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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흥이 나서 연구년 연구를 잠시 중단하고 여기 뛰어 들었습니다.
이젠 이걸 마지막으로 다시 본업에 돌아가야겠군요. 신문지상에서 상담해주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난 궁금했었는데 이젠 의문이 풀린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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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김태희’도 아닌데 날 미워하는 사람 꼭 있어…
꼭 ‘적’을 만들게 되네요. 제가 김태희급 여신 미모를 지닌 것도 아니고, 학벌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문제라면 청산유수와도 같은 말발? 그래서 말을 일부러 자제하려고도, 스스로를 감추려고도 노력해보지만 늘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얼마 전 시나리오 공부를 위한 스터디를 시작했는데 거기에도 딴죽 걸고 공격하는 사람이 있어 힘드네요. 말발로 눌러버리면 앙심 품고 계속 그럴 테죠. 제가 시나리오 발표할 때 “집에 돌아갈 때 몽둥이 들고 기다린다 해도 해야 할 말은 하겠다”고 하기에, 정말 열심히 분석했나 보다 하고 내심 기대도 했죠. 오 마이 갓~! 그 언니 입에서 나온 말은… “너 씬 넘버 S#1 그 기호는 제대로 알고 쓰는 거냐, 이렇게 잘난 척하는 대본은 연출자들이 싫어한다, 초보자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기본이 안 됐다….”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습니다. 평가를 할 때는 최소한 평가 기준을 토대로 해달라고 말이죠. 그랬더니 다음 스터디에 빠지고 카페에 답글만 올렸더군요. “지난번에 많이 아팠나 봅니다. 돌이켜 보니 좀 심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불필요한 버릇은 누군가 자존심 쿡! 찔러줘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만… 메인스토리의 극성이 도도하게 흐르는지는 점검하셔야 할 숙제인 것 같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옆에서 보기에도 기분 나빴다고 ‘너 정말 잘 참더라’ 그러는데…. 정말이지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네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흑.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상담자1: 정신과 전문의·미소정신과 원장
적에게도 배우는 마음으로
자존심이 쿡 찔렸더라도 ‘좋은 뜻에서 한 충고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으려면 꽤 돈독하고 신뢰가 쌓인 사이여야 할 텐데요. 일단 사연의 ‘그 언니’와는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말이 자존심만 쿡 찌르고 핵심은 콕 집지 못하고 있다면 기분이 상할 만도 하죠. 하지만 주인공은 이번 일을 통해 이미 상대의 문제를 넘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인간관계에서 ‘적’들을 만들게 됐던 경험을 떠올리고 있으니까요. 관계에서 적을 만드는 데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거죠. 서로 공격하고 적대시하는 사이란 너무도 간단하게 이뤄지기도 하기 때문에 과정에서 다음의 몇 가지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이 왜 생기는지 한 번 보자고 하면서 곧바로 분석에 들어갔다. 분석보다는 내담자가 답답해 하는 마음부터 다독이는 게 좋다. 이 상담자는 내담자의 문제를 명확히 간파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담에 끌려 들어간 것 같다. 그러면 이처럼 분석부터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
첫째, 상대가 나를 공격하려는 게 맞는지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그 언니의 경우도 할 말은 해야 하는 주인공과 다소 비슷한 성격 탓에 거슬리는 걸 바로잡고 싶은 의도가 우선이었지 상처 주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죠. 둘째는 그게 공격이 맞다 해도 내가 그 빌미를 상대에게 먼저 제공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의도하지 않게 상대를 자극하거나 실수를 하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셋째는 나도 공격을 하는 게 좋을 것인지 가늠해보는 것입니다. 손바닥 치기 게임에서 맞받아치기와 같은 공격을 하지 않고 살짝 자신 쪽으로 힘을 빼는 것만으로 상대의 중심을 빼앗아 쉽게 이기기도 하잖아요? 마지막으로 내가 한 공격이 상대적으로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수위 조절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같은 정도로 갚아줬다고 생각하지만 분노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총공격을 해버려서 회복 불능의 관계가 되기도 하니까요. 오히려 상대와 다르게 나는 핵심은 콕 집지만 자존심은 세게 찌르지 않는 정도로 대응해서 나중에 오해를 풀고 좋은 관계로 개선될 여지를 남겨두는 것도 좋겠지요.
