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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
제1편: 멜로 영화의 정석인 작품
'초원의 빛'은 1962년도 작품으로 멜로드라마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전공 수업 시간을 통해 이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이 전에는 오래된 고전영화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 했다. 그 이유는 오래된 작품이라 따분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상과 가치관을 담고 있고 현재의 작품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품성이 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초원의 빛'이라는 작품은 고전 영화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주었고,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전달해준 작품이다.
'초원의 빛' 포스터
줄거리를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여자 주인공인 디니와 남자 주인공 버드와의 이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영화이다. 여자 주인공역으로는 유명 배우 '나탈리 우드'가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안다.
영화 속에서 디니와 버드는 여러 종류의 장애물들로 인해 사랑을 방해받는다. 현대 작품에만 익숙했던 나에게는
고전 영화의 장애물들이 정말 새롭게 다가왔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언급하신 바와 같이 이 작품에서는 '장애물'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내가 발견한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물들로는
1. 종교적 신념에서의 순결 강조
이 영화는 미국의 작품으로 1920년대 켄자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당시 미국은 기독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특히나 미국의 켄자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안동 같은 곳으로 굉장히 보수적이고 독실한 기독교인이 다수 거주하던 동네였다. 영화에서는 여자주인공 디니에게 그녀의 부모님은 항상 순결을 강조한다. 그래서 버드와 키스를 하고 난 뒤에 집에 돌아와 죄를 지은 듯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뿐만 아니라 버드가 성적 욕망을 참지 못 하고 디니에게 더 깊은 관계를 권유하자 디니는 거절하고 버드는 이 때문에 힘들어하며 고뇌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를 계기로 버드는 욕망을 참지 못 하고 디니를 외면한 채 다른 여자와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진다.
2. 잘못된 부모의 양육
버드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예일 대학에 진학하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정작 버드는 디니와 결혼을 하여 소박하게 농사를 하며 살고 싶어했다. 버드는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 하고 디니와의 결혼을 미루고 대학에 진학하기로 한다. 또한 디니의 부모님은 디니에게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며 육체적 관계에 대한 죄의식을 심어줬다. 따라서 둘의 비극적 이야기는 1920년대 시대의 보수적 가족 이데올로기로 인해 부모들이 자녀를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양육을 함에 따라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경제적 격차, 갑작스런 버블 경제로 인한 가정 형편의 변화 등 여러 요소들이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멜로드라마 장르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멜로 영화와
로맨스 영화의 차이점을 알지 못했다.(진짜 무식한 나...) 그냥 이냥저냥 사랑 이야기겠지라고 생각했다. 원래 사랑에 관련된 영화를 잘 즐기지 않다보니 두 장르가 모두 같은 것인 줄 알았다.
멜로드라마는 melos + drama로 음악과 드라마가 더해진 것이다. 초기에는 이러한 의미였지만 점점 그 의미가
변하긴 했다. 결과적으로 로맨스와 멜로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희생'의 유무인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로맨스와는 다르게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 환경에서 희생되는 연애담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요즘 유행하는 '무빙'이라는 드라마에서 고등학생 커플인 희수와 봉석은 풋풋한 고등학생의 연애담을 그리고 있다. 이 커플의 장르는 로맨스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조인성과 한효주는 국가권력이라는 장애물로 방해를 받으며 희생되는 사랑 이야기이다. 따라서 그들의 이야기는 멜로드라마 장르인 것이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은 관습에 지배당하는 것이 국룰이다. '초원의 빛'에서 시대적 배경이 장애물로 작용하여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결국 관습에 패배하여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흠... 미국이 의외로 굉장히 보수적이라는 것.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졌지만 과거에는 기독교적 신념 때문에 이 정도로 순결을 강요하던 시대가 있었던 게 신기했다.
