아서 난지도 쓰레기섬 역시 세계유래없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탄생했으니 그모든걸 보고큰 우리세대는 격세지감을 느낄수 밖에 없었다.
난지도 쓰레기 장이 들어서고 난지도에 약 500세대의 가건물이 지어지고 그곳 난지도 에서 쓰레기를 주워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천여명이 넘었는데 이또한 타지에서 먹고살것이 없어 이곳에 들어와 쓰레기속에서 여러가지 품목별로 프라스틱 ,종이, 병등을 모아서 팔아 입에 풀칠하며 살았던... 그곳에도 룰이 있어 1차를 앞벌이 2차를 뒷벌이 마지막을 앵벌이로 규정하고 그규정을 어기면 반쯤 죽어나가는 사람이 어디 한두명 이였을까 그쓰레기 더미속에 묻혀진 시체도 셀수가 없을정도 였건만
결국 93년도 말에 들어서 더이상 쓰레기를 받지 않으면서 지금의 김포 메립지로 쓰레기가 .. 그리고 95년도엔 강남 삼풍백화점이 무너질때 그쓰레기가 여기 난지도 산위에 쌓아두고 그곳에서 공매를 해서 물건들을 처분 하기도 했던
암튼 상암동 난지도란 섬은 우리의 놀이터요 간식을 구할수 있는 그런 아지트 같은 꿈의 섬이였던 것이다.
지금은 대한민국 에서 가장 살기좋은 동네가 바로 상암동 이란걸 드넓은 공원이 펴쳐져 있고 첨단 산업과 방송국이모여 있는 도시 거기에 상암 미디어씨티 역이라해서 경의선과 6호선이 지나가는 명당중에 명당으로 ...
첫댓글 중1때인 70년 여름 형들과 등촌동 등마루에서 나룻배타고 난지도에 조개잡으러 간적이 있지요. 물은 깨끗했는데 장마때 상류에서 내려온 쓰레기가 많더군요. 벽돌을 매달은 아기시신을 세개나 봤어요
양수리가 물에 잠기면서 그쓰레기가 ㅎㅎ
별의별 쓰레기 다떠내려 왔는걸요 어떤땐 소나 돼지도 산채로 장마에
상암동 역사의 산 증인이시네~요
우리나라 우리세대는 격세지감 여러번 겪고 있지요~^^
맞아요 우리시대가 그런 ㅎ
난지도.
영지와 춘난이 자생한다여 붙여진 이름..
김홍신의 인간시장의 정점..
주인공 장총찬..
스레기 매립당시 건설현장의 함바집 식판위의 밥색깔이 검다.숟가락들고휘저으면 검었던밥위의 파리가 날라가 하얀밥이 보인다..
지금도 침출수에 가스가 난지도엔 쓰레기가 매립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시장 81년도 87년까지 10부로 만들어진 ㅎㅎ 수없이 읽었지요
추억의 상암동이여 지난 것은 다 그리움으로 남는구나 .
맞아요 어릴적. 추억이 살아있는
전쟁이후 지독한 가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용기도
오늘날 이좋은 세상도......
우리들은 참 많은것들을 겪고 살아 남았네요~~~
모두들 훌륭 하십니다~~~
글치요 ㅎㅎ참 격변의 세월 ㅎㅎ
82년 첫발령지 서부건설사업소 에서 근무
할때 트럭장비 난지도 진입
하면 현장 지키는 사람이
슬쩍 외면 했지요?
매립장에 구역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난지물재생
센타(개명)발령 지역주민
과 함께 약 1년 지렁이농장
에서 하씨 아저씨등 같이
근무한 추억이 있네요~~^^
갑장님 어쩜 우리 만났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당시 81초 제대하고 난지도 통넘하고 친구가 되어 살다시피 했으니 ㅎㅎ
녜 그런 생각도 나요
반갑 습니다
추억 이랄까 생각이 나서~~~
서부건설사업소는 도로공사 부터 다하는 정부기관이였으니 ㅎㅎ
녜 도로포장 공사 지요
서부가 저기수색에서 국방대학원 가는 다리부근에 사무실이 있던걸로 기억하는데요
난지도, 상암동에 그런 히스토리가 있었군요.
서울 서대문구와 은평구를 꽉 잡고 있던 지존님이네요.
마포도..
중학교야 명지니 서대문구
고등학교는 종로 조계사 옆 숙명여고붙어서
80년도 남가좌동 백련산
근처 명지여고 엽자리
수색 이전은 약 5~7년
정도 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제가 중학교를 명지중을 나와서 ㅎㅎ
삼풍백화점 무너지고
실종된 가족들 뼈조각이라도 찾으려고
상암동 쓰레기장을 샅샅이 뒤졌다는 이야기 듣고 저도 놀랐는데
멋진 공원으로 꽃이 피니
그야 말로 쓰레기장에서 다이아몬드 찾은거지요
그때 말도못했어요 손짤린것도 나오고 그때 95년6월에 우리지역 쳥년봉사대가 거기를 지키고 했었는데
지하철 탈일이 없어니 5호선이 아니고 6호선이 지나가지요.
맞아요 누나 6호선인데착각했어요 ㅎ
추억속으로 ᆢ
잘 읽고 갑니다
그러게요
영욕의 세월을 지낸 상암동 난지도.
같이 세월을 보낸 지존님이십니다.
모처럼 들어와 감기 조심하시라는 부탁하려고 들어 왔는데
상전벽해를 보고 갑니다.
잘 계세요
누나 ! 고맙구요
건강하셔야 해요
나 역시 서울 본토로 난지도하고 떨어진 지역에 살았지만
당시 그 지역 상황을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끼면 살았어요.
글 과 사진 스크랩 해 갑니다. 늘 건강하소서
그러셔요 ㅎㅎ
네~~그 사연 있군요
몰랐쥐?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