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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1) 본문 내용과 (3) 초보자 내용]에 수행하는 방법과 버리는 방법에 대해서 수록해 보았는데요.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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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30 편) 20220725
삼환(三喚)
충국사가 어느 날 시자를 부르자 시자가 대답을 했다. 이와 같이 세 차례를 불러 세 차례 대답하니, 국사가 말호대 "내가 너를 배반한다고 여겼더니 네가 도리어 나를 배반하는구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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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해석 본)
【一三○】 충국사가 어느 날 시자를 부르자 시자가 응낙(應喏)했다. 이와 같이 세 번 불렀고 시자가 세 번 응답했다. 국사가 가르되 장자 이르기를 내가 너를 저버린다고 하렸더니 도리어 네가 나를 저버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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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본과 중국원본 글자인데요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 원본)
三喚
【一三○】
忠國師 一日喚侍者 侍者應喏 如是三喚 侍者三應 師曰 將謂吾辜負汝 却是汝辜負吾
(辜負 뜻) : 저버리다. 헛되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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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원본 - 바이두 출처)
忠國師一日喚侍者。侍者應諾。如是三喚三應。師曰。將謂吾孤負汝。卻是汝孤負吾。
(孤負 뜻) : 외롭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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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본과 중국 원본의 글자가 틀린 부분)
한국 : 將謂吾(辜負)汝
중국 : 將謂吾(孤負)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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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방긋)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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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은 혜충 국사가 아주 재미나게 수행승들의 답답한 마음을 표현한 내용인데요.
오늘 내용의 핵심은 혜충 국사가 시자(侍者)를 빗대어..
"내가 너를 저버리는가 했더니 네가 나를 저버리는구나"
라는 내용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내가 본성을 저버리는가 했더니 본성이 나를 저버리는구나"
라는 뜻이랍니다.
쉽게 말해 나는 본성을 찾고자 하는데 본성이 나를 저버린다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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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에도 옥편에는 [辜负]라는 단어는 없었는데요.
그러나 중국 사전에는 둘 다 있었답니다.
[孤負]라는 단어는 "외롭게 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되어 있었답니다.
[辜負]라는 단어는 "헛되게 하다." "저버리다"라는 뜻으로 해석되어 있었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책에는 [배반]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있었는데요.
배반이란 번역은 내용과 맞지 않는 번역이랍니다.
왜냐하면 '배반'의 뜻은 '저버리다' 안에 있기는 하지만 본 한자에는 어디에도 없는 뜻이기도 하고 저버리는 것과 배반은 과정과 결과가 너무 다른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튼 고려 때 혜심(慧諶) 스님이 중국 원본을 우리글로 옮기면서 우리 정서로는 "헛되게 하다." "저버리다"가 맞기 때문에 글자를 바꾸어서 옮긴 것 같은데요.
이 번역이 본문 내용과 맞는다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런 경우 "외롭다"라는 표현을 잘 안 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이런 경우 뜻글자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외롭다"라는 식으로 표현을 하면 직통으로 알아듣는답니다.
그리고 중국 사전에는 두 표현 모두 같은 뜻이라고 해석되어 있었답니다.
여러 번역본 중에서 고려 때 혜심 스님이 번역하신 내용이 오늘 내용과 가장 잘 맞는듯하여 오늘은 혜심 스님이 표현하신
"내가 너를 저버리는가 했더니 네가 나를 저버리는구나"
로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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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 말의 뜻은
"내가 본성을 저버리는가 했더니 본성이 나를 저버리는구나"
로 보시면 이해하시기 훨씬 쉽답니다.
여기서 시자(侍者)를 빗대어 말한 [너]는 본성(불성/성령/마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자는 혜충 국사가 자신을 향해..
"네가 나를 저버리는구나"
하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당황했을 것도 같은데요.^^
그러나 이것은
"나는 본성을 열심히 보려고 하는데 본성은 자꾸 나를 저버리는구나"
하면서 수행승의 답답한 마음을 시자를 빗대어 표현하는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 일 수도 있고, 제자들의 이야기 일 수도 있습니다.
깨닫기 전의 사람들에게는
"나는 본성을 찾으려 하는데 본성은 나를 외면하는구나.."
로 해석할 수도 있겠고..
그리고 이미 깨달은 사람들에게는 본성에 집중이 안 될 때에 본성이 자신을 외면 또는 저버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답니다.
제 경우는 이 법을 알고 난 후에 딱 한 번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요.
이 법을 알고 2년 정도 됐을 때 그동안 그렇게도 평안하던 마음이 어떤 일로 인해 다시 예전 마음이 강하게 들기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요.
당시에 아주 독한 놈이 제 마음에 틀어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다시 본성 자리로 돌려놓으려 해도 7시간 정도 저를 저버리는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그때 저는 일이고 뭐고 만사를 다 제쳐두고 알아차림으로 돌입한 적이 있었답니다.
제 경우는 이때 세 가지 수행 방법을 동시에 했었는데요.
그랬더니 금방 다시 제자리를 잡았답니다.
그 방법은..
