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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1월 19일 월요일
[(녹)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사무엘은 주님의 말씀을 배척한 사울의 행동 때문에 주님께서 그를 왕위에서 끌어내리시리라고 예언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에게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고 하시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5,16-23
그 무렵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십시오. 간밤에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사무엘에게 응답하였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17 사무엘이 말하였다. “임금님은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실지 몰라도,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아니십니까?
주님께서 임금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18 주님께서는 임금님을 내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그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19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아말렉 임금 아각은 사로잡고 그 밖의 아말렉 사람들은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21 다만 군사들이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길갈에서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22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23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옛말에 ‘회두’라는 말이 있는데, ‘머리를 돌린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하여 머리를 돌려야 합니다. 부귀영화를 향해 있던 머리를 하느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머리를 돌린다는 말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뜻합니다. 내 모든 생각과 눈길이 오직 하느님만을 향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머리를 돌렸다면, 이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굳건한 터전 위에 서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새로운 삶, 회개의 삶을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새로운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때로 우리 스스로가 모범적인 신앙인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혹과 맞서 싸우면 이겨 내기가 어렵습니다. 내 힘으로 싸우기보다는 오히려 주님 편에 서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 편에 서는 것, 그것은 주님과 하나가 되려는 우리의 노력입니다.
주님을 향하여 머리를 돌리고 주님 말씀의 터전 위에 서는, 곧 주님과 일치하고 주님께 나를 온전히 맡기고자 애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마음으로 교만에서 벗어나 주님께 기도드리고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며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이철구 요셉 신부)
기쁨과 감사, 찬미와 사랑의 날로 하루하루를 장식합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수님 시대 단식과 관련해서 바리사이들은 참으로 놀랍고도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율법의 규정에 따르면 일 년에 단 한 번 속죄의 날에만 단식이 의무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름 엄청 열심한 사람들이었던 바리사이들은 일 년에 한번 속죄의 날 단식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매주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란 사람들은 더 자주 틈만 나면 단식을 했습니다.
이렇게 바리사이들은 단식에 있어서는 전문가였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식을 자주 하다 보니 점점 더 강도를 높여갔고 횟수를 늘려갔습니다. 건강하게 단식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개발했습니다.
사실 일주일에 두 번 단식, 이거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대단한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생활에서 단식에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단식을 많이 할수록 거룩한 사람,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간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니 바리사이들 입장에서는 한심할 지경이었습니다. 자신들은 거룩한 얼굴로 애써 단식하고 있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을 보니 단식과는 완전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잔치 집에 가면 어김없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이곳저곳 떠돌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잔칫집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굶주린 배를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잔치집에서 말씀도 선포하셨고 치유와 기적을 계속해나가셨습니다. 거룩함과는 거리가 먼 그들의 모습에 심기가 불편해진 바리사이들은 마침내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르 2,18)
예수님의 대답은 더욱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동시에 알쏭달쏭,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마르 2,19-20)
예수님께서는 단식하지 않는 이유를 혼인 잔치에 비유해서 설명하십니다. 지금 이 시기는 당신의 사명이 이루어지는 기쁨과 축제의 순간이기 때문에 단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축제에 초대받았다면 통상 어떻게 처신해야 바람직할까요? 잔치에 온 사람이 아무 말도 않고 울적하거나 뚱한 얼굴 하고 있다면 예의가 아닐 것입니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인상을 빡빡 쓰고 있다면 축제 주최측 사람들의 마음이 불편해질 것입니다.
축제에 왔다면 기쁜 행사이니 만큼 축제를 마음껏 즐겨야겠지요. 애써 마련한 음식을 행복한 얼굴로 맛봐야겠습니다. 축제에 온 사람들과 포도주 잔도 기울이며 담소도 나눠야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혼인잔치는 종말론적인 구원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식이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단식 시기의 적절성에 대해서 강조하십니다.
