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일제 피해자들의 처절한 투쟁, 이 책 한권에 담겼다.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회장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 출간
결혼 2년 만에 남편 일제에 빼앗겨 ... 92년부터 일본 상대로 7건 소송 제기
일본 법정에서 17차례 ‘기각’ 아픔 ... ‘특별법’제정‧대법원 승소 큰 족적 남겨
아들, 며느리 이어 손녀까지 한 집안 3대가 대일 투쟁 나선 숨은 사연도 소개
“최근 한일 간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이러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피해 체험이나 심정에서 벗어난 해결은 있을 수 없다. 피해자는 단지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이금주 회장의 인생을 알고, 그 심정을 이해하면, 가해자도 아닌 자가 대신 돈을 내는 식의 ‘해결방안’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 변호사
한일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각계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1990년대 초부터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7건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 평생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앞장서 온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장의 평전이 출간됐다.
이금주 회장은 결혼 2년 만에 일제에 의해 사랑하는 남편을 빼앗긴 아픔을 안고, 여생을 일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매진해 왔다.
남편은 결혼 2년 만인 1942년 11월 8개월 된 아들을 남겨둔 채 일본 해군 군무원으로 남태평양으로 끌려간 뒤, 1943년 11월 25일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미군의 대규모 상륙작전 전투 중 사망했다.
그러나 일제 피해자들은 독재정권하에서 사실상 일본을 상대로 한 권리행사 기회마저 오랫동안 봉쇄당했다. 이 회장은 예순아홉 나이에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을 맡은 뒤, 이후 30여 년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한길을 걸어왔다.
1990년대부터는 피해자들을 결집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본격적인 소송에 나섰다. 이 회장이 처음부터 일본 법정에서 승소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법정투쟁을 통해 전후 배상 문제를 외면한 일본 정부를 국제사회에 고발함으로써 일본의 반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 보다 더 근본적인 목적이었다. 몇 번을 넘어지더라도 싸움을 통해 이를 이슈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장의 돈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패소를 각오하고 나선 일종의 ‘투쟁’이었다.
1992년 원고 1,273명이 참여한 <광주천인 소송>은 이후 대일(對日) 투쟁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이 소송을 시작으로,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소송>,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등이 합세해 원고로 참여한 <관부재판 소송>, <B‧C급 포로감시원 소송>,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일본 외무성을 상대로 한 <일한회담 문서공개 소송> 등,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총 7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본 사법부에 제기해, 일제강제동원 문제를 한일 간 이슈로 끌어냈다.
법정 진술, 재판 방청, 각종 시위, 일본 지원단체와 연대 활동 등 노구를 이끌고 그동안 일본을 오간 것만 자그만 치 80여 차례, 그 사이 일본 법정에서 ‘기각’ 당한 것만모두 17차례에 이른다.
한없이 무모해 보이는 그 싸움은 마침내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벽에 하나씩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40여 년 동안 감춰져 있던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고, 강제동원특별법이 제정된 데 이어, 한국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한 것. 이 험난한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 회장이 들인 땀과 발자취를 빼놓고는 설명이 힘들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마침내 2018년 역사적인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로 귀결되었다. 열일곱 번의 좌절을 감수하면서도 다시 부딪혔던 그 집념과 도전이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일이다.
책에서는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금주 회장이 외롭게 부딪히며 맞서야 했던 고뇌와 투쟁이 담담히 풀어져 있다.
요즘처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개인 컴퓨터도 없는 시대에 이금주 회장은 버스나 택시를 타고 피해자들이 있는 곳곳을 찾아다니며, 하소연할 데 없는 피해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일일이 일기와 기록으로 남겼다.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피해사실을 메모한 자료는 나중에 일본 소송의 중요한 기초자료가 되었다.
재판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일본 변호사들이 그때그때 요청해 오는 서류를 작성해 보내느라 몇 날 며칠을 씨름해야 했다. 그러나 매번 지기만 하는 재판에 한 명 두 명 회원들은 떨어져 나갔고, 그럴 때마다 지친 회원들을 다시 다독여 다시 일으켜야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한테는 엄격했다. 없는 살림에 회비 한 푼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10원짜리 영수증까지 빠짐없이 모아 왔고, 서울 뒷골목 싸구려 여관방을 찾아다니느라 팔순 노인이 빗속에 1시간여 밤거리를 헤매기도 했다.
