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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2;12-17.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 앞에서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고. 2022. 12. 18.
오늘의 말씀은 2022년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어떠한 다짐과 결단을 해야 새로운 2023년을 맞이하고 그리고 새롭게 주어진 삶의 지경에서 아름다운 열매들을 만들어 갈 수가 있는가의 내용입니다. 사실 이 말씀은 마지막 주일과 송구영신 예배 때의 나눌 은혜인데 2022년은 성탄절과 성탄 주일과 송년주일이 겹치게 되기 때문에 오늘 이 내용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 왜 이 시간에 다짐과 결산의 예배를 드립니까? 지나온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아름다운 매듭을 위하여 결산의 예배를 드리는 것 아닙니까? 다시 열리는 2023년을 위해서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만 이렇게 결산하고 다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사람들도 지나온 세월을 뒤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결단을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과 가문과 교회가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서 결산을 하고, 그리고 그 결산 때문에 다시 여미는 매듭을 짓고, 어떤 부분에서는 후회도 하지만 다시는 이런 아픔과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서 다시 매듭을 풀되, 주님 앞에서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간이 바로 이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2022년의 결산과 함께 새로운 다짐의 매듭을 짓고 매듭을 푸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작과 함께 소망을 위하여 지나온 2022년의 지나온 과정을 어떤 자세와 어떤 태도로 살아 왔는가? 아쉬움의 모든 매듭을 짓고 새로운 기회를 위하여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어야 하는 사항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러니까? 지금 이 시간을 기준하여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은 매듭을 짓자는 말씀입니다. 왜요? 22;6,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누구인가에게 주실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듭을 잘 지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2022년의 결산은 너무나도 힘든 한해이었습니다. 2022년 시작과 함께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한 것을 예상은 했지만 그 사항들이 생각을 뛰어 넘는 상황이 도래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크게 드러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교회와 여러분들을 인도하시고 책임을 져 주신 주님이 계시기에 오늘 우리가 대강절 가운데 이 귀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요? 결론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님만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견디었습니다. 손에 잡힌 것이 없고 손으로 쥔 것이 없어도, 소출과 소산의 열매가 이 시간까지 시원치 않아도, 눈물과 한숨을 쉬면서 여기까지 왔어도 이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 앞에 비전교회와 여러분과 저의 신앙고백은 마라나타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입니다. 그런데 이 마라나타의 신앙 안에서, 주님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대강절의 끝 무렵에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기다리고 기대하는 주님이 오셔서 매듭을 짓게 하시고, 주님이 오셔서 결산을 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아쉬움이 떠나고 후회가 사라지고 새로 2023년을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없어도 다시 일어나고 다시 소망으로 시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마라나타의 신앙과 대강절의 중심에서 또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여러분, 풀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관계가 있고 생각이 그렇고 다짐했던 것이 그렇습니다. 닫힌 마음과 관계를 풀어야 합니다. 풀지 못하고 이 마음과 생각으로 2023년을 맞이하면 새로움과 기대와 기다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고 매듭을 풀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2022년을 우연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관계로 살았고 삶으로 받아드렸습니다. 예비하심과 작정과 섭리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것을 무엇이라 합니까? 세상은 이 것을 인연이라고 하는데 인연의 한자에서 緣이라는 글이 바로 묶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매듭은 그 묶음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입니다. 하지만 예비하심과 작정과 섭리라는 표현 속에 있는 인연과 매듭이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고 눈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항상 수고의 열매와 결실이 있을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있었고 그래서 낙심하며 원망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고 연민하며, 언제나 반갑고 그립기만 할 줄 알았던 사람이 언제 부터인가 미워지고, 두려움과 증오가 되어버리는 관계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 보다 내 마음속에서 따뜻함이 떠나버리고 차가움이 들어 선 것이 더 아프고 더 서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 들어앉은 차가움은 다시 사랑하고 연민하는 마음에게 도무지 자리를 내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 가운데 지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벌써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것은 언제나 아쉽고 서럽고 서운합니다. 그렇지만 한편 생각하면 인생에서 그렇게나마 매듭을 정리할 고비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은혜입니다. 언제까지 안고 가야할지 두려움과 언제까지 목 놓아 기다리며 가슴 태워야 할지 모르는 그 매듭을 저무는 해를 기회삼아 풀고 지을 수가 있으니 이 것이 또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있을 것이라는 주님의 축복이 더욱 다가옵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와 관계되어진 어떤 분에게 내 실수와 잘못으로 그 분의 가슴에 상처를 준 일은 없는지? 있지요. 해가 저물기 전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 그 가슴에 엉켜있는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아직 말을 꺼내지 못했어도 턱밑까지 차올라 숨을 죽여야만 하는 그 무엇은 없는지? 이 것 또한 풀어야 합니다. 이 2022년이 다 지나가기 전에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의 가슴 설레는 사랑과 은혜로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로 풀어야 합니다. 가슴에 쌓인 두려움과 미움과 분노와 증오는 없는가? 그것도 있습니다. 본래 매듭은 짓고 푸는 것은 끊어버리는 것이 아닌데 자꾸만 끊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어떤 분을 내 인생의 주군과 스승으로 삼고 있는가?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고, 때로는 아니 될 때도 있지만 이 것 또한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새로 시작하는 2023년에 한(恨)을 이어가서는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의 사랑이 마음과 심령에 가득하기를 소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맺힌 것이 있습니까? 마음에 맺힌 것은 새로운 시작에서 발목을 잡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끊어 자유롭게 풀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내 문제가 되면 그것이 잘 안 됩니다. 맺힌 것을 끊어버리면 결국 떨어져 나간 한쪽 끝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 앙금으로 남기 때문에 용서와 화해로 풀어야 하는데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2022년을 이 모양과 저 모습으로 보냈습니다. 이 모양과 저 모습 속에서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2022년 한 해를 어떻게 보냈다고 고백을 할까요? 먼저는 2022년의 삶의 결과입니다.
