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영업자가 본 고용시장에서의 가난요인
저는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끼리 하는 부업이긴 하지만요. 주업으로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현재 가진 자산은 없지만 젊은 나이 + 노동소득이 가져오는 기대소득을 포함하면 극빈층에 떨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부자는 못 되겠지만 애슐리는 가겠죠. 잘 하면 빕스도 가고.
편의점을 시작하고 나서 사람을 뽑아 쓰면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리고 때로는 가난이 그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많이 보지요. 일하면서 하는건 오로지 불법 토토 사이트라거나, 조금의 성실성도 없는 사람이라거나, 업무지시를 거의 기억하지 않는(못하는건지 않는건지) 사람이라거나, 허구한날 지각하고 결근하고 손님이랑 싸우고.. 지금의 상황에서 조금의 장래성도 기대하기 힘든 사람들. 심지어 돈을 빼돌리거나 소소한 절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써 보고, 그 사람들이 술과 담배값에 얼마 안되는 벌이를 (최저시금+주휴수당 주고 주 40시간 조금 넘게 일하면 그래도 150은 넘깁니다만) 탕진하는 것도 많이 봅니다. 모바일 게임에 월급 받아서 쏟아 부으면서 고시원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반대로 얘는 가난을 이겨내겠다, 혹은 앞으로 뭘 해도 열심히 하겠다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치만 제 경험상, 이런 일자리에 오는 사람들 중에 '몸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정말 소수입니다. 제 생각에 몸과 정신이 건강하다는건 질병이나 보험에 대한 비용부담이 거의 없고, 적당히 식단관리가 되지 않은 인스턴트 음식들과 저가의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를 해도 아직 몸이 탈이 안나고, 일 8~9시간의 노동을 건강한 마음 상태로 '성실히'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설령 그렇게 건강한 사람이 하루만, 일주일만, 한달만, 세달만, 반년, 일년은 유지될 지언정 기간이 지날수록 가장 건강하던 사람도 조금씩 '닳아'갑니다. 게다가, 몸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애시당초 최저임금 주변의 일자리에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10대후반 20대 초중반의 아르바이트 생들을 제외하고, 생업으로 이 일을 하려는 사람중엔 더더욱이요.
문제는 한가지 더 있습니다. 몸과 정신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어떤 사회적 / 개인적 요인에 의해 성장과정에 있어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교육사회와 가정의 무관심이나 폭력, 방치, 가난, 혹은 개인적 일탈 등 아주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사실 스스로 건강함을 자신하는 사람들조차 이런 성장과정에서 한두가지의 아주 예민하고 비정상적인 감정이나 트리거는 갖게 마련이죠. 그것은 폭력성일수도 있고 우울함일수도 있고 이상성욕일수도 있고 폭식이나 나태일수도 있고 과소비나 도박, 중독일수도 있습니다. 어느쪽이든 사람마다 대부분 약간의 비정상성은 갖고있다는 거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도 더욱 더 물질적 빚 만큼이나 몸과 정신이 좋은 상태이기 어렵습니다. 정확히는, 가난한 사람 대부분은 이미 몸과 정신 역시 어느정도는 가난에 의해 '낡아'진 상태라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유머게시판의 '몸 정신 말짱한데 왜 가난하냐'는 명제가 처음부터 틀린 이유겠죠. 지금처럼 빠른 변화와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역설적으로, 몸 정신이 말짱해도 경쟁에서 이기기 쉽지 않은데 멀쩡한 몸 정신마저 낡게 하는것이야 말로 가난의 무서움이니까요.