버드가 육체적 관계를 거절한 디니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다른 여자한테 간 것을 보고 '아오..저 새끼는 뇌에 고추가 달렸나... 저런 걸로 헤어지자고 하냐. 으' 했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물고 빨더니... 근데 또 이 생각 역시 나의 가정에서의 양육 방식 때문에 내가 이렇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가부장적 아빠+독실한 기독교인 엄마로 인해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혼전순결을 강요받아왔기 때문이다. 우리집에 만약 기독교인이 없었더라면
버드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 둘의 이별이 납득이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느낀 건 디니가 남자 하나 때문에 정신병까지 걸리고 자살시도하고, 미쳐가는 모습이 어느 면에서는 이해가 가지만 남자 하나 때문에 이 지랄을 하는 게 좀 이해가 안 갔다. 약간 너무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 것이 아닌 가라는 생각이...(나 너무 T다...) 그래도 디니가 교실에서 초원의 빛 시를 읽으며 우는 장면은 좀 슬펐다. 누군가에게 버려진 느낌이 들었을 테니까. 그것도 서로 사랑하던 사람한테. 요즘은 보수적 시대를 지나와 연애가 자유롭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시대이지만 과거 영화의 시대에서는 사랑과 연애에 있어 더욱 신중했고 순수한 사랑을 지향했던 시대였기에 디니가 슬퍼하는 장면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순수한 사랑이 조금 부럽기도 하다. 요즘엔 다들 너무 짧게 만나고 헤어지고 그러다가 또 금방
사랑에 빠지고...얼마나 심하면 환승연애라는 단어가 생겨 티비 프로그램으로까지 만들어졌을까... 물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봄으로써 나 자신의 객관화하고 나에게 더 잘 맞고 사랑을 서로 표현할 수 있는 상대를 찾아나가는 것도
중요하긴 하다. 그치만 다들 너무 사랑을 너무 쉽게만 생각하는 것 같고 조건을 따지는 느낌이다. 영화의 시대처럼 순수하게 사랑하며 신중하게 한 사람을 택하여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랑이 부럽기도 하다.
이 영화는 앞서 말한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특성에 걸맞게 두 인물의 희생으로 인해 슬픈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본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그냥 어떻게라도 둘이 다시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디니는 정신병원에서 나오자 마자
버드를 찾아가는데 버드는 이미 결혼해서 아들까지 낳고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둘이 마지막으로 재회할 때 디니의 눈에는 아직 버드의 사랑을 갈망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버드는 매정하게 굴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둘은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버드의 집을 떠나는 디니의 초원의 빛 시 나래이션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u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초원의 빛과 꽃의 영광이 있던 시절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그 뒤에 남은 것에서 강인함을 찾으리
이 시의 구절처럼 버드와 디니가 서로의 삶을 살아가며 과거의 뜨거웠던 사랑의 시절을 되돌리지 못 하는 상황이
찾아왔지만 디니는 슬퍼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그 뒤에 남은 것에서 강인함을 찾아야 한다. 디니 또한 정신병원에서 함께 지낸 남성과 약혼을 하게된다. 웃기게 표현하자면 똥차가고 벤츠온다라는 말 같이 디니는 버드가 없는 삶에서 뒤에 남은 가족, 연인, 친구들 등으로 스스로 강인함을 찾아야 한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절은 어찌할 수 없으니까... 남은 것에서 최선을 다해야지... 마지막 장면에서 남은 삶을 살아갈 디니에게 위로와 응원을 해주고 싶었다.
퇴원 전 정신과 선생님의 말
이런 새드 엔딩의 영화는 '너의 결혼식' 이후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도 작품성이 뛰어났다. 정말 '초원의 빛'은 멜로드라마 장르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솔직히 너무 감명깊게 봐서 좀 충격이었다...
유튜브를 찾아봐도 이 영화에 대한 리뷰는 많이 없고 댓글을 봐도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 많이 다시금 보시는 것
같은데 나는 젊은 사람들도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큰 여운을 주는 영화였고 부모의 자녀 양육문제, 종교적 문제, 진정한 사랑 등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작품성 좋은 영화였다.
