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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임제와 설홍의 사랑 - 아래는 전에 <시인의 파도> 방에 실어두었던 거 옮겼습니다..
무어별(無語別) - 백호 임제
열다섯 아리따운 아가씨 十五越溪女(십오월계녀) 남이 부끄러워 말 못하고 헤어졌고야. 羞人無語別(수인무어별) 돌아와 중문을 닫고서는 歸來掩重門(귀래엄중문) 배꽃 사이 달을 보며 눈물 흘리네. 泣向梨花月(읍향이화월)
<말없이 이별하다>
조선조 중기 시인 겸 문신이자 일세의 풍류객으로 이름을 떨친 백호(白湖) 임제(林悌)와 명기 황진이의 딸 설홍(雪紅)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여성적인 섬세한 감각으로 이별을 당한 여인의 슬픔을 효과적으로 포착해 내고 있다. 사랑하는 임과 헤어지면서도 남이 부끄러워 이별의 말 한 마디 못하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하다. 이 작품에서 배꽃처럼 흰 달(梨花月)은 이 작품의 배경의 구실을 하면서 동시에 임의 모습을 더욱 생각나게 하는, 그래서 작중 화자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하는 작품 내적 기능을 하는 소재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유분망한 낭만주의적 경향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권위와 법도가 중시되던 봉건주의적 시대의 남녀 사랑이란 절실한 마음 속에만 간직될 수밖에 없는 것을 표현한 작품이다. 임제는 송순(宋純)․정철(鄭澈) 등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風靡)했던 풍류 남아요, 재사(才士)였다. 그는 ‘수성지(愁城誌)’라는 뛰어난 소설을 썼을 뿐만 아니라 시조의 작가로도 탁월한 재주를 보였고, 한시의 창작에서도 독특한 경지를 개척했다. * 월계녀(越溪女) : 아름다운 미인.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손꼽히는 서시(西施)는 중국 월(越)나라 약야계(若耶溪) 출신이다. 또한 미인을 지칭하는 성어로 월녀오희(越女吳姬)가 있다. 월나라와 오나라는 대대로 미녀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 아래는 늘사랑님의 댓글에 대신하여 옮겼습니다. 아름답고 슬픈 백호 임제의 사랑이야기 들어보시죠...
<광주광역시 사직공원에 세워진 임제의 황진이 추모시조비>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 듯 누었는 듯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뭍혔는가 잔(盞) 잡아 권(勸)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고교시절 古文 시간에 배운 시조로 조선 중기의 문인 白湖 임제(林悌)가 명기 황진이(黃眞伊)를 추모하여 읊은 것으로 광주광역시 사직공원에 시조비가 세워졌다.
임제는 羅州 林氏로서 명종 4년(1549년)에 태어나 28세(선조 10년, 1578년)에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잠시 벼슬길에 나갔다. 당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쟁으로 일삼는 것을 개탄하며, 당쟁의 와중에 휘말리기를 꺼려하여 평안도사, 북도평사 등 변방 외직을 돌다가 정5품 예조정랑 겸 사국지제교(史局知製敎)를 지낸 것이 벼슬의 전부다.
35세 때 평안도사 부임 길에 송도의 황진이 묘에 들러 관복을 입은 채로 술잔을 올리고 제를 지냈다 하여 조정에서 파직을 당하기도 한 희대의 풍류객이자 기인(奇人)이며 로맨티스트이다.
천재적인 재능과 개성적인 시풍으로 당대의 시단을 풍미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그는 관직을 떠난 후 항상 퉁소를 지니고 勝景을 찾아 다니면서 풍류를 즐기며, 기녀들과 어울려 여생을 보내다가 39세로 요절(1549~1587)하였다고 한다.
그에 관한 로맨스 중에서 가장 애틋한 사랑은 황진이를 쏙 빼어 닮았다는 황진이의 딸인 기생 설홍(雪紅)을 만나서 사랑을 하고 가슴 아픈 이별을 하는 것이다.
