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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신자가 싸워야 할 영적 전쟁
누가복음 4:1-13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신앙 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신앙의 원수가 누구이며 그 원수는 어떻게 우리를 무너뜨리는지 알아야 합니다. 원수의 작전을 정확하게 알려면 먼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속받은 자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면서 그의 백성과 언약하셨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8).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신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9:45-46). 레위기 22장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을 더욱 분명하게 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22:32-33).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거룩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14장 2절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민이란 거룩한 백성,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성민이 할 일은 무엇보다 우상 숭배를 거절하고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 7:5-8). 거룩한 주의 백성의 마음 속에는 결코 세상을 향한 우상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주의 형상을 우리에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주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백성이 된 자들에게 거룩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명령은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것과 또한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7).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순결함과 거룩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귀한 사명이며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온전하게 이루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인 것입니다.
한편, 사탄은 하나님의 유일한 목적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즉, 주의 백성이 거룩하게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 놈은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주의 백성의 거룩함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고 또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나타난 사탄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을 말할 때 이 부분에서 속아 넘어갑니다. 우리는 사탄을 이기려면 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생의 자랑에서 이겨야 사탄을 이기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즉, 사회에서 성공하면 마귀를 이기는 것이요, 육체적으로 병 안들고 건강하면 마귀를 이기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또한 자녀들이 세상에서 잘 되고, 또한 사회에서 우리의 영향력이 커지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면 그것이 마귀를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의 힘 겨루기를 영적 전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에 대부분의 이단들은 소위 액운을 제거하기 위해 영적 전쟁을 치르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따라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가난 귀신 물러가라. 병마 귀신 물러가라. 미움의 귀신 물러가라”등으로 기도하며 외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영적인 세상에도 힘 겨루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기도나 고행이나 금욕의 힘으로 마귀를 대적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이러한 착각 가운데 교회와 신자들은 엉뚱한 전쟁을 가르치면서 도리어 사탄에게 속아 넘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질리 없습니다.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꿰어 엉뚱한 행위들을 신앙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거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가운데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우리의 거룩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한편, 이를 막는 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사탄은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진리를 왜곡합니다. 즉,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존재 목적을 망각하게 만들기 위해 진리를 왜곡합니다. 가장 흔한 왜곡은 신자의 목적은 세상적인 성공이며 그러한 성공을 위해 신앙의 열심을 내어야 한다고 미혹하는 것입니다.
이때 사탄의 궤계에 속는 자들은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업적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영광에 치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일인데, 미혹된 인간은 업적 및 능력을 소유하여 자기를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그릇된 영적 싸움의 개념인 것입니다.
십자가 구속을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대사명을 남기셨습니다. 그것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거룩을 의미합니다. 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가르쳐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별되도록 그들의 삶과 생각을 인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은 구약의 모든 교훈을 요약하여 가르친 핵심입니다. 신자들은 그 교훈을 이루기 위해 옛사람을 죽이고 거듭난 생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주의 생명이 우리를 통해 나타납니다. 즉,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비결에 대한 내용입니다. 결코 세상의 능력을 어떻게 얻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능력을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머리가 좋아지는지, 어떻게 하면 권력을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가르치신 유일한 복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대사명을 보면 복음을 전한 이후에 우리의 목적은 산상수훈의 교훈처럼 하나님의 백성다워지는 것입니다. 즉, 교회에 사람 머리 수를 채우는 것이 선교가 아니라 그들을 거룩의 자리까지 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인도하는 것이 우리 주 예수님이 주신 대사명인 것입니다. 반면에 사탄이 심은 업적주의는 교회를 부패시키는 지름길입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여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업적을 나타내기 위해 전도하는 교회는 거룩을 상실하는 부패 현상을 나타냅니다.
최근 이단으로 드러난 신사도 운동 등은 파워 인카운터를 주장합니다. 즉, 강한 어떤 힘을 갖고 악한 영을 물리치는 것이 영적 전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론을 가진 그들은 영적인 힘을 쌓기 위해 기도하고 찬양하고 방언하고 금식합니다. 그렇게 하면 마귀의 세력이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적 전쟁이 그러한 것일까요? 성경이 그러한 전쟁을 성도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는 영적 싸움에 대한 오해입니다. 이러한 오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평생 헛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평생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의 싸움입니다. 즉, 진리를 붙들기 위해 모든 세상적인 능력을 잃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능력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잃더라도 진리를 붙드는 것이 교회와 신자들의 싸움이며 그것이 신자들의 믿음과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이 충만하셨을 때 사탄이 도전하며 다가왔습니다. 신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사탄이 다가와 미혹합니다. 따라서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과의 싸움이 있게 됩니다. 영적 전쟁이란 힘 싸움이 아니라 진리와 거짓의 싸움입니다.