조만간 신랑을 빼앗길 날,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수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될 때는 단식해야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시게 되면, 너무나도 당연히 혼인 잔치나 축제는 재개(再開)될 것입니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우리네 인생입니다. 슬퍼하고 애통해하며 보내기에는 남아있는 우리의 날들이 너무 아깝습니다.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과 함께 남아있는 삶을 최대한 만끽해야겠습니다. 기쁨과 감사, 찬미와 사랑의 날로 하루하루를 장식해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는 잘 알려진 한 전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과 유다의 얼굴을 그릴 모델을 찾기 위해 다빈치가 오랫동안 고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을 찾으려 했고, 유다의 얼굴은 죄와 어둠이 드러난 인물을 찾기 위해 밀라노의 뒷골목과 죄수들까지 관찰했다는 전설입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 발견한 인물은, 과거에는 순수한 얼굴로 예수님의 모델이 될 뻔했지만, 세월과 삶의 선택 속에서 전혀 다른 얼굴이 되어 유다의 모습에 더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사람의 겉모습은 그 사람의 내면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유명 배우가 30년 전의 사건이 드러나서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저도 그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를 보았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는 왕의 호위무사 ‘무휼’로 나왔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에서는 조직 폭력배 ‘김판호’로 나왔습니다. 한 배역에서는 왕을 호위하는 충직한 무사로 나왔고, 다른 한 배역에서는 어둠의 세력인 조직 폭력배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저 역시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질 정도로 완벽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사울’ 왕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잘생긴 사울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렇게 사울은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따랐습니다. 사무엘은 그런 사울에게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지만 시기와 질투에 눈이 멀었습니다. 하느님께 선택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선택받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가 하면 동명이인인 또 다른 사울이 있습니다. 율법과 지식이 많았던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미워하였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잡아들이는 사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이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바오로가 되었습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나를 악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과 계명이 오래된 포도주였다면 십자가와 희생이 새 포도주입니다. 성전과 교계제도가 오래된 부대였다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죽음을 넘어 부활의 삶을 사는 것이 새 부대입니다. 근심과 걱정을 털어버리고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한 사도들의 삶이 새 포도주의 삶이었고, 그들에게 주어진 하느님 나라가 새 부대였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교자들의 삶이 새 포도주의 삶이었고, 그들에게 주어진 하느님 나라가 새 부대였습니다. 정결, 청빈, 순명은 하느님께 봉헌하는 최상의 포도주입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가장 안전한 새로운 부대입니다. 이것이 복음 삼덕이고, 이것이 향주 삼덕입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이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낸다.”
<새 나만 누릴 수 있는 새로움>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
늘 뿌리내리는 믿음
늘 첫 믿음
늘 마지막 믿음
그리하여
늘 새 믿음
새 나만 품을 수 있는
늘 샘솟는 희망
늘 첫 희망
늘 마지막 희망
그리하여
늘 새 희망
새 나만 돋울 수 있는
늘 타오르는 사랑
늘 첫 사랑
늘 마지막 사랑
그리하여
늘 새 사랑
새 나만 태울 수 있는
늘 설레는 만남
늘 첫 만남
늘 마지막 만남
그리하여
늘 새 만남
새 나만 만날 수 있는
늘 멀리가까이 벗
늘 첫 벗
늘 마지막 벗
그리하여
늘 새 벗
새 나만 벗할 수 있는
늘 여물어가는 삶
늘 첫 삶
늘 마지막 삶
그리하여
늘 새 삶
새 나만 이룰 수 있는
열린 세상
늘 첫 세상
늘 마지막 세상
그리하여
늘 새 세상
새 나만 열 수 있는
늘 함께하시는 하느님
늘 첫 하느님
늘 마지막 하느님
그리하여
늘 새 하느님
새 나만 함께할 수 있는
오늘의 성인
성 요셉 세바스티아노 펠차르(Joseph Sebastian Pelczar)
신분 : 주교, 설립자
활동지역 : 프셰미실(Przemysl)
활동연도 : 1842-1924년
같은이름 : 세바스띠아노, 세바스띠아누스, 세바스찬, 세바스챤, 세바스티아누스, 쎄바스띠아노, 쎄바스띠아누스,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펠짜르, 호세
성 요셉 세바스티아누스 펠차르(Josephus Sebastianus Pelczar, 또는 성 요셉 세바스티아노 펠차르)는 1842년 1월 17일 폴란드(Poland) 남서부 지방 코르취나(Korczyna)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향에서 전통적으로 신심 깊은 폴란드인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했다.
그의 비범한 능력을 인식한 부모는 그가 코르취나 지역 학교에서 2년의 초등교육을 마치자 학업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제슈프(Rzeszow) 지역의 마을로 보냈다. 여전히 어린 나이였지만 펠차르는 하느님을 섬기는데 헌신할 것을 결심했다.
1864년 7월 17일 사제품을 받은 펠차르 신부는 프셰미실 교구의 삼보르(Sambor) 본당으로 발령을 받아 1년 반 동안 부주임으로서 사목생활을 했다. 1866년 그는 로마(Roma)로 유학을 떠나 2년 동안 오늘날 그레고리안 대학교(Gregorian University)로 알려진 로마 학당(Collegium Romanum)과 라테란 대학교(Lateran University)로 불리는 성 아폴리나리스 협회(the Institute of St. Apollinaris)에서 수학했다.
