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식, 주의 순서를 바꿔야 하는 이유
유영호
나이가 육십이 넘었지만 아직도 나는 먹는 것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집착을 한다. 각종 모임이나 결혼식에서 뷔페식당에 갈 때가 있다. 수많은 음식을 다 먹으려는 듯 산처럼 담아 와서는 다 먹지도 못하고 또 새로운 음식을 가져온다. 그러다 보니 남의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다른 사람 자리에 접시를 밀어 놓는 얌체 짓을 하기도 한다. 결국은 과식을 하게 되고 배탈이 나서 고생을 할 때가 있다.
얼마 전에도 고속도로 휴게소의 자율식당에서 경험한 일은 끝없는 내 식탐을 더 부끄럽게 했다. 두부조림과 김치볶음 등 다섯 가지의 반찬과 밥을 들고도 뭔가 부족한 것 같아 불고기 하나 더 가져올까 하는 생각을 하다 에이 그냥 먹지하며 계산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때를 놓친지라 허겁지겁 밥을 먹다가 무심코 옆 테이블을 보았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가 먹고 있는 식판을 보니 밥과 김치 그리고 물 한 그릇, 남자는 몹시 시장했는지 밥을 다 비우고 한 그릇을 더 가져와 먹었다. 그것을 보고 있으려니 걸친 옷 속에 감춰진 내 식탐이 들통 난 것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반찬을 같이 먹자고 말하고 싶은 어줍지 않은 온정은 용기가 없어 꺼내지도 못하고 마음만 들썩거렸다.
어린 시절에는 배가 고픈 날이 참 많았다. 그 당시에는 거의 다 그랬겠지만, 얼만 큼을 먹으면 목까지 가득차서 더 이상 먹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이든 적이 많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음식에 대한 욕심은 세살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耳順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변하지 않았다. 이제는 살만큼 살아서 게을러서 못 먹지 없어서 못 먹는 일은 없다. 그런데도 먹을 것을 보면 눈이 반짝거리며 호흡이 빨라지고 손놀림이 분주해지는 걸 보면, 나는 먹기 위해서 사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살기 위해 먹는다고 말한다. 살아가는 목적이 먹는 것이라면 지금의 세상은 있을 수 없을 거라고 주장하며, 만일 인간이 먹기 위해서만 살아 왔다면 맛있고 많은 먹을거리와 그것을 요리할 수 있는 조리기구들, 그리고 먹을거리를 지킬 힘만 있으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오늘날의 여러 문명을 개발하겠냐고 반문한다. 사람은 음식을 먹고 종족 수를 늘리는 목적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삶의 목표가 있어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음식은 그 목적을 실현하는 동안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지 음식이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모순이 있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우주여행까지 하게 되었지만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치약처럼 생긴 우주식을 개발해서 먹으며 우주를 여행했다. 지구로 귀환한 우주인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우주식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말하기를, 당신도 한 번 우주식을 먹어봐야 정확한 기사를 쓸 수 있을 것이라며, 먹는 즐거움이 없는 식사는 식사가 아니라고 혹평을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주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많은 식품을 싣고 갈 수도 없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무중력 때문에 지구에서처럼 식탁 위에 음식을 차려놓고 먹지 못한다. 그래서 부득이 생명을 이어줄 필수 영양소가 있는 우주식을 개발해서 먹었다. 과학이 발전했어도 우주선에는 우아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먹는 것도 살아가는 동안 인간이 누려야 할 즐거움의 하나이기에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을 지을 수 없는 것 같다.
오늘날의 인간들은 삶의 목표를 높게 잡은 것인지, 아니면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먹는 즐거움을 포기한 것인지, 일이나 공부에 매달리며 식사 시간조차 빼앗기고 사는 사람이 많다. 바쁘다는 핑계로 인스턴트식품이나 커피 한잔으로 식사를 대신하며 공부나 일의 노예가 되어 버린 사람들, 기도한다고 굶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굶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식사를 거르는 사람들, 그렇게 먹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안타깝다.
의, 식, 주, 좋은 옷을 입고, 배부르게 먹으며, 좋은 집에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순서를 그렇게 정한 듯하지만, 누더기를 걸쳐도 살 수가 있고, 다리 밑 움막에 거주해도 죽지 않지만 먹지 못하면 생명을 이어갈 수가 없으니, 옷이나 집보다 우선이어야 하는 것은 먹을 것이 되어한다. 배가 불러야 일도 할 수 있고, 일을 해야 돈을 벌고 옷도 사고 집도 살 수 있는 것을 보면 의, 식, 주의 순서를 식, 의, 주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음식을 먹어야 산다. 하지만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배가 고픈 사람들은 주린 배를 채워주는 지도자가 가장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가 부르면 자유를 갈구하고 자유를 얻으면 권력에 욕심을 낸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위해 먹는지에 대한 논쟁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온 열띤 토론 중에 하나이다.
나는 먹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은 살기위해 먹을 때도 있는 것 같아서 결론은 늘 돌고 돈다. 마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인 것처럼…….
첫댓글 글자 순서야 어떻든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먹는 것(食)이 우선 이지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함도
살아가는 즐거움도 食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배고픈 것을 모르는 세대는 이념이 중요하다는
정신이 매우 고상한 척 개떡같은 소리를 내뱉습니다만,
제 잘난 줄만 알지, 성실한 부모 잘 만났는 것을 모르지요.
님의 글속에도 그런 내용은 있습니다만...
최저 기본의 먹는 것이 해결된 후에는 고상하기도 하고
선한 맘도 나오고 후한 대접도 하고 봉사하는 맘도
식사의 예절도 나오지요.
없으면서 있는 체 하는 것도 신의를 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ㅎ
고상한 척 하고 댓글을 써야 하는데...ㅎ
요즘 상황이 그렇습니다
군훈련소시절 부족한 식사량에 활동량은 많으니 먹어도 돌아서면 배고프던시절
어떤 동료는 장교식당에서 남은체 버려진 소위 짬밥통에 손을넣던 시절이 있었지요.
양반은 대추두알로 허기를 면한단 말도 있지만
사흘굶어 남의집 담장 않넘기 힘들다는 말도 있듯이
먹는것 살아가는데는 너무 너~무 중요하다고봐요.
저희 어릴 적에는 배고픔을
모르고 살았는데도 두 살 위인
오빠는 군대가서..배가 고팠다고
하니 저는 잘 이해를 못했었답니다.
유영호님 글에 상당부분 공감 합니다.
이제 나이가 들다보니
먹는 욕심을 버려야하고
소식해야지 몸이 가벼움을
알겠더라구요.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평온한 밤 되십시요.^^
天不生 無祿之人
地不長無名之草
자연이 준 먹거리들이 있는 데
탐욕스럼 인간들이 많아서
탈이지요.
늙으면 소식을 해야하지만
저도 가끔 많이 먹는 데
그게 시인님의 걱정과 비슷합니다.
이제는 정말 소식을 할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