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말 신라가 두만강이남 한반도 동쪽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관동(關東) 원주(原州)의 용화산(龍華山)에 학수암(鶴樹菴)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경순왕(敬順王)의 원당(願堂)이다. 경순왕이 처음 제천(堤川) 우경(遇慶)의 지방에 이궁(離宮 임금의 유행(遊幸)을 위해
궁성에서 떨어진 곳에 지은 별궁)을 지었는데, 하늘에서 석불(石佛)을 내려 용화산 꼭대기에 우뚝하게 세워 놓으므로, 경순왕이 제천으로부터 이곳에
이주(移住)하여 매양 백운산(白雲山) 남쪽 고개에 올라 석불을 향하여 절을 하곤 하다가 이어 그 산 밑에 원당(願堂)을 짓고는 황산사(黃山寺)라
호칭하였다. 이 산 위에 또 고자암(高自菴)을 지었는데, 일명은 태고사(太古寺)라고도 한다. 고자암에는 경순왕 영정(影幀)이 봉안되었고,
보덕(寶德) 14년 가을 8월 어느 날에 종손(從孫) 신(臣) 김신륜(金信倫)이 영정(影幀)의 발문(跋文)을 지었다.
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5 - 논사류 1김부대왕(金傅大王)에 대한 변증설(고전간행회본 권 60)
우리가 배우기로는 신라말 경순왕때 고려가 경상도경주일대를 제외하고는 경상도의 북쪽 대부분을 장악했다고 배웠다. 그러나 나는 거란국지에
나타난 신라군의 발해침공과 북한 두만강이북에 살던 달고말갈의 신라침공때 고려의 기병대가 출격하여 회군하는 달고말갈을 공격한 것을 예를 들어
신라가 두만강에서 경상도까지 한반도 동쪽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또다른 증거가 조선후기의 기록에 나타난다. 강원도 원주에
경순왕의 이궁이 있다고 한다. 경순왕이 강원도를 차지하고 있지 않으면 이궁을 지었다는것은 모순이 된다.
관동(關東)의 인제현(麟蹄縣)에 신라 경순왕(敬順王)이 살던 지역이 있어 이곳을 김부대왕동(金傅大王洞)이라 명명하였다. 그 읍지(邑誌)에
많은 사적이 실려 있는데, 경순(敬順)은 곧 신라의 항왕(降王 항복한 임금)인 김부(金傅)이다. 그가 후백제(後百濟)의 시조 견훤(甄萱)의 난을
당하여 국원소경(國原小京 지금의 충청북도 중원군(中原郡)에 있었던 신라의 다섯 소경(小京)의 하나)에 내왕하였기 때문에
충주(忠州)ㆍ청풍(淸風)ㆍ제천(堤川)ㆍ원주(原州) 등지에 유적(遺蹟)이 많아 이같이 유전하고 있으므로 지금 대략 고적(古蹟)을 취해 얻었는데,
그 김부대왕이라 칭한 것은 그때에 일컬을 만한 존호(尊號)가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성명(姓名)을 호칭해서 전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5 - 논사류 1김부대왕(金傅大王)에 대한 변증설(고전간행회본 권 60
신라 마지막왕 경순왕이 견휜이 경주를 침공할때 피난간 곳이 바로 충청도 중원군이라고 한다. 여기는 후백제땅이나 혹은 고려땅이 아니었던가 왜
김부가 거기로 피난갔겠는가 거기가 신라말에도 신라땅이었기 때문이다. 즉 고려가 한반도의 서북쪽을 신라가 한반도 동쪽전부를 후백제가 한반도
서남쪽을 차지한 것이 맞다는 것이다.
내가 일찍이 충원(忠原) 덕산면(德山面)의 성암리(城巖里) 및 삼전리(森田里)에서 묵고 있을 때 청풍부(淸風府) 월악산(月岳山) 및
신륵사(神勒寺)에 놀면서 한 노비구(老比丘)의 말을 들으니 '이 지역은 바로 옛날 김부대왕(金傅大王)이 피난(避亂)하던 곳이요, 월악산 뒤쪽에는
덕주사(德柱寺) 주(柱)는 주(周)로 된 데도 있다. 가 있는데, 이 절은
덕주부인(德周夫人)이 창건한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 이 절 뒷산 꼭대기에는 김부대왕이 피난했던 성(城)이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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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후기까지 신라의 마지막 왕시기에 신라땅이 충청도일부도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묘조(正廟朝) 때에는 영당(影堂)을 법당(法堂) 왼쪽 자좌(子坐)에 고쳐 짓고는 경천묘(敬天廟)라 사호(賜號)하였고, 또
인제(麟蹄)에는 경순왕이 살던 지방이 있어 그곳을 김부대왕동(金傅大王洞)이라 하였다. 읍지(邑誌)에는 많은 사적이 실려 있는데 거기에 의하면,
호남(湖南)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에도 영정 1본(本)이 있었는데, 일찍이 왜노(倭奴)들이 제 나라로 들여가서 그 영정을 모사(模寫)하고는
다시 가져와서 이곳에 봉안했다고 하였다.
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5 - 논사류 1김부대왕(金傅大王)에 대한 변증설(고전간행회본 권
60)
강원도에 경순왕이 이궁을 짓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이는 그가 분명히 왕이었을때라고 적고 있다. 그는 고려에 항복한후 끌려가서 경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고 그의 무덤조차 경기도에 남아있다. 그가 고려에 항복한후 강원도에 간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