게다가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영세 사업자들이 그러하겠지만, 30대를 훌쩍 넘은 사람들을 잘 쓰지 않습니다. 30대 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이전의 이력을 '고작 편의점이라도' 한번쯤 확인하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에겐 고작 편의점이지만 업주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을 뽑고 싶으니까요. 사실 편의점 일이라는게 생각보다 복잡한 부분도 있습니다. 최신 전산시스템의 다양한 기능들을 활용해야하고, 주, 월마다 바뀌는 행사를 숙지해야하고, 상품의 위치와 유통기한을 살펴야하고, 다양한 결제수단을 고려해야해요. 이런것들은 교육수준이 낮거나 나이든 분들이 습득하기 좀 어려워 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러니 같은 가격이면 가장 리뷰가 좋고 제품설명과 보증이 확실한, 디자인이 예쁜 상품을 고르는 것처럼 편의점 직원 마저 어느정도의 기준을 갖고 사람을 뽑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0대 중반을 넘어가기 전에 가난에 의해 이 일 저 일 이것저것 하다가 이렇다 할 숙련도도, 경력도 얻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은 개인의 성실함 문제일수도있고 환경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이런 저임금 시장에서조차 굉장히 빠르게 도태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가게 되는 곳은 보험판매원, 경비용역, 주차용역, 미화용역, 건설용역, 주방보조, 방문판매원 등입니다. 늘 사람이 필요하고 항상 저임금일자리를 제공하는 곳들이죠. 문제는 이런 직업일수록 육체적 정신적 노화를 가속화시키고 건강을 빠르게 해친다는 점입니다. 숙련과 동시에 몸은 깎여나가기 시작하고, 임금 상승폭은 무척 낮습니다. 심지어 고용 불안정성은 높고, 미래는 아무리 아끼고 저축을 해도 깜깜합니다.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는 것, 그리고 내 몸이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버텨주는 것. 이러한 모순된 막연한 기대속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허나 30대 후반에서 40대를 넘어갔는데 변변찮은 기술도 이력도 없다면 이런 직종조차 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행여나 그동안 가난에 의해 몸이 상했다면, 정말로 '법이 보호하지 않는' 일자리조차 감지덕지하게 됩니다. 이마저도 모자라 잔고와 빚에 허덕이기 시작하면, 지엄한 법률은 종이쪼가리만도 못합니다. 그 때부터는 빈곤이 빈곤을 불러온다는 말과, 삶이 죽음보다 무겁다는 것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늘 불운과 불행으로만 가득하진 않을겁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로, 저런 저임금 노동조차도 운과 성실성이 바탕이되면 어느정도의 생활수준을 구사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요. 위에서 언급한 직업군에 들어서서 꾸준히 일을 하고, 어찌어찌 가난한 사람끼리라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등바등 열심히 살면 월세가 전세되기도 하고, 반지하가 1층으로, 2층으로 가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때 즈음, 그 동안 전혀 호사와 여유를 부리지 못한 사람들이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단 한 순간에 그동안 쌓아온 빈곤과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빈곤은 마치 얇은 문풍지로 바람을 막아왔던 것처럼 세차게 들이치기 시작합니다. 사람을 낡게 하지 않는 노동이 없다지만, 특히나 저임금 고위험일자리들은 더 빠른 속도로 사람을 마모시키고, 그렇게 빠르게 낡아가는 사람들을 빈곤은 마구 잡아먹습니다.
이런 사회의 모습을 보며 어떤 사람들은 그럼 공무원 시험이라도 죽어라 했어야지, 라거나. 경력을 쌓았어야지. 뭘 배웠어야지. 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최저임금 일자리를 도는 20대부터 60대 사이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무엇을 배우고, 익히고, 노력하는것 조차 개인의 재능과 사회적 요건 없이는 발휘하기 무척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명백한 희망과 노력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는가, 당장 가난과 노동에 의해 스스로의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는가, 날로 피곤해지고 힘들어지는 신체를 의지로 끌어당길 수 있는가. 이 과정 모두에서 그 개인의 열정, 의지, 노력등으로 이야기되는 정신적 요소들은 그가 가진 '배우고 익히는 데' 필요한 재능과 신체적 건강, 적절한 영양등이 받쳐주는지에 따라 결과가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같은 시간을 살고 비슷하게 나이를 먹어도 어떤이에게는 판타지 소설조차 잘 이해가 안가서 이세계 깽판물 아니면 안본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은 원어로 된 논문을 손쉽게 읽어냅니다. 그 극단적 차이에서 사람의 지능이나 노력으로 행하는 행동들이 그 사람의 성장과정과 환경속에서 대부분 만들어져 온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가난했던 사람중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무언가는 '타고 나' 있어야 합니다. 조금은 머리가 영민하다거나, 조금은 끈기가 있다거나, 조금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거나.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가난은 아주 빠르게 풍화시킬 수 있습니다. 게다가 풍화의 속도만큼이나 우리는 빠르게 나이를 먹지요. 이 모든 노력이 무용해지는 나이가 정말 금세 찾아옵니다.
