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구멍
꼬마들이 신이 났다. 화단 위에 주저앉아 노는 모습이 좋은 놀이터를 찾은 표정이다. 어찌나 진지해 보이는지 잠시 지켜보았다. 얼굴이 곱상하게 생긴 남자아이는 신발을 벗더니 흙을 가득 담는다. 짐을 실어 나르는 트럭을 만드는 모양이다. 또 다른 아이는 나뭇가지를 주섬주섬 주워다 쌓는다. 얼기설기 싸놓은 게 허름한 초가집 미니어처 같다. 그 남자아이는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에게 그 속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이다. 그들은 천국인 양 평온하기가 이를 데 없다.
잠시 후 안타까운 모습과 마주한다. 신발에 흙을 가득 실은 아이는 트럭을 운전해 보지도 못한 채 엄마 손에 이끌려 간다. 모처럼 흙 내음을 맡으며 도시의 딱딱함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을 맛보았을 터인데.
“애들 아! 화단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보이지 않니?”
벤치에 앉아 있던 늙수그레한 이가 점잖게 한마디다.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학교가 파해서인지 아이들이 점점 모여든다. 그이는 이내 동심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아파트 빌딩 숲속에 아이들이 놀만한 숨구멍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하며 안타까운듯 혀를 차며 일어선다.
어릴 때 생활하던 짧은 추억이다. 앞산 뒷산이 감싸고 그 안에 자리 잡은 작은 동네다. 나지막한 산마루에 늙은 소나무 몇 그루가 산소를 지키고 있다. 그곳은 동네 아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였다. 자치기하고 나무칼 쌈하고 배고프면 진달래꽃을 따 먹기도 했다. 동네 어귀에 있는 너른 방죽도 기억한다. 여름에는 수영하고 겨울이 오면 스케이트와 썰매를 탔다. 이뿐인가. 농사철이 오면 소달구지를 따라다니며 바쁜 일손을 돕고, 막걸리 심부름하느라 동네 구멍가게를 들락거렸다. 그러니 온 동네가 내 숨구멍이었던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하늘 가까운 고층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아침이면 자동차들이 길을 가득 메워 가는 길을 막고, 저녁이면 불빛들이 하늘을 밀어 올려 별을 볼 수 없다. 또 도시의 피부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덧칠해 놓아 빗물조차 땅으로 스며들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닭장 같은 공간에 냉기가 흐른다. 주말에 손주가 엄마 아빠랑 모처럼 찾아왔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관리소에서 연락이다. 쿵쿵거리며 논다고…, 그 순간 어미는 하얗게 눈을 흘기며 아이를 쥐 잡듯 잡는다. 가슴이 미어지나 속수무책이다. 몸은 도시의 편리함에 안식을 얻은 듯하지만, 마음은 끝없이 펼쳐진 시골의 산과 마을 어귀 방죽에 머물러 있다.
높은 건물들 사이에 남겨진 녹지공간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더 든다. 아파트 주차장과 보도 사이에 있는 작은 화단, 그나마 흙냄새 나는 공간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빼곡한 빌딩이 하늘을 가리고 바쁜 걸음들이 거리를 채울 때, 그곳에 계절이 머문다. 꽃이 피고 벌 나비가 날아들고 바람이 쉬어간다. 사람의 숨구멍이 생명을 이어주듯 도심 속의 작은 녹지공간이 메마른 일상에 숨을 불어넣는다.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작은 나무 한 그루…. 혹자는 그 곁을 무심히 지나가며 조경 공간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화단 앞 벤치에 앉아 있던 그이처럼 숨구멍이라고 부른다. 결국 우리가 기대어 살아가는 것은 거대한 빌딩이 아니라, 마음 한편, 조용히 쉴 수 있는 작은 화단이 아닐지 싶다.
어쩌다 손주가 온다. 현관에 들어서면 뛰어놀 공간을 찾는다. 하나 비좁은 공간이라 마땅히 놀만한 곳이 없다, 할 수 없이 그를 데리고 성지 순례하듯 이 아파트 저 아파트 놀이터를 찾아다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증이 난 것 같다.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 리모컨만 돌리고 있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절실해 보였다. 어느 봄날,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시골 향수를 그리며 조그만 텃밭을 마련했다.
손주는 텃밭에 가보더니 흡족한 표정이다. 아파트 화단 위에서 놀던 꼬마들처럼 신바람 나서 호미로 흙을 파고 뒤집고 싹을 심고 난리다. 그 모습은 그가 내게 준 ‘힐링’의 따듯한 선물이라고 할만했다. 그 뒤를 따라다니며 씨앗을 뿌리고, 싹을 옮겨 심고, 물을 주고, 올라오는 모습을 기다리는 시간은 마음에 여유가 깃든다. 어떤 날은 상추 닢 하나가 어제 보다 커진 것만으로 기쁘고, 어떤 날은 새알만 하게 달린 수박을 보고 마음이 환해진다. 농사는 어느 현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서두른다고 싹이 빨리 트지 않고, 걱정한다고 열매가 더 크게 맺히지 않는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해주었다.
차츰 텃밭이 우리 가족의 숨구멍이 되었다. 주말에 아들 내외가 오면 손주가 앞장서서 그곳에 가자고 성화다. 삭막한 도심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삶의 여유를 찾는다는 것, 즉 참된 자유를 얻어 몸과 영혼으로 느끼는 해방감이 행복이고 축복이 아닐까. 내게‘살아온 날이 행복이라면 살아갈 날은 축복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와 사부작사부작 걸어서 텃밭에 가보았다. 낯설고 생경한 모습이다. 고구마 싹, 서리태 싹…. 누가 와서 싹둑싹둑 끊어버렸다. 우두망찰 바라보았다. 가냘픈 고라니 한 마리가 파란 펜스 사이로 껑충껑충 뛰어간다. 짐승을 마주한 아이의 눈에 놀람이 번졌다. 그 작은 표정을 바라보는 순간, 키즈카페에 데려갔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첫댓글 유병덕 수필 <숨 구멍>을 잘 읽었습니다.
늘 김영훈 카페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영훈 카페는 유병덕 수필가를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