① 흑씨범지처럼 의식의 힘으로 마음의 것을 보면서 밖으로 밀어내는 방법과 ② 주리반다가처럼 의식의 힘으로 마음의 것을 쓸어내는 것(쓸어내 버리기) 과 ③ 마음을 살살 달래는 방법을 동시에 했더니 금방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는데요.
여러분들도 아주 독한 놈이 들어왔을 땐 동시에 하는 것을 권해드려 봅니다.
당시에는 잠시 좀 당황을 했었답니다.
왜냐하면 다시 예전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아냐?
하면서 말이지요. ^^
그러나 차분히 앉아서 마음을 다독이니까 다시 집중이 잘 되더라고요.
그 후로는 가끔 제 마음에 무언가 들어오려고 하면 일부러 들어오게 해서 내쫓는 방법을 개발해 보려고 이리 시험해 보기도 하고 저리 시험해 보기도 하곤 하는데요.
예를 들면
무엇이든 내 마음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고 막는 방법입니다.
방법은 내 마음에 무언가 들어오려고 하면 들어오기 전에 마음속으로 "버려" 하면서 못 들어오게 하는 방법과
또 하나는 마치 우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듯이 또는 마음을 쓸어내리듯이 내 마음을 토닥이며 달래주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제가 이 공부를 하기 전부터 했었던 방법인데요 수행에도 잘 적용이 되더라고요.
여러분들도 잘 안될 때 각자가 요령을 찾아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제가 한 방법들을 따라 해 보셔도 되고요.
제 경우는 지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일반 사람들도 쉽게 배워서 따라 해 보게 할 수 있을까?에 무척 노력하고 있는 중인데요.
그 이유는 결과가 빨리 나와야 그나마 일반 사람들도 따라 하지 않을까? 해서인데요.
앞으로 차차 이러한 결과들을 많이 만들어 여러분들과 같이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이것은 내 마음을 해결하는 일이라 내 마음만 잘 해결하면 어떤 방법이든 상관없답니다.
잘 버려지는 쪽으로 하시면 된답니다.
요새 제 경우는 뭔가 내 마음에 들어오면 얼마나 반갑던지 "그래 너 잘 들어왔다." 하면서 마치 고양이가 쥐새끼를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버리듯이 어떻게 하면 마음의 것들을 잘 버릴 수 있을까?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곤 하는데요.
지금까지 경전을 통해 배운 버리는 방법은 ① 막 들어오려고 할 때에 내치는 것이 가장 좋았고 ② 이미 들어왔으면 의식을 그놈에게 집중을 해서 부처님처럼 알아차리면서 보거나,
③ 흑씨범지 처럼 밖으로 밀어내거나, ④ 주리반타가 처럼 마음을 쓰러내리거나 ⑤ 이것도 저것도 다 어려우면 내 마음을 살살 달래면서 "그래 힘들지? 그래 괜찮아.. 우리 조금만 집중해서 이번에 일(火)을 잘 버려보자.." 하면서 내 마음을 살살 달래면서 비우고 버리는 방법입니다.
제 경우는 처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반야심경에서 힌트를 얻고 ③번으로 해결을 한 경우인데요.
그래서 흑씨범지의 내용을 보고 금방 이해를 했던 거랍니다.
아무튼 본성을 증득한 사람들은 늘 본성 안에서 거하기 때문에 거의 오늘 내용과 같은 경우는 드문데요.
그러나 혜충 국사처럼 간혹 이럴 때가 있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도가 트인 사람이라 해도 육체에서 오는 반응들은 어쩔 수 없을 때가 있거든요.
부처님도 누가 뒤에서 옆구리를 "쿡!" 찌르면 "움칠~"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도인들에게는 이 몸이 애물단지랍니다.
왜냐하면 엄청 귀찮은 물건이 이 육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주 예전에는 일부러 열반에 드는 도인들도 많이 있었답니다. (진실)
참고 : 손오공(孫悟空)의 한문 이름을 살펴보면 깨달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 말씀드렸는데요.
손오공도 처음에는 깨닫고 (견성)나서 천방지축 교만하고, 거만하고, 남들을 무시하고, 잔 재주로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잖아요.
그러나 나중에는 진정한 제왕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이 증득(성불)을 뜻하는 내용이랍니다.
손오공도 깨닫기만 했을 때에는 여러 가지 빈틈이 많았듯이 혜충 스님 또한 충분히 그럴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성불을 이룬 부처가 아니거든요.
서유기에 보면 삼장법사(三藏法師)도 불성을 증득한 스님으로 표현되고는 있으나 아직은 100% 완전한 불성을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가끔은 저팔계나 사오정과 함께 오랏줄에 묶이는 신세가 될 때도 있는데요.
이런 그림들이 모두 지금 혜충 국사처럼 수행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표현한 내용이랍니다.
오늘 내용에서 중요한 것은 혜충 국사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되돌아보고 알아차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 일인데요.
요즘 자칭 도인이라 하는 사람들도 그저 저팔계처럼 앞만 보고 꿀꿀거리거나, 사오정처럼 마음의 힘(도력)이 부족해 유혹을 못 이기고 저팔계와 함께 그물에 묶이는 경우인데요.
아무쪼록 이런 분들도 하루속히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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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하다 보면 잘 안 잡힐 때가 있지요.
