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1:11, 가인과 같이 예배하지 않습니다. 2020.06.21.주일설교문
역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서 말합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 속에서 망했던 사람들의 전철을 밟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그런 망한 전철을 받지 않겠다는 각오이며, 반대로 흥한 사람들의 행위를 본받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래서 다시 옛적같은 부흥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흥망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어떤 믿음의 사람들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흥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믿음의 사람들은 그 믿음을 버리거나 포기함으로써 하나님과 지도자들을 원망하다가 망했습니다. 축복의 땅, 가나안 땅에서 추방당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이방인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회 안에 거짓교사들이 가만히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가 이 서신을 교회에 보냈을 때에도, 교회 안에서는 그런 거짓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거짓 교사들은 어떤 사람들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까? 그들은 망했던 사람들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심판이 내려지기로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4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여러분 중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입니까? 그러나 유다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과 교회의 지도자들을 비방하는 자들이, 그들이 전한 진리의 복음을 업신여기는 자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라고 말해 버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곧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0:11~14]
롬 10~6~9,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신명기 30:11~14],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명기의 이 명령, 그의 명령이,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로, 말씀으로 해석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거짓것으로 마꾸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아니라, 그를 부인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이라 불리어지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 사랑을 받은 자들은 가인의 길로 가지 않습니다.
11절,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첫째, 가인의 길로 갔습니다. 성경 역사에 있어서 가인은 그의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최초의 살인자입니다. 그의 동생에 대한 미움이 살인이 되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자란 후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 예물을 받지 않으시고, 그 동생 아벨과 아벨의 예물만 받으셨습니다.
창 4:4~5,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그래서 가인이 화가 났습니다. 그것이 얼굴에 다 들어났습니다. 곧 하나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가인은 자기의 죄를 돌아보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께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이젠 그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벨만 사라지면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예물을 받으실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오늘날 얼마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의 종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 죄는 마귀의 일입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맙니다(요 8:34, 44). 가인의 원망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원망과 분노만으로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여러분은 아벨의 길로 가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둘째, 사랑을 받은 자들은 거짓교사들의 길로 가지 않습니다.
11절,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랍비들은 가인, 발람, 고라, 이 세 사람을 다가오는 세상에서 아무런 분깃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심판받을 사람들의 대표로 여겼습니다. 특히 랍비들은 가인이 하나님의 심판의 공의를 부정한 첫 번째 이단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거짓 교사들은 가인의 길로 간 이단으로 교회에서 배격해야 할 집단입니다.
이런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 유다는 그들이 하나님의 성찬에 암초덩어리이며, 심지어 이미 죽고 또 죽어서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자기 수치의 물거품같고, 그들에게 영원한 캄캄한 흑암, 곧 지옥의 흑암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12~13절, “그들은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의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은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나무요, 13.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여러분, 가인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살인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반감을 가져 이단의 길로 갔습니다. 영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신자로써 예수님께 직접 받는 진리의 말씀, 믿음의 말씀을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합니다.
3절하반절,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셋째, 예배에 드려지는 예물 속에 여러분의 생명이 있습니다.
출 23: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한번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헌금하는가를 보시기 위해서 헌금함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서 그 헌금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막 12: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오늘 여러분이 헌금할 때에도 예수님이 보고 계십니다. 먼저 여러 명의 부자들이 헌금함에 많은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 후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의 동전을 드렸습니다. 두 렙돈은 노동자들의 하루 임금이었던 로마 데나리온의 1/64 가치 밖에 없었습니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 10만원일 때, 1,562원]
막 12:42~44,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여러분, 이 과부는 그의 생활비 전부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다가 말씀하습니다. 이 여인이 가장 많은 헌금을 드렸다. 이 여인은 자신의 생명을 드렸다. 가인은 자신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아벨 자신과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우리 자신, 우리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