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2장 제물론(齊物論) 20절
[본문]
구작자(瞿鵲子)가 장오자(長梧子)에게 물었다.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인은 세상 일에 종사하지 않으며, 이로움도 좇지 않거니와 해로움도 피하지 않으며, 도를 추구하기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도를 버리지도 않는다. 말하지 않아도 말한 것과 같이 표현되며, 말한다 하더라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이 된다. 그리고서 먼지 묻은 세상 밖에서 노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선생께서는 이것을 터무니 없는 말이라 하였지만, 나는 묘한 도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생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오자가 말하였다.
“그것은 황제(黃帝)께서 들었다 하더라도 당황했을 말이외다. 그러니 내가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소이까? 또 당신은 너무 서두르는 듯하오. 달걀을 보고서 닭이 되어 울기를 바라고, 새 잡는 활을 보고서 새구이를 먹게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 망령된 얘기를 할 터이니 그대도 아무렇게나 그것을 들어보는 것이 어떻겠소? 사람은 해와 달을 의지하고 우주를 옆에 끼고서, 행동은 자연과 함께 합치되고 몸은 자연의 혼돈 속에 두며, 천한 사람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수고로이 몸과 마음을 쓰지만 성인은 멍청히 지냅니다. 억만 년에 걸친 변화 속에 참여하면서도 다만 한결같이 순수함을 지탱해 나갑니다. 만물을 모두 있는 그대로 두고, 이러한 방법으로 계속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해설]
제물론 20절인 이번 문장에는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질문자로서 구작자(瞿鵲子)이다. 이 사람은 도(道)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대화자로 등장하는 사람은 장오자(長梧子)이다. 이 사람은 도(道)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인물이다. 구작자의 질문 속에 두 명의 선생(님)이 등장한다. 한 선생(님)은 성인의 다양한 행위에 대해 구작자에게 말한 인물이고, 또 한 선생(님)은 그 말을 들고 평을 한 다른 인물이다.
구작자는 자신에게 성인의 행위에 대해 말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 선생님은 묘(妙)한 도(道)를 실행하고 있다면서 대단히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다른 선생(님)은 ‘터무니 없는 말’이라면서 낮게 평가하였다. 그래서 구작자는 장오자에게 선생님의 그 말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다. 이 물음에 대해 장오자는 답변을 하면서 구작자의 도(道)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 지적은 도(道)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오자는 먼저 도가사상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황제도 ‘그 말’을 들으면 당황했을 말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성인은 먼지 묻은 세상 밖에서 노니는 것”이라는 구작자 선생(님)이 했는 말들은 얼핏 들으면 도가 아주 깊은 사람의 말 같지만, 도가에서 추구하는 현실을 무시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오자는 도를 닦는 사람은 초월적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천한 사람을 존중해야 된다”고 말한다. 그는 천하고 귀한 차별이 인위적임을 알고 귀하게 되려는 수고로움에서 벗어나서 자연과 더불어 순수하게 살아갈 것을 제시한다.
노자 『도덕경』 71장
[본문]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것이 가장 좋다. 반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것은 병이다. 이러한 병은 오직 병인 줄 알기만 해도 그것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는다. 성인은 이러한 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 병을 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은 병에 걸리지 않는다.
[도표]
성인은 잘난 체하는 병을 병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런 병에 걸리지 않음 |
잘난 체 병 |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해서 자신이 잘난 사람인 척하는 것 |
치료 방법 | 오직 병인 줄 알기만 해도 그것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음 |
치료 결과 |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행함 |
[해설]
노자는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을 큰 병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이 병은 자신을 돋보이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일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만병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도(道)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도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것을 구도심(求道心)이라고 한다. 구도심을 가지고 참으로 알고 있는 스승을 찾아서 구도의 길을 떠나는 사람은 순수한 사람이다.
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기 쉽다. 왜냐하면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병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를 가르치는 스승은 제자의 구도심이 깊지 않으면 잘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善財童子)는 53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녔으며,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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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물론 20절은 장자가 구작자와 장오자의 대화를 통해 궁극적 존재의 의미를 담은 깊은 도(道)를 쉽게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도(道)를 구하기 위해서는 순수성을 유지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어지는 강의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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