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창업성공률은 고작 15% 남짓에 불과하다. 창업자 100명 중 85명은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며 주저 않고 만다는 얘기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성장한 CEO들의 스토리는 그래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들은 맨손으로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사다난했던 산업화‧민주화 시기와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험난했던 국내‧외 정세를 극복하며 성공의 반열에 올랐다. 이들의 얘기는 곧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의 기록이자 대한민국 경제계와 전기계의 숨은 역사이기도 하다. 해당 업종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창업주들의 얘기를 모아봤다.
장순상 비츠로그룹 회장은 1942년생으로 올해 74세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이른 아침 출근해 크고 작은 사안을 보고받고 결정한다.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장 회장은 그룹 창업자인 장순명 명예회장의 동생이다. 장 명예회장은 1955년 광명전기제작소를 창업한데 이어 1987년 중립전기공업을 인수하고, 1989년에는 한불자동화를 설립했다. 광명전기는 1995년 매각했지만 중립전기공업과 한불자동화는 각각 현재의 비츠로테크와 비츠로시스로 성장해 그룹의 핵심기업이 됐다. 비츠로그룹은 장순명, 장순상 형제가 일궈낸 합작품이다. 형제가 추수한 낟가리를 서로 더 주려다가 달밤에 마주친 얘기처럼 이들 형제는 지금껏 의좋게 기업 경영에 매진하고 있다. 공동 경영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던 형제는 2007년 그룹의 여러 계열사 지분을 비츠로테크와 비츠로시스 중심으로 정리했다. 이로써 장 명예회장이 비츠로시스, 장 회장이 비츠로테크 계열을 각각 맡게 된다. 장 회장이 현재 비츠로테크 지분 36.1%를 보유해 최대주주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카리스마’, ‘불도저’, ‘박학다식’ 등이 장 회장을 대표하는 단어다. 중소기업 1세대 오너의 특징을 두루 갖춘 셈이다. 그를 옆에서 지켜본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무언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에 대해서는 대단한 집념을 갖고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장 명예회장은 지난 2004년 발간한 자서전 ‘장락무극(長樂無極)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에서 동생인 장 회장에 대해 “만일 장 회장이 없었다면, 아니면 장 회장과 사이가 나빴다면 지금의 비츠로가 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그 대답은 자신이 없다. 장 회장은 지금의 비츠로가 있기까지 그야말로 견인차 역할을 해낸 인물”이라고 회고했다. 장 회장은 여전히 머리맡에 종이와 펜을 두고 잠을 청한다고 알려져 있다. 경영자로서의 행보가 여전히 진행형이란 얘기다. 노시청 필룩스 회장은 지난 40년 간 기업을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소신을 지킨 뚝심의 CEO다. ‘감성조명’이라는 회사의 기업비전을 국내 조명산업의 트렌드로 발전시켰고, 국내 최초로 ‘조명박물관’, ‘라이팅 콘서트’ 등을 기획‧운영하며 ‘조명은 문화’라는 평소의 소신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국내 조명산업에 큰 족적을 남긴 노 회장이 조명산업에 투신한 것은 1989년 콤팩트 형광램프에 이어 1992년 안정기와 램프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이전에는 1975년 설립한 보암전기전자연구소에서 소재와 부품사업을 주로 펼쳤다. 노 회장은 지난해 1월 본지가 기획한 ‘전기공학도, 선배CEO를 만나다’ 코너에 참여해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원 진학 대신 보암전기전자연구소를 설립해 일본의 TDK와 같은 소재사업을 시작했는데, 아마 그것이 국내 벤처 1호일 것”이라며 “3~4년 간 제품개발에 주력해 소재특성이 나오는 제품을 만들었는데, 대기업들이 국산 소재를 외면해 어려움을 겪었다”며 창업 당시의 일화를 소개했다. 노 회장은 자신의 소재를 적용한 부품까지 직접 개발, 반전을 꾀했고, 1979년 터진 제1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부품국산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입지를 넓혀나갔다고 했다. 필룩스의 사업포트폴리오를 기존의 소재와 부품에서 조명까지 확장한 노 회장은 ‘감성조명’을 기치로 내걸고, T5형광등기구를 활용한 상업조명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사업을 확장했다. 또 최근에는 LED조명과 기존의 감성조명시스템기술을 접목해 스마트조명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올해 3월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5’에서는 SK텔레콤과 공동 개발한 LED스마트비콘조명을 선보이는 등 시장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빛을 만드는 노 회장은 ‘조명의 어두운 이면’인 ‘빛 공해’ 에도 관심을 갖고 이 문제를 이슈화시켜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방지법’ 제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한국전등기구LED산업협동조합과 조명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홍춘근 서전기전 회장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중전기기 업계에 몸담아 온 CEO다. 1976년 신한중전기를 시작으로 1979년부터 10년간 선도전기에서 근무하며 수배전반 관련 기술, 영업과 노하우를 쌓아가며 훗날 창업의 꿈을 키워갔다. 1988년 9월, 유진전기를 설립하며 독립에 나선 그는 개인사업체 형태로 회사를 꾸려가다 1991년 1월 11일, 지금의 서전기전으로 법인전환을 단행한다. 