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은사님의 사랑
초등학교 제자를 사랑하는 어느 은사님의 그칠 줄 모르는 사랑의 이야기다. 이제 졸업시즌이 거의 다 지나고 입학시즌이 곧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때 한 초등교사(시인)가 초등은사님으로부터 받아온 그칠 줄 모르는 사랑이 너무나 감동적이기에 그 감동을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초등학교 교사가 한 때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동료의 딸 결혼식에 참석해 하객들과 인사를 나눌 때 누군가가 자기 이름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선생님을 뵙게 되어 깜짝 놀랐다. 서둘러 인사를 하고 안부를 여쭈니 ‘그래, 그래’하시며 빙그레 웃으시며 손을 내밀었다. 잠시 생각해 보니 오늘 혼주이신 선생님과 내 담임 선생님과는 옛날 아무 곳에서 근무할 때 호형호제하며 지냈다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막 예식이 시작되자 나도 신랑 입장에 박수를 치고 신부 입장에 눈길을 주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손짓으로 가만 나를 부르셨다. 곁으로 다가가니 가만히 말씀하셨다. ‘아무개야, 너 점심 안 먹었지? 나는 무심히’예 선생님‘ 그렇게 대답했다. 결혼식에 오던 길 동행한 선배교사와 밀면집에서 곱빼기로 점심을 챙겨먹었는데도. ’그럼 점심 먹으러 가자’는 선생님과 가까운 음식점으로 들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대구탕을 먹었다. 나는 그 날 그렇게 하루 두 끼의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점심 값 계산을 끝내고 ‘선생님, 가시죠’ 하는 데도 선생님께서는 봉투를 꺼내 무엇을 적으셨다. 밖으로 나오자 선생님께서는 봉투를 내밀며 ‘이것 네 아들에게 주어라’하시는 게 아닌가. 아들에게 주는 용돈이었다. 사양했으나 완강하셨다. ‘내가 지금 아직은 현직에 있으니 용돈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며 한사코 봉투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나는 그 날 저녁 아들, 딸들을 불러 앉혀 놓고 이런 저런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육학년 때 중학교(의무교육이전) 진학여부를 묻는 설문조사서에 제자는 가세가 어려운 것을 잘 아는 터라 ‘진학포기’에 동그라미를 쳐서 냈다. 그 다음 날 담임선생님은 나를 불러 ‘헌 옷가지라도 팔아서 너 중학교 공부는 시킬 게!’하시며 연필로 친 내 동그라미를 지우고 진학에다 동그라미를 치셨다. 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담임선생님 덕이라고 여겨 그 은혜는 평생 잊을 수가 없는 사랑이다.
결혼식장에서 만나 뵈었던 은사님은 일 년 후 명예퇴직을 하셨다. 전화로만 몇 번 인사를 드렸고 한번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우체국에서 나에게 축전이 날아왔다. 나에게 축전 올 일이 없는데...하고 열어보니 육학년 때 담임 바로 그 선생님께서 보내신 축전이었다. 아들의 대학입학을 축하한다는 말씀과 십만 원 권 우편환이 들어있었다. 어디서 입학소식을 들으셨나 보다.
축전과 우편환을 본 제자는 밖으로 나와 손수건을 꺼냈다.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한참을 혼자 서성거렸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스승이 제자를 아끼는 것도 정도가 있다. 제자는 그 순간 선생님에게 도에 지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나, 이 갚을 수 없는 사랑, 나는 한 번도 제자 노릇을 한 일이 없는데 선생님께서는 늘 이렇게 주시기만 한다. 그리고 내 아들도 언젠가는 그 마음을 알리라 생각이 된다
....좋은 스승 아래서 배웠는데 나의 마음 씀은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나도 제자 한 사람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선생이 되고 싶은데 그게 여의치가 않다. 언제쯤 그게 가능할까? 오늘도 아들의 스크랩북에서 우편환을 꺼내본다.
(2013. 2. 22.)
첫댓글 교사직을 가졌던 나를 부끄럽게 하는 글이지만 감명깊게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