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8일에 있었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은 '인천공항 같은 경우엔 아직도 해당 기업들이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는 박재완 장관의 답변이었다. 지난 11월에 있었던 인천공항공사 사장에 대한 고소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관광공사 인천공항 면세점이 적자를 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적자를 보는 기업들이 신라와 롯데라는 말이 된다. 장관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비효율의 상징이라던 공기업은 흑자를 내고 있고, 효율성의 상징이라던 민간기업들은 적자를 보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 번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인천공항에서 롯데면세점이 지난 4년간 약 480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라면세점의 경우 적자 폭은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신라 또한 인천공항에서 상당히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신라면세점과 롯데면세점은 적자를 보면서까지 왜 이렇게 인천공항면세점 내에서 영토 확장에 열을 올리는 걸까?
신라·롯데가 인천공항 면세점에 집착하는 이유? 시장독과점에 대한 열망
신라와 롯데 등 재벌면세점들이 인천공항에 집착하는 이유는 인천공항면세점이 대한민국 면세시장에서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 전체 면세시장 매출에서 인천공항은 약 33%의 매출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인천공항면세점을 지배하는 업체가 대한민국 면세시장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매출규모가 큰 인천공항면세점에 입점해 있는 것만으로도 판매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인 바잉파워(Buying Power)가 급격히 높아진다. 막강한 바잉파워는 물품 공급업체들에 대한 지배력강화로 이어지고, 물품 구입대금의 결정권을 공급업체가 아닌 판매업체가 쥘 수 있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실제로 신라나 롯데의 경우 인천공항에서는 적자를 보고 있지만, 이 적자를 시내면세점과 다른 공항면세점에서 충분히 보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2011년도 대한민국 면세시장의 공항 및 시내면세점 등 매출점유율.
신라와 롯데는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약 9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인천공항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공항 면세점들은 신라와 롯데가 거의 완전하게 독과점하고 있다. 그런데 신라와 롯데 입장에서는 대한민국 공항면세시장에 대한 완전정복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영토가 인천공항이고, 공항 면세시장에서 마지막 짜투리 땅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인천공항 내 관광공사면세점이다. 이곳에 신라나 롯데의 깃발을 꽂아야 완전 독과점이 완성되고, 완전 독과점이 완성되어야 면세점에서의 상품 판매가에 대해 카르텔을 형성할 수 있다.
▲ 대한민국 공항면세점에 대한 재벌면세점의 독과점 현황. ⓒ한국관광공사노조
재벌면세점들은 공항면세점들만 장악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2011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 면세시장은 롯데가 50.75%, 신라가 28.38%를 점유하고 있다. MB정부가 들어선 후 대기업프렌들리 정책 및 면세점민영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시장점유율이 불과 4년 만에 급격하게 올라갔다. 재벌면세점들은 이러한 시장독과점에 힘입어 공급업체로부터의 상품 구입대금과 면세점에서의 상품 판매금액을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됐다. 두 재벌면세점들이 시장을 독점하는 순간 판매상품에 대한 가격 카르텔을 완성할 수 있다. 가격을 올리거나 최저판매가를 정하는 등 가격통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 통계출처 : 한국면세점협회 ⓒ한국관광공사노조
시장 독점 후 가격담합 이뤄지면 소비자 피해볼 것
시장 독과점 후 가격담합을 통한 '소비자 지갑털기'는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로 다루어진다. 얼마 전 LG 전자, 삼성 SDI , 필립스 및 다른 3개 회사가 거의 10년 동안 두 개의 카르텔을 형성해 TV 브라운관 가격을 담합 조작한 혐의로 유럽연합(EU) 반독점 규제 당국으로부터 14억 7000만 유로(19억2000만 달러)의 기록적인 벌금을 부과받은 적이 있다. "이 브라운관 카르텔들은 '교과서 카르텔'로서 최악의 반경쟁 행태를 총망라하고 있다"고 EU의 조아킨 알무니아 경쟁담당 집행분과위원장이 성명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가격담합에 의한 가격 부풀리기 사례는 물론 국내에서도 발견된다. 이른바 '교복 잔혹사'가 그것이다. 국내 교복시장은 1983년 '교복자율화' 이후 와해됐다가 1990년대 들어 교복을 채택하는 학교가 급증하면서 다시 급성장했다. 사실상 삼성과 SK가 오랫동안 교복시장을 좌우해 왔다. 삼성과 SK의 교복사업은 지난 10여 년 동안 가격 거품 논란과 가격담합, 불공정거래의 주범으로 꼽히며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아왔다. 2001년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일모직 등 3대 교복업체의 가격 담합 행위를 적발해 11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한 사건도 있었다. 교복사업에서 철수한 이유에 대해 삼성과 SK는 '교복이 중소기업에 적합한 사업이라고 판단해 협력업체 등에 양보한 것'이라고 했지만 가격담합에 대한 여론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철수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2008년 3월부터 인천공항면세점 주류 판매는 독점으로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공항 면세시장을 신라와 함께 독과점한 롯데는 최대 면세시장인 인천공항면세점에서 주류 판매 독점권까지 얻었다.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롯데가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른 바잉파워(Buying Power)를 앞세우자 소수 면세점업체에 바로 압박이 들어왔다. 주류시장 주요판매 품목인 '헤네시' 등을 선점함으로써 다른 면세점의 헤네시 공급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중소 면세점은 헤네시를 병행 수입하여 취급하고 있으나, 수입가격이 높아 롯데면세점과 경쟁이 안 되고 있다. 면세시장에 대한 불공정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관광공사 면세점이 민영화되면 인천공항에서 가격담합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지금이야 신라와 롯데가 인천공항에서 영토확장 전쟁을 벌이고 있어, 두 재벌면세점들 간에 가격담합을 논의하기에는 살벌한 상황이다. 또한 관광공사라는 공기업 면세점이 중간에 끼어 있어 대놓고 가격을 담합하기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가격담합에 대한 유혹은 도처에 깔려 있다. 우선 인천공항이 부과한 살인적인 최소보장액(임대료)을 매년 납부하려면 매출볼륨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가격인상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유혹은 인천공항이 건설하고 있는 제2터미널이다.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과 2터미널을 점령하라
