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good shepherd; the good shepherd lays down His life for the sheep. "He who is a hired hand, and not a shepherd, who is not the owner of the sheep, sees the wolf coming, and leaves the sheep and flees, and the wolf snatches them and scatters them. John 10:11,12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요 10:11, 12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그 당시 유대 광야에서 임시로 만든 양 우리는 돌담만 둘러쳐져 있고 문짝이 없는 형태가 많았다. 밤이 되면 목자가 그 열린 입구에 직접 누워 몸으로 문을 막고 자곤 했다. 즉, 맹수나 도둑이 들어오려면 목자의 몸을 밟고 지나가야 했고, 양들이 나가려고 해도 목자를 거쳐야 했다. 예수님이 7절에서 "내가 양의 문이다"라고 하신 것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양들을 보호하고 책임지시는 분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표현이다.
따라서 양된 우리의 유일한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분을 통해서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다. 나갈 때도 들어올 때도 그분의 음성을 듣고 출입하지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인 것이다. 그래서 요 14: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시고 계시다. 예수님이라는 문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꼴(영적 양식)을 얻으며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된다(요한복음 10:9).
목자에 관해선 참된 목자와 거짓 목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이 인본주의 도덕설교 웰빙설교 하고 있으나 그것은 유교에서도 불교에서도 이슬람에서도 다 하는 것이다. 참된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한다. 양들을 돌보는 지도자(목자/목회자) 역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준과 복음을 통해서만 양들에게 나아가야 한다는 뜻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다른 방법이나 인간적인 탐욕으로 양들에게 접근하는 자들은 모두 '절도며 강도(거짓 선지자)'라고 주님은 경고하고 계심을 명심해야 한다.
여기서 그렇다면 문지기(the gatekeeper)는 누구일까? 그는 목자되신 예수님을 영접하여 문을 열어주는 역활을 했다. 아마도 양들의 문을 열어주는 분은 첫째로 성령님일 것이다. 성령님은 성도(양)의 마음 문을 열어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께서 감화감동을 주셔야 마음의 문이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이라 고백할 수 없다. 둘째로, 세례요한이다.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바로 전에 와서 주님의 길을 예비한 사람이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참 목자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보라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며 이스라엘 백성(양)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길을 열어준 인물입이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본받아야 하는 분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그는 철저히 예수님을 위해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었다. 그가 말하길 예수님은 흥해야 하겠고 자기는 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는 주님의 신들매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명을 다한후에 순교했다.
요즘 세상은 인지전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사람들의 사고를 사로 잡으려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땅을 살아가는 양으로서 거짓 삯군 목자를 따라가거나 양들의 문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출입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직 기도, 오직 성령, 오직 말씀으로 선한 목자되시고 참된 양들의 문 되신 예수님을 따르고 세례요한 처럼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작은 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라 말씀하신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