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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법문 스크랩 도제양성 / 대행스님
이슬(신행화) 추천 0 조회 53 13.01.20 14: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도제양성  / 대행스님 
 
 항상 여러분들과 같이 공생, 공용, 공체, 공식하며 한자리 하고 있는 까닭에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고 나는 나인 것입니다.
서로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또 만나고 하면서,
오늘도 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더없이 기쁘게 생각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려고 이렇게 분잡하게 다니고 있는 것일까요?
현대는 세계적으로 도제양성이 시급한 시대라고 봅니다.
기복으로만 맹종하고 타력신앙으로만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광대무변한 인간의 가능성을, 법신으로서의 부처 이룰 자격을 상실했다고 봅니다.
우리는 더 할 수 없는 고등동물로서,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기 자신을 돌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돌아 볼 수 있어야만 이 세계를 볼 수 있고, 세계를 조절할 수 있고,
세계를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이 우리는 조화를 이루며 평화로운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겁니다.
어떤 체제의 어떠한 정치가든 중도체제에서 살아 갈 수 있게끔 조절하며 이끌어 가야만,
아무리 시비가 분분하고 문제가 생긴다 할지라도 모든 면에서
정상적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나와서 여러분 스스로도 발전하고 사회적으로도
각 분야를 눈부시게 발전시켰고 여러 문화 문명을 꽃피웠다고 볼 수 있겠지만,
반면 많은 것을 파괴하고 오염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인간은 물론이고 다른 많은 생물들 또한 자연의 오염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고 있습니까.
이러면서도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이런 상태에서 그냥 쓰러져간다면 어떻게 참된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으로 태어나서 짧고도 짧은 생을 사는데 그 동안에
어느 정도 올바른 도리로 살아 가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말씀 드리는 거지만, 잘 다듬어진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평범하면서도 진실된 비유로 표현해 드리겠습니다.
비유하여 여러분들이 수박이라고 합시다.
여러분들이 다 수박이라면 작년(과거)의 씨로 인해 수박이 된 것입니다.
작년의 씨가 아니라면 어떻게 올해(현재)의 수박이 생겼겠습니까.
그 수박은 놔두고 작년 씨를 바깥에서 찾는다면 아무리 애쓴들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올해의 수박에 씨와 살과 가죽이 한 데 합쳐져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 그 안에 자기 씨가 있는 겁니다.
인간이나 다른 모든 생물 또는 흙, 바람, 불, 공기의 생명들도
모두 이 씨로 인해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모든 것 속에는 근본 원소가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씨로 인해서 수박이 생겨나고,
그 수박으로 일체중생을 다 멱이고도 되 남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심어서 먹이고 또 심어서 먹이고 해도 줄지도 않고 늘지도 않는다
사람이 생겨난 만큼 먹고 살 수 있다.
적으면 적은 대로 먹고 살고, 많으면 많은 대로 먹고 살 수 있다.
그래서 분지 복은 자기가 가지고 나온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들은 그 씨를 믿고 나가기 이전에 무조건 의증을 만들어 준다고 하는데,
의심하기 전에 자기 속에 들어있는 씨를 먼저 믿고 들어가야 합니다.
스스로 의증이 일어나는 것과 일부러 만들어서 의증을 내는 것과는
천지차이로 다릅니다. 그 차이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여러분들은 모를 겁니다.
그래서 씨에서 그 수박의 모든 것을 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하더라도,
모든 것은 거기에서 들이고 내는 것이라는 것을 믿고 맡겨 놓고,
또 침착하게 무심으로써 씨를 싹 티우는 수행을 하라는 것입니다
싹이 자라서 열매가 열리고 무르익어 여러분들한테 내 주어도 줄지 않고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는 그런 능력이 거기에서 소생된다면,
그야말로 청정자재천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러분들이 자기 씨가 진짜 있다고 믿고 거기에 모든 걸 맡겨 놓고 돌아갈 때,
거기에서 스스로 둘이 아닌 도리가 나오기 때문에,
유와 무의 세계가 벌어지기 때문에, 우주가 벌어지기 때문에,
그때 대의증이 생기는 것입니다. 적
든 크든 그때 나는 의증이 공부거리지, 인위적으로 의증을 내는 것은
맷돌에 물건을 넣지 않고 빈 맷돌만 돌아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그 차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모든 것을 그렇게 해서 마음과 마음이 서로 우주법계에 두루 할 때에,
다른 혹성에서 살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들을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는 그런 자재권이
여러분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이 세상은 여러분들 마음에 달려 있다구요.
