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화촌중학교21회 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춘근
파리 당시와 현재의 동일 위치를 보여주는 매혹적인 빈티지 사진 파리 - 당시와 현재: 에펠탑에서 샹젤리제, 북역까지 현대의 동일한 위치 이미지와 일치하는 프랑스 수도의 매혹적인 빈티지 사진 Paris - then and now: Fascinating vintage pictures of the French capital matched with images of the same locations in the modern-day, from the Eiffel Tower to the Champs-Elysees and Gare du Nord ✈️Paris Then and Now is by Peter and Oriel Caine, who run a company that offers walking tours of the city. 파리 당시와 현재는 도시 워킹 투어(도보여행)를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피터와 오리얼 케인의 작품이다. ✈️They say the book shows how fragments of the past 'are woven into the fabric of today'. 그들은 이 책이 과거의 파편들이 어떻게 '오늘날의 구조로' 엮이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By Ailbhe Macmahon For Mailonline Published: 15:25 BST, 14 May 2023 | Updated: 15:25 BST, 14 May 2023 아름다운 커피 테이블 책을 통해 벨리포키(Belle Époque) 시대의 화려함부터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까지 파리의 진화를 목격하십시오. 퍼빌리언(Pavilion) 사에서 출판한 피터와 오리얼 케인의 파리 당시와 현재(Paris Then and Now)는 에펠탑, 샹젤리제 거리, 파리 북역(Gare du Nord; 갸흐뒤노)과 같은 파리의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같은 시점에서 찍은 현대 사진과 도시의 기록 사진을 일치시킨다. 두 작가 모두 지난 30년 동안 파리에 거주했으며 일년 내내 도시의 영어로 워킹 투어(도보여행)를 제공하는 회사인 파리 웍스(Paris Walks)를 운영하고 있다. 책의 서문에서 그들은 "파리의 이야기는 2000년 이상을 다루는 이야기이며 놀랍게도 도시는 모든 시대의 유산에 대한 놀라운 증거를 보호해 왔다. 도시의 기원은 단순히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추적할 수 있다. 과거의 파편을 오늘날의 구조로 엮어내는 것보다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신나고 즐거운 일은 없다. 이것이 다음 페이지에서 목표로 하는 것이다"라고 썼다. 책에서 약속한 대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의 놀라운 시각적 역사"를 보려면 아래로 스크롤하십시오... Witness the evolution of Paris from the glamour of the Belle Epoque era through to the Second World War and beyond, courtesy of this breathtaking coffee table book. Paris Then and Now by Peter and Oriel Caine, published by Pavilion, matches archival images of the city with contemporary photographs taken from the same viewpoint, honing in on Parisian landmarks such as the Eiffel Tower, the Avenue des Champs-Elysees and the Gare du Nord railway station. Both authors have been living in Paris for the past 30 years and run Paris Walks, a company that offers English-language walking tours of the city throughout the year. In the introduction to the book, they write: 'The story of Paris is one that covers more than 2,000 years, and remarkably, the city has safeguarded wonderful evidence of its heritage from every age. 🎬벨리포키(Belle Époque) 또는 La Belle Époque("Beautiful Epoch")는 1871년에서 1880년 사이에 시작하여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끝나는 것으로 간주되는 프랑스, 벨기에, 유럽 역사의 기간이다. 프랑스 제3공화국 시대에 일어난 이 시기는 낙관주의, 지역 평화, 경제적 번영, 식민지 확장, 그리고 기술적, 과학적, 문화적 혁신으로 특징지어지는 시기였다. 프랑스의 문화적, 예술적 풍토의 시대에, 예술은 현저하게 번창했고, 문학, 음악, 연극, 그리고 시각 예술의 수많은 걸작들이 광범위한 인정을 받았다. 벨리포키(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대)는 나폴레옹 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대조적으로 유럽 대륙의 "황금 시대"로 여겨지기 시작했을 때 돌이켜보면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역사학자 R. R. 파머에 따르면 벨리포키는 "유럽 문명이 세계 정치에서 가장 큰 힘을 성취했고 유럽 밖의 사람들에게도 최대의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기다." Scroll down for a 'stunning visual history of Europe's most beautiful and romantic city', as the book promises... 