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푸른샘" 10년째 무료공연 봉사 (강길성)|
시각장애 개그맨 김민씨
양로원 10년째 찾아 공연 "어르신 웃음이 내겐 행복"
55세 무명 개그맨 김민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시각장애 1급인 그는 1m 이상 떨어져 있는 사물을 구분할 수 없다. 골목길을 가다 전봇대에 부딪혀 이마가 깨지고, 차도인 줄 모르고 지나다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적도 많다. 생계를 위해 동창회나 노인잔치 사회를 보는 일을 빼고는 구조를 훤히 아는 집안에서만 생활한다.
김씨가 집과 같이 여기는 곳이 또 있다. 경기도 의정부시
의자와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100여명이 김씨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 박수를 치며 "우리 아들"이라고 반겼다. '아들' 김씨는 '부모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지만 목소리를 듣고 일일이 인사를 했다. 김씨는 "만수무강하세요"라고 큰절을 한 뒤 마이크를 잡고 성대모사를 시작했다. 개그맨 이주일씨처럼 "일단 한 번 박수를 보내 주시라니깐요!"로 시작해 이승만·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김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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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그맨 김민씨가 경기도 의정부시'나눔의 샘' 양로원에서 노인들에게 성대모사 개그 를 하고 있다. /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김씨가 원래부터 앞이 안 보였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 동양방송(TBC) 공채 개그맨 2기로 뽑혀 연예 활동을 했다. 개그맨 김형곤·장두석·이성미
김씨는 "2001년 어느 날 오른쪽 눈이 목욕탕에 김이 뿌옇게 서린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병원에서 당뇨합병증으로 인한 녹내장(綠內障) 판정을 받았다. 얼마 안 있어 오른쪽 눈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왼쪽 눈도 백내장(白內障) 판정을 받았고, 점점 안 보이게 됐다.
삶의 의욕마저 잃어 가던 김씨를 다시 세운 건 할아버지·할머니의 웃음소리였다. 김씨는 "어느 날 서울
김씨는 2001년 야간업소를 다니면서 알게 된 키보드 연주자 강길성(52)씨와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 김호평(51)씨와 함께 봉사단체 '늘푸른샘'을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과 경기도 일대 양로원·노인보호시설을 찾아다니며 무료 공연을 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장충체육관과 종묘공원에서 노인 수백~수천명을 대상으로 경로 효(孝) 큰잔치를 열기도 했다.
2년째 늘푸른샘 공연을 보고 있다는 오모(72) 할아버지는 "한 번 공연을 보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다"고 했다. 최모(81) 할머니는 "며칠 전에 아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계속 기다렸다"며 "더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강에서 제일 많은 건 물이고, 젖소에게 가장 많은 건 우유입니다. 저한테 가장 많은 건 개그죠. 개그는 한강에서 물을 퍼서 주는 것처럼 아무리 나눠도 마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할머니 박수소리에 흥이 오른 김씨가 "이번에는 방향제 성대모사입니다"라면서 "치익~ 치익~" 했다. 노인들의 웃음과 박수소리가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