이 세상은 여러분들 주먹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옛날에 어떤 사람이
‘어느 것이 불법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서 하늘을 한 번 가리키고
땅을 한 번 가리키고 주먹을 한 번 쥐어 보이고는 땅을 쾅 쳤던 것이지요.
유의 세계와 무의 세계 즉 삼천대천세계를 한 데 합쳐서 한 군데에 찍은 겁니다.
여기에서 바로 들이고 내는 작용을 한다는 뜻이지요.
그 작용이 바로 중용이니, 세계를 조절할 수 있고 평화롭게 만들 수 있으며
불국토를 만들 수 있는 그런 능력자라야만이 그와 같이 할 수 있다는 얘기 입니다.
옛날 얘기 하나 할까요. 신라시대의 고승 자장율사가
당나라로 건너 갔을 때의 일입니다. 길을 걷다가 좀 쉬고 싶어서
땅바닥에 앉아 걸망 속에 들어있는 경전을 꺼내 보고 있는데,
길 가던 어느 스님이 ‘거 참 별 수행자 다 보겠네.
백지를 볼 줄 알아야 붓대를 굴릴 수 있고 붓대를 굴릴 수 있어야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입으로만 쪼다가 몸 떨어지면 말도 떨어질 것을 --’하거든요.
이 말에 충격을 받고 마음이 상한 자장율사는 경전을
걸망에 집어넣으면서 생각해 보니, 사실은 맞는 얘기더랍니다.
별놈 다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별 놈은 자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한 속을 가라앉히고는 청량산 기슭에 이르러 문수보살상 앞에 앉아서
천 일을 마음 먹고 관했더랍니다.
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천일이라는 생각도 없이 관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문수보살이 나이고 내가 문수보살이지, 문수가 따로 있나. ’
그런데 이 순간 옆에서 어느 노승이 짚고 왔던 지팡이로 탁탁 치면서
‘네가 나이고 내가 너라면, 내가 나에게 내 주장자를 전하노라’하거든요.
그러더니 그 지팡이로 자기 머리를 탕 치는데 소리가 굉장하더랍니다.
하도 소리가 요란해서 쳐다보니 그 노승 머리에서 사리가 나오더랍니다.
사리를 받아 들고 하시는 말씀이 ‘
이 사리는 부처님의 사리이며 가사 한 벌은 부처님께서 입으시던 것이니라.
내 그대에게 전하노니 그대 나라에 돌아가 절을 짓고 탑을 세워서 잘 봉안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장 율사는 너무나 기쁘고 환희심이 나서 지성으로 삼 배를 올린 후 고개를 들어보니,
그 노승은 온데 간 데 없고 문수보살상만 제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리와 가사를 받쳐들고 문수보살상을 몇 바퀴 돌다가 언뜻 보니,
노승이 지팡이로 자기 머리를 때렸던 부의와 똑같이 문수보살상 머리에도 흠집이 있고
구멍이 나있거든요.
문수보살상의 상처 부의와 노승이 자기 머리 때렸던 부위가 똑같더라 는 말입니다.
그걸 보고 자장 율사는 이렇게 생각하였지요. ‘
문수보살이 화신으로 화해서 나에게 부처님의 유물을 전하셨구나. ’
그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마음이 아주 당당해지고 떳떳해지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종남산으로 가서 수행 정진한 후에 부처님의 유물을 모시고
신라로 돌아와서 월정사 · 마곡사 · 통도사 등 많은 절을 짓고 탑을 세웠으며,
통도사에 사리와 가사를 봉안하고 사부대중을 교화하였습니다.
