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재산 쏟아부어 30년 동안 부소담악 절경 마주보는산책로 개발
곁에 있는 보물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2009년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중 경관부문에서 경북 예천의 화룡포와 함께 최우수 하천으로 뽑힌 군북면 추소리의 병풍바위 ‘부소담악’에 대해서는 우리는 진정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고리산(환산)으로부터 금강이 그리워서였는지 아니면 목이 말라 그랬는지 쭉 내려온, 한 마리의 용의 형상으로 700미터 가량 장쾌하게 늘어진 부소담악을 보고 있자면 감탄이 절로 나오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런 ‘부소담악’의 절경에 푹 빠져버려 20여년 전부터 부소담악 맞은 편 땅을 120평부터 시작해 ‘야금야금’ 만평까지 사들인 이재홍(62, 대전 가오동) 법무사는 앞으로의 인생을 부소담악에 걸었다.
그는 옥천이 아닌 대한민국 제1절경으로 부소담악을 꼽았다. 그가 건네준 명함에는 영동에 있는 이재홍 법무사의 명함이 아니라 ‘대한민국 제1절경 부소담악과 삼면 물돌이가 포근하게 감싸는 미르정원과 도피안길’ 대표 이재홍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뒷면에는 부소담악의 사진과 함께 ‘나룻배를 타고 병풍바위와 물위에 떠 있는 산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전망지’라고 적어 놓았다. 문구 하나하나 애정이 듬뿍 담기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표현이었다.
속된 말로 ‘홀렸고’, 법무사로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부소담악 맞은 편 부지에 다 쏟아 부었다. 부소담악을 먼 발치 아니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최적지에서 그만의 짝사랑을 시작한 셈이었다. 아내는 우스갯소리로 부소담악을 ‘웬수’라고 했고 집안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리 없었다. 하지만, 그 곳에 가면 마음이 편해졌다. 모든 근심과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고 고요와 평안이 스며들게 했다. 오죽하면 그가 ‘피안’이란 말을 썼을까? 불교 용어이기도 한 피안은 ‘건너편, 저쪽 언덕이라는 뜻과 이상의 세계, 이상의 경지, 깨달음의 세계, 생사의 바다를 건넌 진리의 언덕, 궁극의 경지, 무위의 언덕’이란 뜻이란다. 고뇌로 가득 찬 현세, 지상의 나라인 차안과 대비되는 말이다. 피안에 이르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는 것처럼, 강을 다 건너게 되면 자신이 타고 왔던 배나 뗏목은 버려야 하는 것처럼, 자신을 감싸고 있던 여러 가지 번뇌 망상을 말끔히 떨쳐내야 한다.
그는 부소담악을 암컷 ‘황룡’이라 칭했고 자신이 온 인생을 걸고 사들인 맞은 편 부지를 수컷 ‘청룡’과 같다고 했다. 황룡과 청룡이 애틋한 그리움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에 질투가 나 훼방을 놓으려고 고리산 줄기에서 탐욕스러운 ‘흑룡’ 한 마리가 내려오다 멈추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추소리 고리산과 금강 언저리에는 용 세 마리가 사는 셈이다.
그는 황룡인 부소담악을 더 잘 보기 위해서 구석구석 훑어보기 위해서 청룡을 단장하는데 인생 절반을 바쳤다. 그는 추소리 여기저기 펼침막을 붙여 놓았다. 펼침막마다 똑같은 문구가 아니다. 그 때 그 때 번뜩이게 생각나는 표현을 그대로 적어 놓았다.
세종대왕의 셋째아들, 이용 안평대군이 복숭아 밭을 노니는 환상적인 꿈을 꾸고 그 꿈을 잊지 못해 아끼던 안견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하며 1447년 완성한 것이 그 유명한 ‘몽유도원도’이다. 그는 그 몽유도원도에 부소담악을 빗대어 ‘안평이 꿈꾸고 안견이 그린 신비한 몽유도원도가 바로 부소담악’이라고 적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제대로 보지못한 부소담악 절경을 보려면 청룡을 타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부소담악의 진면목은 오직 강건너에서만 볼 수 있고 꽁꽁 숨어있어 그 풍경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그 명성과 아름다움이 과소 평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강 건너 미르정원에서 도피안길을 걷다보면 그 황홀한 풍경을 쉽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와 보신분만이 알고 다시 찾아오는 몽유도원의 세상, 배를 타고 오셔서 그 황홀한 풍경을 감상해보세요.’
