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도주님·도전님과 관련한 지명소개
김제(金堤)
글 종단역사연구팀
◎ 해당 『전경』 구절
기유년 二월 九일에 김 자현을 데리고 김제(金堤) 내주평(內住坪) 정 남기의 집에 이르시니라. 그 곳에서 상제 가라사대 “이 길은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을 찾아보리라.”상제께서 등불을 밝히시고 새벽까지 여러 집을 다니시고 이튿날 새벽에 수각리(水閣里) 임 상옥(林相玉)의 집에 가시니라…(하략) (행록 5장 6절)
상제께서 갑오(甲午)년에 정 남기(鄭南基)의 집에 글방을 차리고 아우 영학(永學)과 이웃의 서동들을 모아서 글을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심이 비범하여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높았도다. 글방은 처남의 집이고 금구군 초처면 내주동(金構郡草處面內住洞)에 있었도다. (행록 1장 20절)
하루는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오주(五呪)를 수련케 하시고 그들에게 “일곱 고을 곡식이면 양식이 넉넉하겠느냐” 고 물으시니 종도들이 말하기를 “쓰기에 달렸나이다.” 고 아뢰니 상제께서 다시 가라사대 “그렇다 할지라도 곡간이 찼다 비었다하면 안 될 것이니 용지불갈(用之不渴)하여야 하리라.” 종도들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아시고 상제께서 백지에 저수지와 물도랑의 도면을 그려 불사르시면서 가르치셨도다. “이 곳이 운산(雲山)이라. 운암강(雲岩江)물은 김제(金堤) 들판으로 돌려도 하류에서는 원망이 없을 것이니 이 물줄기는 대한불갈(大旱不渴)이라. 능히 하늘을 겨루리라. 강 태공(姜太公)은 제(薺)나라 한 고을에 흉년을 없앴다고 하나 나는 전북(全北) 칠읍(七邑)에 흉년을 없애리라” 하셨도다. (공사 1장 28절)
상제께서 십일월에 사기를 옮기는 공사를 보시고자 동곡에 돌아오셔서 전일에 주었던 양을 잡게 하고 그 양피를 손가락 끝에 묻혀 일만 이천 시(侍)란 글자에 바르시니 양 피가 다한지라. 상제께서는 “사기(沙器)를 김제(金堤)로 옮겨야 하리라” 하시니라…(하략) (공사 2장 14절)
도주께서 무오년 가을에 재실에서 공부하실 때 상제께 치성을 올리신 다음에 이 정률외 두 사람을 앞세우고 원평을 거쳐 구릿골 약방에 이르셨도다. 이길은 상제께서 九년 동안 이룩하신 공사를 밟으신 것이고 “김제 원평에 가라” 는 명에 좇은 것이라 하시 도다. (교운 2장 10절)
그후에 상제께서 김제 반월리(金堤半月里) 김 준희(金駿熙)의 집에 계셨을 때 전주 이동면 전룡리(全州伊東面田龍里)에 사는 이 직부의 부친이 상제를 초빙하는도다…(하략) (권지 1장 14절)
◎ 지명 유래와 변천사: 김제는 본래 백제(百濟) 시대에는 벽골군(碧骨郡)이었으며, 통일신라 757년(경덕왕16)에 벽골은 김제로 개칭되었고, 고려 태종 23년(940년)부터 제17대 인종 중엽까지 전주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1403년(태종 3년)에 김제현이 김제군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1931년 11월 1일 김제면이 김제읍으로 승격되고, 1989년 1월 1일 김제읍이 김제시로 승격하면서 김제시와 김제군으로 분리되었다. 김제군이 위치했던 지역은 조선시대의 김제군(金堤郡), 금구현(金溝縣), 만경현(萬頃縣) 등 3개의 독립 군현이 있던 곳이다. 지금의 김제시 중심시가지와 백산면·용지면·백구면·죽산면 부량면은 옛 김제군 지역이고, 금구면·황산면·봉남면·금산면 일대는 옛 금구현 지역이며. 만경읍·진봉면·성덕면·청하면·공덕면 일대는 옛 만경현 지역에 해당한다. 김제는 전라북도 중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545.38㎢이고, 북쪽으로는 만경강을 경계로 군산시·익산시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전주시, 완주군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정읍시와 동진강을 경계로 부안군과 접하고 있다. 김제는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기 전에는 해안 도시였으나 현재는 내륙 도시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쌀의 곡창 지대이며 고구마, 인삼 재배가 활발하며 명승지로는 금산사, 청운사, 벽골제 등이 있다. 1995년 1월 행정구역 개편 때 김제군을 통합하여 1읍 14면 4동을 관할하는 도·농 복합형태의 시가 되었다.