1. 세상은 무엇으로 결과를 말할까요? 세상은 매듭을 짓고 매듭을 푸는 일을 무엇으로 나타냅니까? 올해의 한자, 올해의 사자성어, 올해의 인물로 표현을 합니다. 여러분, 한해를 정리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언론과 여러 기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그 해의 가장 상징적인 단어와 인물을 말씀합니다. 사건을 이야기하고 즐거움의 내용을 말하고 아픔의 고통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올해도 세계 각 매체와 기관에서 저마다 2022년을 기억할 단 하나의 인물, 단 하나의 단어, 단 하나의 사자성어를 발표합니다.
1-1. 일본이 보는 세상입니다. 일본의 올해의 한자는 무엇입니까? 일본 한자능력검정협회는 올해 1년을 대표하는 한자에 대한 의견을 공모한 결과 올해 일본 사회를 상징하는 한자로, 2022년 한 해를 상징하는 한자로 싸울 전(戰)이 선정됐다고 일본 한자능력검정협회가 12일 발표했습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전(戰)이 올해의 한자로 선정된 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축구 일본 대표 팀의 카타르 월드컵 선전과 오타니 쇼헤이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활약과 코로나19와 고물가 대응이 모두 전투이었다는 뜻입니다. 도전하고 싸우지 않으면 헤쳐 나갈 수 없는 그런 2022년 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올해의 한자로 이 글자가 선정된 것은 미국 9.11 테러가 있던 2001년 이후 21년 만입니다. 전(戰) 다음으로는 편안할 안(安)과 즐거울 락(樂)과 높을 고(高)와 다툴 쟁(爭)이 뒤를 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렵고 고통이었다는 단어 이었지만 힘들고 어려워도 일본은 돈으로 그 어려움에 함께 했습니다.
1-2. 그러면 이웃인 중국과 타이완은 어떻습니까? 한 해를 마감하면서 언론매체나 연구기관에서 올해의 키워드나 올해의 유행어를 선정하며 한 해를 되돌아보는 것은 중국과 타이완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정부 기관인 국가언어자원 검측연구센터(이하 언어센터)는 각계 전문가와 일반인 투표를 거쳐 올해의 한자와 올해의 단어를 선정해 발표를 하는데 아직 입니다. 그런데 타이페이, 대만은 2022년 세상을 대표하는 올해의 한자를 발표했는데, 오르다. 라는 의미를 가진 '漲'(넘칠 창)입니다. 중국어로는 장(zhǎng)이라고 읽는데 '漲'자가 선정 된 이유는 올해의 경제적 상황의 영향이었습니다. 2022년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에너지와 물류의 각종 공급 망이 불안정해지고, 생필품 가격이 상승해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에 도달한 것도 무엇 하나 쉽게 만들어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힘들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2023년을 기대하기 때문에 창을 선정했습니다.