莫怪隆冬贈扇仗(막괴융동증선장) 겨울에 부채 선물 괴이하게 생각마오 爾今年小豈能知(이금년소개능지) 그대 아직 젊어 깨닫지 못할 것이오만相思半夜胸生火(상사반야흉생화) 한 밤중 연인 생각으로 가슴에 불이 붙으면 獨勝炎烝六月時(독승염증유월시) 유월 찌는 듯한 더위에 비할 바 아니리라
겨울에 부채를 선물하는 뜻은 여인의 가슴에 타오르는 불을 이 부채로 끄라는 의미가 아닌가. 이에 설홍은
한겨울에 부채 보낸 뜻을 잠시 생각하니 가슴에 타는 불을 끄라고 보내었나 눈물로도 못 끄는 불을 부채인들 어이 하리.
라고 답하였다 한다.
임제는 설홍을 운명적으로 만나서 사랑하고 가슴 아픈 이별을 하면서 무어별(無語別 : 말 없는 이별)이라는 시로 이별하는 여인의 애틋한 심정을 그려 냈다.
십오월계녀(十五越溪女) 열다섯 아리따운 아가씨 수인무어별(羞人無語別) 남이 부끄러워 말 못 하고 헤어졌고야 귀래엄중문(歸來掩重門) 돌아 와 중문을 닫고서는 읍향이화월(泣向梨花月) 배꽃 사이 달을 보며 눈물 흘리네
나주에서는 이렇게 애틋한 사랑을 연극 ‘무어별’(극단 ‘예인방’)로 재현하여 공연을 하였다.
조선의 풍류남아 임제는 황진이에 대한 못다 한 연정을 그녀의 무덤가에서 시를 짓고 제를 올리며 풀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황진이를 쏙 빼닮은 딸, 설홍을 만나게 된다.
황진이가 다시 살아 돌아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진 임제. 천한 기생에게 시를 지어 받치는 임제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설홍. 그렇게 둘은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비록 친손녀는 아니지만 황진이가 죽으면서 남긴 핏덩이를 친 딸처럼 길러낸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둘은 점점 깊은 사이가 된다.
그리고 그녀의 화초까지 임제의 손으로 올리게 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임제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설홍은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데,
3년 뒤 갑자기 돌아온 임제는 설홍을 시집보내려고 하고 설홍은 그에게 매달려 보지만 임제는 냉정하기만 하다. 이제 사랑이 영영 끝나버린 것 같은 설홍은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그 까닭이 다름 아닌 임제의 죽을 병 때문임을 알게 된 설홍은 그저 태연한 척 하는 임제 앞에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린다.
다른 사내의 품안에서 놀아나는 것 보다 비구니가 되는 길이 그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녀를 붙잡을 수도, 그를 붙잡을 수도 없는 둘은 그렇게 헤어짐을 준비한다.
한우(寒雨)는 재색을 겸비하고 콧대가 센 평양 명기로서 뭇 사내들의 유혹을 거절하는 기세가 가히 찬비 같아서 한우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권력과 재물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가야금을 잘 타며 시에 능한 콧대 높은 기생이었다.
임제가 평안도사 직을 마치고 한양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밤에 한우를 찾아가 대작을 하며 보내게 되었다. 밤이 깊어가자 취흥이 사뭇 도도해지고 시흥까지 오른 임제가 시조 한 수를 읊조린다.(유명한 寒雨歌이다) 북천이 맑다 커늘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그러자 한우가 가다렸다는 듯이 망설임 없이 이렇게 화답했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주흥이 오른 임제가 한우의 마음을 떠 보고자 寒雨를 ‘찬비’에 빗대어 '찬비를 맞았으니 얼어 자야겠다'고 읊으니 한우는 그것이 곧 자기에게 보내는 프로포즈 임을 알고 즉석에서 그에 화답한 것이다.
