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산면 고정희 시인의 생가를 나와 읍의 평생학습관에 도착하니 6시 20분을 지난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거리로 나와 전주 콩나물국밥집에 들어간다.
여행자인 듯한 이도 보이고 택배회사 옷을 입은 이도 보이고 가족이 오고
또 일꾼들도 들어온다.
중앙일보 작은 신문을 잠깐 보고 있으니 펄펄 끓는 콩나물 국밥이 나온다.
소주를 참고 다 먹는다. 배가 부르다.
2층 교육실로 들어가니 6시 50분이다.
황산면의 66세 되신 남성이 등록을 1번으로 하시고 앞자리에 앉아 계신다.
뒷쪽엔 지난 주처럼 차가 끓고 있다. 종이컵이 아닌 도기 찻잔에 쑥차를
가득 따뤄 와 갓쪽 두번째 자리에 앉는다.
서경의 성어를 모아 둔 '자벌레는 왜 움추리는가'를 몇 글짜 옮겨 적고 있으니
교육팀장과 강사가 들어온다.
뒷쪽에 자리가 많이 찼다. 나중 보니 16번까지 이름이 적혔다.
노기욱 선생은 전남대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지금은 전라남도이순신장군연구소장이란다.
58년 개띠라신데 힘이 넘친다.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빠트리지 않은 기독신앙인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가닥이 없지만 전라남도와 이순신장군의 문화사료 자원에 대해 깊고 해박한 연구를
해 오신 것을 알겠다.
남원성에서 싸운 이들의 그림을 보면 여자들이 많다. 심지어 속옷 차림이다. 이들은 사흘을 싸우다가 죽는다.
지붕에 올라 기왓장을 깨 왜놈의 머리를 깨기도 한다. 남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은 임진왜란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용사의 난이라 했다.
임진년이 용이고 계사년이 뱀이니 용과 뱀해의 난리라는 거다. 일본은 문록경장의 전쟁이라 한다.
중국은 만력시기라 만력동쟁이라 한다.
조선군은 10만 정도인데 왜군은 30만명이었다. 예비군으로 두고 16만으로 건너오는데
4월이라 훈도시 차고 게따 신고 왔다. 한달만에 거으 점령한다. 하지만 명군이 오고 교착상태가 되자
북쪽에서 얼어 죽는다. 그 군대의 군량이 하루 600가마인데 남쪽이 막혀 보급이 안된다.
조선정부는 청야 작전으로 창고와 들판을 불지르고 도망쳤다. 나중에 왜군은 군마를 잡아먹다가
자기 중 약한 자를 잡아먹기도 했다고 나온다. 굶어죽고 얼어죽어 각 번 만오천 중 4천명 정도만 남았다고 한다.
남원성에서 명의 양원의 5천과 조선군 오천이 왜군 10만과 만나 몰살 당한다.
양원은 살아 도망치지만 돌아가 참수당한다.
경상도 쪽은 향토의병이지만 호남의병은 모두 왕의 백성이라 하여 저쪽으로 싸움하러 간다.
서편네는 근왕의병이다.
고흥의 절이포 해전비를 최근 세웠다. 소록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는데
그 전공을 진린이 가져갔다.
광주 대표거리인 금남로는 정충신의 호다. 그는 권율의 둘째 사위다.
처음 노비로 청소하다가 권율의 시험에 통과해 비서관이 된다.
문 닫아라 해 놓고 그 위에 물 그릇을 두었는데 침착하게 알고 닫았다.
선조 임금께 편지 전달하느느 임무를 맡겼는데 편지를 찢어 망태에 넣고
쇠똥을 넣어 문둥병자로 위장해 성을 빠져나가 임금께 편지를 전했다.
서울의 권장군 집에서 아들과 내기 장기를 두어 상투를 잘랐다.
'목을 자르기로 했으면 잘라야지 장부가아니구나'고 권장군이 했단다.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의로운 일을 하는 이가 애국자다.
세독충정(世篤忠貞)을 서 두고 가르쳤다. 무성서원과 필암서원 그리고 표충사가 남았다.
표충사 있는 곳을 는 흘미라고 하는데 그 노비 둘이 주인을 따라 전쟁에 나가 죽었다.
그 비가 지금도 있다. 일본인이 조선 벼슬을 받은 이도 있다.
남원양씨부하의 묘다. 풍신수길의 차심부름 비서관이었다.
심유경은 골동품상으로 수완이 좋아 강화협상을 했다.
일본에 가 풍신에게 차를 먹여 15일만에 배터져 죽게 했다고 한다.
공신록 절의록 삼강록이 있는데 절의록은 호남절의록만 있다.
해남 용두리의 장고분은 광주의 장고분 등과 함께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라 했는데 왜국사신설로정리했다.
전라도 인물 기피도 왜곡된 것이다. 왕건의 훈요십조가 중간에 불탔는데 다시 정리하며
차령이남을 쓰지 말라고 끼워 넣은 것이다. 호남은 벽골제 이남을 말한다.
이순신의 처 방수진은 여걸이다. 뱁댕이를 화살로 속여 적을 몰아내게 했다.
어떤 소설가가 비방하지만 그의 부인이 내가 그린 그림보고 괜찮아졌다.
조선수군재건도 500km를 완성했다.
광양대장 어영담은 실에 돌을 달아 바다의 깊이를 쟀다. 그가 죽자 이장군이 제문을 썼다.
정운이 죽을 때도 써 두번 썼다. 어영담의 딸이 함양의 박씨에게 시집 가
얼마 전 그 마당에서 여러 자료가 나왔다.
발포만호으 오동나무 사건으로 전라감사의 미움을 받는다.
그 일로 고흥군수와 청렴 박석을 팔아 돈을 모으기도 했다.
순천 환선정은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쏜 곳이다. 5발을 한 순이라고 하고 보통 10순을 쏜다.
120m 정도의 거리에서 탱자 만한 걸 여러 개 꿰뚫을 정도의 실력이다.(첩관)
활 못 쏘는 장수들을 꾸짓는 장면도 나온다.
장흥노홍승첩도는 전쟁 계획도인데 고흥의 신여량 집안과 우리 집안에 두개 남아 있다.
조선의 전쟁 기밀을 명에 보고했는데 그게 '사대문궤'로 남아 있다.
개땅쇠는 갯벌을 가꾸는 사람이다. 최근 해남 우수영에서 쇠뇌가 나왔다.
뻘짓거리 물짠놈들 다 나쁜말로 바뀌어버렸다.
여러분이 해남을 지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