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조회하면 영화 <파묘>가 4월 7일 현재 1,126만명을 돌파했다고 나온다. 오컬트 미스터리 장르물로선 이례적인 관객수 동원이다. 특정 마니아를 형성하는 오컬트 영화로선 최초다. 지난 연말 개봉한 <서울의 봄>보다 하루 빠른 속도일 정도로 스토리도 탄탄하다. 묘를 두 번 파해친 파묘처럼 극중 스토리도 두 번 파해쳐지며 관객을 놀라게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날리는(?) 기분이 들었지만...영화 초반 최민식 배우의 나레이션에서 모든 것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원자로 순환한다는 대사가 가슴에 꽂혔다.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원자가 되어 흩어진다는 말이다. 동물도 식물도 책상도 유리도 모든 존재하는 것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지구의 원자는 우주 공간의 별이 폭발해 공간을 떠돌다가 지구라는 행성을 만들었다. 모든 것은 생멸한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영원히 원자형태로 존재한다는 점에선 변함이 없다. 오늘 만나게 될 나무들, 꽃들, 시냇물은 동일한 원자라는 점에서 머어어어어언 친근감을 느낀다.
오늘 걸을 구간은 지리산 둘레길 4구간(금계~동강) 13km의 일부로 8km 정도 된다. 벽송사에서 오르막을 지나 모전마을의 용유담을 거쳐 송문교에서 마무리 할 예정이다. 30분전에 도착해 차에서 토끼와 거북이의 토끼처럼 쉬면서 잠들었는데 10분 전임에도 주변에 차들이 없다. 톡방을 확인하니 서암정사 주차장이 아닌 벽송사 주차장이란다 ㅋㅋ
벽송사 주차장 한켠에 훌쩍 자란 전나무 아래 초록걸음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스무살 청춘 생일을 맞은 회원의 생일축가 소리로 푸른(碧) 소나무(松) 碧松寺 공기가 파란 미소로 퍼진다. 스무살 청춘을 세 번째 맞이해서 回春했는가보다.
전나무 사진아래 자연스레 모였다
전나무는 부러뜨리면 나오는 하얀 물질을 ‘젓’이라고 하는데 ‘젓나무’라고 하다가 ‘전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국어사전에는 ‘젓’대신 ‘젖’이라는 단어인데 ‘식물의 줄기나 잎에서 나오는 희고 끈끈한 진’이라는 뜻이 전나무의 유래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어릴 때는 음지에서 자라다가 커서는 쑥쑥 하늘까지 자라는 기골이 옹골찬 나무가 된다. 혹시 누군가 음지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전나무의 어린 단계이지 않을까 하며 희망을 품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벽송사는 칠선계곡을 끼고 있으며 자급자족이 가능한 사찰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3대 계곡(칠선계곡, 한라산 탐라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의 하나인 만큼 천혜의 자연을 갖추었다. 그런만큼 벽송사는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의 야전병원이었다. 한국군에 의해 벽송사는 불태워졌고 1960년에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벽송사 목장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벽송사 비극의 반대편엔 남녀의 호방한 러브스토리를 형성한 변강쇠와 옹녀가 살았다고 한다. 목장승중 여자인 금호장군은 1969년 산불로 머리는 타버렸고 코도 떨어져 나갔다. 남자인 호법대장군은 큰 코와 앙다문 입이 힘있게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 둘은 변강쇠와 옹녀처럼 보이기도 한다. 판소리 ‘가루지기’(변강쇠 타령)의 주무대가 벽송사였다고 하니 더욱 다가온다.
“천하의 오잡년 옹녀가 천하의 변강쇠와 내외 삼아 함양 땅에 살았다. 잡질 외에는 아무 재간 없는 강쇠란 놈 나무 해오라니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 뽑아 패어 불을 때고 따뜻한 방에서 옹녀와 놀아나는지라. 원통한 함양 장승신 서울 노량진 나루터의 우두머리 장승 찾아 나섰다. 성이 난 우두머리 장승 팔도에 통문 돌려 수만 장승 새남터에 모이게 하고 강쇠란 놈 응징 방법 강구한다. 결국 8백여 가지 병으로 강쇠에게 병 도배해 죽게 한다.…”
변강쇠는 지옥에 보내버렸으니 지금 이 세상에서 사라진 변강쇠를 꿈꾸는 남자들이 온갖 희귀한 재료를 구하는지도 모르겠다. 걷는 길에 만난 복분자(覆盆子)도 항아리(盆)를 뒤집는(覆)다는 뜻처럼 여성호르몬에 좋고, “남자에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광고로 유명세를 탄 산수유는 남자의 기력에 좋다고 하니 이래저래 봄기운이 돋아나는 걷기에 따~악 좋은 봄날이다.
벽송사하면 도인송과 미인송이 떠오르는 장소다. 변강쇠와 옹녀가 질펀한 사이였다면 도인송과 미인송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애틋한 정을 느끼는 그만큼의 간격이다. 벽송사의 초입은 변강쇠와 옹녀를 떠올리는 모습으로, 제일 뒤편은 도인송과 미인송의 애틋함으로 감싼 절묘한 장소처럼 보인다.