상대방의 공격을 처리하기 위한 4가지 전략을 제안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인간관계에서 왜 늘 적이 생기는지 근본적인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증상 처방을 한다.
배움은 지지자들에게서만 얻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반대자, 심지어 적에게서도 배우지요. 같은 편은 아니더라도 상대를 원수 삼기보단 호적수 정도로 여기시고 장점인 언변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가시는 좀 줄여보시기 바랍니다.
적도 도움이 되며 본인도 말에 가시가 있을지 모르니 반성해보라는 충고다. 내담자의 근본역동을 다루지은 않은 점이 아쉽지만, 행동지침이 되니 약간의 유익을 줄 수 있다.
상담자2: 대구사이버대 교수(상담심리학)·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장
자신을 존중하고 있나요?
직업과 수명은 연관이 있다죠.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작가와 언론인, 연예인이 가장 단명하는 직업이고 지휘자는 평균수명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늘 시간에 쫓겨 다니고 인기 하락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연예인, 글만 쓰며 자기 자신의 작품에 극심한 자의식과 괴로움을 갖는 작가 등은 제 목숨을 갉아먹는 반면 박수갈채를 많이 받는 지휘자는 그만큼 오래 산다는 게 정설입니다.
‘적과의 동침’님, 사람들로부터 받는 긍정적인 피드백은 수명을 연장시킬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답니다. 저 역시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시나리오 작가들을 접하게 되는데요. 그분들 역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예요. 시나리오 모니터링 과정에서 칭찬보다는 “이렇게 고쳐라 저렇게 고쳐라, 이 부분은 왜 이러냐”는 부정적 피드백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수명이 짧을 정도로 고생이 많다고 한다. 격려라고 봐야할 지?...... 서론이 이렇게 길 필요는 없을 듯.
일단 ‘시나리오’를 평가하는 것과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구별해 보세요. “내 시나리오는 비판받아서는 안 되고, 내 시나리오가 비판받는 것은 나를 비판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일종의 비합리적인 신념입니다. “삼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이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일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실행하고, 초일류는 사람의 말을 듣고 배운다”고 하부 요시하루가 그랬거든요.
내담자에게 ‘시나리오를 공격받은 것이지 당신자신이 공격받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화가 덜 날 것이다. 당신도 화부터 내지말고 남의 충고를 잘 들어라‘ 한다. 하지만 언니는 내담자의 시나리오와 인간성 둘 다를 공격했다. 따라서 이 충고가 정확하지 않다. 또한 상담자1처럼 내담자의 억울한 감정은 돌보지 않고 분석부터 했다.
또 한 가지. 내가 왜 대인관계에서 ‘적’을 만들게 되는지도 생각해 보세요. 지금 보내신 사례에서는 상대편에 대한 태도와 상대편이 한 말과 생각은 많이 얘기하지만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적잖이 빠져 있거든요.
내담자가 자신의 행동도 분명히 얘기했기 때문에 이런 관찰은 좀 부정확하다.
그리고 한번 더 깊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나는 왜 지금, 왜 여기서, 이런 상담 내용을 써 보냈는가? 시나리오 스터디 때 상대편에게 받았던 나의 감정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내가 왜 청산유수와 같이 말을 하고, 대인관계에서 너무도 논리정연하게 말을 하게 되는가. 저는 님의 글 행간에서 “나 아프니까, 나 힘드니까, 나 화나니까, 내 편이 되어줘”라는 마음이 느껴지거든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했다는 다음의 말도 드리고 싶어요. “당신의 노력을 존중하라. 당신 자신을 존중하라. 자존감은 자제력을 낳는다. 이 둘을 모두 겸비하면, 진정한 힘을 갖게 된다.”
상담자가 작업해주어야 할 부분인데 내담자에게 어려운 숙제로 남겨주니 내담자는 시원하기보다 답답할 것 같다. 상담자 자신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모르면 자신이 하던 질문들을 지금처럼 내담자에게 넘겨준다.
