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항가이 산맥
항가이(Hangai)산맥은 몽골 중부에 위치한 산맥으로서 몽골고원의 척추 노릇을 하고 있다.
수도 울란바트로 서쪽으로 약 400km 가량에 위치해 있으며,
최고봉은 옷곤 텡거(Otgontenger)로써 약 3,905m다.
일망무제. 一望無際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
항가이산맥 남쪽 초원.
끝없는 초원이 저 멀리 아스라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지평선 끝에는 고비사막이 연결되어있다.
항가이산맥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진영을 펼친 금성부.
선두에는 묵황야차 이중부 소왕이 갈색 말 위에서 묵황도를 등에 차고 있다.
왼쪽에는 탁발규 군사 軍師가 적의 동태를 살피고 있고, 박지형은 근위대 近衛隊를 지휘하고,
좌우에는 걸걸호루 소왕과 고 故 산동대군의 아들 김휘려 소왕이 대기하고 있다.
호도 선우는 김청인 대장군과 함께 중군을 지휘하고 있다.
지평선 너머에서 희미한 먼지가 일기 시작하더니, 점차 짙은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대군 大軍이다.
남 흉노의 기마병들이다.
잠시 후, 남 흉노의 오른편에서 또다시 뿌연 흙먼지가 일어난다.
조금 전보다 더 큰 무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대단한 군세 軍勢다
후한 군이다.
남 흉노와 후한 군이 연합군을 형성하여 항가이 산으로 집결한 것이다.
대군이 이동하니 그 위력에 날 짐승과 큰 짐승들은 멀리 달아나고, 작은 동물들은 땅속으로 숨어 버리고,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제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초목 草木들은
가느린 가지와 엷은 잎사귀를 ‘부르르’ 떨고 있다.
드디어 건곤일척 乾坤一擲의 대전이 벌어질 기세다.
남 흉노의 기병은 3만이며 후한 군의 병력도 4만, 도합 7만 명의 대군이다.
북 흉노는 3만 명이 채 되질 않는다.
어려운 싸움이 예상된다.
그래도 북 흉노 기병들의 사기는 드높다.
병력의 수는 적어도 자주적이며 자신의 영역을 지키겠다는 투지가 대단하다.
또, 천하무적의 묵황야차 이중부 소왕야가 건재하다.
흐르는 세월은 어쩌지 못하는지 묵황야차의 머리카락도 이제 반백 半白이다.
묵황야차의 아들 백부장 을지근오가 앳띤 청년의 모습으로 아버지 뒤에 대기하고 있다.
마상에 늠름하게 앉아 있는 을지근오를 바라보던 근위대장 박지형의 눈에는,
을지근오가 30여 년 전의 젊은 이중부의 모습으로 비쳐 보였다.
을지근오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임에도 백 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어린 나이에도 백 부장이 된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백 부장이 되는 조건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다.
부친이 백 부장을 지냈으면, 자식 중 한 명이 그 직책을 세습 世襲 받는다.
아니면, 조직이 팽창하여 백 부장 자리가 새로 생기거나, 백 부장이 후사 後嗣 없이 유고 有故로
인하여 공석 空席일 때, 십 부장 중에서 군에 공로가 높은 자를 백 부장으로 선발한다.
예외로 한가지가 더 있다.
자신이 직접 백 명의 수하들을 모으는 것이다.
적군이나 다른 부족이 백 명을 데리고 투항 投降해도 가능하다.
스스로 백 부장이 되는 방법이다.
그런데 말이 100명이지, 사람 모으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게다가 붉은 피가 들끓는, 나름대로 이래저래 바쁜 젊은이들을 한 곳에 소집 召集시킨다는 것은 더 더구나 어렵다.
그것도 단순한 잠깐의 잛은 소집이 아니라, 장기간 부족과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통제된 병영생활을 해야만 한다.
욕심 많은 을지근오는 근위대와 원화단 소속 친구들을 설득하였다.
사로국 출신이 주축인 원화단은 200여명, 친위대가 300명이었다.
원화단과 친위 대원의 자녀 중 을지근오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두 어살 어린 자녀들이 150명 정도 되었는데,
저희끼리 삼삼오오로 집단을 만들어 무술 수련을 하거나 어울려 다녔다.
을지근오는 이들을 2년 전에 1조 組에 50명씩, 크게 3개 조 단위로 묶어버렸다.