그가 혼자만 알고 있었던 그 세상을 함께 공유하려고 같이 느끼려고 외치고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자.
■ 송시열도, 중봉 조헌 선생도 극찬했던 부소담악
부소담악은 본래 고리산의 하나의 산줄기였는데 1980년 대청호 담수로 물에 잠기면서 바로 인근 부소무니 마을은 수몰이 됐고 칼날같은 바위 능선만 마치 물에 뜬 바위 병풍처럼 드러나 ‘부소담악’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 옛날에도 금강의 물길이 그 산자락에 닿았고 물길이 적시는 바위병풍을 보고서 송시열은 ‘아름다운 소금강’이라고 노래했다. ‘소금강’이란 뜻은 ‘빼어난 산세가 금강산을 축소해놓은 것 같다’는 의미인데 그 절경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추소리 자체가 빼어난 절경이 있던 곳이라 ‘추소팔경’이 있다고 했는데 추소팔경 중에 문암독성(문바위에 서 있으면 들리는 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 인경낙조(추소리 인기울산에서 보이는 마을 정경과 석양의 아름다움), 환산귀하(환산의 해질 무렵 노을빛), 응봉조치(매봉에서 아침을 깨우는 장끼의 울음소리), 안양현종(추소리 절골에 있던 절 안양사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 문필야적(초동들이 봉우리에 올라 부는 피리소리), 용암어화(용바위 밑에서 밤고기 잡는 불빛) 로 이어지는 팔경 중에 마지막이 부소담악이었다.
물안개 피는 이른 아침의 부소담악은 구름위로 떠오른 고준영봉같이 신비감마저 도는 선경을 연출해 단양의 도담상봉보다 빼어나다고 누군가는 말하기도 했다.
출향인 남기화씨는 2018년 12월7일자 옥천신문에 ‘추소리 부소담악 여행기’를 기고했는데 그가 쓴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추소정에서부터 왼쪽으로는 추동을, 오른쪽으로는 부소무니 마을을 삼킨 대청호 퍼런 수면이 허리춤에 닿을 듯한데 능선길도 급격히 좁아지며 용의 비늘처럼 거친 칼바위에서는 물속으로 실족하지 않도록 움찔움찔 약 700미터 진행하니, 물이 많이 빠지면 넘어갈 수 있지만, 대게는 물이 차 있어 더 이상 동쪽 방향 ’배일‘로 갈 수 없는 바위와 바위 사이 잘록한 협곡입니다. 나그네 걸음 고만 멈추게 한 잘록한 협곡 너머 땅 끝점은 이평리와의 사이로 강폭이 좁아 물살은 빨랐지만, 물이 얕게 흘러 강물이 많을 때는 배를 타고 건넜고 가물었을 때는 바지 둥둥 걷어 올리고 그냥 건너다닌 배일여울로 이어진 수몰된 배일마을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이평리 정적 가득한 병풍 절벽은 금강산의 해금강 총석정 기암이 내륙 옥천으로 옮겨온 듯 신비하며, 의병장 중봉 조헌(1544~1592) 선생이 율원구곡 제 7곡 은병으로 그 아름다움을 기린 곳’이라고 극찬했다.