도인송 아래에서
미인송과 도인송, 그 만큼의 거리
벽송사 목장승 뒤편으로 난 지리산 둘레길을 오른다. 참꽃인 진달래와 철쭉의 차이점을 듣고, 참꽃을 입안에 넣어본다. 알싸한 봄향기가 입속에서 피어난다. 동백이 땅에 떨어져서도 피어난다면 진달래는 입안에서 제몸을 부수며 피어나는구나. 고개 중간에서 만난 노각나무에 멈춰선다. 나무껍질의 부분박리로 광택이 나며 아름다워 비단목이라고도 부른다. 껍질 모양이 사슴 뿔을 닮았다하여 녹각나무로 불리기도 했다. 노각나무처럼 매끈한 피부를 가진 나무로는 모과나무, 배롱나무가 있다고 한다. 걷는 길에 참나무가 많이 보였다.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나무중에 참나무가 숲의 최종 단계의 1차 승자라면, 서어나무가 2차 마지막 단계인 극상의 단계라고 한다. 음지를 지향했던 음수가 숲의 최종 지배자가 되고 만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의 원훈이 되살아난 이유가 갑자기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미끈한 몸매에 비단결 무늬와 사슴뿔 무늬를 가진 노각나무 피부
숨이 턱을 치고 올라 이마에 땀으로 분출될즈음 고갯마루에 올라 지리산문화예술학교 교가를 듣는다.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작곡해 비장하게 부르는 안치환의 목소리를 들으며, 지리산은 등산하는게 아니라 입산하여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상생해야 한다는 시인의 글을 떠올린다.
고갯마루 쉼터에서 미인송들이...
벚꽃이 터지면 웃음이 함께 터진다. 꽃눈이 화르륵 내리는 날에.
엄천강의 상류에 있는 용유담은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에 있다. 마천은 물(川)이 말(馬)처럼 격하게 뛰어오는 것처럼 급하게 흐르기에 馬川이라는 지명이 되었고, 휴천은 급하게 흐르던 물(川)이 휴식을 취하며 천천히(休) 흐르기에 休川이 되었다는 숲샘의 설명에 절로 고개가 주억거렸다. 그냥 지나쳐 버릴 변기에 ‘샘’이라는 개념을 부여해 모든 것이 예술이고, 모든 인생이 예술이라는 현대 개념예술의 시작을 알렸던 마르셀 뒤샹처럼 개념을 이해하면 머릿속에 작은 형광등이 켜진다.
용이 나왔다는 구멍
용이 사라졌다는 반대편
빨간 몽우리를 내민 모과꽃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란 말은 모과나무 열매가 맛이 없어 생으로 먹지 못해 나온말이다. 모과꽃의 의미는 “당신은 유혹하기 보다는 유혹받기를 마음 한 구석에 갈망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남자들 틈에 하나뿐인 여자를 이르는 홍일점(紅一點)이 나왔을까. 홍일점이란 말이 모과꽃에서 유래했다는 숲쌤의 설명이다. 한편 홍일점이란 북송의 정치가이자 당송 8대가인 왕안석이 ‘석류’라는 시에 “수많은 푸른 풀 속에 붉은 꽃 한 송이”에서 읊었던 한 송이 석류꽃이야말로 봄의 빛깔이 아닌가라는 말도 있다.
애벌레가 가지에서 나오듯 피어난 버드나무 꽃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에 등장하는 비목 나무 잎이 앙증맞게 옹그리고 있다.
바위에 봄을 터트리기 위한 넝쿨이 도화선처럼 뻗고 있다
선두조는 숲쌤의 나무와 꽃에 대한 설명을 병아리 어미닭 쫓듯 경청하지만, 2년차 이상된 기성품 후미조는 자연과 하나되고자 사진속에 제 몸들을 밀어넣고 있다. 라면을 끓이고 커피콩을 분쇄해 커피를 내려 마실 시간만큼 유유자적 거리를 유지하다, 결국은 선두조와 후미조는 갈라지고 만다. 선두조는 낙엽이 길을 채울만큼 풍성한 오솔길을 걷는다. 곁으로는 거칠게 물결에 맞서는 바위와 파도에서 배출되는 음이온을 만끽하며 걸은 봄마중 초록걸음 하루였다.
용유담에서 지리산은 고마 놔두기를 바라며
- 끝 -
첫댓글 최고예요~~~
우왕 완전 우등생이시네요.
근데 허클이 누구시더라. 😅
강병구입니다 ㅎㅎ
우와아~~~~!!!
문창반 디카시반에서는 내보이지 않던(그때두 후기를 쓰셨던가요? ㅎㅎ) 이멋진 문장들 초록걸음반 가니 보여주시고
와우!!!
멋지심
디카시를 해서 나아졌지요 😀
@허클(강병구)
이런 감동의 도가니탕이 물밀 듯~^^
허투루 수업해선 안되겠다는 현타가 뒷통수를 강타하네요. 모과꽃과 석류꽃이 헷갈려서ㅠㅠ 홍일점은 석류꽃에서 유래^^ 그리고 사람을 세 번 놀라게 하는 모과나무 열매, 너무 못 생겨서 향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너무 맛이 없어서...
ㅋㅋ
못생긴게 맛이 좋아 가 아니고
못생긴게 향이 좋아!
글쿤요...모과가 아니였네요 ㅋㅋㅋ...알찬 지식 잘 담아두겠습니다. 앞으로도 ㅎㅎ
후기가~한 편의 드라마를 본 것 처럼
물흐르듯~연결되는 까닭은 아마도 함께 공유한 시간과 순간의 기억들이기에 더욱 생생하게 다가 옵니다.
분명 숲샘이 설명할 때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알아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까묵까묵 하던터에~복습하는 느낌 ㅋ
생생~리얼 후기 감사합니다^^*
읔..그런가요..앞으로도 다함께 걸으면서 배워요 ^^~
우와~~^^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