특히 이 책에는 자신은 물론 아들과 며느리까지, 나중에는 손녀까지 한 집안 3대가 팔을 걷어부치며 인권회복을 위해 일본과 맞서 모든 것을 쏟아냈던 숨은 사연들을 접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으며, 2021년 12월 끝내 일본의 사죄 한마디를 듣지 못한 채 102세를 일기로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발간사에서 “이 평전은 온갖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역사적 소명을 위해 온 생을 던진 이금주 한 개인의 기록임과 동시에, 광복 후에도 풍찬노숙해야 했던 일제 피해자들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라며,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구실로 또다시 일제 피해자들을 그 제물로 삼으려는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 이금주 평전이 시대를 성찰하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변호사 일을 시작한 첫 해에 이금주 회장을 처음 만나 이후 일본 소송을 주도해 온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 변호사는 “피해자는 단지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며 “이금주 회장의 인생을 알고, 그 심정을 이해하면, 가해자도 아닌 자가 대신 돈을 내는 식의 ‘해결방안’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평전 발간의 남다른 의미를 덧붙였다.
송경자 | 지은이
전남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언론사와 대학 홍보팀에서 일했다. 지은 책으로 『이제야 세상이 바로 보이네』(공저), 『전남여성 100년』(공저), 『스물두 살 박기순』 등이 있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 송경자 지음.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엮음.
344쪽 | 28,000원 | 도서출판 선인
◯문의: 062-365-0815 / 010-8613-3041(이국언)
2023년 3월 23일
-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목차]
발간사
축사
프롤로그
1장 | 사랑하는 내 남편을 돌려주시오!
짧은 신혼시절, 영원한 이별
제2의 고향 광주
‘삶의 등대’ 성 프란치스코
2장 | 대일 투쟁의 시작 -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출범
69세에 내디딘 대일투쟁의 첫걸음
타라와 섬에서 쏟은 눈물
3장 | 일본의 시간 - 조국이 우리를 먼저 버렸다
‘진사와 배상 청구재판 추진회’ 송두회와의 만남
기나긴 싸움의 시작 ‘광주천인소송’
‘부분 승소’ 끌어낸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소송
광주유족회 ‘은인’ 송두회 타계
일본군‘위안부’ 최초의 승소 ‘관부재판’
‘관부재판지원회’ 하나후사 부부
BC급 전범 2차 소송
‘한일 연대의 상징’ 나고야 미쓰비시 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연극 ‘봉선화’에 얽힌 사연
기각, 또 기각
최고재판소 상고와 ‘금요행동’
근로정신대 동원 주범 후지코시 2차 소송
최고재판소 ‘화해’ 성과의 과제
‘대일 과거청산소송’의 마감
4장 | 한국의 시간 - 차라리 국적을 포기하겠소
‘독립군’ 최봉태 변호사와 맞잡은 손
파란만장한 드라마 ‘강제동원특별법’ 제정
또 하나의 변곡점, 피눈물로 쓴 유서
‘판도라의 상자’ 한일회담 문서공개 백인소송
진상규명위원회 출범과 지원법 둘러싼 갈등
강제동원 피해자 목숨 값 ‘공탁금’
한일회담 문서공개 일본 소송
재일교포 이양수가 거둔 ‘뜻밖의 수확’ 독도
‘선조들의 핏값’ 포스코 상대 청구권자금 환수 소송
5장 | 광주의 시간 - 한일연대의 장
가시밭길 광주유족회
독립인가, 통합인가?
이국언과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결성
통일운동 여정의 인연들
6장 | 내 한 몸 누일 곳 없으니
광주유족회 간판 내리다
이금주를 기억하는 사람들
부록
■ 이금주 회장이 걸어온 길
■ 주요 경력
■ 기타 자료
[자료] 국회 법사위 위원들에게 드리는 유서(2003년 12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