상담자3: 정리컨설턴트·베리굿 정리 컨설팅 대표
훌륭한 말솜씨 대신 잠시만 경청을
살다 보면 어디서든 꼭 싫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고민녀가 정말 질색이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어떤 사람이었나요?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 쉴새없이 짜증내는 사람…. 어떤 점이 그렇게 싫었던가요? 혹시 그 사람들이 여신급 미모라서, 좋은 학교에 다녀서, 재밌는 이야기를 너무나 잘해줘서 그렇게 싫었던 적이 있나요? 아마 없을 겁니다. 어쩌면 고민녀가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싫은 사람(=적)은 어떤 특징을 가졌더냐고 물어본후, 혹시 내담자도 이런 특징이 있어서 남의 적이 되지나 않았느냐? 면서 반성을 유도한다. 하지만 문장의 명확도가 떨어져서 난독증이 생길 듯.
두 가지 정리를 권하고 싶네요. 첫째는 마음의 정리입니다. 키가 아주 큰 여성이 자신의 키에 콤플렉스가 있다면 “키가 정말 크구나” 하는 말을 들을 때 무척 속이 상할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큰 키를 사랑하는 여성이라면 “넌 너무 키가 커서 어떡하니?” 하는 말에도 키 작은 친구를 내려다보며 웃어넘길 수 있을 테죠. 아주 작은 관점에 따라 세상 전체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관점을 가지고 무엇을 느끼는지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고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음의 정리를 하라고 하지만 이 경우에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이 상담자도 문제의 본질을 모르고 상담한다는 게 드러난다. 하기사 이런 종류의 내담자, 즉 나르시스틱한 내담자는 1970년대 코헛이라는 미국 심리학자가 학계에 보고하기 전까지는 정체조차 몰랐다.
둘째로는 관계의 정리입니다. 지금은 아직 학생이라 그 언니와 너무 마음에 안 맞으면 스터디를 그만두면 되겠죠.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같이 일하는 스태프 혹은 감독이나 피디가 나의 ‘적’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의 75%가 상사나 동료와 마음이 맞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 인간관계가 좋아지는 친구에게 그 비결을 배우고 싶다고 물어보세요. 조언을 들을 때는 잠시 훌륭한 말솜씨는 내려놓고 ‘경청’하는 훈련을 해보면 어떨까 싶네요.
NPD(자애적 성격장애자)들은 자신을 최고라고 여기기 때문에 경청을 안하는 버릇이 있다. 권투로 치면 가드위에 펀치를 날리는 격. 따라서 이 충고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그 언니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온라인 카페상에서 논쟁을 하기보다는 직접 만나서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할 것을 추천합니다. 심리학자인 앨버트 메라비언에 따르면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말의 내용은 7%뿐이고 나머지는 표정·태도 등 비언어적인 부분이라고 합니다. 몇 킬로바이트의 글자로 말할 때보단 사람끼리 감정을 부딪칠 때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거겠죠.
역시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만나면 ‘청산유수같은 말발’로 언니를 눌러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세 상담자는 이 내담자의 정체를 몰랐기 때문에 경우에 맞지 않는 심리학적인 충고를 남발했다. 무수히 사격을 했지만 표적에 안 맞은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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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한다면~~~~ 일단 문장분석부터!
1. 꼭 ‘적’을 만들게 되네요.
2. 제가 김태희급 여신 미모를 지닌 것도 아니고, 학벌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문제라면 청산유수와도 같은 말발?
3. 그래서 말을 일부러 자제하려고도, 스스로를 감추려고도 노력해보지만 늘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내담자는 자신도 알지만 억제가 안되는 습관이 있다고 고백한다. 김태희급 외모와 뛰어난 학벌을 대신하는 필살기! 즉 청산유수같은 말발이다. 이 다음 문장에서도 ‘말발로 눌러버리면(그만인데)’ 하고 말한다. 한마디로 잘난 체 하는 버릇이다. 남보다 앞서야 되고, 잘나고 싶은 마음.....이걸 심리학에서는 자애적 성격이라고도 한다. 누구나 조금씩 있지만 지나치면 남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때문에 가시는 곳마다 적을 만든다.
4. 얼마 전 시나리오 공부를 위한 스터디를 시작했는데 거기에도 딴죽 걸고 공격하는 사람이 있어 힘드네요.