특히 일반 사람들은 산란심(散亂心)과 혼침(惛沈)이 일어나거나 어떤 나쁜 일이 생겼거나 집중을 해야 할 일등이 생기면 잘 안 잡힐 때가 있습니다.
특히 흥분이 되어 있으면 더 안 잡히지요.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을 잘 알아차리고 다시 본성 자리로 되돌려놓는 것이 수행자들이 해야 할 일이랍니다.
혜충 국사 말씀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본성 자리에 관심이 없는데 어떻게 본성 자리가 나에게 관심을 가질수 있느냐?는 말과 같은 뜻이랍니다.
내가 내 마음을 보지 않으면 내 마음 또한 나를 저버린다는 뜻입니다.
가수 김국환 씨의 타타타라는 노래 가사에도 있지요?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라는 내용과 같은 뜻이랍니다.
내가 본성을 모르는데 본성이 나를 알아줄 리가 없겠지요.
이 말의 뜻은..
본성 자리에 외면받지 않으려면 열심히 마음자리를 잘 챙기란 뜻이기도 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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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알아차림이 잘 안될 때에는 이렇게 해보십시오.
잘 안될 때에는 분명히 내 마음을 관찰해 보시면 뭔가가? 지장을 주고 있는 것이 있을 겁니다.
이럴 때에는 그 지장을 주고 있는 대상을 화두로 삼아서 바라보십시오.
무슨 말이냐 하면 어떤 것이든..
예를 들면
마음에 산란심이 일어나면 그 산란심을 화두 삼아 바라보시라는 것입니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 했습니다.
내게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오온(五蘊)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조견을 하시면 된답니다.
잡생각들이 일어난다? 그러면 그 잡생각을 바라보시면 된답니다.
생각도 오온의 작용 중에 하나이니까요.
그 대신 지금 내 안에서 바라보고 있는 그놈에게도 의식이 가 있어야 합니다. (※핵심)
누차 말씀드립니다만 어떤 알아차림을 하시든 조견(照見)이 빠져있는 알아차림은 모두가 꽝이랍니다. (매우 중요 ~ 핵심)
화두를 알아차리든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리든 마음이 잘 안 잡히는데 억지로 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잘 잡히는 쪽으로 하시면 된답니다.
예를 들어 지금 가장 잘 잡히는 것이 화나는 마음이라면 그 화나는 마음을 바라보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화가 나 있다면 다른 것보다 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편하겠지요.
내게 가장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오온의 작용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조견오온 이랍니다.
화가 나있는 그 내 마음을 보십시오.
어떤 것이든지 좋습니다.
즐거운 마음이 일어나면 즐거운 마음을 보시고..
괴로운 마음이 일어나면 그 괴로운 마음을 보시면 됩니다.
무엇이든 내게서 가장 강하게 일어나는 것을 화두로 삼아 보시면 일석이조(一石二鳥)랍니다.
왜냐하면 조견도 하고, 도력(마음의 힘)도 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무엇을 화두로 삼든 저팔계처럼 그 화두에 끌려들어 가서는 안 된답니다.
화가 난 내 마음을 보되 덩달아서 그 화에 끌려들어 가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냥 화난 내 마음만 바라만 보십시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물론 화가 치밀어 오르니 뛰쳐나가고 싶겠지요.
그러나 처음에는 이를 악물고 화난 마음을 바라보시기만 해야 한답니다.
자꾸 이렇게 하다 보면 반드시 얼마 안 가서 좋은 결과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경허선사도 다 이 과정을 거쳤답니다.
물론 화를 보고 한 것은 아니지만 화두든 알아차림이든 좌선이든 깨닫기 전에는 모두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바라보는 것이 괴로울 수 있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사성제에서 제일 먼저 고(苦)를 두셨던 것이고요.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아직 모르시겠지만 깨닫고 보면 내게서 일어나 모든 오온의 작용들은 모두가 고(苦)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고(苦)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나의 고(苦)를 바라보다 보면 자연히 내 마음도 말랑말랑하게 돼서 강했던 내 마음들이 자연히 꺾기게 되는데요.
이때 버리기인 멸(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랍니다.
내 마음이 꺾이지 않으면 버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답니다.
경허선사도 마찬가지로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죽기 직전까지 화두에 매달리는 고통을 겪으면서 마음이 꺾였고 부처님 또한 고행을 통해 자신의 마음이 꺾이셨답니다.
제 경우는 저 같은 낙천적인 사람도 제 인생에서 두 번 정도 제 마음이 꺾인 적이 있는데요.
한 번은 2004년 이였는데요 이때는 조류독감으로 전 재산을 잃고 위세척을 하고 9시간 만에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겨우 살아날 정도로 마음에 큰 고통을 경험하고 마음이 완전히 꺾였던 경우가 있었고요.
또 한 번은 1700만 원 정도를 손에 들고 중국에 건너가 목숨까지 걸고 석탄업 쪽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조금 큰돈을 벌어가던 도중에 동료 두 명이 마약사범으로 한국인에게 중개를 하다가 사형을 당하고 저 또한 무수히 많은 조사를 받고 공안들에게 시달리다가 무혐의로 풀려난 적이 있었고 사형 당한 그 시체들을 직접 내 손으로 거두면서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리고 내 마음이 완전히 꺾였던 경우가 있었는데요.
