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樞機卿(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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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임기간 중 네 명의 인펙토레 추기경을 임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적 박해를 받을지도 모르는 지역의 추기경이다. 인펙토레(in pectore)가 ‘가슴에 담고’라는 뜻인 것처럼 누가 임명됐는지는 교황만이 안다. 당사자도 모르기 때문에 교황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죽으면 추기경 임명 효력도 사라진다.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했을 때 인펙토레 추기경 한 명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가 중국 지하 가톨릭 교회 소속이었을 것이란 추측만 나돌았다. 중국 가톨릭 애국회는 정부 통제에 따르지만 로마 교황을 따르는 지하교회는 탄압의 대상이다.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 다음의 지위를 누리는 추기경은 진홍색 겉옷을 입는다. 추기경단의 비밀회의인 콘클라베에서 교황을 선출한다. 하지만 80세가 넘는 추기경은 콘클라베에 참석할 수 없다.
추기경은 경첩·돌쩌귀를 뜻하는 ‘카르도(cardo)’라는 말에서 유래됐다. 문이 경첩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원래 서품을 받은 교구가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해 일하는 성직자를 추기경이라 했다. 주교는 물론 일반 사제와 그보다 지위가 낮은 부제도 추기경이 될 수 있었다. 교황 요한 23세는 1963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뒤 모든 추기경을 주교로 임명했다. 오늘날엔 사실상 주교만 추기경이 될 수 있다.
18세기까지 교황은 자신의 친척, 특히 조카들을 추기경에 앉히기도 했다. 족벌주의(nepotism)란 말도 ‘조카’를 뜻하는 중세 이탈리아어 ‘네포테(nepote)’에서 왔다. 교황의 조카 추기경들은 콘클라베를 좌지우지하기도 했고, 때로는 교황으로 뽑히기도 했다.
2005년 4월에 열린 콘클라베에서는 114표 가운데 84표를 얻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265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지금의 베네딕토 16세 교황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당시 80세가 넘었기 때문에, 정진석 추기경은 2006년에 임명됐기 때문에 콘클라베에 참석하지 못했다.
16일 선종한 김 추기경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추기경이라는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소외받고 힘없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감싸고 눈물을 닦아준 큰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도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가 남긴 빈자리가 허전하다고 벌써부터 세 번째 추기경을 운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200년이 넘는 역사에 488만 명의 신자를 가진 한국 가톨릭 교회가 지금까지처럼 두 분의 추기경을 원한다 해서 지나치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출처:중앙일보 글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살롱]樞機卿(추기경)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의 추모 행렬이 3km나 길게 늘어선 사진이 인상적이다. 국장(國葬)이라는 느낌이 든다. 도인은 평상시에는 도력을 보여주지 않고 평범하게 살다가 죽을 무렵에야 비로소 그 신통력을 보여준다는 옛말이 있는데,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지 않나 싶다.
영어사전에 보면 추기경은 카디널(cardinal)이라고 나온다. '주요한', '기본적인', '심홍색의' 뜻이 있다고 되어 있다. 카디널이 한자문화권에 들어오면서는 추기경(樞機卿)으로 번역되었다. 이를 처음에 번역하는 사람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추(樞)는 '지도리' 또는 '돌쩌귀'를 가리킨다.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장치가 바로 돌쩌귀이다. 문의 핵심은 바로 이 돌쩌귀인 것이다.
문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해야 한다. 문 밖은 자연이고, 문 안은 문명이다. 문은 문명과 자연, 내(內)와 외(外)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유(有)와 무(無), 삶과 죽음, 신과 인간의 사이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작용을 한다. 그 문을 고정시켜 주면서도 열고 닫는 이중적인 작용을 가능하게 해 주는 물건이 지도리요, 돌쩌귀이다. 이 돌쩌귀가 없으면 문을 여닫을 수 없다. 그만큼 비중이 높다.
그런데 이 돌쩌귀는 움직이면 안 된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가만히 버티고 있어야 대문의 수많은 열고 닫음을 감당해줄 수 있는 것이다. 추(樞)는 또한 별을 가리킨다. 북두칠성 가운데 제일 첫번째 별을 추성(樞星)이라고 한다. 점성술에서는 탐랑성이라고 부르지만 고(古)천문학에서는 추성이 정식 이름이다. 북두칠성은 하늘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시곗바늘이다. 이 시계는 매일 밤하늘에서 회전을 한다. 회전을 할 때는 당연히 그 중심이 있어야 한다. 고대인들은 칠성 중에서 제일 첫번째 별을 중심으로 보았다. 그래서 첫번째 별의 이름을 '돌쩌귀'라는 의미의 추성이라고 정했다.
추밀원(樞密院), 중추원(中樞院)이라는 이름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겼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국사(國師), 조선시대에는 문묘배향(文廟配享)된 인물이 유교의 어른이었다면 근래에는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이 나라의 어른이었다.
출처:조선일보 글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도청도설]樞機卿(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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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樞)는 문짝을 여닫는 경첩인 문장부나 돌쩌귀를 뜻한다. 기(機)는 두 개의 실타래(絲)와 베틀(戈), 사람(人)이 합쳐진 기(幾)에서 온 말이다. 나중에 목(木)이 덧붙여져 베틀, 쇠뇌의 용수철이란 뜻으로 쓰였다. '사물을 움직이는 핵심'을 뜻하는 '추기(樞機)'의 출전은 주역 계사편, '언행은 군자의 핵심이며 추기의 발동에 영예와 치욕이 달려있다(言行 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 경(卿)은 두 사람이 밥상을 마주한 모습을 본떴다. '임금이 밥을 함께 먹을 만한 벼슬'이란 의미이겠다.
추기경은 돌쩌귀와 쇠뇌의 용수철처럼 가톨릭의 가장 요긴한 직책. 추기경을 이르는 카디널(Cardinal) 역시 돌쩌귀란 뜻의 라틴어 cardo에서 나왔으니 번역이 그럴싸하다. 추기경은 교황이 준 팔리움이란 양털 띠를 착용하고 갈레로란 챙 넓은 붉은 모자를 쓴다. 진홍색 망토인 카파도 착용한다. 추기경의 상징색인 진홍은 순교자의 피를 의미한다. 미국 프로야구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이 도시에 자생하는 진홍 깃털의 새 '카디널'에서 따왔다. 추기경에 비유해 새 이름을 붙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김수환 추기경의 유품이 공개돼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미트라라는 머리에 쓰는 관과 양떼인 신자를 이끄는 양치기 지팡이 바쿨루스도 있었다. 지은 지 40년도 넘어 색이 바랜 카파도 있다. 카파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나는 사진에 등장했던 그 옷이라고.
고인은 일생 주역의 '言行 君子之樞機'를 실증했으니 동양적 의미에서도 가장 군자다운 삶을 살았다고 할 터이다. 아니, 우리 사회의 돌쩌귀와 베틀의 역할을 해왔다고 할 밖에. 이젠 누가 있어 우리의 추기(樞機)가 되어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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