자장 율사가 설법을 한다 하니 많은 대중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골짜기마다 꽉 메웠습니다.
그렇게 번성하던 불교가 고려말기에 이르러 탄압을 받기 시작하면서,
스님들은 끌려가고 절은 부숴지고 하여 자연히 도둑들의 소굴이 되어 갔습니다.
그즈음 마곡사도 마찬가지여서, 도둑들이 일이십 명 정도가 아니라 수백 명에 달하였습니다.
그 후 어느 고승이 왕명을 받고 도둑들을 내몰기 위해 마곡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도둑들을 모아 놓고 알아듣도록 타일러도 통 말을 듣지 않으니,
할 수 없이 그 스님은 군사를 불러오기로 마음먹고서, 방편으로 왕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 들으시겠지요. 왕벌 속으로 들어갔으니 수십만 마리라 할지라도
모두 인솔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왕벌이 된 그 스님은 벌 군사들을 동원하여 도둑들을 마구 찔러댔습니다.
그때서야 그 도둑들은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둑들은 돌아갈 생각을 않고,
광대무변한 부처님 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면서 묘한 법을 증득하고자
불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곡물을 받은 고승을 그것으로 망가진 절을 보수한 후 도제양성을 위해
무척 애쓰고 있던 중, 어느 수좌가 와서 물었습니다.
첫째 부처님의 사리가 문수보살상 머리에 들어 있다가 나온 까닭은 무엇이며,
둘째 가사 유물을 그렇게 잘 보관하라 했는데 보관한 사이가 없는 까닭은 무엇이며,
셋째 스님께서 왕벌 속으로 들어가 싸우다가 다시 스님에게로 들어간 까닭은 무엇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런 문제들로 인해 얼마나 수많은 선지식들 또는 선을 공부한다는 많은 사람들이
묻고 대답하고 묻고 대답하며 피나는 노력들을 했겠습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스님네들은 물론이고 재가 불자들도 열심히 정진하셔야 합니다.
과거에도 도제 양성을 위해 애썼지만, 현대는 더욱 더 시급한 때라고 봅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위·아래를 한 주먹에 쥐고 베풀며 조절할 수 있어야,
이 세상은 보다 더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잠시 침묵) 이 자리에 대답하실 분 안 계십니까?
선 도리는 요모조모 생각해서 대답하려 하면 벌써 천리 만리 벗어버리고 맙니다.
들이대는 즉시 맞아 떨어져야 선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리 저리 맞춰서 생각으로 지어서 대답하는 건 일상 생활의 유위법에서나 통하는 거지,
무위법에서는 맞추고 자시고 할 것이 없어요.
허공에 뼈다귀를 세워 놓으면 세워 놓은 대로 빼면 뺀 대로,
했다 하면 하는 거고 그렸다 하면 그린 것이지 이 생각 저 생각 할 것이 없어요. 그
래서 참 자기를 발견해야 당당해지고 무엇이든지 들이 댈 수 있고 대답할 수 있는 겁니다.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하자면 그 고승은 질문한 수좌를 막대기로
어찌나 세게 후려갈겼는지 얻어 맞은 수좌는 아이쿠--하고 신음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고승이 가사 장삼을 휙 날리며 돌아가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수좌는 손바닥을 탁 쳤습니다. ‘
자재천궁이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있구나.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유물,
그리고 고승이 왕벌 속으로 들고 나는 것이 다 무로구나.
무인 까닭에 바로 있는 것이로구나.
’조금 전에도 얘기 했지만 요리조리 생각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 한 번 일으키는 것이 헛되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그대로 법이기 때문에 한다 안한다 언어가 붙을 수 없지요.
번개같이 생각 한 번 일으키면 그대로 법인데 거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수좌는 조용히 스님께 다가가서 절을 한 후, ‘
부처님은 여기 앉아 계십니다’하고는 일어나서 하늘을 쳐다보고
팔을 벌려 껄껄 웃으며 나갔습니다. 그것을 보신 스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
한 놈이 열 놈이고 열 놈이 한 놈이 되니 만사형통이로군’ 하시는 겁니다.
