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은 열려있었고, 마당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그리고 방 문 앞 좁은 마루위에는 작은 상위에 몇 가지 음식을 올려서 놓여있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차려놓은 정성이었다.
한 여자가 혀를 쯧쯧 차면서 ‘아이구, 아까운 사람 하나 먼저 보내네.’ 하자 옆에 섰던 여자가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 수찬이가 술잔을 채운다. 그리고 잠시 묵념하더니 술잔을 들어 방문 앞에 뿌린다.
수한의 집에 잠시 머무른 장례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진철은 한경과 함께 담배를 입에 문다.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 중에 진철의 기억에 자리 잡은 얼굴도 몇 보인다.
고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아니 더 이상의 좋은 삶을 찾아 나설 수 없어서 이곳에 눌러 사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에 피곤이 묻어있다.
수찬의 아들이 영정을 들고 밖으로 나오고 뒤따라 조문객들이 나오고, 기사는 출발하기 위해 시동을 켠다.
버스가 수한의 집골목을 빠져 나와 옛 시장자리를 지나칠 때 진철의 폰이 주머니에서 울기 시작했다.
폰의 화면에 아들 이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진철은 급히 폴더를 연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전화를 하지 않는 아들의 전화에 긴장이 묻어난다.
“무슨 일이냐?”
“뭐라구!”
“그래, 어디로 모시냐?”
“알았다, 내 바로 올라가마.”
진철은 전화를 끊고 곧 기사에게 소리 질렀다.
“차 좀 세워줘요.”
버스가 마을을 막 벗어나 임진강을 건너기 위해 임진교를 향해 가던 중 세운다.
“무슨 일이냐? 집에 무슨 일이?”
한경이 놀라며 묻는다. 함께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진철을 바라본다.
진철은 앞으로 나가 일행을 보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수한이의 배웅을 끝까지 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병원 응급실로 간다는 연락이 왔네요.
큰일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아들의 전화는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하다가 쓰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119에 전화를 하고, 지금 막 병원으로 이송중이라고 한다.
진철은 아내의 의석 증을 의심한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번 귀가 울리면서 어지럽다고 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는 버스에서 내려 임진강을 바라본다.
버스는 제 길을 잡아 임진교를 건너고 있다.
일자로 쭉 뻗은 다리. 왕복 이차선과 인도가 표시되어 있는 다리.
그는 정류장으로 가려던 걸음을 돌려 임진교로 간다. 난간, 그는 그 난간을 붙잡고 강을 내려다본다.
어릴 적 있었던 화이트교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들은 말로는 흔적도 없이 치워버렸다고 한다.
진철은 그 화이트교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목조 다리였기에 미군은 그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H빔으로 난간 앞에 삼각형태의 보호대를 설치했었다.
그 후로 장마가 지면 어쩌다 위에서 떠내려 온 지뢰와 나무 그리고 온갖 물건들이 걸렸고,
장마 후에 마을 사람들이 나무는 나무대로 건져서 땔감으로 쓰고 때로는 살림에 필요한 가구들도 건지곤
했었다. 만년필 지뢰로 손을 크게 다친 그 여자 아이가 생각난다.
옥경이의 몽고반점도, 한 겨울 풀 나무 한 단 머리에 이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다 숨구멍에 빠져 돌아가신
여인, 나무에 꽂혀 있던 낫이 아니라면 누가 빠져 죽었는지도 모를 뻔 한 슬픔을 저 강은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버스는 진철의 시야를 벗어나 미산면 마전리 쪽으로 몸을 틀고 있었다.
‘잘 가라!’
진철은 택시를 불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버스 정거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끝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한 많은 인생...
저승에서나마 평안하시기를.....
고맙습니다. 고로나19 때문에 뵙지도 못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