1-3. 그러면 한국은 어떻습니까?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선정했습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설문조사한 결과 50.9%가 과이불개(過而不改)를 올해의 사자성어이었습니다. 이는 중국의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처음 등장하는 표현으로, 과이불개(過而不改) 시위과의(是謂過矣)라는 표현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잘못이라는 의미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연산군일기 3년에 나오는데, 연산 군이 소인을 쓰는 것에 대하여 신료들이 반대했지만 과실 고치기를 꺼려 고치지 않음을 비판했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이 내용이 오늘 우리사회와 우리들의 얼굴의 모습 아닙니까?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든지 대통령 탓이라고 말하고 고칠 생각을 않습니다. 이태원 참사와 같은 후진국 형 사고가 발생을 해도 책임지려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이 되어 진 각양각색의 결과에 대하여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잘못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그 무엇이 되지 않습니다. 공정과 정의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은 비관적인 내용입니다. 이 사회가 빛을 잃고 모두 심각한 위기에 놓인 사회를 걱정하는 시선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자성어나 한자와 인물이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다가오는 시대정신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이제는 지나갑니다. 보라 새 것이 된 2023년이 옵니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버리고 돌아오는 것이 매듭을 짓고 매듭을 푸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평가들이 나올까요? 어두워지는 세상 가운데, 교회와 성도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데, 그러나 최근 교회와 성도가 빛과 소금대신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는 일들이 일어 난 증거입니다. 여러분, 비전교회는 어떻습니까? 무엇으로 대표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으로 올 2022년 한해를 평가 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소망과 비전을 다짐하며 매듭을 지으시고 매듭을 푸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그러면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비전교회와 여러분과 제가 무엇으로 2022년을 정리해야 할까요? 마라나타의 삶으로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계22:13절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하여 선포합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입니다. 모든 역사의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을 결정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은 주님입니다. 처음과 나중, 2022년 년 초와 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역사를 섭리하시며 인생의 시작과 끝을 결정하십니다. 지금까지 그런 주님을 믿는다고 신앙으로 고백을 했지만, 실제적으로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온전히 신뢰하며 살았는지 오늘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신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살아 냈는가? 먹고 사는 문제와 건강의 문제와 삶과 죽음의 모든 문제까지 주님께 맡기고 순종하며 살아 왔는가? 일부분은 맡기고 나머지는 스스로 주장하지 않았는가? 16절,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예수님은 메시야이시고 영원하신 왕입니다.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을 통하여 영원한 나라의 새벽별입니다. 특히 기다리고 기대하는 구원의 주님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아는 것이 왜 필요합니까?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삶이 변하고, 정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 수가 있고 그리고 다시 시작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알파요 오메가이고, 광명한 새벽 별인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2022년을 여전히 어둠 속에 살지는 않았습니까? 환경 때문에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았나요?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광명한 새벽별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정리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신앙으로 매듭을 짓고 믿음으로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처음과 나중이시며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께서 2022년의 시작을 함께 하셨다면 주님은 이 시간 지금도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2022년을 마감하고 매듭을 짓고 매듭을 푸시는 그래서 오시는 주님을 기대하시고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1. 그러면 무엇을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매듭을 지어야 하는가요? 결과입니다. 열매와 소출입니다. 지나온 삶이고 지나온 생각과 지나온 관계입니다. 계22:14-15절에서 그, 자기 두루마리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다 성 밖에 있으니라. 결산을 하면서 복이 있는 사람과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매듭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두루마기를 깨끗하게 빠는 사람입니다. 두루마기는 겉옷입니다. 자기 겉옷을 깨끗하게 빤다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케 되는 의미와 신앙인으로서 거룩하고 선한 일이 있다는 확신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이미 목욕을 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거룩하게 된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래서 지금, 정리를 하고 매듭을 짓는 것입니다. 2022년을 마라나타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두루마기를 빨아서 깨끗한 행실이라는 옷을 준비하여 입는 사람인데 지금 정리를 하고 이 땅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고 2023년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15절에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있어야 하는 여섯 종류의 사람을 언급합니다. 먼저는 개입니다. 개는 종교적인 위선입니다. 종교적 위선이란 신앙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탐욕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 땅에 오셨던 초림의 예수님과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이 개에 대하여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위선입니다. 다음으로 점술가들은 점을 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왜 점을 치는가?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이며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그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점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이고, 싫어하시는 부분입니다. 인간의 결정은 하나님이 주신 신앙과 이성으로 판단을 하며, 무엇인가 물을 일이 있으면 주님께 묻고, 주님 앞에 내어 놓고 기도하면 됩니다. 다음은 살인인데 살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어진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일종의 살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움이 무서운 것은 미움은 언제든지 살인으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우상숭배입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거나,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중심에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어떤 종류의 우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우상은 마음속의 우상입니다. 마음속에 주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자기 자신이나 다른 무엇이 주인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것을 지금 정리를 하고, 제거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천국에 갈 수 없는 무리는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거짓말을 살인이나 우상 숭배와 같이 취급합니다. 왜 그럴까요? 