에펠탑 투어 - 1889년 당시와 현재의 사진 📸TOUR EIFFEL - PICTURED IN 1889 AND PRESENT DAY 1. The top image was captured in 1889, the year the Eiffel Tower - named after its designer, the 'brilliant' engineer Gustave Eiffel - was completed. The book says: 'As the tower grew stage by stage, half of Paris marvelled at the sight, while the other half was horrified. A large group of artists and writers signed a protest against the tower; they did not want it to remain in place for the twenty years originally intended.' When the 312m (1,024ft) tower was finished, it was the tallest tower in the world. 'The actual height of the tower can vary by as much as 17cm (7in) depending on the temperature,' the book notes. When Hitler came to Paris in 1940, the Resistance put the elevators out of order so that he could not go up, the book notes. At the liberation in 1944, 'firemen raced to the top to hoist a huge homemade French flag'. The view from the top is 'said to be best just before sunset'. The book notes that the maximum sway at the top due to wind can be as much as 11cm (4in). 상부 사진은 1889년에 촬영되었는데 당해 년에 설계자이자 '훌륭한' 엔지니어인 귀스타브 에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에펠탑이 완공되었다. 책은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탑에 반대하는 시위에 서명했다. 그들은 원래 의도했던 20년 동안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312m(1,024ft) 높이 타워가 완공되었을 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타워였다. '타워의 실제 높이는 온도에 따라 17cm(7인치)까지 달라질 수 있다"라고 책은 말한다. 1940년 히틀러가 파리에 왔을 때 레지스탕스는 그가 올라갈 수 없도록 엘리베이터를 고장 나게 했다고 책은 기록한다. 1944년 해방 당시 '소방관들이 직접 만든 거대한 프랑스 국기를 게양하기 위해 정상까지 질주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해가 지기 직전이 가장 좋다고 한다'. 이 책은 바람으로 인한 정상에서의 최대 흔들림이 11cm(4인치)에 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개선문 - 1890년 당시와 현재의 사진 📸ARC DE TRIOMPHE - PICTURED IN 1890 AND PRESENT DAY 2. The Arc de Triomphe, pictured at the top in 1890, was built in honour of Napoleon Bonaparte, the book explains. It says: 'Although embellished with sculptures and inscriptions to glorify the empire and the emperor, it was never completed during his lifetime. In 1840, some 18 years after his death on the island of St Helena, his funeral cortege passed through the arch, which had finally been completed.' The book explains how the arch is now surrounded by 100 posts linked by chains, which symbolise the return of the emperor Napoleon for 100 days after his notorious escape from the island of Elba in 1815. The authors note that the body of an unknown WWI soldier has been buried here since 1920. They add: 'Now open to the public, spectacular views across the city can be enjoyed from the rooftop terrace'. 1890년 상부 사진의 개선문(아크 드 티욤파)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고 책은 설명한다. "제국과 황제를 찬양하는 조각과 비문으로 장식되었지만 황제의 생애 동안 완성되지는 않았다. 1840년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사망한 지 약 18년 후인 그의 장례 행렬은 마침내 완성된 아치를 통과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1815년 엘바 섬에서 악명 높은 탈출을 한 후 100일 동안 나폴레옹 황제가 돌아온 것을 상징하는 사슬로 연결된 100개의 기둥으로 아치가 어떻게 둘러싸여 있는지 설명한다. 저자들은 "1920년부터 무명의 제1차 세계대전 군인의 시신이 이곳에 묻혔다"라고 언급한다. 그들은 "이제 일반에게 공개되어, 옥상 테라스에서 도시 전역의 장관을 즐길 수 있다"라고 덧붙인다. 도흐세 미술관 역(캬흐 두 미지 도흐세) - 1935년 당시와 현재의 사진 📸GARE D'ORSAY/MUSEE D'ORSAY - PICTURED IN 1935 AND PRESENT DAY 3. Gare d'Orsay - pictured in the top image in 1935 - was built to facilitate the crowds visiting Paris for the Universal Exhibition of 1900, the book reveals. The authors say: 'The great vault was designed to be able to accommodate clouds of steam, despite the fact that the trains were electrified by this time.' They note that the building blends modern materials with historical details, as 'the structure is steel but the coffered ceiling alludes to the Pantheon of ancient Rome'. The station was closed down by 1938 and in 1978 the decision was made to convert the space into a museum of 19th-century art. The book says: 'The Italian architect Gae Aulenti has divided the vast space of the station into small galleries where the academic schools vie with paintings by impressionists, postimpressionists and early modern painters'. 