5. 말발로 눌러버리면 앙심 품고 계속 그럴 테죠.
6. 제가 시나리오 발표할 때 “집에 돌아갈 때 몽둥이 들고 기다린다 해도 해야 할 말은 하겠다”고 하기에, 정말 열심히 분석했나 보다 하고 내심 기대도 했죠.
7. 오 마이 갓~! 그 언니 입에서 나온 말은… “너 씬 넘버 S#1 그 기호는 제대로 알고 쓰는 거냐, 이렇게 잘난 척하는 대본은 연출자들이 싫어한다, 초보자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기본이 안 됐다….”
이런 내담자들은 인기를 모아서 뜨고 싶은 마음이 미치게 간절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불쑥불쑥 잘난 체하는 마음이 거슬릴 정도로 튀어나온다. 드디어 언니가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S#1기호조차 모르는 게 잘난척 하기는!” 하고 말이다.
8.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습니다. 평가를 할 때는 최소한 평가 기준을 토대로 해달라고 말이죠.
내담자는 자애심에 상처를 입고 맞대항을 한다.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시나리오 자체만 얘기해라” 하고. 하지만 자신부터 문제다. 자신이 먼저 시나리오를 빌미삼아 자신의 위대함을 뽐내지 않았던가! 이젠 이전투구의 싸움이 기다린다.
9. 그랬더니 다음 스터디에 빠지고 카페에 답글만 올렸더군요.
10. “지난번에 많이 아팠나 봅니다. 돌이켜 보니 좀 심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불필요한 버릇은 누군가 자존심 쿡! 찔러줘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만… 메인스토리의 극성이 도도하게 흐르는지는 점검하셔야 할 숙제인 것 같습니다.”
언니는 그 모임에 나오지 않으니 두 사람 사이는 결렬된 것으로 봐야 한다. 다시 적이 생긴 것이다! 언니의 말을 들어보면 ‘너도 못했다는 말을 들으니 많이 아프지?(내담자가 남을 비하하고 혼자 잘난척 하기 때문에 언니도 아팠고 그 때문에 보복했다는 의미다)’ ‘남의 자존심을 불필요하게 쿡! 찌르는 버릇을 이번에는 내가 쿡! 찔러서 고쳐줄게(내담자가 남의 열등감을 찌른다는 의미)’ ‘극성이 도도하다(자만심이 극성이라 할만큼 도도하다)’ 한다. ㅎㅎ 이래서 남의 말을 통해서 내담자의 모습을 역으로 유추할 수 있다.
11.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12. 옆에서 보기에도 기분 나빴다고 ‘너 정말 잘 참더라’ 그러는데…. 정말이지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네요.
13.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흑.
내담자는 남을 건드린 댓가로 자신도 고통을 당한다. 하지만 이유를 모른다. 오히려 '남들이 나보고 잘 참는다고 하더라' 하면서 자기자랑을 한다. 이게 자애적 성격의 특징이다. 따라서 내담자의 증세는 약간 깊은 편이다. 자신의 잘못이 무의식에 들어가 버려서 끄집어 내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어떻게 상담하나?
이들은 어린 시절에 주변에 잘난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늘 ‘아!~ 나도 저 사람들처럼 잘나야지, 그래서 남들 위에서 빛나야지’하는 소망을 굳히게 된다. 한마디로 ‘큰 놈’이 되고픈 거다. 진정ㅎ란 삶보다 '남에게 보여주는 삶'에 신경을 쓰고, 최고, 일류, 으뜸, 위대, 화려, 인정을 갈망한다. 아~ 정말 뜨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된다. 잘되면 여럿위에 군림해서 으스대느라 나를 잃고, 못되면 우울증에 빠져 일생을 슬피 살고, 평소에는 찬사를 갈구하고 남보다 앞서는데 생명을 바친다. 따라서~~
첫째, 대접받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을 뱉어내게 하라
이들은 남이 앞서면 고통스럽고, 남보다 앞서면 즐겁다. 하지만 ‘난 정말 잘나고 싶어! 대접받고 싶다고!’하는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약함을 고백하면 창피하기 때문이다. 상담자는 이 욕망을 드러내게 돕는다. 그래야 치유의 첫발을 디딜수 있다. 그 뒷 얘기는 전문적인 방법이니 생략하도록 하고~~
둘째, 그는 감탄, 선망, 칭찬, 우대에 허기진(hungry) 사람이니 상담자는 관대하게 표용해야 한다. 병으로 보는 사람(Kenberg)도 있고, 그럴 수도 잇다는 이론가(Kohut)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정기간 '괜찮은 사람‘으로 대우하는 게 좋다. 너무 굶주렸기 때문이다.