제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에서 타인의 빈곤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절대적으로 빈곤하다는 것을 모른다기 보다, 우리가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시도하고 유지하는 당연한 것들이 남들에게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말 상상 이상으로 사람간에 많은 능력 차이를 보입니다. 행동능력, 지능, 판단력, 외모, 체력.. 가난하지 않다는 것은 이 부족한 것들을 부담없이 채워나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을 타고나더라도 채우긴 커녕 있는 것을 깎아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마저도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30대, 40대가 되어서는 정말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추락합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일을 시키고 싶어하지 않아한다면, 빈곤을 벗어날 시도조차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게 어떻게 해소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최저임금의 상승을 찬성하지만(돈주기 개빡셉니다 저는 시급으로 치면 5천원쯤 벌겁니다) 이 혜택을 많이 받는 사람들은 오히려 현재 정말로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다수인건 아닐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정말로 기초소득같은걸 주는게 절대빈곤에서 구제할 방법일수도 있지요. 노동시장에서는 빈곤에 오래 노출된 사람들이 더욱 더 빈곤해지기 딱 좋습니다. 그래서 '몸과 정신이 멀쩡한데' 가난한 사람이 있겠냐, 애슐리 못가는게 말이 되냐는 말은 전제부터 틀렸습니다. 가난한테 몸과 정신이 온전히 말짱하긴 어렵습니다. 긴 시간 그렇게 유지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애슐리를 한 번 가자는 마음가짐을 먹기 전에, 몸과 정신이 깎여나가거나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정말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삶을 '버티고'있습니다. 저 역시, 얇은 문풍지로 막아놓은 빈곤의 바람을 앞에두고 문풍지가 찢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필사적일 뿐입니다.
이 명절에도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가족들 얼굴을 못 보고,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명절에, 그 일자리조차 없어서 한 숨을 안주삼아 소주 한 잔에 의탁하는 사람들은 더 많습니다. 그 소주 한 병을 살 돈이 아까워서, 늙은 몸뚱이를 방바닥에 눕힌 채 홀로 추석이 아닌 9월 13일을 보내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한국의 빈부격차는 세계에서 무척 높은 수준이며, 한국의 청년실업률 역시 상당히 높고, 한국의 노인빈곤률 역시 세계 최고수준이며, 자살인구 역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란, 우리가 바라보는 것 보다 훨씬 적을지도 모릅니다.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노력할 수 있는 사람만이 우리 주변에서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이미 도태되어 가는 사람들은, 도시의 변두리로 숨고, 소리도, 냄새도 지워집니다. 그 지워져 가는 곳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https://pgr21.co.kr/freedom/82712
<선한 분노> 6.벌거벗은 임금님 - 돈이 없는 건 죄가 아니다.
가난의 실체는 사실, 벌레 나오는 좁고 오래된 집이나 낡은 옷, 반지하 월세방 같은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은 잠을 깨우는 카드값 독촉 전화 문자로부터 시작해서 이가 아플 때 치과에 못 가는 것, 뭐 하나 하려 해도 몇 천원을 따지고 계산하게 되는 것. 사랑하는 사람한테 못 해주는 죄책감, 지인에게 이번 한 번만 ‘구걸’해야 하는 비루함과, 자존감의 상실 그리고 두려움이다.
혹은 옳지 않고 쓸데 없는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 바보 같음, 그리고 거기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자유가 없을 때, 선택권이 없을 때 우린 정말 가난하다고 느낀다.