1935년 상부 사진의 도흐세 미술관 역(캬흐 두 미지 도흐세; Gare du Musée d'Orsay)은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파리를 방문하는 군중이 쉽게 이용하도록 지어졌다고 책은 밝힌다. 저자는 "커다란 아치 천장은 이 시기에 열차가 전기를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증기 구름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들은 '구조물은 강철이지만 격자 천장은 고대 로마의 판테온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건물이 역사적 세부사항과 현대적인 재료를 혼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역은 1938년에 폐쇄되었고 1978년에 이 공간을 19세기 미술 박물관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탈리아 건축가 가이 아울렌티는 역의 광대한 공간을 작은 갤러리로 나누었다. 그곳에서 아카데미 학교는 인상파, 후기 인상파 및 초기 현대 화가의 그림과 경쟁한다"라고 말한다. 🏠도흐세 미술관 역(캬흐 두 미지 도흐세; Gare du Musée d'Orsay)은 파리 7구에 위치한 콰이 도흐세 엥발리드 선의 프랑스 철도역이다. 파리 오를레앙 철도 회사의 39년 동안 최전방 역이었던 기념비적인 역인 옛 도흐세 역 지하에서 SNCF가 운영하고 있으며, 도흐세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1986년에 문을 연 19세기 미술 전용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그 건물은 1978년에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파리 북역(갸흐뒤노) - 1919년 당시와 현재의 사진 📸GARE DU NORD - PICTURED IN 1919 AND PRESENT DAY 4. The Gare du Nord - pictured top in 1919 - was built in 1863 by Jacques-Ignace Hittorff. The book notes: 'His works were little appreciated by Baron Haussmann, who directed city planning, and it was probably this that led Haussmann to refuse the building of a grand avenue leading up to the station.' The facade is decorated with colossal allegorical figures who symbolise towns in northern France and Europe served by the station. The authors reveal: 'Rail travel revolutionised life in the 19th century, making journeys quick and comfortable and allowing working people to escape from Paris on their Sundays off to enjoy themselves in the forests, country villages and riverside inns.' Today the station is international, with trains arriving from Brussels, Amsterdam and London. The design is 'so efficient that the station has been able to absorb the ever-increasing traffic with few modifications', though an 'ultramodern' glass hall and shopping centre have been added. 1919년 상부 사진의 파리 북역(갸흐뒤노)은 1863년 자크-이니아 히토프에 의해 지어졌다. 책은 "외관은 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랑스 북부와 유럽의 도시를 상징하는 거대한 우화적 인물로 장식되어 있다"라고 언급한다. 저자는 "철도 여행은 19세기의 삶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여행을 빠르고 편안하게 만들고 일하는 사람들이 일요일 휴일에 파리에서 탈출하여 숲, 시골 마을 및 강변 여관에서 즐길 수 있도록 했다"라고 밝힌다. 오늘날 이 역은 브뤼셀, 암스테르담, 런던에서 기차가 도착하는 국제적인 역이다. 디자인은 '초현대적인' 유리 홀과 쇼핑 센터가 추가되었지만 '역은 거의 수정하지 않고 계속 증가하는 교통량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효율적'이다. 콩코드 광장(플라스 드 라 콩코흐드) - 1912년 당시와 현재의 사진 📸PLACE DE LA CONCORDE - PICTURED IN 1912 AND PRESENT DAY 5. The image on top from 1912 'illustrates the blend of early motorised traffic with the few remaining horses and buggies' in Place de la Concorde. The book says: 'This was once a royal square laid out between 1755 and 1775 and named after Louis XV.' It was later renamed Place de la Revolution, with the book revealing: 'It was here that the guillotine stood and Louis XVI and Marie Antoinette were beheaded in 1793.' The authors add: 'The name Concorde was chosen later, signalling the hope of a return to peace and normality.' The Luxor Obelisk in the centre - 3,300 years old and carved with hieroglyphics - is from the Temple of Luxor in Egypt and was a gift from the Khedive of Egypt to King Louis-Philippe. Originally erected in 1836, the obelisk has today been restored and had its tip regilded 'as it would have been in ancient Egypt'. 