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의 기도
기도를 배워 감에 따라 우리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과 갈등을 일으킨다.
이 갈등의 시기가 어렵다고 해서 결코 그것을 무시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의 성장과 영적인 것들을 심화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이다. 분명히 그것이 열등한 단계임에는 틀림없다. 때가 되면 우리는 은혜로 충만하여 우리의 뜻을 주장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를 투쟁의 단계에서 해방의 단계로 옮기는 것이 바로 포기의 기도이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포기의 기도를 배울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의 요구하는 바를 포기하고 눈물로 기도하는 성육하신 아들을 보게 된다. 우리가 자신의 의지를 내세우는 데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우선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보다 낫고, 다음으로는 그 힘을 그런 좋은 목적을 위해 사용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탁월한 길을 보여 주신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을 부인하는 길이며, 단념과 포기의 길이다.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생각이 “내 뜻대로 마옵소서.”라는 생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심지어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싸우기까지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뜻과 상반되기 전까지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뜻과 상반되기 시작하면 선이 그어지고, 논란이 시작되고 자기기만이 우세해진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교훈은 나의 뜻, 나의 방법, 나의 선은 반드시 더 높은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등의 필요성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은 모두 갈등을 겪었다. 자기 아들 이삭을 포기할 때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이스라엘의 해방 자가 해야 할 임무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포기할 때 모세가 그러했으며, 밧세바에게 태어난 아들을 포기할 때 다윗이 그러했고, 앞날에 대한 제어 권을 포기할 때 마리아가 그러했으며, 자신을 쇠약하게 하는 육체의 가시로부터 놓임 받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의 뜻 때문에 자신의 뜻을 포기했던 바울이 그러했다. 갈등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포기의 기도가 숙명론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기도하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는 운명에 자신을 내맡기지 않는다. 캐더린 마샬은 “운명을 감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의 결핍이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항성의 흙구덩이 속에 가만히 눕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그것은 소망의 문이 닫혀 버리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우리는 미리 정해진 운명론적인 미래가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은 폐쇄된 우주가 아닌 열린 우주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표현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동역 자들’이다. 우리는 사건의 결과를 결정짓기 위해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 노력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대화이며, 그것은 진정한 갈등이다.
귀중한 뿌리의 절단
나의 삶 속에 있는 가장 귀중한 뿌리까지도 잘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끊임없이 울고 갈등한다. 그리고 이 생각도 해보고 저 생각도 해본다. 이렇게 재어 보고 또 저렇게 재어 본다. 그리고 다시 기도한다. 또다시 울고 또다시 갈등한다. 진정한 포기는 하나님의 방법은 옳고 선하다는 것에 대해 전심으로 그리고 온전하게 하나님과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소망 있는 포기
포기의 기도는 진심으로 손을 떼고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소망 있는 포기다. 운명론적인 단념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우리에게 격려가 된다. 보이는 상황이 인생의 양탄자 뒷면에 뒤엉켜 있는 실과 같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우리에게 늘 선을 행하신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결국 우리가 승리자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근거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 깊이 들어오라고 초청하시며, 더 높이 올라가라고 권유하신다. 의로운 삶과 변화시키는 힘, 새로운 기쁨과 더 깊은 친교에는 훈련이 있다.
때때로 우리가 포기하는 바로 그것이 다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있다.
값진 보화
포기한 것이 영원할 때도 있다. 그런 때는 하나님의 지혜를 믿어야 하며 그가 주시는 평안을 누리기 위해 은혜를 간구해야 한다. 사실 안정된 평안은 포기의 길을 걸어 본 사람들이 가장 자주 경험하는 은혜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런 과정을 밟게 하실까? 이를테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왜 무언가를 주시기 전에 먼저 포기하기를 원하시는가? 그것은 종종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좋은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훨씬 더 좋은 것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작은 꿈같은 것을 버리도록 도와주신다. 더욱 완전한 대답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성품을 변화시키고자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포기를 통해 값진 보화를 얻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이 얼마나 큰 은사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즐거이 선언하기를,“”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다. 포기가 있는 곳에 십자가의 죽음이 있고 그곳에는 자아에 대한 죽음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소망이 있는 포기도 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자신은 의지가 죽었다”는 말은 강한 말이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들 중의 유명한 사람들은 모두 다 그것을 경험했다.
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인지 아는가? 그것은 토저가 말한 “자기중심적인 생활의 가느다란 실타래”, 다시 말해서 그것은 ‘자기’라는 말이 붙은 죄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즉 자기 충족, 자기 동정, 자기 도취, 자기 비난, 자기 과장, 자기 징계, 자기기만, 자기 칭찬, 자기 경시, 자기 방종, 자기 증오 등 이와 유사한 수많은 것들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그것은 늘 우리 중심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영원한 짐으로부터 자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순수하게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채워 주고 기쁘고 자유롭게 다른 사람들을 돌보며, 내게 있는 것을 내주는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처럼 매일같이 자신의 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조금 씩 조금 씩 변화되어 간다.
조개 속의 모래 한 알이 사물을 변화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능력,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기뻐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기쁨, 선하신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소망,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은혜이다.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언제나 부활과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은 의지를 파괴시키는 분이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키는 분이시다. 그래서 시간과 경험이 쌓이게 되면 하나님이 뜻하시는 것을 우리도 자유로이 할 수 있도록 하신다. 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우리는 인생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릴 수 있게 되고 가장 훌륭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된다.
기도의 실제
초기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생활을 통해서 가능하다. 첫째로, 자기를 비우는 기도를 배운다. 빌립보서 2장을 가지고 묵상하며 기도하라. 거기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운 것을 ‘케노시스’라는 말로 표현하였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본래 하나님은 본체였으나 스스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을 말한다. 당신의 기도를 일상적인 세세한 일들에 적용시키지 위해 하나님의 영이 품어 주시기를 간구하라, 그리고 조용히 기다리고, 주의 깊게 들으며, 즉시 순종하라.
둘째로, 복종의 기도를 배우라. 공관복음서 중의 하나를 택하여 예수님과 함께 동산으로 들어가라. 깨어서 지켜보라, 슬퍼하시는 예수님의 영혼을 보라. 당신도 함께 슬픔을 나누어 보라. 다른 선택의 방도를 찾고 잔이 지나가기를 소원하며 그와 함께 갈등해 보라 예수님의 말을 이제 자신의 말로 직접 해보라.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초청해서 그 말을 당신의 삶과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직장 속에서 해석해 주시도록 요청하라.
셋째로, 단념의 기도를 배우라 “아버지 제게 어떤 일을 하시던지 저는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모든 일에 준비되어 있고 모든 일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제게 그리고 모든 피조물 가운데 아버지의 뜻만이 이루어지게 해주시옵소서. 오! 주님, 제가 원하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넷째로, 해방의 기도를 배우라, 먼저 당신의 자녀와 배우자와 친구들을 하나님의 품에 올려 드려라. 그 다음에는 당신의 미래와 소망과 꿈을 하나님의 사랑스런 돌보심 속에 맡겨 드려라.
마지막으로, 당신의 원수와 분노와 보복심까지도 하나님께 위탁하라.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길에 내맡기고 그 다음에 포기할 것들은 포기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으신 대로 모든 것을 돌봐 주실 것이다.
포기의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어도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고 가야 할 길이 너무도 멀다. 포기는 우리를 험한 지형으로 인도한다.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바위는 험준하다. 그렇듯 험한 산길을 올라가면 위험한 산등성이가 나온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때때로 그것은 마치 절벽에서 떨어져 죽음에 이르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품에 안겨 완전한 만족과 완전한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