로마에서의 유학으로 그는 지식의 외연을 넓혔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 안에 교회와 교회의 가시적인 으뜸인 로마 교황에 대한 깊고도 변치 않는 사랑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 그는 신학과 교회법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폴란드로 돌아와 두 군데 본당의 부주임으로 잠시 사목한 후 프셰미실 대신학교의 교수로 활동했다(1869-1877년). 이후 그는 크라쿠프(Krakow)에 있는 야기엘로니아(Jagiellonia) 대학교의 교수로 임명되어 22년간 봉직했다(1877-1899년).
교수이자 신학과의 학과장으로서 펠차르 신부는 현명한 학자이자 유능한 조직가, 젊은이들의 친구라는 명성을 얻어갔다.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대학 당국은 그에게 학장직을 맡겼다(1882-1883년). ‘폴란드 신부는 국민들에게 헌신한다.’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펠차르 신부의 노력은 학문적 영역에만 제한되지 않았다.
그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the St. Vincent de Paul Society)나 국민들의 교육을 위한 모임(the Society for the Education of the People) 등과 같은 사회적 자선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대학교 총장으로 16년간 재임하는 동안 그는 여러 도서관을 세우고, 수많은 무료 강연과 천여 권이 넘는 책을 출판 배포했으며, 하인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1891년 펠차르 신부는 성모의 형제회(the Fraternity of Our Lady)를 설립했다. 성모의 형제회는 종교적인 활동 외에도 가난한 이들과 고아들, 도제공과 하인들, 특별히 병들거나 실직한 이들을 돌보기 위한 기초를 놓았다. 펠차르 신부는 자신의 시대에 이런 사회 문제들이 존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1894년 크라쿠프에서 예수 성심의 사랑의 왕국을 전파할 목적으로 예수 성심의 시녀회(the Congregation of the Sister Servants of the Most Sacred Heart of Jesus)를 설립했다. 그는 예수 성심의 시녀회가 소녀들과 병자,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랑의 징표이자 도구가 되기를 원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899년 펠차르 신부는 프셰미실 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솔레키(L. Solecki) 주교가 선종한 후 프셰미실 교구의 교구장이 되었다. 교구장으로서 25년의 재임기간 중 그는 착한 목자로서 널리 존경을 받았으며,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헌신했다.
펠차르 주교는 병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교구의 종교적 · 사회적 필요를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다. 그는 교구 신자들을 격려하고 신앙심을 성장시키기 위해 정기적인 사목 방문을 하고 성직자들의 윤리적 · 지성적 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무엇보다 그는 스스로 열심한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었고, 이는 예수 성심과 동정 성모께 대한 헌신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성체성사의 열렬한 흠숭자로서 교구의 많은 이들이 성체조배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웠다.
그의 사목적 노력을 통해 많은 수의 성당과 경당이 증가했고, 또한 파괴되거나 폐쇄되었던 많은 성당들이 복구 또는 회복되었다. 그는 당시의 열악한 정치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세 차례의 교구 시노드(Synodus)를 개최하였다.
항상 교구 신자들의 요청에 성실히 응답한 그는 특별히 가장 가난한 이들을 돌보았다. 많은 어린이방, 무료 급식소, 노숙자 쉼터, 가난한 시골 소녀들을 위한 학교, 가난한 신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수업료 지원 등은 그가 이룬 업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과 어려운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이민을 갈 수밖에 없는 이들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회문제를 다룬 최초의 회칙인 교황 레오 13세(Leo XIII)의 “노동헌장”(Rerum novarum)에서 표현된 교회의 사회교리를 시행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풍부한 문학적 재능을 통해 수많은 신학 · 역사 · 교회법 서적과 사목서한, 강론집, 훈화집, 기도서와 교과서 등을 저술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많은 장애 요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펠차르 주교는 이 모든 일을 성실히 수행하다가 1924년 3월 28일 밤, 거룩한 삶의 향기를 풍기며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장례예식을 마친 후 프셰미실 주교좌성당에 모셔졌다.
그는 1991년 6월 2일 폴란드의 제슈프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2003년 5월 18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의 축일은 1월 19일에 기념하고 있다.