셋째, 이런 종류의 내담자는 칭찬과 인정을 너무 못 받으면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 따라서 감정이 폭풍처럼 일어나고 자신도 이기지 못한다. 따라서 상담자가 그 감정을 좀 맡아둔다. containing라는 기법인데~~ 전문적 기법이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암튼 이런 이들은 그토록 남보다 잘나고 싶으면서도 남의 칭찬이 아니면 홀로 서지 못하는 의존성이 있다. 참 역설적이다.
넷째, 이런 내담자들은 남에게 찬사받기를 원하지만, 그와 동시에 상대를 자신보다 못하게 만드는 교활성이 있다. 그들은 하늘의 태양은 두개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상담자도 ‘온정을 주고 없신여김당하는 수모’를 견뎌야 한다.
다섯째, 내담자도 드믈지만 변화한다. ‘내가 없으면 너는 빛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줄 때다. 너만 위대하고 빛나야 하는 경지는 없고, 우리는 서로 의존하고 사랑하는 존재임을 받아들일 때다. 그때 그는 동양최고, 일등, 승리, 대단함, 우수함, 경쟁에서 이김, 뛰어남같은 서열적 사고를 버릴 수 있다. ...ㅎㅎ 하지만 이 사상을 버리는 이는 참 적다. 대부분 치료해도 안 버린다. 참 끈질기다.
위에서 세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못한 이유는 자신도 동종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닮은 내담자를 만나면 이토록 분석을 못한다. 자신도 그런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마치 눈이 시신경을 못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르시즘에서 벗어난 내담자는 평범한 사람을 사랑하고, 평범한 자신도 사랑한다. 또한 자신의 약점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고 드러낼 줄 안다. 약점이 수치는 아니지 않는가! 출세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하고 못난 면이 있어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공자도 일찌기 ‘ 헤진 솜옷을 입고 여우나 담비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사람과 함께 서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자로일 것이다. 질투하지 않고 탐하지 않으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하지 않았던가.
첫댓글 굶주림을 알아볼 수 없는 까닭이 상담자들 역시 굶주려있기 때문이네요.
그리고 훈계와 설교를 장황하고 어렵게 나열하게 되구요.
선생님의 분석을 보니 사람들 누구나 정도차이는 있지만 자기애적인 기질이 있는것 같구요.
특히 상담자의 자리에 있다는 사람들이 더 심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맘이 무거워집니다...ㅠㅠ
요즘말로 '자뻑'이 저도 좀 심한듯 하여서리....ㅎㅎ
이해하시니 매우 기쁩니다. 첫째 상담자는 자애심을 버리기보다 자애심에서 나오는 공격성을 세련되게 다듬는 전략을 가르쳐 주었지요. 둘째 상담자는 자애심이 무엇인지 느껴보려고 애썻지만 감을 잡을 수 없자 오히려 내담자를 보고 '그게 감정이 어떤지 느껴보라'고 권합니다. 셋째 상담자 자애심을 좋게 보지는 않았지만 타인도 책임이 반쯤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애(투사) '서로 만나서 조정하고 타협해보라'고 합니다. 세 사람은 자신이 자애심에 엃매여 있으면서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담자의 엃매임도 못알아본 것이죠
우리 모두 자애심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누구도 자뻑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다만 자주 자신을 씻고 닦는 사람은 비린내가 덜 나지요, ㅎ ㅎ 성령님의 세례를 영혼에 받은 사람은 씻지 않아도 천성이 바뀌고요.
자애심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승자 선생님과 김서규선생님의 대화로 더 새롭게, 풍요롭게 알게 되네요..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라 하시니 아쉽네요..^^
선생님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고맙습니다. 귀한 배움을 이렇게 나누어 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