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 안내표지판 앞에 서 있는 두류봉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의 내부 배치상황도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 앞 가로에 세워진 삼국성지(三國聖地) 자연석표지
무후사(武侯祠; 우호우츠)는 사천성(四川省; 쓰촨성) 성도시(成都市; 청두시)
남문(南門) 무후구(武侯區; 우호우취) 무후사대가(武侯祠大街; 우호우츠다지
에)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中國) 유일(唯一)의 군주(君主)와 신하(臣下)를
함께 제사(祭祀)지내는 사당(祠廟)이다. 무후사(武侯祠)에는 한소열(漢昭
烈)의 사당(庙←廟)이 있고, 같은 경내(境內)에 그의 무덤인 혜릉(惠陵)이
조성되어 있으며, 촉한(蜀漢)의 지략가(智略家)인 제갈량(諸葛亮)을 모신
사당(祠堂)으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이 모두를 통칭(通稱)하여 무후사
(武侯祠)라고 한다.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 정문의 가로에는 한소열묘(漢昭烈廟)라고 쓴 간판이고
세로 왼쪽에는 성도무후사박물관(成都武侯祠博物館)이라고 쓴 간판이 걸려있다.
여행객들은 한자로 음은 같아도 뜻이 다른 廟 또는 庙와 墓를 구별해야 한다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 정문윗쪽에 가로로 붙여둔 "漢昭烈廟" 간판
<廟>는 <사당-묘>자로 "사당"을 말하고, <墓>는 <무덤-묘>이다.
임금이나 황제의 무덤은 "릉(陵)"이라고 하고, 묘(墓)라고 말하지 않는다.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의 정문 왼편 벽에 全国重点文物保護單位 - 武侯祠 현판이 있다.
무후사(武侯祠)는 류비현덕(劉備玄德)과 제갈공명(諸葛孔明)의 묘(廟)가
안치(安置) 되어 있는 사당(祠堂)으로, 원래는 류비(劉備)와 공명(孔明)의
묘(廟)가 각각 다른 곳에 있었는데, 14세기 말엽(末葉)에 합친 것이다.
류비(劉備)가 주군(主君)이었던 까닭으로 원래의 명칭(名稱)은 류비(劉備)
의 시호(諡號)인 소열제(昭烈帝)에서 그 이름을 붙여 한소열묘(漢昭烈廟)
였지만,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지혜(智慧)를 높이 샀던 사람들이 그의 시호
(諡號)인 충무후(忠武侯)를 따라 일반적으로 무후사(武侯祠)라고 부르게
되었다.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 정문 윗쪽에 가로로 붙여둔 "漢昭烈廟" 간판 아래로
관람객들이 입장권을 내고 체크를 하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 무후사(武侯祠) 정문으로 들어가면 "武侯祠" 현판이 걸린 안쪽 문이 또 있다
▲ 무후사(武侯祠) 정문으로 들어가서 안쪽에 또하나의 "武侯祠" 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一番晤對古今情(일번오대고금정) : 한번 만나보아도 고금을 쌓아온 정분과 같다.
三顧頻煩天下計(삼고빈번천하계) : 세 차례나 빈번히 찾아보아 천하를 헤아리게 된다.
무후사(武侯祠)를 처음 건립(建立)한 것은 서기 223년이었는데, 당(唐)나
라 이전에 세워진 제갈량(諸葛亮)을 받드는 무후사(武侯祠)에 류비(劉備)
의 왕릉(王陵)인 혜릉(惠陵)을 중건(重建)하고, 또 인근에 있던 한소열제
(漢昭烈帝) 류비(劉備)를 제사(祭祀) 지내던 사당(祠堂)을 명(明)나라 초
년에 중건(重建)하면서 무후사(武侯祠)에 같이 들여와서 합치게 되었다.
이래서 군주(君主)와 신하(臣下)를 함께 제사(祭祀) 지내게 되어 사당(祠
堂)과 능원(陵園)을 같은 경내(境內)에 조성하는 구조(構造)가 되었다.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의 정문 좌우에서 모양을 달리하며 보초를 서고 있는 사자상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의 정문 좌우에서 모양을 달리하며 보초를 서고 있는 사자상
▲ 옛날 고관대작(高官大爵)이 사는 큰집은 밖에서 대문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대문을 가린 벽을
보통 만들어 조벽(照壁) 혹은 조장(照墙), 조벽장(照壁墙), 문병(門屏), 영벽(影壁)이라고 한다.