■ 부여가 고향인 이재홍 법무사, 이제는 옥천속으로
이재홍 법무사는 부여군 석성면이 고향이다. 석양초등학교와 석성중학교, 부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법원에 취업했다. 청주지방법원에 10여년 근무를하고 영동지원에 내려와 있다가 87년 옥천 등기소에서 근무한 것이 옥천과의 첫 인연이었다. 그 때 아는 지인이 추소리에 좋은 땅이 있다고 소개한 것을 산 인연이 부소담악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러니 30년도 넘은 셈이다. 42살에 법원을 그만두고 영동에서 법무사 사무실을 개소하면서도 부소담악이 계속 마음에 담겼다. 그래서 대전 가오동 집과 영동 법무사 사무실 출퇴근 지점 딱 중간에 있는 미르정원에 틈만 나면 들렸다. 전혀 관리가 안 된 그 미르정원을 나무를 솎아내고 벌목하면서 산책로를 만들었다. 산책로 주변에는 산수유, 홍매화, 청매화, 레드로빈, 동청목, 단풍, 구절초, 철쭉 등 다양한 꽃과 나무들을 즐비하게 심었다. 비가 오면 질퍽한 산책로에는 야자나무 껍질로 만든 발판을 깔아놓았고 청룡의 우뚝 선 비늘같은 참나무들은 살려놓았다. 해발 130미터의 야트막한 구릉 정도이지만, 천천히 산책하면서 바라보는 부소담악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미르 정원은 배를 타고 가야만 도달할 수 있다. 맘 내킨다고 불쑥불쑥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이재홍씨가 직접 운행하는 나룻배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다. 미르정원 밖에서는 부소담악 절경을 30%밖에 보지 못한다면, 미르정원에 도달해 작은 언덕에 도달하면 60% 정도를 볼 수 있고 얕은 구릉 정상에 올라가면 95%까지 훤히 볼 수 있다. 아직 다 정비되지 않았지만, 군데 군데 앉을 수 있는 벤치도 놓았다.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면 미르정원도 아름다운 정원이 될 듯 싶다. 육로로 갈 수 없는 만큼 정비하는데 고생도 많았다. 춘천 소양강에서 바지선을 기천만원 들여 특수트레일러로 가져와서 그 바지선을 이용해 장비를 실어 날랐다. 그는 미르정원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배도 사고 선박운전 자격증도 취득했다.
수변구역으로 지정되기 전에 숙박, 식당, 편의시설 허가도 다 내어놓아 관광지로 개발하는데에 법적 걸림돌은 없다고 말한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나드리정원’이라는 사업자를 내고 배를 태우고 운행하면서 7천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부소담악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스럽고 신비롭다는 거에요. 인공 구조물이 무덤 몇 기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또 길게 늘여져 있어 파노라마 사진이 아니고서는 사진에 담을수도 없죠. 오로지 눈으로만 만끽하고 호사하는 곳입니다. 풍경이 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나누고자 합니다. 막개발, 난개발을 막고자 천천히 수십년 동안 수공예를 하듯이 이 곳을 가꿔왔습니다.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하고자 했다면 벌써 수십억 투자를 받아 재빨리 진행을 했겠지요. 저는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고 천천히 조금씩 내 손으로 가꿔나가고 싶습니다. 춘천의 남이섬, 거제도의 외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옥천만의 특색있는 절제된 미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그는 지자체에서 기가막힌 절경을 방치하는 것이 아쉽다고도 말했다.
“등주봉가서 한반도 지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만, 부소담악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절경을 한참 보면서 은은하게 산책할 수 있고 배를 타야만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미 대한민국 아름다운 하천에서 경관부문 최우수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관심이 없는 듯해서 아쉽습니다. 추소리 유승규 선생 생가와 환평리 생약자원관과 산나물 축제 등을 잘 엮어서 하나의 관광코스로 만든다면 충분히 동선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것을 같이 고민했으면 합니다.”
법원, 법무사 일을 하면서 세파에 찌들었다고 했다. 사람들의 가장 최정점의 갈등과 파국을 바로 목전에서 지켜봐왔던 것이 그에게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부소담악은 ‘무릉도원’처럼 성큼 다가왔다. 부소담악을 30년 전부터 짝사랑해 온 그가 이제 모두 함께 공유하려 내어놓았다. 벚꽃 피는 봄에는 대청호에서 길어 올린 민물새우로 민물새우탕을 ‘끝내주게’ 잘하는 이평리 수정가든에서 끼니를 때우고, 봄나들이로 배를 타고 부소담악에 놀러가도 좋을 듯 싶다.
문의)미르정원 010-5459-8507
첫댓글 몇 년 만에 큰맘 먹고 현장 엘 가서
배를 타고 한 바퀴 돌고
미르 정원도 쭉 돌아보았다.
참말로 천상의 정원처럼 아름다운 병풍 바위
옥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 유산인 듯 하다.
인심 좋은 사장님이 승선비 면제하고
한 바퀴 빙 돌아보고 미르농원을 구경했다.
대기업이 잘 가꾸면 옥천 보물로 재 탄생 될 것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