서전기전 설립과 동시에 전기조합에 가입, 조달청에 배전반을 납품했다. 국내 수배전반 1위 기업의 항해는 그렇게 시작됐다. 홍 회장은 남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는 인물로 유명하다. 지난해 말 서전기전의 코스닥 상장 당시에도 언론의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부했다. 지난 4월 ‘전기의 날’ 시상식에서도 영예의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지만 흔한 수상소감 한 마디 외부에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소심함과는 거리가 멀다. 서전기전을 이끄는 그의 리더십은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 카리스마에 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워낙 영업에서 잔뼈가 굵어 ‘안 되면 되게 한다’는 도전정신도 투철하다. 지금도 대형 발주처를 직접 관리할 만큼 부지런하다. 기술개발에 대한 철학도 확고하다. ‘굳이 그런 투자가 필요하냐’는 일부의 시선을 비웃듯 서전기전은 경쟁사와 차별화된 제품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라이벌 업체들도 홍 회장의 기술개발 열정을 인정할 정도다. 대표적인 기술개발품인 ▲착탈식 어뎁터를 적용한 배전반 ▲허니컴형 압축공기 소호성능 부하개폐기 적용 배전반 ▲규모 8.3급 내진 배전반 등은 최고수준의 기술인증을 모두 획득하며 서전기전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홍 회장이 이끄는 서전기전은 지난 5월 초고압 시장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배전반 제조에 국한하지 않고 종합 중전기기 업체로 발돋움하기 위한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안병철 지엔씨에너지 대표는 맨손으로 회사를 국내 발전기 시장 ‘톱(Top) 3’로 키운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대기업 1등 기관사라는 자리를 과감히 박차고 나와 창업 기반을 마련한 그는 1989년 창업자금 500만원, 10평도 안 되는 작은 지하 사무실에서 지엔씨에너지의 전신인 한국기술써비스를 설립했다. 안 대표는 한국해양대 기관학과에서 처음 접했던 발전기를 사업 아이템으로 정하고, 유지보수사업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3개월 동안 준비한 입찰은 떨어졌고, 매출은 제로였다. 위기극복을 위해 안 대표는 비상용 발전기 유통으로 사업아이템을 바꿨다. 당시 비상용 발전기는 건설 붐과 함께 한창 뜨는 사업 중 하나였다. 그리고 안 대표는 첫 번째 납품을 성공시킨다. 후배 회사가 납기와 가격 문제로 포기하고 안 대표에게 넘긴 프로젝트를 완료한 것이다. 첫 납품에 고무된 안 대표는 이후 광고 등 홍보를 시작하고, 대기업들이 손대지 않는 요구조건이 까다로운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회사를 급성장시켰다. 그러나 1993년 회사를 법인으로 전환한 해에 위기가 닥쳤다. 지병으로 누워있던 어머니가 별세했고, 큰 아이는 교통사고로, 3살 난 둘째 아들은 질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회사도 어음 사기로 수 천만원의 손실을 입고 휘청거렸다. 안 대표는 이 위기를 긍정적 마인드로 이겨냈다. 이제는 회사의 사훈이 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자’라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뛰었다. 그 결과 회사는 위기를 수습했고,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랐다. 이처럼 긍정적인 마인드와 트렌드를 읽고 먼저 변화하는 선제적인 노력으로 지엔씨에너지는 연매출 700억원이 넘는, 고속발전기 업계 최초의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성장했다. ICT 시장 성장에 맞춰 데이터센터, 전산센터 시장에 진출하고, 바이오가스열병합발전 등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발굴한 결과다. 스마트그리드 솔루션 전문업체인 누리텔레콤의 조송만 대표는 항상 ‘원칙경영, 일벌레, 우직한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시스템 엔지니어 출신답게 꼼꼼한 일처리와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회사 내 정평이 나 있다. ‘무뚝뚝하고 조용한’ 사람이라는 수식어도 함께 따라다닌다. 언론 노출을 꺼려하는 기업인으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조 대표에게 ‘다가가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남들 앞에 나서길 꺼려하지만 최근에는 코스닥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무뚝뚝한 일벌레’로 굳어진 이미지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내 벤처붐이 일던 1990년대 초반, 30대의 열혈청년 조송만 대표는 잘나가던 대기업(대우통신)을 뛰쳐나와 1992년 누리텔레콤을 설립했다. 당시 외산 소프트웨어(SW) 일색이던 국내 전자통신 분야에서 국산화의 꿈을 품고 창업에 나섰다. 국산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수출하겠다는 조 대표의 꿈은 현실이 됐다. 누리텔레콤은 지금까지 전 세계 15개국에 사물인터넷 기반 AMI(지능형검침인프라) 토털 솔루션을 수출했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조 대표의 ‘벤처 드림’은 현재 시가총액 1400억원에 이르는 누리텔레콤이란 결실로 현실화됐다. 그러나 부침도 있었다. 누리텔레콤은 2010년 이후 3년간 내리 적자를 기록하다가 2013년 흑자로 돌아섰다. 조 대표는 ‘턴어라운드’ 과정을 겪으면서 다짐한 게 있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 수익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사업을 확장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겠다는 조 대표의 지론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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