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대표적인 표적은 오병이어입니다. 이 표적 때문에 사람들이 모였는데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니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걸림이 되어 떠나가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명쾌한 답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듣기에 명쾌한 것은 그 사람의 수준에 맞기 때문입니다. 낮은 수준의 사람이 명쾌한 답만 찾아다니면 항상 자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성장이 없습니다. 초등학생에게 덧셈을 가르치면 쉽고 재미있겠지만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면 미적분의 세계를 이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내 살이 양식이고 내 피가 음료’라는 주님의 말씀은 내가 아직 해석할 수 없어도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사람들은 명쾌하게 이해가 되지 않으면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가지고 저항하고 떠나가 버립니다. 교회도 기복적인 설교를 하거나 윤리나 도덕이나 권선징악을 이야기하면 다들 이해하지만, 기독교의 근본 진리로 들어가면 이해할 수 없는 주제들이 많습니다. 동정녀의 탄생과 부활과 십자가의 대속 등은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공감대가 쉽게 형성된다면 거짓일 가능성도 큽니다. 하나님의 뜻은 공감이나 이해나 해석하지 못할 것이 많습니다. 제자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해 수군거린 것입니다(60, 61). 백 퍼센트 이해되고 설득이 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수준으로 만든 것들입니다. 세상 종교는 그들의 교리가 인간의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철학에 불과하고 논리정연하며 사람이 원하는 답을 줍니다.
만일 기독교를 인간이 만들었다면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절대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의 사건, 삼위일체 같은 어려운 부분들이 사실이니까 가감 없이 그대로 노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근본 진리는 인간의 사고구조와 절대 맞지 않습니다. 이성으로 믿고자 하는 사람들은 결국 실망하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늘로서 오셨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신다는 사실은, 아직 말씀도 안 하셨는데 이런 것을 말하면 너희가 믿겠느냐는 것입니다(62). 그런데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절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육과 혼(정신세계)과 영이 있습니다. 지성이나 감정이나 의지인 정신세계가 만들어 내는 세계를 철학이나 사상 세계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 낸 종교는 정신세계입니다. 사람이 득도하면 여기까지는 이릅니다. 성경은 이성이 만들어 낸 이 모든 것을 육이라고 말합니다. 그 너머에 있는 영적인 일들은 이성으로 이해나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만 해석이 되고 이해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63) 예수님의 말씀이 영이고 생명입니다. 생명을 얻으려면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니고데모도 거듭나야 천국을 본다고 하니 이성으로 이해를 못 해서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가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3:6) 육적인 것을 말해야 육이 이해하는 것이고 영적인 일은 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3:7) 너는 육에 머물러 있으니 이스라엘의 선생인데도 영적인 말을 하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성이나 육으로 이해하지 못 하는 영적인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육으로 이해하려면 철학과 사상으로 가야 하는데 이런 것들은 깊이 들어갈수록 목이 마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하신 말씀이 ‘성령을 받으라’ 와 ‘제자 삼으라’라는 것입니다. 성령 받기 전에는 영적인 세계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육으로만 이해하는 믿음이 있고 영으로 이해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냥 크리스찬이 있고 거듭난 크리스찬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듣는 것이 다릅니다. 그냥 교회 등록해서 다니고 침례를 받아도 그는 아직 이성으로만 믿는 것입니다. 이해도가 문자 수준에 머물고 영적인 파워가 없습니다. 영으로 믿는 사람은 그 안에 계신 성령께서 들려주시고 해석해 주시니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영적인 설교가 이해되고 해석이 되니 꿀처럼 달고 아멘으로 받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수준은 목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우리가 사는 길은 내 안에 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 부활의 성령이 나를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죄는 내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십자가를 의지하게 하심으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행위로 가지 않고 믿음으로 갑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해되고 명쾌하게 되며 똑똑해집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믿어지고 들리며 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65). 잘 보이지 않고 이해가 안 되면 성령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66, 67). 여기서 예수님의 실망과 고독이 느껴집니다. 진리를 전하면 육의 사람들은 떠나게 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68, 69) 베드로는 아직 육의 사람이지만 성령께서 감동하실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육의 사람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말씀을 떠나지 않으면 변화되어가는 유익이 있습니다.
항상 신중하고 일리가 있는 말만 한 사람이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런데 합리적인 자기 판단으로 주님을 버리는 일을 합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믿는 사람이었기에 제자의 자리에서도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70, 71). 살리는 것은 영입니다. 육이나 자기 판단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