한편 동쪽으로는 전주시와 완주군과 접하는데 이들 지역은 모악산(母岳山 : 794m)의 주능선(主陵線)에 의해 서로 경계 지어진다. 남쪽으로는 신태인읍과 정읍시, 부안군, 동진면과 접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익산시와 대야면이 있고 만경강 하구에서 부안군과는 동진강 그 하구에서 경계 지어진다. 서쪽은 서해의 간석지에서 옥구군 옥도면과 인접한다. 모악산 해발 500~700m의 산지가 북북동에서 남남동으로 분포하며, 여기에서 원평천이 발원한다. 동부산지와 서해연안의 100m 내외의 산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평야부에 해당되는데, 해발고도 50m 미만의 구릉과 만경강, 동진강, 원평천 유역이 충적평야로 구성되어 호남평야의 중심을 이룬다. 삼한시대부터 한국 농경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으며, 서해안 개발을 진행함에 따라 농공중심도시로의 발전이 계속되고 있다. 김제는 호남선 철도와 고속도로가 통과할 뿐만 아니라 서해안 고속도로의 건설로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 문화유산 : 문화재로는 국보1점01, 보물 10점, 사적 1점, 천연기념물 2점 등 14점의 국가지정문화재와 유형문화재 10점, 무형문화재 1점, 기념물 3점, 민속자료 3점, 문화재자료 3점 등의 도지정문화재가 있다. 김제농악놀이는 대표적인 민속놀이 중의 하나이다. 각종 농기구의 변천과 문화재를 알 수 있는 동진수리민속박물관이 있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삼불암, 망해사, 귀신사, 문수사 등의 사찰이 있으며, 김제동헌, 김제향교, 금구향교, 만경향교, 용암서원, 삼현서원, 백석서원, 조선 숙종의 교지를 기록한 김제전 교비(전북유형문화재 65) 등이 있다.
매년 10월에는 벽골문화제와 김제지평선축제가 열린다. 특히 김제지평선축제는 김제역사의 문화유산과 품질 좋은 쌀 등을 널리 알리기 위한 고유문화 관광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김제시의 주최로 매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열리고 있으며 사적지로 벽골제가 있고 해양문화체험지로는 심포항이 있다. 호남평야의 전망대라고 불리는 모악산(794m)은 계룡산과 함께 미륵신앙의 중심지로 신흥종교의 발상지이며, 금산사는 후백제 견훤이 아들 신검(神劍)에 의해 유폐된 곳이고, 그리고 상제님 성지로도 유명하다.
◎ 『전경』 관련 내용 : 김제 출신 역사 인물로 진표율사와 동학혁명의 깃발을 높이 세웠던 녹두장군 전명숙을 들 수 있다.『전경』관련 지역으로는 상제님께서 김준상의 집에 차리신 동곡약방과 성골을 모신 곳으로 알려진 오리알터02에 있는 증산법종교본부가 있으며 또한 모악산 아래 금산사가 자라잡고 있다. 금산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진표율사가 금산사를 중찰할 때 미륵금불을 조성함으로써 도에 근원을 밝혀놓은 곳이다. 동곡 입구에는 모악산에서 내려오는 많은 양의 물로 인해 마르지 않는 저수지로 알려진 금평저수지가 있어 곡창지대인 김제평야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전경』 『대순회보』 『한국지명총람 11』(전북 편 上)『김제시사』, 1995 『두산동아백과사전』『네이버 백과사전』『김제읍지』, 1981김제시 홈페이지: http://www.gimje.go.kr
01 금산사 미륵전(金山寺 彌勒殿) 국보 제62호 02 오리가 알을 낳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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