과연 얼마만큼 벌어야 그 비루함을 끝낼 수 있을까? 가난의 실체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없어서’ 생기는 현상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낮은 자존감과,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과 부자유 그 자체다.
이가 아플 때 치과에 갈 수 있는 돈은 따질 수 있을지언정 두려움에 지불해야 하는 값은 온전히 사람 자신에 달렸다. 심리적 노예 상태라면 돈의 많고 적음은 가난과 풍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돈을 버는 대신 스스로의 도덕을 포기해야 하는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중소기업 다니는 젊은 친구도 월세 내면 생활비가 빠듯하다. 빚을 끼고 산 아파트와 자동차를 갖고 있는, 그러나 아이 보육비에 수백만원이 들어가는 중산층 친구도, 월급 줄 돈을 걱정하고 있는 '사장님'도 모두 '가난'하다고 여긴다.
지금 가난하지 않은 자 누군가? 누구나 돈이 모자란다.
지금 시대 돈이 없는 건 죄가 아니다. 아무리 부지런히 잠 안자고 일해도 겨우겨우 빚도 메꿀 수 없는 신기한 경험을 할 것이고 아무리 높은 스펙을 쌓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도 적절한 직장에 취직할 수 없는 신기한 경험도 할 것이고 많이 버는 것은 같은데 그저 인간 노릇 좀 하고 꼭 필요한 생활비만 쓰는데 귀신처럼 돈이 사라져 버리는 경험을 할 것이다.
턱없이 높은 집 대출금과 월세를 내기 어려운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사람들은 우린 돈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쉽게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죄인이 되곤 한다. 하지만 돈이 없는 것은 당신의 죄가 아니다. 돈이 없고 빚이 많은데, 나만 그러면 내 문제다. 근데 내 주변도 다들 그렇다면 이건 사회의 문제다. 그럼 전전긍긍하거나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 싸워야 할 문제다.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927279380659050&id=847681171952205
https://www.princeton.edu/news/2013/08/29/
프린스턴 대학교에 있는 연구에 따르면 빈곤과 그 모든 관련 우려는 정신 에너지가 너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분야에 헌신할 수 있는 두뇌 능력이 적습니다. 결과적으로, 제한된 수단을 가진 사람들은 재정적 어려움에 의해 증폭되고 영속 될 수 있는 실수와 나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더 큽니다.
과학 저널에 발표된 이 연구는 지속적인 빈곤의 원인에 관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연구자들은 가난한 사람이 빈곤에서 벗어나게하는 바로 그 길에 집중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사람의 인지 기능은 청구서를 지불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것과 같이 돈이 거의없는 즉각적인 효과에 대처하기 위한 끊임없는 모든 소비 노력으로 감소합니다. 따라서 교육, 직업 훈련 및 시간 관리와 같은 복잡하고 간접적으로 관련된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정신 자원"이 적게 남아 있습니다.
일련의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긴급한 재정적 문제가 저소득층 개인이 공통인지 및 논리 테스트에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평균적으로 돈 문제에 몰두한 사람은 IQ의 13 포인트 하락하며 밤새 잠을 자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인지 기능의 저하를 나타 냈습니다.
가난하면 당연히 많은 체험기회도 줄고 스트레스가 늘어나니
뇌가 발전할 환경이 안 되는겁니다
매일 집에서 밥걱정 하는 사람하고
심심하면 해외돌아다니고 많은 것을 보고듣는 사람하고
당연히 뇌차이가 나오는거겠죠
나는 가난할수록 멍청해지더라
2013년에 소름 돋을 정도로 터부시되던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하버드, 프린스턴 등의 교수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가난할수록 멍청해진다’는 것이다. 하아. 이 연구 결과를 본 사람들은 즉각적인 반발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절박한 시기에 멍청한 결정을 내렸던 수많은 상황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스쳐 지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당장 한두 푼이 없어서, 내일의 서너 푼을 마다하는 것이 사람이다. 돈뿐 아니라 뭔가 간절하고 급박할 때 우리는 멍청한 행동을 하고 만다. 인간 드라마의 대부분은 이런 절박한 상황에 몰려서 쫓기듯 하는 행동들의 집합 아니겠는가. 남 얘기가 아니다. 이 연구에 의하면 사람은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절박한 순간에 IQ가 13 정도 하락한다고 한다. 하룻밤을 새우거나 술에 만취한 수준이다.