이럴 때 마음을 비우고 버리기가 매우 좋아진답니다. (진실)
제 경우는 수행을 통해서 마음이 꺾였던 경우가 아니라 쓰디쓴 인생을 통해서 마음이 꺾인 경우라 할 수 있는데요.
아무튼 버리기는 강하고 굳은 내 마음이 꺾여서 부드러워졌을 때 쉽게 된답니다.
마치 감 나무 위에 잘 익은 감 하나를 살짝 건들기만 해도 툭" 떨어지듯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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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지금 보고 있는 선문염송 책은 1994년 8월에 발행된 책인데요.
포항에 있는 운제산에 오어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이 절은 신라 진평왕 때 지어진 고찰이고 원효(元曉) 스님과 혜공(惠空) 스님이 인연이 깊은 곳이랍니다.
이곳 사찰 산 위에 운제선원(雲梯禪院)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이곳에서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선문염송을 발행했답니다.
2년 전 여름에 부산에 간 김에 행자님과 한번 가 본 적이 있는 사찰인데요.
아주 큰 호수를 끼고 있는 절이라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웠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수행자들이 너무 없어 운제선원(雲梯禪院)을 팔려고 내놓았다고 들었는데요.
이런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좀 착잡하더라고요..
아무쪼록 어느 절이나 다시 수행자들이 넘쳐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전에 한국 자료에는 혜충 국사(慧忠國師)의 태어난 연도가 없었는데요 중국 자료에는 (675~775)로 표기되어 있었답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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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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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그동안 많은 질문들이 있었는데요.
오늘도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질문 내용 중에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에 관한 질문들도 제법 있었는데요.
오늘은 이 내용을 주제로 잠깐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의외로 많은 분들(스님들을 포함)이 소승과 대승에 대해 구분을 잘 못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특히 소승과 대승의 기준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답니다.
소승과 대승은 간단히 말하면 [작은 마음] [큰마음]을 말하는 거랍니다.
큰 불성의 마음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느냐?
아니면
작은 불성의 마음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느냐?
의 기준점이랍니다.
참고로 부처님 법의 모든 주제는 [마음] 하나 박에 없답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모든 기준점은 곧 본성(불성/성령/마음) 하나 박에 없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불도(佛道) 그러면 불성의 마음이 가는 길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중생들의 길이 아닌 불성의 길이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불법(佛法) 그러면 불성의 마음 법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중생들의 법이 아닌 불성의 마음 법이 따로 있다는 뜻이랍니다.
이러한 불성의 마음을 어떤 길로 쓰면서 살아가느냐? 가 소승과 대승으로 나누어지는 기준점이랍니다.
쉽게 말해 손오공처럼 깨닫긴 깨달았지만 아직은 자신의 이익과 사고를 가지고 작은 마음으로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은 소승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보시면 되고요.
부처님이나 예수님 또는 원효스님처럼 큰마음을 가지고 그 어떠한 이익이나 영화가 아닌 중생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이법을 펼치든 아니면 돕던 하면서 살아가는 마음이 대승이라 할 수 있답니다.
이 말은 저의 말이 아니랍니다. 부처님이나 유마거사도 수도 없이 하셨던 말씀이랍니다.
★ 이렇게 소승(小乘) 이란 작은 마음을 뜻하는 것이고 대승(大乘)은 큰마음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어떠한 것들이 내 마음을 파고들어도..
얼마나 잘 견딜 수 있느냐?
얼마나 잘 거부할 수 있느냐?
얼마나 잘 베풀 수 있느냐?
얼마나 큰 자비가 있느냐? 등등..
주는 데로 넙죽넙죽 받기나 잘 하고 절에는 재산들이 쌓이는 데에도 불구하고 자기 식구들만 호의호식하는 그런 마음들은 대승이 아니랍니다.
소승 축에도 들 수 없는 마음이랍니다.
출가를 한 어려운 분들을 서로 돕고 함께 수행을 이어나가려는 마음이 진정한 대승적 큰마음이랍니다.
법문을 아무리 잘하고, 선문답을 아무리 잘 풀고, 경전에 제아무리 달통을 했다 하더라도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가 중요한 것이지 이런 말이나 글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흥정을 하거나 장사를 하는 출가자들은 소승도 대승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요.
왜냐하면 소승이든 대승이든 이런 마음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많은 출가자들이 이런 말들을 합니다.
방편으로 천도재도하는 것이고, 제사도 지네 주는 것이고, 명패도 달아주는 것이라고요..
만약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무료로 그러한 일들을 해주고 있다면 이 말이 맞을 수 있습니다.
원효스님도 그랬으니까요.
그러나 돈이나 금품을 받고 그것도 몇백에서 몇천만 원 씩 받고 해주고 있다면 이런 행위야말로 들여우(野狐精) 중에 상 들여우라 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이러한 행위들이 대승이고 소승이겠습니까?
