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4. 네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40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기도 조용림 권사,염성섭 장로,하경숙 권사,염성섭 장로(549)
성경말씀 요한복음 15:1~6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아름다운 인생
찬송 88 내 진정 사모하는
광고 코로나 19 예방을 위해 마스크 착용(5차 전수검사 결과 전원 음성)
새가족, 김정수 권사, 정종만 성도 ,소천-임소환 권사
찬송 89 샤론의 꽃 예수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그렇게 말도 많았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했습니다.
그러나 퇴임하는 뒷모습이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이가 들어서인지 성격 탓인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몽니perverse를 부렸습니다.
몽니는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부리는 고약한 성질을 가진 사람을 일컫습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미국의 대통령인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트럼프 한 사람 때문에 미국이 그리고 세계가 얼마나 불편했습니까?
그래서 목사인 저도 제가 목회를 떠났을 때
우리 요양원에 제 빈자리가 표나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제가 능력이 있는 목사입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이 있는 팀장님은 퇴직 시에도 그 자리가 표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퇴직할 때 이간질을 시키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처럼 몽니를 부린다면
참 빌어먹을 사람이라고 욕을 얻어먹습니다.
옛날에 공중화장실에 가면 정말 더러워서 발을 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화장실 문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1절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절,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절,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유명한 드라마 대사가 생각이 납니다.
내 안에 너 있다.
바로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시장 가실 때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엄마가 없을 때 싸우지 않고 더 잘 지내는 아들이 착한 아들이다.
어머니가 시장 가시면 형제들이 싸움질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오시면 집안이 엉망진창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속상합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우리 어머님께서 명언을 많이 남기셨습니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
익은 곡식은 겸손하게 머리를 숙여도
쭉정이는 나 잘났다고 고개를 쳐든다.
그래서 목사인 제가 어머님 말씀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께서 매일 새벽이면 염소를 붙들고 젖을 짰습니다.
그리고 연탄불에 데우고 걸러서
콜라병에 담아서 제가 학교 가는 길에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한 병은 목사님께 갖다 드려라.
한 병은 담임 선생님께 드려라.
그리고 남은 우유는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우리 진교희 집사님께서 매일 아침 우유를 데워서 저에게 줍니다.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어머님께서
매일 아침 우유를 정성껏 데워서 주셨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저는 비위가 약해서 우유를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 몰래 우유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키가 다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철딱서니도 없습니다.
어머님께서 주신 우유만 다 마셨더라도 180(m는 되었을 것입니다.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진교희 집사님께서 주시는 우유는
한 방울까지 후룩후룩 다 마십니다.
이제라도 자라지 못한 마음 옹졸한 생각이 더 성숙하고 싶습니다.
1절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목사인 저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목사 은퇴하면 포도 과수원이나 할까?
그렇지만 농부를 아무나 하겠습니까?
제가 어릴 적에 우리 집 울안에 포도나무가 있었습니다.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기라도 하면
포도나무 아래에 가서 시큼한 포도 알갱이를 따먹곤 했습니다.
지금은 영농이 발달해서 맛있는 포도가 많이 나오지만
제가 어릴 적에 따 먹던 시큼한 포도 맛만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포도나무의 비유 말씀은 눈물겹습니다.
이제 곧 예수께서 우리 인간들의 손에 십자가에 처형당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속이 말이겠습니까?
쓰리고 아픕니다.
그런데도 목숨처럼 사랑했던 제자들까지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입니다.
가롯유다는 돈 몇 푼에 예수님을 팔아먹을 계획을 짜 놨습니다.
수석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제자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이런 경우를 두고 콩가루 집안이다.
명문 가족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온 가족이 함께 시련을 극복합니다.
콩가루 집안은 조금만 어렵기라도 하면 나부터 살겠다고
도망칩니다.
우리 요양원에도 시련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짝퉁 성도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해서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장 고통스러워할 때는 한 사람도 곁에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위로가 절실할 때 우리 모두 예수님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목사인 저도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제가 정치한다고 출마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두 번씩이나 낙선을 했습니다.