초원의 빛
제2편: 영화역사상 최고의 사랑이야기
원제: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
1961년 작품
감독: 엘리아 카잔
출연: 나탈리 우드, 워렌 비티, 팻 힝글, 오드리 크리스티
'초원의 빛'(원제 Splendor in the Grass)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e in what remains behind
초원의 빛, 꽃의 영광
다시 그 시간을 돌이킬 수 없어도
슬퍼하지 말고
그 속에 숨어 있는 힘을 찾아 내리...
"윌리암 워즈워스의 명시 '초원의 빛'의 구절"
이 영화는 영화역사상 최고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수많은 멜러영화중 최고 걸작이란 뜻이 아닙니다.
'첫사랑'을 기억하고 가슴속에 뜻깊고 소중히 담고 살아가는
수많은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이 초원의 빛은 가장 애틋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감성적 영화라는 것이죠.
영화학적으로 '작품의 질'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바탕으로
한다면 이 '초원의 빛' 만한 사랑이야기는 생애 두번 다시 만나지
못 할 것 같습니다.
1961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고전인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이기도
하죠. 특히 나탈리 우드와 첫사랑의 연인이었던 워렌 비티가 짧게 조우하는 라스트씬의
모습은 두고 두고 보아도 정말 애틋하고 가슴이 뭉클합니다.
워렌 비티와의 만남을 끝내고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그 초원의 빛
싯구절이 나오는 부분, 이 이상의 애틋함은 아마 영화에서 더 이상
표현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대를 초월하는
전 세계의 '연인'으로 자리잡을 영화입니다. 아마 오랫만에 재회한 이 남녀
주인공이 껴안고 울고 부둥키고 했다면 훨씬 감동은 적었을 것입니다.
어색한 해후, 그리고 어색한 대화, 어색한 가족 소개(부인과 아기)
그리고 짧은 만남 이후의 작별, 그리고 마지막 한 마디
'다시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나탈리 우드와 워렌 비티, 너무나 잘 어울렸던 이 청춘 남녀,
워렌 비티는 특히 이 영화로 혜성처럼 나타나서 감독, 제작, 배우 등
만능 스타가 되었죠.
풋풋한 대학시절의 젊음, 뜨겁고 애절한 사랑, 그리고 가슴 아픈
이별, 그리고... 재회...
누구나 겪어본, 젊음이자, 추억이자, 아픔이자, 소중한 기억이자,
아름다운 과거입니다.
그러한 많은 사람들이 겪는 남녀간의 애틋한 사연들,
그 속에 이 초원의 빛과 워즈워드의 싯구절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첫사랑의 기억은 아픔이 아니고 아름답게 간직하는 하나의
'추억'이라는 선물입니다. 평생 간직할 수 있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 함으로 인하여 죽을 때까지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만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죠.
극장에서, TV에서, 비디오나 DVD(Digital Video Disc or
Digital Versatile Disc)에서 다양하게 우리나라 관객과
만날 수 있었던 이 영화는 역시 다시 또 보아도 보아도 항상 새롭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영화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도 아주
잘 맞는 영화였습니다.
역사상 최고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 누가 뭐래도 역시
초원의 빛입니다.
이루어지지 못 한 첫사랑, 나탈리 우드와 워렌 비티의 가슴 아픈 재회로 끝나는
마지막 부분의 두 남녀의 모습은 정말 보는 관객을 안타깝게 합니다.
어색한 해후, 대화, 그리도 짧은 재회후 다시 헤이지는 장면,
결혼하여 아내와 함께 아기를 키우는 첫 사랑 워렌 비티를 뒤로 하고, 한달뒤에 결혼할 나탈리 우드,
두 사람은 첫 사랑의 아름다운 추억을 뒤로 한채 작별을 합니다.
초원의 빛은 제게도 참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삶이 힘들고 맘이 나약해질 때 소중한 추억을 떠올려 맘을 보다듬어 주어요...
