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해 큰 마음먹고 집 사람과 함께 성당에 가서 저녁미사 참례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거실에 나오니 변함없이 밥 좋아하는 나를 위해 집사람이 빠른 동작으로 저녁 밥상을 차렸다.
그러나 참으로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메뉴가 한 가지 밥상위에 놓여 있다. 나는 20살 이후 군대 훈련소를 제외하고 이렇게 일주일 동안 음주를 안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작년 중앙마라톤에서 전날 음주 여파로 후반 고난의 발자취를 남겼던 것이 생각나서 올해는 한번 만회 해보리라 다짐하며 지난 일주일을 내 스스로는 인내의 한계를 느끼며 어렵게 참아 왔건만....,
저녁 8시쯤 되었기에 배도 촐촐 하던 차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보쌈을 바라보며 흔히 하는 속된 말로 산수 갑산을 가더라도 먹고 보자는 말이 있지 않은가 또한 그 상태에서 그냥 고기만 먹는다면 무슨 문제겠는가, 딱 한잔만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두꺼비 마개를 팍 비틀고 잔에 한잔 채워 고기를 김치에 싸고 소주를 한잔 팍 들이 부우니 목구멍을 통해 뱃속으로 전해지는 짜릿함 어찌 이것을 뿌리치랴 그래 내친김에 한 병 싹 비우니 집사람이 내일은 어쩌려고 그러냐는 말에 걱정 말라 큰소리 치고 났지만 걱정이 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가마동(정식명칭 : 가톨릭 마라톤 동호회) 파이팅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옆을 보니 가락동 시장에서 동부간선도로 옆으로 접어들어 수서역 방향으로 약간의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약간의 오르막이지만 한 시간여를 달려온 나에게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멈출 듯이 과부하가 걸린다.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 수서역 사거리를 지나 작년에도 느꼈던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수서역 4거리에서 세곡동을 지나 서울 공항으로 이어지는 직선도로의 양 옆으로 울긋불긋 오색 단풍으로 수놓은 가로수와 전원마을을 감싸고 있는 청계산 자락의 단풍을 그 어찌 하수의 필설로 표현이 가능하단 말인가....
세곡 사거리를 지나 성남의 서울공항 앞을 지나는데 멀리 중앙일보 깃발을 휘날리며 비상등을 켜고 선도차량이 달려온다. 우리의 기대주 지영준 선수를 기대하고 옆으로 지나가는 선수들을 보니 마치 아프리카의 검은 선수들의 달리는 모습이 동물의 왕국에서 보아왔던 타조가 달리는 것 같은 선두의 행렬이 지나고 우리의 지영준 선수는 한 10위권 정도에서 힘든 표정을 지으며 달려가고 있다. 그 옆을 지나는 많은 달림이 들이 응원을 보내준다. 그러나 우리의 바램이 지 선수에게 전달이 된다면 좀더 힘을 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요란한 구급차 소리에 자세를 가다듬고 앞을 보니 하프지점 표시가 들어오고 내가 차고 있던 시계로 대략 1시간 50분이 조금 지나 현재까지는 나의 계획대로 페이스가 진행된다. 반환점인 분당의 야탑교를 돌아 26키로 지점을 통과하니 대회본부에서 준비한 것 같은 차량에 대형 스피커를 동원해서 다양한 구호와 응원으로 지친 달림이들에게 용기를 북 돋운다. 다시 직선주로 멀리 바라보이는 양옆의 가로수와 성남공항의 주변의 단풍과 물결치며 흘러가는 수많은 달림이들과 어우러져 한편의 종합 예술작품을 보는 것과 같은 생각이 든다.
찌릿찌릿 다리에서는 자꾸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다. 작년에도 35키로 이 지점부터 아주 힘들고 고생을 했는데 오늘도 변함없이 나의 발걸음을 붙잡으려 한다. 억지로 힘을 내보지만 다리 근육 경련이 심상치 않아 잠시 스트레칭을 하고 아주 천천히 달려보니 웬만하다. 잠시 음료대에서 목을 한번 축이고 내리막을 달려 멀리 탄천교가 바라보이는 직선으로 곧게 뻗은 도로를 달려 38키로 지점을 통과하니 이제는 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오고 약간씩 발걸음이 가벼워 지는 느낌과 항상 어려운 지점에 오면 찾아오던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꾹 참고 가는데 도봉구청 동호회원들이 구령을 붙이면서 달려온다. 나도 그들의 구령소리에 맞춰 다리를 건너니 멀리 왼쪽으로 오늘의 목적지인 잠실운동장이 시야에 들어오고 오늘의 이 어렵고 힘든 고통의 시간도 서서히 마무리가 되어가면서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애들 생각, 집사람 그리고 부모님들 생각 또한 나를 아는 여러 지인들의 모습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힘들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었던 이들이 있었기에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골인지점의 시계가 11시 51분가량을 가리키고 있다.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번쩍 들고 결승점을 통과하니 오늘의 길고긴 고생스러웠던 105리가 넘는 인생길을 마무리하고 6번째의 도전에 6초의 아쉬움을 남기며 내년에는 보다 멋진 모습으로 도전해보리라 기약을 본다.
2007. 11. 4. 중앙서울마라톤 완주기
<※ 오늘의 기록 3시간 49분 39초, 7294명 완주에 3051등>
첫댓글 정말 부러운 기록이요. 너무 과욕 부리지 마시요.
대단하십니다.......
42.195km*6=25,317,000mm(2,531,700cm 253,170m)
그런데 이글이 참 좋은데 왜 6초가 아쉬웠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최고 기록이 얼마인에 그보다 6초가 늦어서 최고 기록 갱신을 못했다. 이런 내용이 있어야 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