상부의 1912년 사진은 '콩코드 광장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말과 마차와 초기 자동차 교통의 조화를 보여준다'. 이 책은 "이곳은 한때 1755년에서 1775년 사이에 조성된 왕실 광장이었으며 루이 15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라고 말한다. 나중에 이곳은 혁명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책에는 "단두대가 서 있었고 1793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참수된 곳이 이곳이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콩코드라는 이름은 평화와 정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는 나중에 선택되었다"라고 덧붙인다. 중앙에 있는 3,300년 된 상형문자로 조각된 룩소르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룩소르 신전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집트의 케디브가 루이 필리프 왕에게 선물한 것이다. 1836년에 처음 세워진 이 오벨리스크는 오늘날 복원되었으며 '고대 이집트에서와 같이' 끝부분에 금박을 입혔다. 샹젤리제 거리 - 1900년 당시와 현재의 사진 📸CHAMPS ELYSEES - PICTURED IN 1900 AND PRESENT DAY 6. In the upper image, dating to 1900, a parade is taking place in honour of King Edward VII, who frequently visited Paris. 'The Champs Elysees area was completely landscaped to create a vast open-air theatre in which Napoleon hoped that parades to celebrate his military victories would take place,' the book reveals. The authors note that 'the original equestrian statues at the entrance to the avenue, now replaced by copies, are in the Louvre'. They continue: 'Today the Champs Elysees is still associated with prestige and glamour. The avenue has become one of the most upmarket shopping areas in Europe.' The book notes that the Champs Elysees is still used today for hosting festivities - for example, the Tour de France cycle race ends on the avenue every July. 19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위 사진에서 파리를 자주 방문했던 에드워드 7세를 기리는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샹젤리제 지역은 나폴레옹이 그의 군사적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퍼레이드가 열리기를 바랐던 광대한 야외 극장을 만들기 위해 완전히 조경되었다"라고 책은 밝히고 있다. 저자는 '거리 입구에 있는 원본 기마상은 이제 복제품으로 대체되어 루브흐 박물관에 있음'에 주목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오늘날 샹젤리제는 여전히 위신과 화려함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거리는 유럽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쇼핑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책은 샹젤리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축제를 주최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언급한다. 예를 들어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경주는 매년 7월에 이 대로(大路)에서 끝난다. 프랑스 해군부 - 1944년 당시와 현재의 사진 📸MINISTERE DE LA MARINE - PICTURED IN 1944 AND PRESENT DAY 7. The top picture shows fighting taking place in Place de la Concorde in 1944, during WII. The building shown is the seat of the French Navy, the book reveals. It says: 'This area of town was the main headquarters of occupied Paris.' Touching on the German occupation of France, the book explains: 'France fell to the Germans in June 1940 and the government fled to Bordeaux. Parisians left the capital, joining six million refugees on the roads of France. On June 14, the Germans entered Paris... the occupation lasted for four years. In June 1944, the allies landed in Normandy, beginning the liberation of France. General Dietrich von Choltitz, who disobeyed Hitler's orders to destroy the city, surrendered to General Leclerc on August 25, 1944.' The authors note that today, Place de la Concorde 'bears no real reminder of the toll of four years of occupation'. They say: 'The area is still renowned for its restaurants, such as Maxim's, and luxury shops where German soldiers bought silk stockings, perfume, cosmetics and clothing to send home to their families'. 