단돈 몇 푼이라도 중생들에게 받고 이러한 일들을 해주고 있다면 그것은 방편을 핑계 삼아 장사를 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위랍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경허선사의 일화가 아주 유명하지요..
하루는 도내에서 가장 큰 부자로 소문난 집에서 큰 어른이 돌아가셨는데 그의 아들이 경허선사의 소문을 듣고 천도재를 부탁합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경허선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천도재 제사상의 음식들을 모두 엎어서 대중들에게 미리 골고루 나누어 주고 물 한 잔 촛대 하나에 향을 피우고 천도재를 지내 준 경우랍니다.
이러한 모습이 진정한 대승이랍니다.
그 이유는 당시에는 먹고살기 힘들 때라 대중들이 제사 집에 모여드는 이유는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서였거든요.
왜냐하면 천도재란 화려하게 음식을 차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천도재란 천도(薦度) 즉 망자를 바른길로 천거(薦擧)를 한다는 뜻인데 굶주리고 헐벗은 대중들을 미리 배불리 먹이는 것만큼 더 좋은 천거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경허선사라는 분은 단 한 번도 대중들 앞에서 가사를 화려하게 입거나 거만하게 대하거나 속된 말로 건방을 떨지를 않으셨답니다.
오히려 정 반대였지요.
그래서 지금껏 큰 존경과 추앙을 받는 것이고요.
지금 출가자들이야 어디 이런 출가자들이 있는가요?
최고 어른들이라 하는 사람들이 더 설치고 다니는데요.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 아니라 할 수 없답니다.
경허선사라는 분은 지위가 높고 부유한 고관대작(高官大爵)들 앞에서는 항상 당당하셨고 굶주리고 헐벗은 중생들에게는 가사를 벗어 주셨고, 얼굴과 손발이 뭉개진 나환자도 방안으로 들여 먹이고 입히시는 마음이 진정한 큰마음이요 큰 대승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밖에서는 대중들과 호탕하게 술과 음식을 나누며 말년에는 아이들에게 한학을 가르치시며 이법을 펼치셨답니다.
경허선사나 원효스님은 지금 어른들처럼 절 안에서만 큰소리치는 그런 분들이 아니셨답니다.
항상 이분들은 세상 밖에서 중생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입으며 이 법을 펼치셨답니다.
이러한 큰마음이 대승이요 큰 불성이랍니다.
특히 원효스님 같은 경우는 구중궁궐(九重宮闕) 안의 화려하고 기름진 음식들을 모두 마다하시고, 국사 자리도 모두 마다하시고 스승인 대안 선사처럼 거지들과 나환자들을 돌보시며 가난하고 굶주린 중생들과 동거 도락을 같이 하시면서 일생을 그들과 같이 이법을 펼치셨답니다.
이러한 큰마음이 대승이요 큰 불성이랍니다.
거지들이 부르는 각설이타령 또한 이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렇게 큰마음을 펼치는 것을 대승이라 한답니다.
지금처럼 값비싼 가사에 두툼한 방석에 앉아 자기 머리통만 한 주장자나 들고 거만하게 앉아 중생들을 호령하는듯한 그런 모습들이 아니셨답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승이란 큰마음을 말하는 것이며 큰 불성의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승이란 지금처럼 집 안에서만 큰소리치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특히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앙굴마라 같은 사람도 순한 양으로 변하는 것이 부처님의 마음법 이랍니다.
혹자들은 깨닫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이런 말들은 천만의 만만의 말씀이랍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해보시면 알겠지만..
무엇이든 처음에는 쉽게 올라가지만 자신의 한계치에 부닥치면 한 단계 더 올라가기가 정말로 힘들듯이 불법도 마찬가지랍니다.
오죽하면 제 경우는 카톡 머리글자에 [現中百尺竿頭進一步(精進)]이라 써 놓았을까요?
솔직히 말해 깨닫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 보다 더 쉬운 것이랍니다.
의식이 깨어서 보면 바로 앞에 있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진짜로 어려운 것은 마음을 100% 비우고 버려서 일불승을 증득하는 성불이 어려운 것이지요.
이것은 마치 닭이 모이를 쪼듯이 계속해서 내 마음을 바라보고 반성하고 회계하면서 내 마음을 쪼아대야 한답니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은 자동으로 엷어지게 되고 종국에는 반드시 내 마음을 비우고 버리게 되어있답니다.
그러려면 먼저 내 마음을 알아차려야 하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방편품(方便品)과 비유품(譬喩品)에서 세존과 사리불의 대화에서 삼승(三乘)을 설하신 내용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요.
비유를 들어 친구의 안 호주머니에 값비싼 보석을 넣어 줬지만 꺼내서 쓰지를 못하는 어리석음의 이야기도 그렇고,
한 인도자가 여러 무리들과 힘들게 밀림을 헤치고 가다가 힘이 드니까 환상의 성을 임시로 만들어 그곳에서 편히 쉬게 했지만 정작 그곳이 최종 목적지인 줄 알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안락에 빠져서 길을 나서지 않는 장면이 바로 소승의 자리를 표현한 내용이랍니다.
