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왜 이름이 ‘조계종’일까?
중국 육조 혜능의 후예임을 자부하기 위해서? 조계산 송광사가 한국을 대표하는 승보사찰이기 때문에? 고려시대 선종의 11개파 가운데 하나인 조계종을 계승하는 종파라서?
사실 이 질문에는 조계종 스님들은 물론 불교사학자들도 정확한 답변을 내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조계종’은 한국불교 1700여년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만들어진 명칭이며, 1941년에 처음으로 ‘조선불교조계종’이라는 명칭이 쓰일 당시의 상황을 증언해줄 사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계종 명칭이 대표종단의 굴레로 작용한다는 점
그런데 문제는, 조계종이라는 명칭이 현재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에 있어서는 커다란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조계종이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선종’의 역사성만 강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불교는 선과 교학, 염불, 주력수행 등을 아우르는 통불교의 전통을 1700년간 유지해왔다. 그리고 조계종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불교의 대표 종단이다.
하지만 최근 조계종에서는 간화선을 대중에게 보급시키는 운동을 벌이는 등 선종으로서의 정체성 찾기에 급급해왔고, 일부 선사들은 염불이나 주력과 같은 수행들을 하근기의 수행법이라고 천시하며 간화선 제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두번째 문제는 조계종 즉 조계산문을 개창한 중국의 6조 혜능의 후예이라 자처하면서 왜 수행법은 선종 후기 선사인 대혜종고의 간화선만 강조하고 있냐는 점이다. 굳이 간화선을 강조하려면 ‘대혜종’이 되어야 맞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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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종앙종무기관이 자리하고 있는 직할교구 직영사찰 조계사의 일주문에는 공교롭게도 조계종이 빠진 '대한불교 총본산'이라고 쓴 현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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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법손 강조하다보니 원효·의상·의천은 설자리 없어져
그리고 ‘육조 혜능의 법손’임을 강조하다 보니 정작 원효와 의상, 의천과 같은 한국불교의 대표 고승들이 조계종의 역사 밖으로 밀려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특정 종단’을 칭함으로써 스스로의 포지션을 축소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통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자처하는 한국불교가 특정종파의 명칭을 굳이 고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계종이라는 명칭의 특수성으로 인해 현재 조계종이 갖고 있는 한국불교의 대표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이율배반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현재 한국에는 100여개의 조계종단이 등록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미래불교조계종, 한국불교조계종, 세계불교조계종, 현대불교조계종, 대한국불교조계종 등등 온갖 이름의 조계종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조계종이라는 종단의 명칭을 채택함으로써 파생된 또 다른 병폐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조계종이라는 명칭은 조계종 스스로의 역할과 역사성을 축소시키는 이름이 되어버린 셈이다.
흥미로운, 그러나 뒷담화에 머물렀던 민감 사안 거론 ‘큰 의미’
이처럼 흥미로운, 그러나 좀처럼 듣지 못했던 주장들이 조계종 교육원이 주최한 한 포럼에서 제기되었다. 조계종 교육원은 지난 3월 22일 오후 4시 총무원 분과회의실에서 제2차 불교사연구포럼을 개최했다. 불교사연구포럼은 교육원이 『조계종사』를 재편찬하기 위해 조계종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조계종 종헌의 개정을 논의하기 위해 매월 1회씩 개최하는 세미나다.
3월 22일 열린 2차 포럼에서는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학담 스님이 ‘한국 선종의 역사와 조계종 종헌’을 주제로 발제를 했다. 이날 학담 스님의 논제는 “선종에 대한 종파주의적 도그마를 깨트려야 한다”는 주제로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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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열린 제3차 불교사연구포럼에서는 "조계종이란 명칭을 버려야 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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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담 스님은 “한국의 선종은 중국불교나 일본불교와는 다른 종파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 일본불교와 중국불교가 회통불교에서 종파불교로 전개되어 왔다면, 한국불교는 국가불교의 영향 아래 다양한 종파가 한 종(一宗)으로 회통되어 왔다”며 “한국불교의 선종은 선과 교, 현과 밀, 난행과 이행의 여러 법을 선(禪) 한글자로 회통한 선교”라고 주장했다.
