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조선일보 토,일 섹션 Why? 에 실린
광주 대인시장 '1000원 백반'의 기적 기사를 읽었다.
1000원짜리 백반을 파는 해뜨는 식당 이야기는
2010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잣집 딸로 큰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고 남편과도 사별후
시장서 겨우 자리 잡은 후 재래시장인 대인시장은 갈수록 손님이 줄어
상인들의 걱정이 컸다고 한다.
위기감이 커지자 김선자 할머니가 내놓은 아이디어가 1000원
짜리 백반집이었다고 한다.
밥 한 공기에 된장국, 나물,김치로 된 벡반을 딱 1000원만 받기로 한 것이다.
공짜밥이라고 하면 어려운 이웃들이 부끄러워 할지도 모르니
내 돈 내고 떳떳하게 먹겠다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밥값이 1000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는 명절에 애들 굶긴 기억에 밥 한그릇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재료값도 안되는 1000원을 받고 하루 최대 점심시간에 100명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손님중에는 5000원을 내고 거스름 돈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익명으로 5만원 짜리를 내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한달에 적자가 200만원이 넘는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2012년 5월 김씨 할머니가 대장암 말기진단을 받고 입원하자 식당은 문을 닫았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암세포가 이미 폐와 간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해뜨는 식당"이 2013년 5월 문을 닫은지 1년만에 다시 식당문을 열었다. 김선자할머니의 뜻이 꺾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대인식당 상인들이 대신 식당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었다.
김선자할머니는 지난 18일 별세를 하셨지만 장례기간중에도 식당은 문을 열었다고 한다.
양식이 없어 굶어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픔의 고통을 알 수가 없다.
속담에도 "사흘 굶어 담 뛰어 넘지 않을 넘 한 넘도 없다"고 하지 않았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시 한 두 달전 당분간 부산에 내려와 독서실에서 기거할 때였다.
추운 겨울철 좁은 독서실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다 그냥 엎드려 자고
때가 되면 난로 위에 라면을 끓여 끼니를 때웠다.
1주일 내내 라면만 먹었더니 나중에는 입에서 밀가루 냄새가 폴폴 피어 올랐다.
도저히 더 이상 라면을 먹을 수가 없었다. 수중에 돈은 몇푼 남지 않았다.
라면 한봉지에 15환이었고 인근 자갈치 시장 포장마차 메뉴에는 계란 하나 넣어서 끓여주면 30환
백반과 된장국 김치한 접시가 50환이었다.
1주일을 라면으로 지내다가 밥이 너무 그리워 점심시간 때
거금 50환(거북선이 새겨진 옛 닉켈주화)짜리 한개를 호주머니에 넣고
독서실(동주여상인근)에서 나와서 자갈치시장 입구 포장마차로 달려가
아주머니에게 백반(50환짜리)을 주문하여 노무자들 틈에 끼어 앉아 먹었다.
꿀맛이 이 보다 더 할 수는 없었다.
밥 한 그릇의 위력이 이렇게 클 줄을 몰랐다.
그 이후 나는 라면 기피증이 생겨 잘 먹지 않다가
배를 타면서 미드워치(2기사 야간당직(00:00~04:00)때 아침대신 주는 일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이라도 먹지 않으면 굶어야 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밥을 퍼고 반찬을 찾아 내기 귀찮아 간단히 끓일 수 있는 라면을 가끔씩은 먹기도 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진미를 모른다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