세존은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리불에게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야! 사리불아 네가 지금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구나? 아니야,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은 궁극(窮極)의 열반이 아니란다. 그것은 수행자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임시로 만들어 놓은 것뿐이야, 네가 지금 목표로 해야 할 최종 목적지는 일불승(一佛乘)이란다. 이 일불승을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에 방편으로 삼승을 설했던 것인데 너는 그것을 진짜로 여기고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착각하고 있구나.."
라고 하니까 그제야 사리불은 자기 자신에게 속았다 하면서 전생에 이법을 들었지만 까먹었고 세존이 지금 다시 일깨워주어 생생히 다시 기억이 났다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 소승과 대승의 이야기랍니다.
여기서 부처님 말씀의 핵심은 [일불승]이랍니다.
여기서 [일불승]이란 부처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고 큰마음을 뜻하는 것이고 대승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여기서 [삼승]이란 여러분들도 아시는 바와 같고 이것은 작은 마음을 뜻하는 것이고 소승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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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오공 이야기로 비유하면 손오공이 재주나 부리며 작은 마음을 펼치고 있는 상태가 소승이라면 종국에는 진정한 제왕이 되는 것이 대승이랍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깨달았다고 선지식인이라 칭하며 손오공처럼 으스대는 모양이 소승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깨닫지도 못하고서 깨달은척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해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모양을 그린 내용이 손오공이 때려잡은 요괴(妖怪) 들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손오공 이야기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수행자들의 유형을 그대로 그려놓은 이야기로 보시면 된답니다.
집안에서 폼만 잡고 큰소리치는 것이 소승이라면 집 밖에서 대의(大義)를 펼치는 것이 대승이라 할 수 있답니다.
깨닫고 증득을 했는데에도 불구하고 혼자서만 그 자리를 누리고 있으면 소승이라 할 수 있고 부처님이나 예수님처럼 깨닫고 증득을 하고 중생들을 위해 널리 이법을 전수해 주는 것이 대승이라 할 수 있답니다.
무엇이든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이웃들과 나누는 것을 대승이라 한다면 자기 입과 자기 식구들만 챙기는 것을 소승이라 할수 있답니다.
큰마음.. 큰 자비심.. 큰 씀씀이가 대승이고 일불승의 마음이랍니다.
과연 이 땅에 있는 선지식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집 밖에서도 대 자비심, 큰마음을 펼칠 수 있는 큰 사람들이 과연 누가 있는지? 곰곰이 되짚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입으로만 대승을 논하고, 입으로만 자비를 논한다면 그것이 바로 소승이라 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을 바로 들여우(野狐精)라 하는 것이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승 그러면 떠오르는 인물을 원효스님과 그의 스승인 대안 선사를 들고 있는데요.
저의 바람은 다시 이 땅에 대승의 큰마음들이 불교 안에서 다시 넘쳐났으면 하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는 지금으로 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아무쪼록 우리들 만이라도 부처님 가르침을 잘 따라 해서 불성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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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보자 내용
이 글은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한 내용이랍니다. ♡
오늘도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내용 중 고성제(苦聖諦)와 집성제( 集聖諦)를 끝내고 멸성제(滅聖諦)의 수행 방법인데요.
사성제의 전체 내용을 한문식으로 표현하면..
고(苦)·집(集)·멸(滅)·도(道)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네 가지의 수행 방법은 해탈로 가는 수행 순서를 말하는 내용이랍니다.
고(苦)와 집(集)은 깨어서 알아차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말씀드렸고,
멸(滅)은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보시면 된답니다.
도(道)는 깨닫고 난 후의 후 공부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것은 깨닫고 증득을 하기 전의 분들은 신경을 안 쓰셔도 된답니다.
왜냐하면 도성제(道聖諦)는 마음의 힘(道力)이 없으면 행하기 어러운 것들이라 그렇습니다.
이 마음의 힘을 도력(道力)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요,
혹자들은 도성제를 거쳐야 깨닫고 증득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분들도 많은데요.
이러한 내용들은 모두 모르고 하는 소리랍니다.
마음에 힘이 없는데 어떻게 [팔정도]나 [바라밀]등을 행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것들을 걸림이 없이 행하기 위해서 깨닫고 증득을 하려는 것인데요.
사성제를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1)
고통과 괴로움(즐거움도 포함) 등을 깨어서 알아차려보아라, (苦)
(2)
모든 괴로움과 고통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모이고,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 원인을 알아차려보아라, (集)
(3)
마음에 것들은 욕망의 완전한 소멸이며, 버림이고, 포기이고, 그것으로부터의 해탈이며 초연함이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마음에서 들고 있지 말고 내려놓고, 버리라는 뜻입니다. (滅)
(4)
도(道)는 깨닫고 증득을 했으면 [팔정도]나 [바라밀] 등을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가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道)
초보자분들은 지금은 이러한 것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마시고 열심히 나와 내 마음과 현재 이 순간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일에만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간화선으로 하시는 분들은 화두를 열심히 깨어서 알아차려보시고요.. <고(苦) 와 집(集)>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수행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답니다.
그럼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어보겠습니다.^^♡
(※)
들으실 때 각자가 본인들 마음과 연관시켜서 들어보시지요.
