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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5편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1. 시 15편은 어떤 시인가?
본 시는 특별한 상황 하에서 부르던 노래이다. 즉 성전 안에서 예전을 행하기 위해서 들어갈 때 부르는 노래 형식이다. 신 23:1-8을 보면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구분되어있다. 역대기하 23:19를 보면 성전 문에 부적격적에 대한 출입을 통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구약 시대에 정신 성전 안에서 예전을 행하기 전에 성전에 들어올 때 ‘성소입장의식(Entrance Liturgy)’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 시는 그 때 부르던 노래라 할 수 있다.
그 형식은 우선 예배자들이 제사장에게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다음으로 이 질문에 대해 제사장이 답변한다. 그리고 제사장이 예배자들을 축복했다. 바로 본 시 15편은 이 의식 때 불려지던 노래인 것이다.
시를 쓴 사람은 다윗이라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다윗과 본 시가 어떻게 연관되어있는 지 알려진 바가 없다. 그래서 혹자는 다윗 이름으로 불려진 시라고 보기도 한다.
2. 시 15편의 내용은 무엇인가?
1) 짜임새
시 15편은 성전 입장 의식과 관련해서 짜임새가 구성되어있다. 첫째 연은 1절로 예배자의 질문이다. 둘째 연은 2-5a 로 제사장의 대답이다. 여기서 2절은 보편적인 대답이고, 3-5a는 구체적인 대답이다. 그리고 셋째 연은 5b로 제사장의 축복이다.
2) 풀이
# 첫째 연/ 예배자의 질문(1)
* 여호와여/ 예배자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제사장에게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예배자는 제사장 앞에서 제사장을 부르지 않고, 여호와를 부른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사장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질문을 받을 수는 있지만,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결정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 주의 장막, 주의 성산/ 여기서 주의 장막과 주의 성산은 동일한 장소이다. 그러나 주의 장막이라는 지칭은 광야의 전통을 생각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저 광야 40년간 성막에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다. 그 때 바로 그곳을 주의 장막이라 불렀다. 이에 비해 주의 성산은 성전의 전통을 생각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한 후 시온산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다. 그 때 바로 그 시온산을 주의 성산이라 불렀다. 결국 이 두 곳은 동일한 장소이다. 바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 그곳을 의미한다.
* 머무를 자, 사는 자/ 머무를 자와 사는 자는 둘 다 예배 참여자를 말한다. 저들이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 묘사된 표현이다.(시 61:4)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들은 그 어떤 대적들로부터 그 어떤 추격자들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저들은 하나님의 품 안에 있기 때문이다.
* 누구오며, 누구오니이까/ 결국 이 두 질문은 하나이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배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을 통해서 예배 드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을 살피게 된다. 예배자가 정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 둘째 연/ 제사장의 답변(2-5a)
* 보편적인 대답(2)
여기에서 제사장은 성전에 들어와 예배드릴 자격으로 우선 세 가지 보편적 조건을 말한다.
첫째, 정직하게 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직하다’라고 번역한 말은 히브리어로 타밈(tamim)이다. 이 말은 ‘완전하다’라는 뜻이다. 창 6:9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했는데 이 때 완전하다는 말에 이 타밈이 쓰였다. 이 말은 또 동물 제사를 드릴 때 흠이 없는 온전한 동물을 드리라 명하셨는데 이 온전하다는 말도 이 타밈이다. 결국 정직하게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삶을 말한다. 노아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고자 할 때 흠이 없어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그런 삶을 말한다.
둘째, 공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의로운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히브리어로 짜디크(Zadik)이다. 이 짜디크는 철저하게 율법을 따르는 삶을 말한다. 결국 공의를 실천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셋째,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은 사람의 내면을 가리킨다. 외면이 행동이라면 마음은 그 깊은 속을 말한다. 그러니까 마음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은 외면 뿐 아니라 그 내면도 하나님의 말씀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으면서 외면만 말씀을 지키려는 사람은 성전에 들어올 수 없다는 뜻이다.(사 29:13) 다시 말하면 외식하는 자는 성전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 가지 행동 모두 일시적인 모습이 아니라 습관이 되어야 하고 인격에 녹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성소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 구체적인 대답(3-5a)
제사장은 보편적인 조건을 말하고 난 후 보다 구체적인 조건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 이웃에 대한 태도이다.(3) 성전에 들어올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세 가지 표현이 나온다.
-. 그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않는다./ 험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험담이란 남의 허물을 캐내어 그것을 사방에 퍼뜨리는 사람을 말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치부를 알게 될 때도 그 치부를 들추어 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부러 남의 치부를 조사해서 들추어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을 말한다.