멋지게 양성을 한 것이지요.
이 얘기는 책에 씌어져 있는 그대로가 아니지만 예전에 한암 스님께 들었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스님께서도 책에 적힌 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그렇게 만들어서 하셨더군요. 만들어도 만든 게 아니라 그냥 법이에요.
책에 써 놓은 걸로 봐서는 선사들께 누가 되는 게 많습니다.
도둑들로부터 항복을 받은 그 고승이 뭐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고 씌어 있으니
어찌 누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세계의 멋을 모르기 때문에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스님께서 주문을 외웠다고 할 수 밖에요.
선지식들이 만 명이라 할지라도 석존과 둘이 아닌 까닭에 사리를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지요.
또 부처님의 유물은 누가 모시고 있나요?
각자 자기가 보관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여러분들이 두른 가사와 여러분들의 몸 말입니다.
그러니 내가 너고 네가 나라면 내 주장자를 나에게 전하노라 하고선 자기 머리를 때려서
사리를 내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부처님의 사리인데 내가 간직하고 있다가 너에게 주노라’ 했다니,
그 가르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거지요.
부처란 만 가지 법의 만 가지 행을 다 하는데, 어
느 것 할 때 나라고 할 수 없으니 부처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탕 전골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요, 개구리탕 전골은 견성해서
둘 아닌 도리를 알게 되면 해 먹을 수 있다는 겁니다.
깨달았다고 해서 깨달았다고 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벽돌 탑을 쌓을 때 쌓는다는 말없이 다 쌓고 나서
마지막 봉오라지 올라갈 때 그걸 이름해서 돈오라고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든 세상에 태어나 어린이가 자라서 학생이 되고
또 공부를 계속해서 사회인이 됩니다. 사회인이 되어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지,
사회인이 되지 않고서야 어찌 어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은 부모를 믿고 자라가는 것인데, 믿고 살면 성장해서 스스로 사회인이 될 것을
조금만 알아도 자기가 어른 됐다고 생각합니다.
국민학교·중학교만 나오고서 다 배웠다고 할 수 없고,
대학원을 나와도 다 배웠다고 할 수 없고,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없으니,
돈오와 점수가 둘이 아니며 그런 까닭에 언어가 붙지 않는 자리입니다.
공도 공했으니 말입니다.
목마르면 물 마시고 급한 일이 생기면 그대로 한 생각 일으켜
자루 없는 도끼로 기둥 없는 기둥을 깍아 세워 하늘을 받칠 수 있는
불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지난번에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지구는 점점 오염되어 가고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싸움만 일삼고 경제는 경제대로 불황이라며 원망스럽게 말하는 걸 듣고
잠자코 있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가 한 생각에 중용할 수 있는 것이 이 도리거늘,
일체제불과 일체중생이 한마음으로 한 생각을 낸다면 해결 될 수 있을 텐데
남을 원망해 보아야 별도리 없지 않는가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들(남 신도들)도 한 가정을 지키고 이끌어 가는 가장이시지요.
그러니 잘 아시겠지만 가정을 잘 지킬 땐 처 자식을 비롯해 주의의 모든 사람들이
근면하고 착실하게 잘 산다고 하지만, 하는 일이 잘 안되어 술이라도 마시고
속상해 하면 저러니까 그렇게 된 거라고 말들을 하지요.
물론 부모님들이야 안타까워하시겠지만,
부부사이도 금이 가고 주변 사람들도 달라질 것입니다.
왜 그렇게 변했는지 속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따뜻하게 대해 주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 잡아서
일어날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산하대지의 어머니가 된다면 머지않아
본 마음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래서 산하대지 같은 어머니와 태양 같은 아버지인
그런 부부가 되어야만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며,
자식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한편 여러분들(여 신도들)도 가정에서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는 일 표시도 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밥해야지, 먹으면 치워야지, 빨래해야지,
그러다 손님이라도 오면 대접해야지, 하루 종일 온 몸이 무겁도록 일하다가
 저녁에 남편과 아이들이 들어오면 또 이것 저것 챙겨줘야 하는 등 여간 바쁜 게 아니죠.
