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팔백일곱 번째
호미의 추억
몇 해 전, 미국, 유럽, 호주 등에 호미와 낫 등 수제 명품 농기구를 수출하는 향토 뿌리 기업인 영주대장간이 경북 문화유산에 지정됐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후 ‘아마존’ 원예용품 TOP10에 K-농기구의 히트 상품 ‘영주대장간 호미’(Yongju Daejanggan ho-mi)가 올랐습니다. 주말농장을 하거나 화단에서 화초를 가꾸는 이들이 ‘K-호미’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기사였습니다. 군복무 시절, 군단장의 명령으로 부대 내 잔디밭 잡초를 제거하느라 처음 호미를 손에 잡았었습니다.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하는 잡초 제거 작업으로 잔디밭은 지옥과 같았습니다. 당시 군단장은 언젠가 통일이 되고 군부대 부지들이 학교와 공원이 된다며 그때를 위해 잔디밭을 잘 가꾸어 놓자고 했지만, 일개 병사에게는 기합받는 도구처럼 여겨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호미는 내게 달갑지 않은 기억만을 남겼었습니다. 그런데 이어령 교수는 “낫이나 호미의 아름다움은 밖으로 내밀어도 그 경고의 칼날이 자기를 향해 빛나고 있다는 점”이라며 호미 예찬론을 폈었습니다. 게다가 나물 종주국이라 할 우리네 삶에서 아무리 농기구가 발달했다고 해도 나물을 캘 때 포크레인이나 트랙터를 쓸 수는 없고, 그런 편리성과 효율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호미는 나물을 캐는 한국 여인의 손길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날이 있으나 낫처럼 날이 서서 살생하는 것이 아니고, 뭉툭하면서도 동시에 섬세한 호미 날로 생명을 기르는 생명화 시대의 도구라고 했습니다. 또 제초제로 잡초를 제거하고 거기서 나물을 얻을 수는 없다며 호미에서 ‘오래된 미래’의 21세기를 본다고 했습니다. 시키는 일만 하던 일개 병사에게는 별것 아닌 호미가 훌륭한 사람들 눈에는 미래를 약속하는 생명의 도구였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