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코너리에게 스코틀랜드 출신이란 점은 배우로서 그에게 매우 중요한 요인인 것 같습니다. 영국인들에게 "당신은 영국인입니까?"라는 의미에서 잉글리쉬맨이냐고 물었을 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보단 자신이 스코틀랜드나 웨일즈 지방 출신임을 강조하는 영국인 이야기는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영국인들에겐 자신의 출신 계급이 가치관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죠. 배우 게리 올드만이 노동계급 출신이란 자신의 출신 계급을 끊임없이 인식하듯 숀 코너리 역시 자신의 출신 지역과 계급을 잊지 않은 듯이 보입니다.
그는 16세 때 해군에 입대해 오른팔에 '스코틀랜드는 영원히'라고 문신을 새길 만큼 열렬한 스코틀랜드인이었습니다. 숀 코너리는 1955년부터 시작된 그의 연기 인생 내내 자신만의 독특한 스코틀랜드 억양을 버리지 않았고, 그 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든 배우였습니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가난한 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를 둔 덕분에 '토마스 숀 코너리'는 일찌감치 생계의 곤란함을 몸소 깨우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에게 생활이란 다른 또래의 아이들에게 허용된 수많은 즐거움으로부터 격리된 것이었고, 오히려 가족의 생계를 떠맡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숀 코너리의 어린 시절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대영제국의 몰락과 불행히도 겹칩니다. 그런 불운한 시기에도 어린 코너리는 스포츠에 열의를 보였습니다. 그는 장차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될 꿈을 품었습니다. 그러나 가난은 그에게 일찌감치 학교를 중퇴하고 해군에 입대하도록 만들었고, 그나마 군대 생활도 위궤양 때문에 제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의 하층민으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두 노동자, 인명구조원, 미술학교의 남자모델 등 그때그때 돈벌이가 될 만한 일들을 닥치는 대로 했고, 그 와중에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가진 것이라곤 자신의 몸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기회가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였습니다. 1953년 숀 코너리는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해 3위에 입상했고, 그의 멋진 외모를 눈여겨 본 연예계에서 손길을 뻗어 왔습니다. 그러나 성공은 아직도 그에겐 먼 훗날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간혹 에딘버러에서 뮤지컬 공연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수업을 쌓았고, 1955년 영화 <Let's Make Up>에 출연하면서 영화에 정식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007 위기일발>
스파이 영화의 대명사 격인 007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안 플레밍은 전쟁 기간 중 실제 첩보 업무에 종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 정보부에서 중령으로 일했고, 종전 후에는 <선데이 타임스>지의 편집부 기자로 근무하며 스파이 소설을 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제임스 본드는 머리가 비상하고, 만능 스포츠맨에 여자, 도박 그리고 스포츠카를 사랑하는 스파이지만 이안 플레밍이 창조해낸 제임스 본드는 원작자의 경험이 녹아 유능하긴 하지만 유머러스한 면모는 결여된 좀 더 사실적인 스파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제임스 본드 배역이 숀 코너리로 결정되자 원작자인 플레밍은 "내가 생각하는 007의 이미지가 전혀 아니다"라며 반대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62년 007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닥터 노>를 제작하려 할 때 제임스 본드 역의 물망에 올랐던 남자 배우들의 이름만 들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캐리 그란트,렉스 해리슨,트레버 하워드 등 쟁쟁한 인물들이 제임스 본드역을 노렸고, 이안 플레밍 자신은 로저 무어(그는 기어코 나중에 제임스 본드를 맡게 됩니다)를 캐스팅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숀 코너리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게 된 것은 <데일리 익스프레스>지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제임스 본드 역에 가장 걸맞는 배우를 공모하는 이벤트에 뽑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숀 코너리의 등용에 반대했던 이안 플레밍조차 영화 시사회가 끝난 뒤 "나는 큰 실수를 할뻔 했다. 그야말로 바로 본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세계 최다, 최장수 영화 시리즈물인 <007> 시리즈에는 숀 코너리를 제외하고도 조지 레젠비,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 최근에는 다니엘 크레이그 등이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었지만 제임스 본드를 연상할 때 사람들은 아직도 숀 코너리를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007 시리즈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동서냉전이라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섹스 어필하는 본드걸, 비밀무기와 스펙타클 등 다양한 볼거리, 콜렉터라는 매력적인 범죄 집단의 창조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숀 코너리의 매력을 빠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출연한 007시리즈는 <닥터 노>를 비롯해 <007 위기일발>,<007 골드 핑거>,<007 선더볼 작전>,<007 두번 산다>,<007 다이아먼드는 영원히> 로 총 6번의 시리즈물에 출연하며 '제임스 본드 = 숀 코너리'의 등식을 만들었습니다(<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은 정식 시리즈가 아닙니다).
그는 이런 등식(제임스 본드=숀 코너리)이 성립되는 것이 배우로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스스로도 본드 역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007 두 번 산다>를 끝으로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골프를 즐기고 싶다며 본드 역을 은퇴했습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를 쉬게 하지 않았습니다.