거짓은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행동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요8;44에서 사탄을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하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듣지 않은 것이나 보지 않은 것에 대하여 마치 사실인 양 말을 옮기는 것도 똑같은 거짓말입니다. 거짓을 옮기면 본인이 거짓을 지어낸 사람이 아니어도 거짓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하며 결코 거짓말을 가볍게 생각하면 아니 됩니다. 여러분,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누가 2023년을 여는 사람이 되는가? 누가 마라나타의 신앙인이 될 수가 있는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두루마기를 빨아 깨끗한 옷과 예수님의 보혈과 거룩한 선한 행실로써 자신을 깨끗하게 매듭을 짓고 정리한 그래서 대강절 끝 날에 모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과 함께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으로 인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함을 받으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2.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22;6,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누구인가에게 주실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매듭을 짓고 풀어야 나에게 주실 상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계22:18-19절 내가 이 책,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중요한 두 동사는 더하고 빼는, 플러스와 마이너스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말씀을 가감하면 아니 됩니다. 성경 말씀이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덧붙여도 안 되고, 무엇인가 빼도 아니 됩니다. 성경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말씀에 따라 믿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는 성경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왜 이단이 발생할까요? 바로 이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맘대로 가감하기 때문입니다. 이단과 사이비의 특징이 있습니다. 성경 외에 다른 것을 더 보태거나 뺍니다. 유대교는 신약을 빼고, 이슬람교는 코란을 더했습니다. 통일교는 원리강론을 더하고 몰몬교는 몰몬 경을 보탰습니다. 여러분, 성경 66권은 유일한 말씀, canon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 이후에 다른 성경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하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로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찬양 받으시고 영광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입니다. 계1: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여러분, 요한 계시록의 전체 주제가 무엇입니까?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을 대비한다고 하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식량이나 식수를 비축해 두는 것이 아닙니다. 계시록의 주제는 환난 중에 천국의 소망을 갖고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한 영향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믿음 때문에 아무리 환난과 핍박이 있어도, 인내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악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 이와 같은 것들의 모든 것을 잘 매듭을 짓고 매듭을 푸시는 그래서 잘 정리를 하시는 복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 그러면 이 땅에 오신 주님과 다시 오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요? 오늘 본문은 요한 계시록의 결론 부분인데,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계 22장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말씀은 내가 속히 오겠다는 말씀입니다. 12절에도 내가 속히 오리니, 20절에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예수님은 참으로 속히 오실 분입니다. 여러분, 모든 인생이 예외 없이 죽음과 동시에 심판자 되신 주님 앞에서 서야합니다. 주님의 재림의 날과 시간을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리고 그날은 도둑같이 옵니다. 아무도 예기치 않은 시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살 전 4;16, 주님은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시고, 바로 그 때에 죽은 성도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있는 성도는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다시 오실 주님의 날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단어의 아람어가 바로 마라나타입니다. 언제든지 오시옵소서, 언제든지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럴 용기가 있습니까? 2022년이 그렇습니까?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러니까? 이 땅에서 받는 상이 있고, 장차 하늘에서 받을 상이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고 박해를 받으면 크게 기뻐하라고 하신 이유는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히 11: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주님은 상을 주십니다. 2022년에 상을 주시고, 하늘과 땅의 상을 주십니다. 2023년에 더 놀라운 상을 베푸실 것을 굳게 믿고 바라고 찾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그립니다. 그러면 2022년 말, 주님은 우리가 어떤 다짐이 있기를 원하실까요? 주님은 우리가 한 해의 끝에서 다시 한 번 인생의 푯대를 분명히 하기를 원하십니다. 본문 20절 예수님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화답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언제 오시든지 환영할 수 있습니까? 아직 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절대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 중에서 주님의 재림을 맞는 것에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 문제는 나중으로 미룰 일이 아닙니다. 오늘 더 늦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입고 갈 옷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서먹한 분들은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새롭게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의 의로는 안 되지만 회개와 십자가의 은혜로 주님과의 관계가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첫 절과 마지막 절을 기억하시나요?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계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 두 구절을 꼭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창조와 은혜입니다. 나의 삶의 처음은 언제나 창조이고 나중은 언제나 은혜이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를 가리켜서 무엇이라 합니까? 보여 지는 현상이 말세지말 입니다. 그런데 말세가 다가올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도록 하는 유혹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놓치지 않고 꼭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주 예수의 은혜입니다. 은혜 아니면 우리는 설 수 없고, 은혜가 아니면 주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아름답게 올해를 매듭을 짓고 매듭을 푸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2023년을 맞이해야합니다. 여러분, 대나무를 보십시오. 대나무가 약해보여도, 대나무가 부러질 것같이 보여도 마디마다 매듭을 잘 만들었기에 폭풍한설에도, 비바람이 쳐도, 견고하고 그 자태를 드러냅니다. 2022년의 매듭을 잘 만들어야 2023년이 소망이 됩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임마누엘입니다. 고후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는 새해가 되고 2022의 비전교회와 교우들에게 올해의 사자성어는 마라나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역사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 올 수 있었던 것은 도우시고 이끄신 주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내 자신과 교회에 있었던 가슴 아픈 일은 주님의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고 매듭을 짓고 매듭을 풀 수 있는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대망의 2023년을 향하여 힘차게 뛰어 나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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