사도 요한은 영적 싸움의 본질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5-6). 영적 싸움은 진리와 거짓의 싸움입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의 싸움입니다. 즉, 우리의 싸움은 진리와 거짓 사이에서 진리를 찾으며 진리를 지키는 싸움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싸움을 위해 세상의 자랑들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을 잃을 수 있습니다. 명예와 인기와 재산과 친구들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잃지 않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승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짓은 반드시 진리에 기생합니다. 거짓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진리가 있는 곳에서 그 진리를 왜곡되면 마귀의 거짓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진리를 모르면 영생을 알 수 없고 영생을 얻는 길을 알 수 없으며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즉, 진리의 근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한편,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그러므로 마귀에게 미혹되면 진리의 길에서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 전쟁의 본질은 진리와 거짓의 싸움입니다. 힘 싸움이 아닙니다. 진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것이 영적 전쟁의 본질입니다. 진리를 붙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반면, 거짓에게 미혹되면 진리를 놓쳐서라도 세상의 자랑과 자기 능력을 얻으려 할 것입니다. 명예와 권력과 인기와 자기 자랑을 위하여 거짓을 늘어놓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거짓을 붙들며 거짓의 편에 서게 되면서 영적으로 패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은 자들은 이러한 패배를 승리라고 부릅니다. 진리를 잃더라도 세상의 것을 얻었으며 권력과 인기와 부귀의 힘을 모았다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낸 것은 사탄과 인류의 대표인 하와 및 아담과의 싸움입니다. 또한 사탄과 새 인류의 대표인 예수님의 싸움이며, 그리고 사탄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교회의 싸움입니다.
그러면 먼저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어떻게 이겼는지를 봅시다. 먼저 분명한 것은 하아와 마귀의 싸움은 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진리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미혹과 진리를 지켜야 하는 싸움이었습니다. 사탄의 미혹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인 진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하는 마음을 넣는 것이 마귀의 미혹이었습니다. 이때 마귀는 인간의 허영심을 부추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주신 것이 아니라 뭔가 부족하게 주셨으며 하나님 혼자 좋은 것은 다 갖고 있다고 하나님에 대해 왜곡하였습니다. 마귀의 음성을 들은 하와와 아담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불만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혹입니다. 마귀와 싸우기 위해 하나님처럼 능력을 갖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도리어 미혹의 영은 더 쉽게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탄이 성령으로 이끌림을 받으시는 예수님께 찾아와 시험하였습니다. 그 시험 내용을 보면 사탄과의 영적 전쟁의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미혹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떡을 먹기 위해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저버리라는 것입니다. 떡을 위해서 주 하나님 아버지의 명을 어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알더라도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그 명령을 무시하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더 많은 권력과 돈과 인기와 명예과 유명세를 얻기 위해 진리를 타협하라는 것이 미혹의 영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진리의 기록된 말씀으로 사탄의 미혹을 물리쳤습니다.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사탄의 둘째 미혹은 예수님을 이끌고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게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는 것이었습니다. 마귀의 말은 언제나 진리에 기생하는 거짓이기 때문에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는 완전하게 멸망 당하기 전까지 한동안 세상의 권위와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마치 북한의 김일성이나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임시적으로 이 땅에서 권세와 영광을 누립니다. 그가 누리는 권세와 영광은 실제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과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에 기생한 것으로써 때가 되면 주께서 마귀로부터 권세와 영광을 거두실 것입니다. 아무튼 마귀는 이 세상 권세와 영광이 마치 자신의 것인양 예수님을 미혹하였습니다. 즉, 썩어질 세상 영광과 권세로 미혹하며 자기에게 절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에게 절하도록 미혹하는 방법으로 언제나 세상의 영광과 권세를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이 세상의 영광과 권세를 구할 때 반드시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에 넘어가게 되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기생하면서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마귀에게 절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어느새 거짓과 술수와 기만과 배신 등의 죄악이 그 삶에 침투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때 미혹에 속아 거짓에 넘어간 자들은 소위 힘과 성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그 성공과 힘을 자랑하며 마귀에게 이겼다고 노래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도리어 마귀의 미혹에 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거룩과 진리를 지키며 주 예수께 충성하는 것이 승리인데, 그 승리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성공의 과정에서 진리를 왜곡시켰기 때문입니다. 둘째 미혹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는 기록된 성경으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이제 마지막 미혹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이는 내 멋대로 하나님을 믿도록 만드는 미혹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멋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즉, 왜곡된 신뢰입니다. 신뢰는 신뢰인데 왜곡되어 비뚤어진 신뢰, 내 멋대로의 신뢰입니다. 이 미혹에 대해 주 예수님께서는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마귀는 떠나고 주 예수님은 미혹에 이기셨습니다. 즉, 진리로 거짓을 이기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의 영적 싸움은 힘 싸움이 아닙니다. 밥그릇 싸움이 아닙니다. 선거에서 투표권의 싸움이 아닙니다. 교회의 영적 싸움은 귀신의 가르침과 성령의 가르침 중에 어떤 것을 따를 것인지에 대한 싸움입니다. 마귀는 거짓 복음을 만들고, 거짓 영을 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거짓 예수를 외치며 거짓 형제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교회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참 복음을 외치고 참 예수를 알려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대사명이며 바로 그것이 영적 싸움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에 성경이 경고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바른 교훈에서 떨어져 나가는 현상은 미혹의 영에게 무너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즉, 마귀에게 패배하는 교회마다 바른 교훈을 잃게 되어 있습니다. 즉, 진리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는 하나님은 미혹을 사랑하는 자들로 하여금 그 미혹에 빠지게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살후 2:11-12).
