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3일 수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은 꽃샘 추위로 다소 춥게 시작하지만 미세먼지는 없으니 힘차게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수요일 하루가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 어두운 시대를 걸어가고 있는 이 시대의 희망은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아시는 분이시기에 믿음의 시련과 고난을 잘 이겨 내시는 귀하고 복 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사사기 3장 1-11절 }
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더니
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10.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1. 그 땅이 평온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 제 목 ◑◑◑◑
◗◗ 옷니엘, 에훗, 삼갈의 활약들
◑◑◑본문 이해와 요약 ◑◑◑
◗ 3장에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집스런 불신앙으로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통한 인류 구원의 계획을 끝까지 세우고 사랑의 매를 들면서도 추진해 나가셨습니다.
- 택한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귀한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고통이 따르는 대적들을 남겨두셨습니다.
- 이와 같이 하나님은 시험, 환난, 대적들로부터의 위협 등 다양한 방법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정금같이 단련하듯이 연단시키십니다.
-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정복 사업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완전히 마치지 못하고 대적들을 남겨 둠으로써 역사 내내 고통당하게 된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뤄 가셨습니다.
- 먼저 옷니엘은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하나님께 세움을 받았습니다.
- 그는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물리친 후 40년 동안 치리하여 이스라엘에 평안을 가져왔습니다.
- 그리고 에훗은 하나님에 의해 세움 받은 왼손잡이 사사로서, 당시에 왼손잡이는 오늘날의 신체장애자와 동일한 취급을 받았지만, 능력의 하나님은 그를 세우셨습니다.
- 그는 모압 왕 에글론과 모압 사람 만 명을 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는데, 이렇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을 의지한 에훗은 대담하게 행동했을 뿐만 아니라, 왕을 죽이고, 에브라임 산지에서 군사를 모아 모압 용사들을 다 잡아 죽이는 등 지혜롭게 전쟁을 수행함으로서 그 후로부터 8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평안이 있었습니다.
- 또한 삼갈은 아낫의 아들로, 소를 모는 막대기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습니다.
- 이처럼 아무리 연약한 것이라도 하나님의 손에 들림 받을 때는 그 위력이 엄청나게 커짐을 보게 됩니다.
- 능력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의 매를 들면서 연단하여 더욱 성숙하고 경건한 민족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펼쳐 가셨던 것입니다.
-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를 사용하시어 당신의 영광스런 목적을 성취해 가는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사랑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떠나 죄악의 수렁에 빠져 있을 때에도 한 번도 그들을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조용히 그 삶을 직시하고 계셨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림으로 죄를 범함으로 무겁게 받게 되는 징계에 대한 기록입니다.
- 하나님을 잊은 결과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이유는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피조물이 창조주를 잊어버리는 것은 교만입니다. 이렇게 교만한 자에게는 패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번 택한 자들을 결단코 쉽게 내팽개치지 않으시고, 교만을 꺾어 놓으시고 영원한 경륜과 섭리로써 당신의 백성을 끝끝내 일으켜 세워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서도록 만들어 가십니다.
- 은혜를 잊어버리고 사는 목이 곧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워 주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➊ 하나님은 보고 듣고 다 알고 계신다. (사사기3장7절)
➋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 사는 것이다.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행하십니다.
- 7절을 살펴보면 “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이방신들과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현실들을 가장 악하게 본 것입니다.
- 그런데 이 표현은 사사기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이 없는 그래서 자기소견에 옳은 데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상을 기록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 2장11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라고 하였습니다.
- 3장12절에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 4장1절에서도 “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라고 하였습니다.
-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행위를 낱낱이 다 보고 듣고 알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원주민의 이방신들을 섬길 때 공공장소는 물론이고, 산의 깊은 곳이나 신전의 내실에서도 제사와 같은 종교행위를 보고 배운 것을 실제로 행하였을 것입니다.
-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행위를 하면서도 설마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의 목전’ 곧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분명하게 말함으로써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 이러한 성경 기자의 표현이 과장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 에스겔 8장12절에서 유다 왕국 말기 이스라엘의 장로 칠십 인은 하나님의 성전 가운데 우상의 신전을 따로 지어놓고 어두운 곳에서 제사를 지내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이를 선지자 에스겔에게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 대게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이 눈에 안보이므로 하나님이 안 계신다거나 하나님이 계셔도 은밀한 곳에서 일어난 일은 볼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유한한 인간의 제한 된 생각에서 나온 어리석음이고, 착각에 불과합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보고 계시고 모든 언행을 보고 듣고 계심을 항상 의식하고 사는지?” 를 묻고 있으니 자문자답 해 봅시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신전의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시편94편 9절에서 “귀를 지으신 자가 어찌 듣지 않겠으며 눈을 지으신 자가 어찌 보지 아니하시랴!”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 나의 귀와 눈은 누가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았습니까?
-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전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해 계시는 초월자이십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아시는 분이 십니다.
- 요나1장3-17절에서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다시스 행으로 배를 타고 그 배 밑층까지 내려갔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곳에도 계셨으며, 심지어 그가 깊은 바다 속에 잠길 때에도 여전히 그를 보고 함께 계셨고 그의 기도를 듣고 계셨습니다.
-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실로 내가 하나님의 낯을 피할 다시스 와 같은 곳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 욥기11장 11절에서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 그래서 나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앞에 서 있음을 명심합시다.
- 시편139편2-5절에서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지금 나는 나의 앉고 일어섬과 내가 행하는 선악간의 모든 일들을 은밀하게, 그러나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모든 마음의 소리까지도 다 듣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공과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냄으로써 장차 곧 임하실 주 예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최선의 삶을 사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