위 사진은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콩코드 광장에서 벌어진 전투를 보여준다. 표시된 건물은 프랑스 해군의 주둔지라고 책은 밝혔다. '도시의 이 지역은 점령된 파리의 본부였다.' 독일의 프랑스 점령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책은 "파리 시민들은 수도를 떠나 프랑스 도로를 달리는 600만 명의 피난민들과 합류했다. 6월 14일 독일군은 파리에 입성했다... 점령은 4년간 지속되었다. 1944년 6월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프랑스 해방을 시작했다. 도시를 파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에 불복종한 디트리히 폰 콜티츠 장군은 1944년 8월 25일 르클레르 장군에게 항복했다"라고 설명한다. 저자들은 오늘날 콩코드 광장은 "4년간의 점령을 실제로 상기시켜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 지역은 여전히 맥심스와 같은 레스토랑과 독일 군인들이 실크 스타킹, 향수, 화장품, 의류를 구입하여 가족에게 보낼 고급 매장으로 유명하다.' 파리 오데옹 지하철역(4호선과 10호선) - 1910년 당시와 현재의 사진 📸STATION DE METRO ODEON - PICTURED IN 1910 AND PRESENT DAY 8. Of the upper image, the book reveals: 'This shot shows the Odeon Metro station during the terrible floods of 1910 when most of the underground network was put out of action. The system was only a few years old at this time.' It notes that the first Metro line was opened in July 1900 to accommodate the visitors flocking into the city for the world's fair. The book says: 'Before the Metro, public transportation consisted of 31 tram lines, 25 bus routes and 102 riverboats.' Today the majority of the Metro stations are much the same, the book reveals, saying: 'Some have maintained their lovely art nouveau entrances by Hector Guimard, and most are still decorated with the characteristic white ceramic tiles with bevelled edges that are made at Gien(French ceramics factory).' The book adds: 'The blue-and-white enamelled name plaques in each station are carefully located so that passengers can see the name of the station from wherever they are sitting in the train when it pulls in'. 위 사진에 대해 책은 "이 장면은 대부분의 지하 네트워크가 작동하지 않는 1910년 끔찍한 홍수 동안 오디옹 지하철역을 보여준다. 이 시스템은 당시에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라고 밝힌다. 세계 박람회를 위해 도시로 몰려드는 방문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1900년 7월에 최초의 지하철 노선이 개통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책은 "지하철 이전의 대중교통은 31개의 트램 노선, 25개의 버스 노선, 102개의 유람선으로 구성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지하철 역은 거의 동일하다고 말한다. "일부는 엑터 기마아(건축가)의 아름다운 아르누보 입구를 유지했으며 대부분은 지앙[프랑스 도자기 공장]에서 만든 경사진 가장자리가 있는 특징적인 흰색 세라믹 타일로 여전히 장식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각 역의 파란색과 흰색 에나멜로 된 명패는 조심스럽게 배치되어 승객이 기차가 들어올 때 어디에 앉아 있든 역 이름을 볼 수 있다"라고 덧붙인다. 🏠엑터 기마아(Hector Guimard)는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아르누보 양식의 저명한 인물이다. 