인천국제공항은 늘어나는 항공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4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제2여객터미널 신설 등 3단계 확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전인 2017년까지 연간 여객처리능력은 4400만 명에서 6200만 명으로, 화물처리능력은 450만에서 580만으로 확충한다는 방침이다. 2017년에 제2터미널이 완공되면, 제2터미널 출국장에도 면세점이 들어서게 된다. 제2터미널 출국장 면세점이 문을 열면 인천공항면세점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면세시장 매출점유율을 현재 약 33%에서 45% 이상으로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제2터미널 면세점은 신라나 롯데로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인천공항면세점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첫째는 신라와 롯데가 제1터미널에서 그랬듯이 제2터미널에서도 함께 입점해서 제2터미널 면세시장을 양분하는 시나리오이다. 이 경우 인천공항공사 입장에서는 관리 감독이 번거로워진다는 단점이 있다. 앙숙관계인 두 재벌면세점들이 계속해서 잡음을 낼 수 있다. 그렇다면 두 개의 재벌면세점을 하나는 제1터미널로 또 하는 제2터미널로 분리 운영하는 방안이 있다. 분리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성공할 경우 관리 감독이 수월해지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이 경우 경쟁이 사라진 면세점에서 상품가격이 올라가게 될 것이다. 제1터미널과 제2터미널을 장악하게 되는 두 재벌면세점들 입장에서는 출국하는 소비자들이 '가두리 양식장'의 생선이 되는 셈이다. 이 경우 가격담합을 통한 소비자들의 지갑털기는 쉬워진다. 물론 가상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면세점 업계에서는 상당히 퍼져 있는 이야기이다.
인천공항면세점 유찰, 재벌면세점들 재반격의 기회
▲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조감도
게다가 중소기업들을 우선 대상으로 한다던 인천공항면세점 입찰이 유찰되었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 12월 5일 관광공사가 운영하던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3층 출국장 2173㎡에 해당하는 매장면적을 DF6와 DF7, 2개 구역으로 나눠 입찰공고를 냈었다. 12월 12일까지 입찰참가 신청을 접수한 결과 총 6개 업체(DF6 2개, DF7 4개)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12월 13일 가격입찰을 실시한 결과 단 한 개 업체만이 참가하여 최종 유찰된 것이다. 대선이 불과 며칠 남지 않은 가운데 서둘러 밀어붙이던 면세점 민영화는 결국 MB 정부의 임기 말 무리수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중소기업을 우선 대상으로 한다던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이 유찰됨으로써 재벌면세점들은 반격의 기회를 얻었다. 보수언론들이 '공항면세점이 중소기업 부적합 업종'이며 '역시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들만이 할 수 있는 업종'이라고 떠들어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공항면세점 입찰이 유찰된 이유는 '인천공항면세점 입찰에 대한 7가지 의문'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짧은 입찰준비기간, 이번 입찰에서 빼돌린 110평에 대한 의혹, 자산규모 5조 원 미만 기업이라는 참가신청자격의 허구성, 재벌면세점 이익 보호를 위한 취급품목 제한조치의 불공정성, 터무니없이 높은 최소보장액(임대료)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결과이다.
중소기업에 부적합한 업종이란 없다, 불공정한 조건이 있을 뿐
이번 입찰에서 중소기업들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했던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적자를 강요하는 최소보장액(임대료)'과 '불공정을 강요하는 국산품매장 50% 이상 의무설치'로 보인다. 입찰대상 총 매장면적은 2174㎡(약 658평)이었으며 최소보장액 합산액은 521억 원이었다. 말 그대로 최소보장액이므로 최소보장액 이상을 써낸 업체들 중에서 최고가액을 써낸, 적격한 자격을 갖춘 업체가 낙찰자가 된다. 521억 원 이상의 최소보장액을 매년 지불하며 658평 공간에서 비인기상품들을 팔면서 영업이익을 낼 수 있는 중소기업은 없다.
새 사업자는 외산수입품에 비해 수익률이 낮은 국산품을 매장 내에 50% 이상 배치해야 하는 부담도 안게 된다. 이는 상당히 불공정하고 재벌면세점들의 이익만을 보호해 주는 처사다. 왜냐하면 인천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롯데와 신라 등 두 개의 재벌면세점들에게는 국산품 50% 배치 의무조항은 없기 때문이며,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 사업자가 되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매우 힘겨운 경쟁이고, 적자를 강요하는 입찰조건이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참가를 포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공항면세점이 중소기업들에게 부적합한 업종은 아니다. 문제는 면세점을 중소기업에 부적합한 업종으로 만들어버린 입찰조건이었다. 발상을 바꾸어 중소기업들에게 최소보장액(임대료) 제도 대신에 매출대비 영업료 지급방식으로 바꾼다면 인천공항면세점은 중소기업에 부적합한 업종에서 순식간에 적합한 업종으로 변모할 것이다. 또한 국산품 50% 의무배치를 재벌면세점들에도 똑같이 적용한다면 인천공항면세점은 재벌면세점들에게 적합한 업종에서 순식간에 부적합한 업종으로 변모할 것이다. 이번에 면세점 입찰을 밀어붙이던 MB정부와 기획재정부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다만 모른 척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