하루밤을 함께 한 한우는 임제에게 푹 빠져서 같이 살자고 청했으나 이를 뿌리치고 한양으로 돌아갔다. <영모정(永慕亭)> 한양으로 돌아간 후 어느 날 평양감사를 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평양의 명기 일지매(一枝梅)를 유혹할 수 있느냐는 제의를 받게 된다. 그는 생선장수로 변장하여 평양으로 가서 그녀의 집을 찾았다. 임제가 싱싱한 숭어를 사라고 외치자 마침 사군자를 치고 있던 일지매가 생선장수의 낭랑한 목소리에 마음이 끌려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런데 싱싱한 생선이라는 것이 한물간 숭어 다섯 마리였다. “물이 간 숭어를 싱싱하다니, 어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 일지매의 핀잔에 임제가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에야 물이 좋았지요. 그런데 저녁이 되니 한물 갔구먼요. 아, 사람도 나이 먹으면 쪼그라드는데 그러지 말고 팔아주오.” 그런 수작 끝에 떼를 쓰다시피 하여 그날 밤을 일지매네 문간방에서 보내게 되었다. 휘영청 달 밝은 5월. 춘정을 이기지 못한 일지매가 거문고를 뜯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문간방 쪽에서 퉁소 소리가 울려와 절묘한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 깊은 밤중에 누가 저렇게 절절히 퉁소를 부는 것일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일지매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가보니 거기에는 그 생선장수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일지매가 돌아서면서 한 句를 읊었다. “창가에는 복희씨 적처럼 달이 밝구나” 그러자 문간방 쪽에서 이렇게 대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루에는 태고적 바람이 맑도다” 신기하게 생각한 일지매가 다시 한 구를 읊어 “비단 이불을 누구와 더불어 덮을꼬” 하니 이번에도 문간방에서 이렇게 대꾸 하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 베갯머리 한 쪽이 비었네” 일지매는 주저하지 않고 문간방에서 자는 척 하고 있는 임제에게 쫓아가서 사정없이 귀를 잡아끌고 안방으로 데려갔다. 남녀 간의 이런 시조나 대화들을 통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의 은근하고 운치 넘치는 풍류와 이에 화답하며 어우러지는 기녀들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양반사대부의 허울을 벗어 던지는 파격적인 행적과 호방한 기품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임제.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 영산강이 굽어보이는 나즈막한 동산에는 그가 시를 읊으며 자라고 여생을 보냈던 정자 ‘영모정(永慕亭)’이 있다. [옮김] ------------------------------------------------------------------------------------------------------------------------------------------
구진포에서
한 때 광주매일의 남성숙기자님의 그림 배달꾼이었던 적이 있었죠. 일년 반 정도 되나? 일주일에 한번씩 삽화를 쓰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렸는데 그 초입 격의 먹그림이 있군요. 그 '영모정' 근처 어느 허적한 자리에 앉아 그린 쓸쓸한 풍경홥죠... 그 땐 몰랐는데 이런 그림들 써비스 좀 잘할 걸 하는 아쉬움도... 젊은 날 그림을 열심히 하던 땐데 난 아직 해직기간이었고 아래 삽화들을 가져가는 어떤 화랑이 있어 그럭저럭 쌀도 사고 술도 흥건했으니...
그 땐 임제가 그리 아픈 사랑을 안고 세상을 버렸는지 몰랐고 지금은 저 설홍이 어찌하여 그 어린 나이로 내가 그리운지 모르겠어요... 늘사랑님 핑게 삼아 오늘 장맛비가 울대목 골을 타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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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물샘이 그리워지네요.
그렇죠? 사랑을 한 몸에 받으시다 문득 서서는 목소리도 표정도 옷깃에 감추시니 언덕받이 도암 땅에서 광양으로 샘물처럼 목이 타네요~^^
친절도 병인양 하냥 어린애처럼 칭얼거립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도 나와야지요.
고맙습니다.
1600평넘은 논고랑에 어린모를 심고 무거운 걸음으로 집에왔습니다.
칭얼대고 낯선 공간에서 어두운 밤을 보낼 어린 모들을 생각하면서
둑방에 능청스레 빨간 열매를 치렁치렁달고 나어떻요 하는 보리수(일명 파리똥) 따먹고 산수유열맨지,파리똥인지 분간이 안섭디다요.
늘사랑님은 농장이 아니라 논농사도 짓습니까? 낯선 공간에서 밤을 보낼 어린 모를 걱정하시는 걸 보니 엄마로서 여자로서 참 애틋하온데 농사는 짐작대로 왕초본가 봅니다.^^ 산수유는 지금 익는 것이 아니니 입술의 열맨 보리똥이 맞을겝니다...
예 2차 모내기이구요.또 한차례 남아있어요. 그렇지요.산수유는 늦가을 초겨울에 잎진 뒤 한가하게 ,때론 바쁘게 따서 농가소득을 올리지요. 구례 산동마을이 산수유로 고소득을 올리고요. 아이들 대학 거뜬히 공부시키지요. 파리똥은 천식에 그만이라나요. 덛붙일 말씀 이어주심 고맙겠습니다. 빗소리들으며, 노래방에서 목청 좀 돋구다 왔습니다. 날구지 제대로 했구만요.섬마을 선생님, 사랑은 하나, 파란낙엽, 비내리는 경부선 등등
기생초이야기에서 조선 기생들 족보 다 덜먹거리게 생겼습니다..