그런데 그렇게 힘들어도 저녁에 퇴근한 남편이 ‘
당신 오늘 집에서 얼마나 수고 많았소. 많이 피곤하지’하고
한마디 따뜻하게 해 주면 그게 약이 되어 피곤함이 말끔히 가시지요.
또 아내는 남편에게 ‘이렇게 더운데 당신도 밖에서 얼마나 고생하셨어요.’라고
서로 위로한다면 피곤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그러한 가정이라면 힘들 때도
모두 마음을 모아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부부지간에 사랑이 넘치니 자식들에게 인상 찌푸리지 않게 되고,
부드럽게 말을 하니 늘 화목하며, 모든 걸 주인공에 맡겨 놓고
널리 내다 볼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말입니다.
도둑이라고 해서 꼬리표 붙히고 생전 도둑질 하라는 법 없고,
아무리 나쁜 사람도 평생 나쁜 짓만 하라고 정해져 있는 것 아니거든요.
왜 그 사람이 도둑질을 하고 나쁜 짓만 하는지 그 동기를 캐 봐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 볼 수 있는 마음을 어머니들께서 가져 보십시오.
뾰죽한 입으로 뾰죽뾰죽하게 말하지 말고 둥근 입으로 둥글게 말을 해서
그 자리가 얼마나 편안하고 소중한지 알게끔 해 주는 것이 어머니의 도리요,
아버지의 도리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어떤 집들은 일년 내내 몇 십 번의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바쁘고 살기 힘든 세상에 그렇게 하다 보면 불편한 점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명절 때나 백종, 정월 (새해맞이 촛불제) 등은 제외하고
수십 번의 제사를 세 번으로 줄이되, 조상들의 마음을 한데 합쳐서
찹쌀 인절미 세 뭉치하고 과일 세 가지, 나물 세 가지, 초, 향 등을 준비해서
젯상을 차리면 그대로 만점일 것입니다.
그것도 마음이 더욱 성숙한 분이라면 과일, 나물은 올릴 것도 없어요.
또 아주 깨달은 분이라면 이것 저것 다 필요 없구요.
마음 속에 떡·과일·나물·초·향 등이 다 들어 있으니까요.
이 세상을 다 먹이고도 되 남는데 구태여 만들어서 올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마음이 그렇게 평등하고 온 누리를 다 싸 안을 수 있으리만큼 크다면,
조상의 영령들도 마음의 문을 열어서 둘이 아닐 잰대 어찌 모르겠습니까.
온 세상이 내 자리이고 내 것일 진대, 뭐가 따로 있으며 뭘 따로 차리겠습니다.
그만큼 익었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먹고 살기에도 힘들고 바쁜 세상에 세 번으로 정해서 마음으로
아주 정성스럽게 지낸다면 제사 지내는 의미가 더욱 살아날 것입니다.
그 정성스러운 마음은 부처님들이나 조상님들이 한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여건을 제시하는 것이지요.
 
여러분들 마음의 인등을 켜세요. 날마다 말입니다.
선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 나가는데 라는 상을 세우지 않고 모든 걸 주인공에 맡겨 놓고,
삼계에 있으면서도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조금 전에도 수박얘길 했습니다만 수박 씨는 수박 안에 들어 있으니,
들어오고 나가는 것 즉 일체 생활을 주인공에 맡겨 놓고
모든걸 내 탓으로 돌리고 온갖 행을 다 하는 것을 참선이라고 합니다.
앞 위 없는 대피리 처림 안과 밖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찰나찰나 돌아갈 때, 꼬집어 나라고 할 수 없고
내가 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부처이니,
앞 뒤, 안과 밖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것이 참 좌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번뇌 망상을 피하려 하지도 끊으려 하지도 말고 녹여야 합니다.