그는 파리 최초의 아르누보 아파트인 카스텔 비홍지(Castel Beranger) 설계로 초기 명성을 얻었으며 1899년 공모전에서 도시 최고의 새 건물 파사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퐁 생 미셸 - 1880년 당시와 현재의 사진 📸PONT ST MICHEL - PICTURED IN 1880 AND PRESENT DAY 9. The authors say of the upper image: 'This extraordinary photograph was taken from the Petit Pont looking toward the Pont St Michel on January 3, 1880. The city had been brought to a standstill by a winter so cold that the Seine had frozen. A spilled cargo of wine barrels is imprisoned in the ice.' The book notes that the painter Monet 'captured many scenes of this spectacular freeze on canvas'. It reveals: 'When the ice finally started to thaw and crack, [Monet] described the noise as similar to cannons being fired.' The authors note: 'The letter N on the Pont St Michel is the monogram of Napoleon III, during whose reign the bridge was rebuilt.' Today there's a river promenade by the river, but otherwise, the view is 'little changed'. This part of the river is the 'realm of pleasure cruisers and the bateaux-mouches (riverboats)', the book adds. 저자는 위 사진에 대해 "이 특별한 사진은 1880년 1월 3일 생 미셸 다리를 바라보고 있는 프티 퐁에서 찍은 것이다. 세느 강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겨울에 도시가 멈춰 섰다. 엎질러진 와인 술통 화물이 얼음 속에 갇혀 있다"라고 밝힌다. 이 책은 화가 모네가 "캔버스에 이 멋진 얼어붙은 많은 장면을 포착했다"고 언급한다. '마침내 얼음이 녹고 갈라지기 시작했을 때 [모네]는 그 소음이 발사되는 대포와 유사한 것으로 묘사했다.' 저자는 "생 미셸 다리의 문자 N은 나폴레옹 3세의 통치 기간 동안 다리가 재건된 그의 모노그램이다"라고 언급한다. 오늘날은 강변 산책로가 있지만 그 외에는 '조금 달라진' 풍경이다. 강의 이 부분은 '유람선과 바토무슈(강보트)의 영역'이라고 책은 덧붙인다. 🏠퐁 생 미셸(Pont Saint-Michel)은 센 강 왼쪽 강둑에 있는 생 미셸 광장과 시테 섬을 연결하는 다리다. 근처에 있는 생 미셸 예배당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성트 샤펠(Sainte Chapelle)과 팔래 드 주스티스(Palais de Justice, 법원) 근처에 있다. 현재의 62m 길이 다리는 1857년에 건설되었다. 루브르 궁정 - 1860년 당시와 현재의 사진 📸COUR DU LOUVRE - PICTURED IN 1860 AND PRESENT DAY 10. The archival image at the top dates back to 1860, and shows the Queen's Garden by the Louvre. Out of shot is Tuileries Palace, which 'was built as a widow's palace by Queen Catherine de Medici after the untimely death of her husband, Henry II'. 'It was from this palace that Louis XVI and Marie Antoinette escaped to Varennes shortly before their imprisonment during the Revolution,' the book reveals. The palace was destroyed during the Paris Commune of 1871, in which a revolutionary government briefly ruled the city. Today, the site is 'dominated' by I.M Pei's glass pyramids, which now make up the new main entrance to the Louvre. The book reveals: 'The [museum's] renovated Richelieu wing was opened in 1994 to celebrate the 200th anniversary of the Louvre opening as a museum'. 상부의 기록 사진은 18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루브르 박물관 옆의 여왕의 정원을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제외된 것은 '남편 헨리 2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카트린 드 메디치 여왕이 미망인의 궁전으로 지은' 튈르리 궁전이다. 책에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투옥되기 직전에 바렌으로 탈출한 곳이 바로 이 궁전이었다'고 책은 밝히고 있다. 궁전은 1871년 파리 코뮌 기간 동안 파괴되었으며, 혁명 정부가 잠시 도시를 통치했다. 오늘날 이 사이트는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의 유리 피라미드에 의해 '지배'되어 현재 루브르 박물관의 새로운 정문을 구성하고 있다. 이 책은 "[박물관의] 개조된 리슐리우 윙은 루브르 박물관이 박물관으로 개관한 지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4년에 개관했다"라고 밝혔다. 🏠루브르 피라미드(Pyramide du Louvre)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貝聿銘 베이위밍)가 설계한 대형 유리 및 금속 구조물이다. 피라미드는 파리 루브르 궁전의 중앙 안뜰(Cour Napoléon)에 있으며 세 개의 작은 피라미드로 둘러싸여 있다. 대형 피라미드는 루브르 박물관의 정문 역할을 한다. 더 광범위한 그랜드 루브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88년에 완공되어 파리 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11. Paris Then and Now by Peter and Oriel Caine, published by Pavilion, is on sale now for £14.99. 퍼빌리언(Pavilion) 사에서 출판한 피터와 오리얼 케인의 파리 당시와 현재(Paris Then and Now)가 현재 £14.99에 판매 중이다.
카페 게시글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출처: 화촌중학교21회 동창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춘근
댓글
검색 옵션 선택상자
댓글내용선택됨
옵션 더 보기
댓글내용
댓글 작성자
연관검색어
환율
환자
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