그러면 한결 이해하시기 좋고 어쩌면 중간에 깨달으시는 분들도 나올 수 있답니다. (진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I9V6YYR96JCtEaMZJYfcrU6eEYW3ub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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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을 깨어서 알아차리란 뜻이랍니다..)
대념처경. 16 법념처 E 4성제 3 멸성제
2.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 멸성제
멸성제는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랍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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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6~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시각 대상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소리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향기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맛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몸의 접촉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마음의 대상에 대한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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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오늘도 지난주와 비슷한 내용 같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요.
지난주에는
[대상에 대한 인식]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라는 내용이라면 오늘 내용은..
[마음의 반응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라는 내용인데요.
이 말의 뜻은 우리들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몸)과 (마음) 등을 통해 접하는 모든 것들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우리들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반응들이 일어나지요.
이러한 것들을 바로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없애고 버리라는 뜻입니다.
(참고)
제 경우는 경전을 통해 없애는 방법을 배운 것은 총 네 가지가 있는데요.
제가 모든 경전들을 다 잃어보지를 못해서 그렇지 아마 모르긴 해도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문제는 이러한 가르침들을 일반 사람들이 못 알아차리는 것이 문제인데요.
아무튼 이것만이라도 가능하신 분들은 따라 해보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방법이든 내 마음을 알아차리셔야 가능하답니다. (※제일 중요※)
왜냐하면 내 마음을 못 보고 모르는데 어떻게 막을 수가 있고 버릴 수가 있을까요.
① 첫번째 단계는 무엇이든 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리십시오.
그리고 들어오기 전에 미리 막는 방법입니다.
이때는 이렇게 해보십시오.
무엇이든 내 마음에 들어오려는 것이 있으면 미리 알아차리고 의식으로 그 들어오려는 것을 보면서 "버려!" 하면서 내 마음에 접근을 못 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직접 해보시면 가능하답니다.
예를 들면 운전을 하고 있거나, 대화를 하고 있거나, 무엇을 하고,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마음에 화가 스멀스멀 일어나는 마음이 들어오려고 하거나 짜증 나는 마음이 들어오려고 할 때에 미리 알아차리고 그놈을 향해 "버려!" 또는 "차단!" 또는 "스톱!" 하면서 내 마음에 못 들어오게 하는 방법입니다.
마치 어렸을 때 친구가 욕이나 나쁜 말을 했을 때 손바닥으로 그 말을 막으며 "반사" 하면서 되돌려 주듯이 말이지요.
약간 유치한 방법 같지만 제 경우는 엄청 효과가 좋았답니다.
이렇게 하면 자동으로 조견 즉 마음도 되돌아보게 되고, 마음의 힘도 기르게 되고, 버리기 연습도 되면서 일석삼조가 될 수 있답니다.
또는 여러분들 스스로 각자가 잘 되는 쪽으로 개발을 하셔도 된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것도 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이러한 것이 진정한 마음공부이고 마음 훈련법이랍니다.
②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일단 내 마음에 들어와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마음을 내 쫓는 방법인데요.
화가 나든 줄거움이 일어나든 괴로움이 일어나든 무엇이든 내 마음에 들어와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놈을 내쫓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손오공의 주 특기이기도 하지요.
손오공은 무조건 여의봉으로 때러잡아서 내 쫓으니까요.
그리고 부처님에게 힌트를 얻고 흑씨범지가 했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제 경우는 의식을 그놈에게 강하게 비추면서 밖으로 밀어내는 방법을 쓰고 있답니다.
이 방법은 의식에 힘이 있는 분들은 충분히 가능하답니다.
의식이 손오공의 여의봉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손오공에 보면 여의봉을 일반 사람들은 힘이 없어 못 들잖아요.
이 내용이 의식의 힘을 나타내는 모양을 그린 것이랍니다.
예전에 제가 의식에 힘을 기르는 기공술도 알려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방법은 촛불이나 어떤 물건을 앞에 놓고 의식으로 그 물건을 불어서 뒤로 밀어내는 연습입니다.
물론 촛불이나 물건이 뒤로 밀리지는 않지요.
그러나 의식의 힘은 기를 수 있답니다.
마치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나무를 때리듯이 그 나무가 부러지지는 않지만 정권(正拳)의 힘은 기를 수 있잖아요.
이와 같은 원리랍니다.
지금 사람들은 수행과 함께 요가나 단(丹) 수련을 같이 병행하는 경우가 많이 있잖아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시겠지만 저희가 전생에 아주 오래전에 수행을 했을 때에는 수행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기공술을 많이 익혔었답니다.
그리고 이 기공술은 현 인류가 생기기 훨씬 이전 부터도 있었던 것이고요.
[ (기공술 참고) 다음 검색창에서 : [선문염송] 중에서.. (107편) 입력]
아무튼
간화선을 하시는 분들은 화두가 여의봉이 될 수도 있고, 위파사나를 하시는 분들은 알아차림도 좋은 여의봉이 될 수 있답니다.
이 방법은 제 경우 제일 처음 반야심경에서 힌트를 얻고 썼던 방법이기도 한데요.
그때는 불교를 전혀 모를 때라 따로 배운 것도 아닌데 제 경우는 당시에 아주 자연스럽게 쉽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이렇게 된 것이고요.