그러니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까지도 그랬습니다.
친구가 무슨 친구이겠습니까?
위로의 전화 한 통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돌팔매질까지 하는 친구들도 보았습니다.
그렇게 쓰라렸던 경험을 하면서
연세대 신학대학원에서 처절하게 공부를 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새벽 기차로 올라가서 종일 강의를 듣고
학교 근처 목욕탕, 찜질방에서 기숙을 하고 금요일까지 수강을 하면서
꼬박 3년을 다녔습니다.
마지막 5,6학기에는 너무나 힘들어서 지금 세브란스 병원 뒤편에 있는
허름한 기숙사에서 목,금요일은 기거하면서 살았습니다.
아마 지금은 그 기숙사가 없어졌을 겁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삶이
생명 나무이신 포도나무에 꼭 붙어사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인 제가 죽고 싶을 만큼 아팠던 시련을 극복했습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미처럼 포도나무에 꼭 붙어 떨어지지 않고서
징징 울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기도가 이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제가 살기 위해서는
포도나무에 그냥 껌딱지처럼 찰싹 붙어만 있어야 했습니다.
이것만이 제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크게 부활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크게 성공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5절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제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주섬주섬 밥을 먹으려 하는데
우리 배유경 팀장께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임소환 권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제가 우리 임소환 권사님을 가슴에 안고서 죽을 떠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면 우리 임소환 권사님께서
죽어가는 목소리로 목사님 감사합니다. 인사를 합니다.
그럴 때마다 너무나 고맙고 불쌍해서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좀 좋아지시는가 싶었습니다.
아드님께 새벽같이 전화를 못 드리고 느지막이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이미 장례 예식장에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병원에 가는 길에 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에게 헐레벌떡 달려와서 목사님께서 장남 몫을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포도나무, 생명 나무 된 성도로 살아가고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 인생 뭐 있겠습니까?
서로 도우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천년만년 살겠습니까?
여기에 계신 우리 김성오 집사님이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날아다녔습니다.
내가 해병대 91기다.
힘이 불끈불끈했습니다.
술만 마시면 온 동네가 소란했습니다.
그리고 응급실로 실려 가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뇌진탕으로 쓰러졌습니다.
목사인 제가 보증 각서를 쓰고서 대수술을 하는 대기실에서
노숙자들과 함께 쪼그려 앉아서 7시간 동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3개월 병수발을 했습니다.
온몸에 똥 발라 놓으면 간호사들이 천리나 도망칩니다.
그러면 제가 병원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맨손으로 똥을 다 닦아주고
씻겨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목사인 저에게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70이 넘으신 분이 젊은 목사한테 아버지라 부르니 이상히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 때문에 새 생명 얻어으니
목사님이 제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포도나무 인신 예수님이 생명 나무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살아있으니 생명 나무입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한 몸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도 그리고 손과 발도 한 몸입니다.
그래서 서로 도와야만 하는 유기적 관계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해야만 하는 유기적 관계입니다.
그런데 손이 발더러 더러운 놈아, 욕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4절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바로 이것입니다.
내 안에 너 있다.
내 안에 사랑의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 안에 누가 있는 것입니까?
지금 누가 내 안에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아닌 미움과 질투, 불 신앙이 있다면
나는 포도나무 가지가 아닌 짝퉁 권사입니다.
죽은 가지입니다.
죽은 생명입니다.
우리가 살아있지만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생명 나무이신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것을 상호내거相互內居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직전에
예수께서 포도나무의 비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으로써는 피눈물 나는 유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나면
모든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콩가루 집안이다. 말합니다.
그러니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어야 생명이 유지되듯
너희들도 흩어지지 말고
꼭 붙어 있으라는 유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께서 제자들 안에 계시고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우리 어머님은 유 권사님이셨습니다.
우리 어머님이 하늘나라에 가신지가 3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도 제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크리스찬이라면
예수님이 우리 가슴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9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참 아름답습니다.
12절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러하오니 사랑하다가 죽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