이 연구는 생각만큼 기분 나쁜 (가난한 자들을 두 번 죽이는) 연구는 아니다. 오히려 매우 진보적인 연구다. 멍청해서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가난하고 절박한 순간에는 의사결정에 투여할 정신적 자원이 부족해진다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을 밝혀냈다. 고로 가난이 개인적 결함에 의해서만 발생한다는 경멸적 사고에 주요한 반박이 된다. 한 집단이 어쩔 수 없이 가난에 빠진 경우 그로 인해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을 분명하게 짚은 것이다.
반면 멍청해지기 싫으면 절박한 상황을 의식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차디찬 팩트 폭행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히 있다. 모호한 주장이 아니라 팩트여서 차라리 다행이다. 팩트인 것을 아는 이상 우리는 이를 우회할 방법도 생각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서 재밌었던 점은,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비교한 것이 아니라, 똑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난한 시절과 덜 가난한 시절을 비교한 것이다. 예컨대 인도 농부들이 수확 직전의 ‘보릿고개’ 시절과 수확 직후의 ‘넉넉한 시절’에 개별적으로 IQ 검사를 진행했다. 특히 재정적으로 가난할 때 사람들은 눈앞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집중력을 투입한다. 연구에서는 ‘정신의 대역폭’을 모두 당면한 문제에 활용해 기타 여건에 대한 인지 능력과 논리 능력, 순발력 등이 확연하게 떨어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이 없다. ‘다른 것’ 중에는 내일의 먹거리, 다음 달의 먹거리, 내년의 먹거리를 마련할 ‘계획성’이 포함된다. 오늘 배가 고프면, 내 모든 자산과 신용을 다 써서라도 오늘을 생존하기 위해 집중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장기적 손해를 보기도 한다. 빚에 시달리는 사람 중에 특히 급전이 필요한 사람은 도무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점이 ‘멍청해진다’는 부분이다. 가난하면 더 이상 냉정한 자아를 유지하기 어렵다. IQ 13만큼 가난에 취하기 쉽다.
돈이 없는 사람 중에 돈이 아닌 다른 것을 내세워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이 많다. 돈은 없지만 ‘가오’가 있다거나, 양심이 있다거나, 지혜가 있다거나, 명예가 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돈이 없다고 더 개선되는 특성들은 아니다. 오히려 돈이 없으면 그것들도 유지하기 힘들다. 특히 지혜는 유지하기 힘들지 않겠는가. 여러분이 지혜를 추구한다면, 반드시 재정적 가난을 피해야 한다.
이 연구는 가난과 부에 대한 감정적 갈등과 주장을 매우 쉽게 정리해준다. 가난은 뇌에 나쁘다. ‘가난을 무시하지 마라’고 악을 쓸 필요도 없고, ‘가난은 그 자체로 죄’라고 경멸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가난에 몰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한번 가난에 몰리면 더욱 가난의 악순환에 빠질 개연성이 높다는 점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사회는 이를 도와야 하고 정부는 이를 직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개개인이 이 사실에 대해 깊은 자각을 하고 스스로를 구하고자 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주위 사람도 구하고자 하는 따듯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주위 사람 대다수가 가난해져서 더 멍청해지는 사회에 산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불행인가. 동정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부를 축적하는 행위를 더 양성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돈이 뭐 대단한가 외치지 마라. 돈을 벌고 아끼고 축적하는 것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매우 중요한 책임이자 권리임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자. 조금의 갈등도 남기지 말자.
https://ppss.kr/archives/189341
첫댓글 좋은글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