사랑하는 여러분!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의 가장 뛰어난 선지자이며 또한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그런데도 그분 역시 영적 전투에 대해 오해하였습니다. 메시야가 오면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승리는 커녕 도리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쫓겨다니셨습니다. 이를 보고 세례 요한은 결국 예수님을 의심하는 가운데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질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 7:19). 이러한 의심이 생긴 이유는 세례 요한마저 구약의 복과 저주의 개념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구약 시대의 사람들을 지칭하여 “옛 사람에게 말한 바”라 하셨고 자신 앞에 있는 제자들에게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이 오신 이후로부터는 복과 저주의 개념이 구약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세례 요한조차 예수 그리스도를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들도 세례 요한과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행동의 마음 동기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헌물을 드리는 자체보다 헌물을 드리는 동기가 더욱 중요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를 사랑함으로 섬기고 기도하고 희생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미혹되면 똑같은 행위를 하는데 그 동기가 바뀝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복과 영광을 계산한 후에 어떤 종교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타락한 죄성과 이기심을 하나님을 통해 채우려는 더러운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선포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믿으십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당장 먹을 떡과 고기를 구하며 혹시라도 공짜로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신앙 생활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때 이 우주의 가장 귀한 것은 다 받은 것과 같습니다. 마치 아담이 지음을 받을 때 모든 피조물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하와가 뭔가를 더 요구한 것처럼, 우리 또한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세상 것들을 구하기 위해 신앙을 붙들려고 합니다. 이는 시작부터 철저한 거짓과 사기에 미혹된 것입니다. 즉,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로 다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지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미혹의 영입니다.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을 추구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진리의 영을 거스리는 우리 속의 죄성이며 사탄의 미혹의 음성을 받아들이는 요인입니다. 이러한 미혹의 음성을 내는 자들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5병 2어의 맛을 보았던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늘의 말씀을 하시니 제자들만 몇 남고 그렇게 열심히 주를 따르던 수천명의 사람들이 그 즉시 주 예수님을 다 떠났습니다.
오늘날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다고 외칩니다. 그랬더니 수천 수만의 인파가 몰려듭니다. 한편 그리스도의 참된 선지자가 하늘의 복음을 외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어렵도다라고 하며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의 복음이 왜곡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그 말씀을 불편해하면서 모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현재 이 땅의 교회는 진리와 거짓과의 싸움에 대해 관심이 없고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성공하는가,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승리하는가에 모든 관심이 몰려 있습니다. 따라서 진리의 검인 성령의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교회 성장과 업적에 관심이 몰려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미혹의 영에 빠지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현재 교회는 성령의 검을 잃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진리의 편에 설 때 이 땅에서 고난과 어려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상 숭배를 하지 않기 위해, 거짓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왕따도 되고 직업도 잃을 수 있고 미운 털이 박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진리 때문에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면 바로 그것이 영적으로 부유한 것입니다. 신자들은 환란을 통해 더 다듬어지면서 더욱 거룩하여지고 온전하여집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고난은 유익이며 그 고난은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하게 빚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자의 영적 전투는 거룩과 진리를 향한 싸움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힘 싸움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능력 겨루기를 하지 마셔야 합니다. 그러한 힘 싸움을 하려고 할 때 그는 능력과 업적과 영광을 추구하게 되면서 미혹의 영에 빠져 진리를 잃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싸워야 하는 진정한 영적 전투는 세상을 잃을 각오를 하고 진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거룩을 버리고 거짓을 취할 때 그것이 바로 미혹의 영에게 패배한 것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그러합니까? 이생의 자랑과 세상을 붙들기 위해 주 예수님이 주신 명령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재림하셔서 우리의 삶을 평가할 때 그분의 평가는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우리의 업적을 보지만 주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주의 형상을 닮았는지, 또한 얼마나 진리를 고수하였는지를 보실 것입니다. 우리의 여생이 썩어질 세상을 추구하지 말고 오직 진리의 영의 이끌림을 받으며 진리 안에 서 있기를 바랍니다. 진리 안에 머무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인 줄 알고 더욱 진리의 근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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