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 성해나
이헌 조미경
이번에 읽게 된 혼모노는 인상 깊은 장면이 많았다.
지금 까지 살아온 내 삶을 되짚어 볼 때,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그 답을 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부분까지도.
소설 속에서 어떤 특정한 직업군을 이야기할 때 인터뷰와 자료 조사
작가가 직접 그곳으로 뛰어들어 만지고 느끼지 않으면 쓰지 못할 서사가
글을 읽는 내내 즐겁게 했다.
나의 경험으로 무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한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어 현실에 없다.
그 사람은 만나면 불쾌감을 야기했는데, 소설 속 문수처럼 신이 접신 하지 않아
신기가 없으니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미리 짐작으로 점을 보고 사주를
봤을 가능성도 있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빠져 남들보다
깊이 사색하고 고뇌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문수가 신애기에게 할멈을 뺏기고 질투하는 것은 인간이면 느끼고 갖고 있는 감정이 아닐까.
마치 지금의 나를 글로 읽는 듯한 것은,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신에게 어떤 주술처럼 되뇌는 무당이
접신할 때 쓰는 단어인 나무아미타불을 외치고 싶다.
또 한 사람의 무당은 인간문화재로 등재된 이선생이라는 분이 눈앞을 스친다.
소설에서 처럼 정치가와 재벌가 그리고 돈 많은 한국의 상위 1프로가 그의 고객이라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지만 어느 땐 마치 달콤한 속삭임이라도 좋으니 그들의 말에 한가닥
희망을 품고 있는 나 자신이다.
다시 글 속 화자인 문수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반대로 갓 신이 내린 신애기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글을 읽는 독자들의 연령에 따라 공감대가 달랐겠다.
그들은 가끔은 평범하게 보이지만 어느 땐, 멈칫할 만큼 집요한 구석이 있어
상대방의 내면을 읽기 위해, 눈을 맞추려 하고 상대의 달싹이는
입술과 숨소리까지 관찰한다는 것을.
혼모노 뜻을 사전에서 검색했더니 진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반의어인 니세모노 단어에 생각을 해 본다. 지금 우리는 눈앞에서 거짓을 진실이라고 우기고
남이 짜준 프레임에 갇혀서 무슨 일이든 내가 옳다고 외치고 내가 진짜라고 소리치는 21세기에 살고 있다.
글을 읽으며 작품 속 화자 인 문수라는 인물에 깊은 공감을 하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호도하고
비방해야만 내 존재 가치를 알아주는, 눈이 멀고 귀가 없는 사람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아둔하다고
폄하할 수밖에 없는 혼탁한 21세기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세상을 인간의 깊은 내면을 엿봤다.
결국 문수는 혼모노가 되기 위해 자신을 태우는, 비록 재가 되지는 못하지만 잉걸불이 되어 신애기를 이긴다.
마지막 장면이 가슴이 아프다. 자신의 몸에서 피가 솟구치고 아파도
멈출 수 없는 진짜가 되기 위한 몸부림 혼모노가 되기 위한 처절함에서
어떤 목표를 설정하면 깨지고 부서지고 아파도 끝을 보고 싶은 욕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