정말 큰 힘이 된답니다...동반자께도 꼭 힘이 되시길 바라며.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
한글자막
1960년대 영화
https://www.youtube.com/watch?v=ihRtDaZraSw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 1부
https://www.youtube.com/watch?v=G1KfkXSRbpQ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 2부
1928년
미국 캔자스 주의 어느 마을,
키 크고 잘생긴 부잣집 아들
버드(웨렌 비티 扮)와
가난한 집 딸이지만
예쁘고 착한 디니
(나탈리 우드 扮)가
마을 저수지 옆에 세워둔 차 안에서
뜨겁게 키스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이다.
혈기왕성한 버드는
디니와 육체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디니는 두려운 마음과
부모들의 엄격한 훈육 탓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 한다.
이 때문에 버드가
다른 여학생과 어울리자,
디니는 버드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으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다.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가 하면,
담배를 피우고,
야한 옷을 입고
파티 장에 나타나
거기서 마주친 버드를
차 안으로 유인하여
육체관계를 요구하기도 한다.
충격을 받은 버드가 응하지 않자,
디니는 급기야
히스테리를 일으켜
마을 저수지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다.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디니.
정신건강 의학계에서는
이 영화를 양극성장애(兩極性障礙)를
최초로 묘사한 영화로 언급한다.
한편, 농장경영이 꿈인 버드는
명문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대로
예일대에 진학하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 하고
방황한다.
그 무렵 미국 전역에 휘몰아친
대공황 때문에
주식이 폭락하자,
아버지는 전 재산을 잃은 충격으로
자살한다.
거기에다 유일한 혈육인
누나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버드는 외톨이가 되고 만다.
대학을 그만 두고
스스로 살길을 찾는 버드.
세월이 흐르고,
버드는 힘들고 외로울 때
힘이 되어준 카페 집 딸
안젤리나와 결혼하여
아이도 낳고,
농장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디니는 정신병원에서
한 환자와 친하게 지냈는데,
전직 의사였던 그는
퇴원 후 신시내티에
병원을 차리고
디니에게 청혼을 한다.
완쾌한 후 집에 돌아온 디니는
버드가 결혼했다는 얘기를 듣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어
학교 친구들과 함께
버드의 농장을 방문한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지만
이제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어 있는
버드와 2년여 만에
재회하는 것이다.
두 연인의 짧은 해후,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디니는 버드의 아이를 안고
볼을 비빈다.
버드의 흔적이라도
찾아보려는 걸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음을 알지만
이제 가야할 길은 엄연히 다르다.
안젤리나에게 인사를 하고
버드와 함께 걸어 나오면서
디니가 묻는다.
“행복하니, 버드?”
“그런 거 같아.
행복에 대해 별로 생각해보지는 않았어.
너는 어떠니?”
“나, 다음 달에 결혼할 거야.
신시내티 사람이야.”
한 동안 말이 없는 두 사람,
버드가 먼저 입을 연다.
“때때로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거 같아.
그렇지 않니?”
“맞아. 그런 거 같아.”
그때는 이런 이별이
올 줄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버드가 다시 말을 잇는다.
“네가 행복하길 바랄 게, 디니.”
그 짧은 말 속에
그간의 그리움과 이별의 아픔이
묻어 있는 것 같다.
디니 일행이
먼지 나는 시골길을 되돌아 나올 때
차안에서 한 친구가 묻는다.
“디니, 너 아직도 버드를 사랑하니?”
한층 성숙해진 디니,
대답 대신 엷게 미소 지으며
문학 수업시간에 배운
시 한 구절을 가만히 떠올린다.
What though the radiance
which was once so bright
Be now for ever taken from my sight,
Though nothing can bring back the hour
Of splendor in the grass,
of glory in the flower:
We will grieve not, rather find
Strength in what remains behind.
한때 그처럼 찬란했던 빛이었건만
이제 영원히 내 눈 앞에서 사라져가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이제 그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
차라리 그것이 남기고 간 자취에서
힘을 찾으리.
초원의 빛 - W. 워즈워스
여기에 적힌 먹빛이 희미해 질수록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 진다면
이 먹빛이 마름하는 날
나는 그대를 잊을 수 있겠습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는 그것이 돌아오지 않음을
서러워 말아라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라.