친절도 병인양 하여 2%더 상승입니다..ㅎㅎ..지기님은
지덕을 겸비한 과연 풍류가이심이 틀림 없습니다...영모정에 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시서화음을 좋아했으나 '춤'을 못 사귀어 풍류객을 못하겠습니다. 해빈께서 혹 되시면 막춤이라도 한 동작 가르쳐주시지요...^^
무어별 공연을 두고 임제 선생 후손들이 무지하게 반발했지요,
할아부지를 천하에 다시 없는 바람둥이로 만들었다며...
설홍은 규원(閨怨, 무어별)이라는 시에 착안해 탄생시킨 가공의 인물이라는 게 보편적인 입장입니다.
영모정 고목에 이는 바람결에 다들 한번 쓰러져보심이...
구진포 지나 영모정은 제가 또 빠삭하게 꿰고 있습죠.
사람들은 간혹 수준 높은 시나 멋진 문장에서 보다도 그것을 쓴 작자의 '사랑'이나 '바람'에 더 이끌린다는 사실! 나 같으면 후손으로서 퍽 자랑스러웠을 '바람'을 무지 반발하였다고요?
임제 후손들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유업은 바로 아래 시지요.
勿哭辭(물곡사)
四夷八蠻 皆呼稱帝 사이팔만 개호칭제
唯獨朝鮮入主中國 유독조선입주중국
我生何爲 我死何爲 아생하위 아사하위
勿哭 물곡
선생이 죽음에 이르러 임종하는 자손들이 모두 우는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일렀던 말이라 합니다. 뜻을 풀이하자면,
사해(四海) 안의 모든 나라가
제(帝)를 일컫지 않는 자 없는데,
유독 조선만이 예부터 그렇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누방(陋邦)에 사는 신세로서
그 죽음을 애석히 여길 것이 있겠느냐?
곡(哭)하지 말라
예나 지금이나 '바람'은 안으로 피고 '공명'은 세상에 드러내고 싶은게지요
비오고 바람 부는날에..사람사는 이야기속 행복감과 피로감를 잠으로 풀고 일어나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오고 가는 승용차바뀌에서 물 부딪히는 소리들으며 아들에게 선물했던..루돌프 헤르프르트너의 글, 힐데가르트 뮐러 그림의 세상 모든 게 음악이야 라는 책 표지를 보면서..사람사는 세상은 누구를 만나볼 수 있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연은 우주의 멜로디이고 아름다운 하모니 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살면서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음을 연출하고 싶어하는 조르바도 가끔씩은 마음에 든 처자를 보면? 음큼한 바람끼의 엔진을 시동시켜보고 싶을때도 있답니다. 어쩔 수 없는 연예감정..이지요.ㅎ
바람꽃2...최기종
바람은 어디로 부는 걸까
솔재,살우치,구황산 넘어서
바람과 함께 가다 보면
바람은 어느새 사라지고
봉래구곡 여린 배냇짓만 보이는구나
사랑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것의 끝을 찾아서
사랑과 함께 가다 보면
사랑은 어느새 사라지고
재백이고개 솔바람소리만 들리는구나
바람은 꽃숨을 틔우는 허연 입김이었던가
바람따라 피고지고
바람따라 울고 웃는 개밥바라기여
바람은 눈먼 조율사의 손처럼
숨겨진 혈맥을 찾아서
애증의 건반 두드리는 것일까
사랑은 푯대를 세우는 아픔이었던가
바람으로 눈 멀어서
바람으로 귀 먹어서
머리 풀고 흙바닥을 기는 사랑
사랑은 저렇게 다리 떨면서
...
글자수가 넘쳐 시 마지막 한구절이 빠졌습니다.
최기종 시인님의 시를 감히 댓글로 인용함을 용서하소서.
언젠가 변산바람꽃 찾아보다 발견한 이 시가 문득 생각나서요.
묘하게 기생초에서 일어난 소슬바람이 여기까지 이어져 곧 태풍 불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창밖에선 태풍 메아리 바람이 무지하게 불어대는데
옛날 어떤 청순미 넘치는 가수가 불렀던 노래 한 소절을 불러드리면서 바람은 여기서 잠재우도록 하죠.
"바람아~ 멈추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