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너머의 세계 외
소와 돼지 수백만 마리가 산 채로 땅속에 묻혔다.
닭과 오리 수천만 마리도 땅밑으로 끌려들어갔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사람들은 지상에 남은 동물들,
싱싱한 살과 뼈를 열심히 발라 먹고 끓여 먹었다.
지하 깊은 곳을 허우적이며 울부짖다가 매몰자들은 드디어 공간을 찢었다. 찢긴 공간은 뜻밖에도 광활해서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서로가 빛이었고 공기였으며 먹이였다. 내가 너를 먹고 네가 나를 받아먹었다. 더 이상 쫓길 일이 없었음에도 언제나 바지런했다. 각각의 맘과 맘이 이어져 너그럽고 낙낙했다. 세대와 세대를 넘어 그들은 오랫동안 화평했다.
사람 같은 형체들이 찢긴 공간으로
우 쏟아져 내리기 전까지는.
지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떨어진 인체들 몰골이 끔찍했다. 희끗희끗 풍화된 주검들은 뿌리에 꿰인 것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데 그 속에서 피리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혼란에 빠졌던 매몰자들은 이윽고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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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정령
숨결은,
빗줄기 타고 올라 구름 동네에 이르렀어요.
구름은 구름끼리 밀쳐내고 끌어당기며
한 팀이다가 두 팀이다가 자유롭게 섞이고 흩어집니다.
뭉쳐서 바로 내릴 땐 주룩주룩 하염없으나, 대체로는 뭉게뭉게 툴툴 지들끼리 가소로워요. 사나운 기색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솜털 벌판 같습니다. 심심할 때면 가끔씩 흥겹게 달라붙어 지상을 적시지요. 여린 것들 물주고 활활 생기도 돋우고요. 거기까지였어요, 본래는.
제 명 다하지 못한 생령들 공중에 떠 합류하면서, 땅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비의 촉 뾰족합니다. 결딴내고 학대하는 인성들 내쫓으려 하는 걸까요. 구름이 일으키는 번갯불과 물 폭죽들, 무람없이 여기저기 우두두 내리꽂힙니다. 숲과 나무는 베어지고 경관만 남은 잔해들, 다 태우고 쓸어버리겠다는 듯이. 폭우는 맹렬하고 앞산과 뒷강이 진저리를 칩니다.
제압일까요, 징벌일까요, 종말일까요.
다시 새로운 설계일까요.
마침내 선택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숨결은,
정우영|1989년 <민중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집이 떠나갔다』, 『살구꽃 그림자』, 『활에 기대다』 등과 시평에세이 『시에 기대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