초원의 빛이여!
그 빛이 빛날 때
그때 영광의 빛을 얻으소서.
한때 그렇게도 찬란한 빛이었건만
이젠 영원히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다시 찾을 길 없을지라도
우리 서러워 말아라.
도리어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얻으소서.
여태 있었고 또 길이 있을
그 원시의 공간 가운데에서
인간의 고뇌에서 우러나는
그 위로의 생각 가운데에서
죽음을 뚫어 보는 그 믿음 가운데에서
현명한 마음을 부르는 세월 가운데...
윌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
워즈워스는
1770년
영국 코크머스에서 태어나
켐브리지 대학을 졸업했다.
영국의 낭만파 계관시인
(桂冠詩人, Poet Laureate는
국가나 왕에 의해 공식적으로 임명된
시인 또는 그 칭호를 말한다)이며
목가풍의 자연시로
1798년
콜리지와 공동으로
서정담 시집을 발간하면서
본격 시작 활동을 하였다.
1807년
두 권의 시집을 간행 할 때까지
약 10여 년간
주옥 같은 詩를 발표하였다.
셰익스피어, 밀턴 다음가는
영국의 위대한 시인이라 평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시
‘초원의 빛
(Splendor in the Grass)’의
일부분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영생불멸(영혼불멸)을
깨닫는 노래’라는
이름으로 쓴 송시(頌詩, Ode)
11편 중 열 번째에 수록된 작품이다.
영화 ‘초원의 빛’은
이 시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한,
이 시가 잘 녹아 있는 작품으로,
윌리엄 인지(1913~1973)의 각본에
거장 엘리아 카잔 감독에 의해
1961년에 만들어졌다.
성 개방 풍조가 서서히 퍼지고 있던
시기와 맞물려,
그 시대 젊은이들의
육체적인 열망과
정신적인 고뇌,
부모와의 마찰 등을
실감나게 담아낸
청춘물의 수작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만년소녀 같은 이미지의
여주인공 나탈리 우드
(본명은
나탈리야 니콜라예브나 자하렌코,
러시아 이민자의 딸이었는데,
후에 성을 '거딘'으로
바꾸었다)는
이 영화 이후
제임스 딘과 함께 출연한
‘이유 없는 반항’(1955년)과
뮤지컬의 전설인
‘웨스트사이드 스토리’(1961년) 등에서도
여주인공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40대 초반이던 1981년,
남편인 영화배우
로버트 와그너와 함께
요트여행을 떠났다가 익사했다.
‘사고사이냐 남편이 죽였느냐’로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남자주인공 웨렌 비티는
한때 할리우드에서
바람둥이로 명성을 날리긴 했지만,
‘벅시’(1991년)에서 공연한
여배우 아네트 베닝과 결혼하여
잘 살고 있다.
간혹 그의 늙고 주름 가득한
모습을 볼 때면
‘초원의 빛’에서의 풋풋하던
모습이 떠올라
괜히 서글퍼지기도 한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스무 살 시절에도 그랬지만,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봐도
가슴이 아려온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첫사랑이 지닌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첫사랑은
애틋한 설렘으로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것일지도….
https://www.youtube.com/watch?v=RAKTCpLm2q8
https://www.youtube.com/watch?v=jH0AEsTpDgE
The Beautiful Natalie Wood
당대 최고의 미인 배우
나탈리 우드
윌리엄 워즈워스 초상
워즈워스가 한창 뛰어난 시를 쓰던
시절에 살았던 ‘Dove Cottage’와
인근에 있는 이 시인의 무덤 모습.
특히 말년까지 견지해온
이 시인의 사상
삶에 대한 ‘온건한’ 인식을 존경한다.
▲ 워즈워스의 고향
윌리엄 워즈워스의 고향 그라스미어(Grasmere)와 호반에 핀 꽃.
사진 오른쪽 위 마을에 그가 살던 집이 있다.
옮겨온 글 편집
靑山 노승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