헌 쇠를 용광로에 넣듯이, 거기 놓는다면 그것이 바로 열반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입니다.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여러분들이 다 부처이니 만큼, 법을 행할 수 있기 때문에
문수도 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으니 보현도 될 수 있는 거지요.
그러니 부처, 문수, 보현이 따로 없이
여러분들이 그대로 부처요 문수요 보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인가요. 아플 때는 약사가 돼 주고, 가난할 때는 관세음이 돼 주고,
명이 짧을 때는 칠성이 돼 주고, 지옥고에서 헤매일 때는 지장이 돼 주는 등,
이와 같이 만 가지 법 만 가지 행을 다 가지고 있고,
만 가지 이름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부처예요ㅣ.
그러니 여러분들도 앞으로 더욱 열심히 정진하세요.
지금 여기 앉아 계신 어느 신도님을 보니 생각납니다만,
가만히 보면 조금 아프기라도 하면 당장 병원으로 가서
여기저기 건드려 보고 병원에서 하는 말만 믿고 온통 야단들이죠.
알맹이(중심)가 있어야 하는데 자기는 그냥 껍데기로만 살면서
자기 중심은 잃어버리고만 겁니다. 알맹이가 있어서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과
자기 알맹이의 생각이 맞들어가야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자기 뿌리는 어디 가고 남의 말만 듣고 갈대처럼 흔들리다
뿌리 채 뽑혀 죽고 마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병원에서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는 자신이 충당하지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시고 나아가야 몸도 건강해지며 몸 속에 들어있는 공장들의
수많은 중생들도 능률을 올리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보세요. 서
로 대립하고 단합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싸우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이렇게 하는 사람이나 저렇게 하는 사람이 다 똑같아요.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싸우면서 크고 있는 거지요.
크나 작으나 말입니다.
남을 나무라기 이전에 자기가 해결하고 충당해 나가려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오장육부 안에 얼마나 많은 공장들이 있습니까.
주인이 쇠약해지고 맙니다. 능률을 내지 못하는 것은
한마음으로 이끌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공장 직원들을 한마음으로 맡겨 놓으면 공장에서는
'사장님이 우리들도 다 사장이라는 거야.
우리들이 사장님과 더불어 둘이 아니라는 데 그냥 있을 수 없잖아’하면서
능률을 내게 됩니다. 촌충 한 마리도 나 아닌 게 없어요.
뱃속을 들여다 보세요 얼마나 많은 모습들을 하고 있는지.
그런데 천차만별의 그 모습들이 다 자기인데도 눈으로 볼 때는
 더럽고 징그럽다고 들 하지요.
여러분들의 오장육부에서는 다 공장 직원으로 쓰면서도요.
인과로 인해서 뭉쳐진 자기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오늘은 질문하실 분 안계십니까? 질문이 없다 해도 괜찮고
질문을 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하는 사이 없이 하는 거니까요.
여러분들이 말을 했다고 해서 어떤 물질처럼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말 한마디 잘못하게 되면 그걸 속이기 위해서
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하는 사이 없이 하면서도 거짓이 아닌 진실된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린 진실하고 성실하고 다정다감하며 진짜 사랑을 알면서
도반으로서 함께 공부해 나아가길 진정코 바랍니다.
그래야만이 우리나라와 세계와 우주가 더불어 한마음으로
조화를 이루게 되어 자력이나 광력을 이끌어서 그대로 쓸 수 있는
방안을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무
심으로서 무심도의 중용은 어느 곳에서든지 끌어다 충당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남들은 이렇게 해야만 하고 저렇게 해야만 한다고 말하지만, 돈
만 있으면 필요한 물건을 다 살 수 있듯이 내(참나)가 있으니까
모든걸 다 해결할 수 있는 겁니다.
모두들 열심히 공부해서 한 주먹에 쥔다면 그때는
자유자재 할 수 있는 열쇠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가를 받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인가를 말입니다. 그럼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열심히 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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