그런데 왕릉(王陵)의 정문 앞에는 이런 조벽(照壁)을 세워서 참배(參拜)를 하지 않고는, 담장 안의
왕릉이 보이지 않게 만들어 둔다.
혜릉(惠陵)을 제외하고 현존(現存)하는 사당(祠堂)의 주된 건물은 1672년
청(淸)의 강희(康熙) 연간에 중건(重建)된 것이다. 1961년 중국 국무원(國務
院)은 성도시(成都市)의 무후사(武侯祠)를 최초로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全國重点文物保護單位) 즉 국보(國寶)로 지정(指定)하여 공포(公布)하였
다.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역사적(歷史的) 성지(聖地)로 그 명성(名聲)을
향유(享有)하게 되는 박물관(博物館)이 1984년에 창립(創立)되었으며,
2008년에 처음으로 국가 1급 박물관으로 승격되었다.
▲ 무후사 정문에 들어가 "武侯祠" 라는 편액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앞에 있는 전당(殿堂)의 복도가
문신무장랑(文臣武將廊)이다. 좌우로 촉한(蜀漢)시대 유명한 문관(文官)과 무장(武將)이다.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의 문신무장랑(文臣武將廊)에는 촉한(蜀漢)시대
류비(劉備)와 함께 나라를 세우고 같이 나라를 다스린 유명한 인물상이 있다.
▲ 성도무후사(成都武侯祠)의 문신무장랑(文臣武將廊)을 정문에서 바라본 모습
▲ 문신무장랑(文臣武將廊)을 정문에서 바라보는 왼편벽에는 전출사표(前出師表)가 붙어있다
▲ 문신무장랑(文臣武將廊)의 정문 앞 한가운데 써 둔 내부 안내표시판
류비전(劉備殿) 앞의 동쪽에 있는 장랑복도(長廊複道)에는 모두 14명의
존귀(尊貴)한 인물상(人物像)이 있는데, 중요한 촉한(蜀漢)시대의 문관
(文官)으로, 다른 이름으로 문신랑(文臣廊)이라고 한다. 그 차례를 보면,
방통(龐統)、간옹(簡雍)、려개(呂凱)、부융(傅肜)、비의(費禕)、동화
(董和)、등지(鄧芝)、진진(陳震)、장완(蔣琬)、동윤(董允)、진복(秦宓)、
양홍(楊洪)、마량(馬良)、정기(程畿) 순이다.
류비전(劉備殿) 앞의 서쪽 장랑복도(長廊複道) 역시 14명의 인물상(人物
像)이 있는데, 촉한(蜀漢)시기에 용맹(勇猛)한 장군(將軍)으로 다른 이름
으로는 무장랑(武將廊)이라고도 한다. 그 차례는 조운(趙雲)、손건(孫乾)、
장익(張翼)、마초(馬超)、왕평(王平)、강유(姜維)、황충(黃忠)、료화
(廖化)、향총(向寵)、부첨(傅僉)、마충(馬忠)、장억(張嶷)、장남(張南)、
풍습(馮習) 순으로 나열해 두었다.
무후사(武侯祠)를 건설하면서, 장비(張飛)와 관우(關羽)는 그때 이미
“신(神)”급의 인물(人物)이라 자연스럽게 이 배열(配列)에서는 빠지게
되었다.
▲ 서편 무장랑(武將廊)에 모셔져 있는 조운(趙雲 : 168~229)인물상
▲ 중국영화《삼국지(三國志)》에서 그 용맹성을 보이고 있는 조운(趙雲) *
♣ 삼국시대(三國時代) 영웅(英雄)인 조운(趙雲)은 촉한(蜀漢)의 무장(武將)으로 자(字)가
자룡(子龍)이다. 8척 거구로 상산군 진정현(常山郡眞定縣)출신이라, 흔히들 “상산(商山)
의 조자룡(趙子龍)”이라 불렀다. 관우(關羽), 장비(張飛), 황충(黃忠), 마초(馬超)와 더불
어 촉한(蜀漢)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이라고 하는데, “신의(信義)를 중요시 여긴 불
패(不敗)의 천하대장부(天下大丈夫)”로 민간의 추앙(推仰)을 받고 있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