저도 제 자신에게 매우 놀랐답니다..
③ 그리고 세 번째 방법은 뒤에 부처님 경전 이야기에서 주리반다가의 예를 보고 공감을 했던 방법이 있는데요.
이 방법은 뒤에 저도 했던 방법이기도 하답니다.
이 방법은 의식으로 빗자루를 만들어서 내 마음의 것들을 쓸어내는 방법입니다.
제 경우는 이 내용을 보고 한층 업그레이드를 한 경우인데요.
방법은 오른쪽 손바닥으로 주리반다가처럼 내 마음을 빗자루로 쓸어내듯이 아래로 쓸어내는 방법입니다.
제 경우는 이 방법 또한 효과는 매우 좋았답니다.
손오공에서 보면 여러 가지 도술들을 펼치잖아요? 이러한 모양들이 모두 의식으로 만들어내는 행위랍니다.
④ 그리고 네 번째 방법은 부처님처럼 내 마음에 들어온 것들을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조사선이라고도 하는데요.
이것도 위파사나의 한 종류랍니다.
이 방법은 그동안 수도 없이 했던 내용이라 길게 설명을 안 할 건데요.
그냥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바라보시면 된답니다.
간화선을 하시는 분들은 화두를 바라보시면 되고요.
이때 중요한 것은 그냥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의식 일부를 지금 보고 있는 나 쪽으로도 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조견(照見)이고 반조(返照)랍니다.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 하시든 조견(照見)이 없는 수행은 모두 꽝이랍니다.
(현재 조견을 모르고 수행을 하시는 분들이 수두룩함, 그래서 깨닫는 사람들이 안 나오는 것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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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행자 내용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네 분들을 위해 신설된 글이랍니다. ♡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 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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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0~
또한 만약 스승이신 부처님을 찾아뵙지 않고 법문도 듣지 않으며 승단에도 참여치 않으면서, 저 육사외도(六師外道)를 스승으로 삼아 그들을 따라 출가하여 그들이 가는 곳이면 그대도 어디든지 따라가리라고 한다면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그대는 온갖 악견(惡見)에 빠져 있으며 양 극단과 중도의 바른 인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여덟 가지 불행한 운명[八難]을 타고났으며 행복으로 나아가는 도리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번뇌 덩어리이며 청정함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격정을 여의고 나면<‘격정을 여의다’ 이 말은 치솟는 번뇌나 정욕을 멀리 떠난 것을 의미한다.> 그때 비로소 대덕도 격정을 여의겠지요.
그대의 보시는 청정하지 않으니 대덕이시여,
그대에게 보시하는 사람 역시 악도에 빠지겠지요.
그대는 모든 마(魔)와 함께 뒹굴며 번뇌는 그대의 벗입니다.
번뇌의 본질이야말로 그대의 본질입니다.
그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대는 모든 부처님을 비난하고 모든 불법을 헐뜯으며 승단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결국 그대는 열반에 들지 못하겠지요.
혹시 그대가 이와 같다면 대덕이시여,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당시 저는 그의 이 같은 말을 듣고 도대체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발우고 뭐고 돌아볼 여유도 없이 내처 그 자리를 피해 나오려는 순간, 다시 유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덕 수보리시여, 그렇게 곤혹스러워 마시고 아무쪼록 발우나 가지고 가시지요.
~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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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참으로 유마거사라는 사람의 가르침은 따끔하면서도 큰 가르침이 있는데요.
어떻습니까?
이 글에 해당하시는 분들 또한 과연 유마거사의 공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앞으로도 끊임없이 오늘 유마거사가 펼쳐 놓은 대상 등을 상대로 수행을 이어나가보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우리들도 최상의 열반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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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이 불성(마음)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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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세존이 대중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한구석의 땅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시대 " 여기에다 절을 지어라" 하시니, 제석이 풀 한 줄기를 갖다 땅에 꽂고 말호대 "절을 세웠습니다" 하였다. 이에 세존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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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
여러분들도 선답을 찾아보셨나요?
저는 이렇게 선답을 하겠습니다.
[저는 바로 여기에서 잠자는 시늉을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절들은 모두들 깨어있지 않고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
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26
[건달바가 거문고를 타다가 줄이 끊어졌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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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용에서도 마음을 뜻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잘 알아차려 보시고 [선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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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131 편) 20220815
충국사 [ 어떤 책에는 염관으로 되었다] 에게 어떤 중이 묻되 " 어느 것이 근본 노사나불입니까?" 하니, 선사가 말호대 "나에게 정병을 다오" 하였다. 중이 정병을 가지고 가까이 오니 선사가 말호대 "본래의 자리에 두라" 하였다. 중이 다시 묻되 "어떤 것이 근본노사나불입니까?" 하니, 선사가 대답호대 "옛 부처님이 지나가신 지가 오래니라" 하였다.
[운문이 말호대 "아무런 흔적이 없구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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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이 가능하신 분들은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주셔도 됩니다.
e-mail : 119e@daum.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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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법문 동영상
제목: 현재의 순간에 온 마음을 집증하라 - 석가모니 부처님 말씀 2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9LLYZ3F2V_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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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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