<007 이후의 영화계 활동>
앞서 숀 코너리가 제임스 본드로 자신의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을 염려하여 본드역을 은퇴했다는 이야기를 했듯이 그는 <007 두 번 산다> 이후로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장미의 이름>에서는 수도사로, <언터처블>에서는 베테랑 경찰로, 그리고 <붉은 10월>에서는 잠수함의 함장으로 출연하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 <언터쳐블>에서
특히 <언터처블>에서의 호연으로 1987년 아카데비와 골든 글로브에서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장미의 이름>을 통해서는 BAFTA 시상식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 <장미의 이름>에서
맡은 배역에 완전히 몰입하여 연기를 펼치는 여타의 성격파 배우들과는 달리 숀 코너리는 스코틀랜드의 억양, 예의바르고 여유로운 영국 신사로서의 풍모, 나이가 들면서 더욱 빛을 발하는 중후함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맡은 배역에 그대로 반영하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그 때문에 숀 코너리가 연기하는 모든 인물은, 그 인물이 영국 스파이든 스페인 전사이든 또는 전설 속의 왕이든지 언제나 똑같다는 비평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는 그러한 면을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고착화 시켰고, 그러한 이미지 덕분에 이후 <떠오르는 태양>,<카멜롯의 전설 >,<더 록>,<어벤저>,<엔트랩먼트>,<젠틀맨리그>등의 영화에 활발히 출연하고 있습니다.
* <붉은 10월>에서
그는 또한 <파인딩 포레스터>,<엔트랩먼트>,<라이징 선>,<더 록> 등의 제작자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숀 코너리는 이제 환갑은 물론, 어느새 70세도 훌쩍 넘는 노익장을 말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하고 머리가 반쯤 벗겨진 노년이 되어서도 그는 여전히 섹시하고 중후하고 젠틀한 인물들을 연기하며, 영원한 섹시가이로 팬들의 가슴 속에 기억되고 있죠.
* <장미의 이름>에서
그가 살아온 인생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어도 스물을 갓 넘긴 나이부터 시작한 연기 인생 동안 극중에선 숱한 본드걸들과 염문을 뿌렸지만 실생활에선 이렇다 할 스캔들 한 번 없이 성실하게 살아온 한 연기자에게 존경의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1990년 BAFTA의 평생공로상, 1995년 골든 글로브의 세실 B. 드빌상, 1998년 BAFTA의 The Academy Fellowship등 각종 권위있는 영화제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았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기까지 하였습니다.
[ 대표작 소개, <파인딩 포레스터> ]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는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기 힘든 어린 청년 자말(롭 브라운 분)과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스스로 닫은 노작가 포레스터(숀 코너리 분)가 멘토링 과정을 통해 서로의 삶을 변화시켜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자말은 가난한 동네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가족들과 뿔뿔이 헤어져 살고 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형이 주변 환경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농구와 글쓰기 천재라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체득하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받기도 하며 벽으로 가로막힌 현실 속에 있습니다.
한편 포레스터는 단 한 편의 소설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지만 성공 뒤에 온 명성이 무색하게 가족 모두를 잃어버리고 홀로 남은 괴팍한 노작가입니다. 그는 어마어마한 인세로 살아가지만 세상에 대한 관심과 문을 닫은 채 삶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친구들과의 짓궂은 장난에서 시작한 자말과 포레스트의 만남은 두 사람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 포레스터가 마을의 괴팍한 노인이라는 것을 안 자말은 경악하고 자신의 집에 침범한 애송이가 글쓰기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포레스터는 세상에 대해 스스로 문을 닫은 이후 처음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며 자말의 재능을 키워주고 싶어 합니다.
자말은 포레스터에서 정연하게 글 쓰는 법과 깊이 사고하는 법을 배우고 포레스터는 자말이 이끄는 대로 집 밖으로 나가 세상과 조우하게 되며 만남을 거듭하면서 두 사람은 나이와 빈부 차이, 인종을 넘어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대개 노스승과 젊은 제자에 대한 영화를 보면 젊은 청년을 주인공으로 하여 청년의 성공담과 그 뒤에 숨겨진 스승의 노력을 주로 다루고는 하는데요.
이 영화의 제목인 <파인딩 포레스터>의 뜻인 '포레스터를 찾아서'에서 볼 수 있듯 청년 자말이 스스로 단절된 인생을 살며 고독의 고통 속에서 삶을 허비하고 있던 포레스터를 발견하고 신뢰와 존경으로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며 포레스터 또한 그 마음에 부응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와 자말의 글쓰기 선생을 넘어 자말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행보를 보입니다.
<파인딩 포레스터>는 흔한 멘토링 성공담에 머물지 않고 인간과 인간의 만남, 그리고 나눔이 서로에게 미치는 변화와 성장을 담담하고 깊이 있게 그려내고 있어요. 자말의 삶을 위해 진정한 멘토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포레스터의 모습에서 이 시대의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첫댓글 즐독했음니다 매우 유익한 정보!!!!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