-. 이웃을 비방하지 않는다./ 가까운 이웃의 잘못이나 불행을 조롱하거나 비웃지 않는 것을 말한다. 가까운 이웃에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 고소하게 생각하거나 잘됐다고 마음에 흡족히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더욱 그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중상모략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둘째, 타인에 대한 태도이다.(4)/ 성전에 들어올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 망령된 자를 멸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망령된 자는 예배 공동체에서 쫓겨난 자를 말한다.(사 54:6) 경건치 않는 사람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을 말한다. 이들을 멸시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과 거리를 둔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와 멀리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있는 자와 가까이 하는 삶을 사는 자는 예배 현장에 나오기 힘들다는 말씀이다.
-.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을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예배 현장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 서원을 지키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약속하고 서원했으면 상황이 변해도 끝까지 지키는 것을 말한다. 형편이 좋을 때 서원하고, 앞으로 잘 될 것이라 예견해서 하나님께 약속을 드리고 형편이 나빠지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셋째, 금전에 대한 태도이다.(5)/ 성전에 들어올 사람들은 금전에 대해서도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아니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는 동족인 히브리인에게는 고리대금을 금하나 이방인에게는 허용한다.(신 23:19-20) 이것은 정말 도와야 할 사람을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뜻이다. 적당한 금융거래로 피차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을 금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어러워 도와야 할 사람을 상대로 이익을 탐하는 것은 금한다.
-.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다./ 뇌물은 부정부패의 못자리이다. 하나님의 의가 훼손되고, 세상의 정의가 무너지게 된다.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 셋째 연/ 제사장의 축복(5b)
* 이런 일을 행하는 자/ 앞에서 제사장이 제시한 조건에 합한 자를 말한다. 이들은 의인이요 예배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예배 자리로 초대하시고 그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사람을 말한다.
*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반석이신 하나님이 붙잡아주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어려울 때 도와준다는 정도의 축복이 아니다. 병아리가 어미 닭의 품 안에 안기는 것처럼 반석이신 하나님 위에 섬으로써 그 어떤 요동침에도 흔들림 없이 살 수 있음을 말한다.
3. 시 15편은 어떻게 묵상할 수 있을까?
1) 예배자로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아벨의 제사가 있고 가인의 제사가 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물리치셨다. 그것은 예배의 형식 문제가 아니고 예배 드리는 사람의 문제이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가인은 그렇지 못했다. 우리가 예배 드리기 전에 성전 문 앞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과연 나는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
2) 삶의 예배를 생각하자.
롬 12:1-2 말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영적 예배니라 ...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진정한 예배는 영적 예배이다. 이 영적 예배는 우리 자신이 산 제물이 되는 예배이다. 나를 드리는 예배이다. 삶과 예배가 분리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내가 있는 그 자리가 예배처소임을 기억해야 한다. 삶이 예배임을 기억해야 한다.
3)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자.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람과의 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과의 관계가 잘못되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잘못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주의 장막에 들어갈 자
시편15편
1. 질문(1)
다윗은 본 시를 질문으로 시작한다.
두번의 잘문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두 질문은 결국 한가지라고 볼 수 있다. "주의 장막"이나 "성산"은 문자적으로는 시온의 장막이나, 시온의 언덕을 의미한다. 공식적인 경배와 제사를 드리는 장소를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신 영적상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거할 자, 유할 자는 "하나님의 보호"를 말한다.
하나님이 임재하여 보호함을 받을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에 합당한 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시민권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
2. 대답(2-5)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10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거룩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의 조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기에 합당한 자의 조건
적극적인 측면. -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성품
① 정직하게 행하며 - 흠없는, 완전한 - 하나님의 기준에서 인간이 도달해야할
도덕적인 수준을 말한다.
② 공의를 일삼으며 -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충실히 지키는 것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도덕적인 규범을 준수하는 것.
③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 그 마음의 생각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믿을 만하며 소극적인 측면.
④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며 - 남을 중상모략하지 않는다.
⑤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 남을 비방하지 않는다.
⑥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 이웃을 해하기 위해 거짓 증거하지 아니하며
⑦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 악한자들을 부러워하지 아니하고, 악한자들의 소행을 본받지 않음.
⑧ 서원한 것은 해로울 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 헛된 맹세를 하지 않는다.
한번 맺은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⑨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를 이용한 고리대금을 금한다. 터무니 없는 이자율을 금한다.
⑩ 뇌물을 받고 무고한 자를 해치 아니하며 -뇌물은 공의를 헤친다.
3. 그 자들에게 내린 복(5)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영원한 반석위에 거하므로 세상이 영원히 멸망해도 결코 요동치 아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