성 헨리코 (Henry)
활동년도 : +1156년
신분 : 주교, 순교자
지역 : 웁살라(Uppsala)
같은 이름 : 앙리, 하인리히, 헨리, 헨리꼬, 헨리꾸스, 헨리쿠스
로마(Roma)에 살던 영국 태생의 성 헨리쿠스(Henricus, 또는 헨리코)는 후에 교황 하드리아누스 4세(Hadrianus IV)가 된 교황대사 브릭스피어(Nicholas Breakspear) 추기경을 수행하여 1151년에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로 갔다가 다음 해에 스웨덴 웁살라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는 핀란드(Finland) 사람들이 웁살라를 침략했을 때, 스웨덴의 국왕 성 에리쿠스(Ericus, 5월 18일)와 함께 그들을 격퇴하였다. 그 후 성 헨리쿠스는 핀란드이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다가 1156년 1월 20일 핀란드인 개종자이자 거부였던 랄리(Lalli)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는 ‘스칸디나비아의 사도’로 불리며, 핀란드의 수호성인으로 1158년 교황 하드리아누스 4세(Hadrianus IV)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가누토 4세(Canute IV)
활동년도 : +1086년
신분 : 왕, 순교자
지역 : 덴마크(Denmark)
같은 이름 : 가누또, 가누투스, 카누또, 카누토, 카누투스, 카누트, 크누드, 크누토, 크누트
덴마크의 국왕 스웨닌 어스트릿슨(Sweyn Estrithson)의 아들이며, 당시 영국을 지배하던 크누드 왕의 조카인 성 카누투스(Canutus, 또는 카누토)는 1075년에 성공적으로 왕위를 계승하여 카누투스 4세로서 덴마크의 국왕이 되었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의 로버트 백작의 동생인 아델라(Adela)와 결혼함으로써 성직자와 선교사들을 적극 지원하였고 또 많은 성당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1085년에 영국 침공을 계획하고 준비하던 중, 귀족들에 대한 무거운 세금이 그의 동생 올라프(Olaf)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결국 전쟁을 그만두고 푸넨(Funen) 섬으로 도망가야만 했다. 그는 여기서 그의 부하들과 함께 성 알바누스(Albanus) 성당에서 반란자들에 의하여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를 순교자로 보았다. 그의 무덤에는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그의 경건한 신앙생활은 높이 평가받아 왔으므로 교황 파스칼 2세(Paschalis II)는 1101년 그에 대한 공경을 허락하였다. 그는 크누토(Knute)로도 불린다.
성 마리오와 가족 순교자들
성 마리오 (Marius)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70년
같은이름 : 마리우스
성 마르타 (Martha)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70년
같은이름 : 마르따 말따
성 아바쿰 (Abachum)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70년
같은이름 : 아바꿈
성 아우디팍스 (Audifax)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270년
같은이름 : 아우디빡스
페르샤의 귀족인 마리오와 그의 아내 마르타 그리고 2명의 아들인 아우디팍스와 아바쿰은 크리스챤으로 개종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풀고 살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로마를 순례하여 사도들의 무덤을 찾아보고 신앙을 더욱 돈독히 하였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크리스챤 박해를 명하므로써, 수많은 신자들이 화형이나 참수치명하고 또 화살에 맞아 숨지기도 하였는데, 이들 가족 역시 체포되었다.
마리오와 그의 두 아들은 참수당하였으나, 마르타는 물에 던져 죽였다.
이들은 모두 비아 고르넬리아에 묻혔다.
페르시아 귀족출신으로 아내 성 마르따와 아이들, 성 아바코, 성 아우디파체를 데리고 로마로 이주했다.
로마에 도착한 그들은 온가족이 함께 소중하고 거룩한 일을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박해받던 신자들을 돌보던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쌀라리아 길거리에 방치된 순교자들의 시신을 밤중에 몰래 가져다가 땅에 묻어주곤 했는데 어느날 그것이 발각이 되었다.
그리하여 온가족 4명이 모두 순교당했다.
성 불스타노 (Wulstan)
신분 : 주교 수도승
활동지역 : 우스터(Worcester)
활동연도 : 1008-1095년
같은이름 : 불스타누스 울프스탄 불스탄 울스탄
울프스탄(Wulfstan)으로도 불리는 성 불스타누스(Wulstanus, 또는 불스타노)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워릭셔(Warwickshire)의 롱 이칭턴(Long-Itchington)에서 태어나 이브즈햄(Evesham)과 피터버러(Peterborough) 수도원에서 공부한 후 우스터(Worcester) 교구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그곳의 수도원으로 들어갔으나 1062년에 우스터 교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지극히 단순하고 거룩했던 성 불스타누스는 웨스트민스터 시노드(Synod of Westminster)에서 주교 자질이 부족하다는 평을 들었지만 그의 성덕을 칭송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는 빌리암의 영국 침략 때에 주교좌를 지킨 유일한 주교로 높은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그는 노르만족(Norman)의 학정에 대하여 공적으로 반대하고 항의하였다.
그는 32년 동안이나 교구를 다스린 위대한 주교였다.
그는 1203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