그리고 봉술과 창술을 가르치는 무술 사범 노릇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 중 무예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을 백 명 선발하여 정식 병사로 등록시키고,
자신이 백 부장 역할을 자임 自任하였다.
흉노측에서는 사상 최연소 백 부장이 탄생한 것이다.
올해 초에는 원화단 자녀, 백 명을 더 입대시켜 2백 명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젊은 부대를 ‘청랑단’ 靑狼團이라 호칭하였다.
젊은 이리, 푸른 늑대란 뜻이다.
물론, 아버지의 뛰어난 무예를 고스란히 전수 받은 무술 실력과 아버지 묵황 소왕의 후광 後光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어린 나이에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통솔, 관리하는 능력은 일반 성인들로서도
흉내 내기 어려운 일이다.
군사 탁발규가 묵황야차 소왕에게 현재 아군의 상황을 설명한다.
요하 홍산의 예족 출신 서누리와 말갈족 출신 걸걸호루는 자신과 연고가 있는 부여의 예족과 말갈족에게
지원을 요청하고자, 함께 대흥안령산맥으로 출발하였다.
걸걸호루 천부장도 이제 노장 老將 축에 드나, 아직은 근력이 왕성하다.
고구려가 부여를 통합시켜 버리자, 이에 불만을 가진 예. 맥족 중 일부 부족은 대흥안령산맥으로 숨어버렸다.
부친 고 故 걸걸추로 소왕의 소개로 몇 번 만나보았던, 자신의 말갈 부족을 찾아 지원받을 계획이다.
옆에는 요하의 거란족 출신 일황 하루빈도 함께 있었다.
우문청아의 제자인 청하문 출신 일황 하루빈은 황태중림남의 첫째로서 우문청아가
이중부의 진영으로 올 때부터 호위 역을 담당하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주변에 조그마한 연고 緣故라도 있으면 손을 내밀어 본다는 것이다.
병력이 상대적으로 적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적의 대군은 전장 터에 모두 집결했는데, 유일한 아군인 헨티 산맥의
우문 사로 천부장과의 연락이 제대로 되질 않는다.
헨티산맥의 우문가는 소왕 우문 무특이 연로 年老하여 대내외적인 모든 업무를
이중부의 친자인 우문사로가 외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총괄하고 있었다.
우문무특 소왕은 이태 전, 후 한의 두헌 竇憲 대장군에게 불의 不意의 일격 一擊을 당한 후로
급격히 노쇠 老衰화 되었다.
그래서 전령 傳令을 새로 보내기로 하였는바,
사안 事案이 시급 時急한 만큼 우문청아 천부장을 보내기로 결론을 보았다.
딸이 친정에 직접 간다면, 이 다급한 시국 時局에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런데, 이제 우문청아도 옛날의 아름다운 싱그러운 자태 姿態의 천강선 天降仙이 아니었다.
눈가에는 잔주름이 지고,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보다 더 많아 보인다.
이제는 천강선 天降仙을 천강파파 天降婆婆로 별호를 바꿔야 할 판이다.
당연히 호위무사가 필요하였다.
또 적의 연합군에 에워싸여 있는 아군의 진영으로 지원병을 이끌고 올 이곳 지리에 밝은 장수가 필요하였다.
을지근오 백 부장이 호위병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큰어머니의 친정에 몇 번 가본 적이 있어 길도 익숙하다.
큰어머니를 호위하겠다는데 중부도 듬직하다. 우문청아도 든든한 을지근오 백부장이 솔선하여
호위 담당을 하겠다니 즐겁게 반긴다.
근오는 어머니 을지 미앙에게 씩씩하게 인사하고, 수하 手下 중 몸이 날랜 열 명을 차출 差出하여,
큰어머니를 모시고 헨티산맥을 향해 출발하였다.
여어쁜 자태의 을지미앙의 미간에도 잔주름이 잡혀있고 머리에도 이제는 흰 머리카락이 몇 올씩 보인다.
위험한 길을 떠나는 을지근오를 배웅하는 두 눈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남쪽의 앞쪽 초원에는 적병들로 가득 차, 항가이산맥 북쪽을 통하여 동쪽의 헨티산맥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것이 부자 父子와 모자 母子간 또, 부부간의 마지막 인사치레 人事致禮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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