학담스님 “종파주의에 떨어지지 않는 창조적 선풍 진작해야”
학담 스님은 이어 “한국 선종은 우리 불교의 고유한 역사적 전승과정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상과 계상을 뛰어넘되 교학과 율학을 아우르는 불교실천의 자기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며 “종파불교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되 종파주의에 떨어지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는 창조적 선풍을 진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응스님 “현재의 조계종, 禪만으로 설명 불가능하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현재의 조계종은 선(禪)으로만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계종이라는 명칭 때문에 언제부턴가 선만을 강조하게 되고, 더구나 최근에는 간화선만 내세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스스로의 폭과 역사를 너무 축소시켜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학담 스님은 “직전 교육원에서는 간화선만 강조하면서 한국불교의 수행법을 간화선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해왔다”며 “조계종이라는 종파의 명칭은 이같은 한국불교의 전통을 대변할 수 없는 이름이고, 이 이름에 걸려 지나치게 선만을 강조하거나 간화선 제일주의에 빠지는 것은 한국불교 1700년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학담 스님은 이어 “조계종이라는 명칭으로 인해 한국불교가 스스로의 영역을 축소하고 있음”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범스님 “대한불교 또는 고려불교로 개칭하면 어떨까”
이날 포럼에 참가한 종회의원 정범 스님(옥천암 주지) 또한 조계종이라는 명칭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정범 스님은 “우리 종단이 왜 조계종이라는 명칭을 고집하게 되었을까. 한중일불교교류대회와 같은 국제행사에서 조계종을 설명할 때 참 난감함을 느낀다. 또한 UN에서 원불교의 이름이 One Buddhism이고 우리의 경우는 Jogye Order이다 보니 외국인들은 원불교가 한국의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라고 생각한다”며 “조계종이라는 이름에서 오는 모순이 이제는 현실적으로 엄청나게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응 스님은 “처음으로 종단의 필요성을 느꼈던 근대의 스님들이 종단의 명칭을 정하면서 원종, 선교양종 혹은 조선불교라는 포괄적인 명칭을 썼는데 오히려 이같은 이름들이 한국불교의 역사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며 “이 시점에서 조계종이라는 명칭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정범 스님은 “차라리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조계종이라는 명칭을 뺀 ‘대한불교’ 내지 영어로 ‘Korea Buddhism’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고려불교’로 명칭을 개칭하는 것이 어떻겠나”하는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조계종이 이름에 담긴 모순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
그렇다면 조계종이라는 명칭을 빼는 것에 대한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 걸까. 조계종 법문전문위원 정석원 변호사는 “종헌을 바꾸는 것에 이어 재단법인의 명칭과 종단의 토지명의 변경 등 법적인 여러 절차가 복잡하기는 하지만 종단 명칭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날 포럼에서 제기된 ‘조계종의 명칭’ 문제는 사실 조계종의 노장 스님들이나 불교계 관계자들이 사석에서 줄곧 지적해오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논의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조계종 교육원은 새로운 『조계종사』 편찬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 제기된 조계종이라는 이름의 모순은 사실상 조계종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또한 한국불교의 역사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제기될 수밖에 없었던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에 부응하는 조계종’을 기치로 내건 조계종이 스스로의 이름에 담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는 조계종에 던져진 아주 의미심장하고도 커다란 숙제임에 분명하다.
*조계종 명칭의 역사
조계종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은 1172년(고려 명종 2)에 지어진 대감국사 탄연의 비명이다. 이 비문에 ‘고려국조계종굴산하단속사대감국사(高麗國曹溪宗堀山下斷俗寺大鑑國師)’라는 구절이 나온다. ‘조계(曹溪)’라는 명칭은 신라 말 887년에 세워진 쌍계사 ‘진감국사비’부터 등장하고 있고, 고려전기의 승과에서 ‘조계업(曹溪業)’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당시 구산선문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조계’라는 이름이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조계종은 독자적인 종파의 하나로 성립되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 태종 6년(1406)에 선종 11개종을 7종으로 통폐합할 때 조계종이 포함돼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세종 6년(1424) 4월 7종을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통폐합하면서 조계종이라는 명칭은 500여년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조선시대 스님들이 서간문 등에서 스스로를 ‘조계 승려 ○○’라고 밝힌 사료들이 종종 발견되어 '조계'라는 용어가 선종을 포괄하는 대표 명칭으로 사용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조계종’이라는 이름이 재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약 500년이 지난 1941년 선·교 양종을 통합한 조선불교조계종이 설립되면서부터이다. 그 이전까지는 일제의 사찰령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진 조선불교선교양종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1940년 총본사설립위원회가 조직될 무렵 불교계에서는 종명 개정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1940년 11월 31본사 주지들이 모여 종래 조선불교선교양종이라고 사용해 오던 종명을 조선불교조계종이라고 개정할 것을 결정했다. 그 후 1년 뒤인 1941년 4월 23일자로 사찰령 시행규칙이 개정 인가되면서, 조계종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광복 후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였으나 1954년부터 1962년까지는 비구·대처 승려 간의 분규가 끊이지 않아 이른바 불교정화운동이 계속되었고, 1962년 4월 비구·비구니만을 인정하는 통합종단으로서 대한불교조계종이 재발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첫댓글 고려불교...대한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