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주 뜻 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시105:16-22, 창40:23)
2012.3.7(김상수목사)
“16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20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21 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22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시105:16-22)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잊었더라”(창40:23)
신자라 할지라도 너무 힘들면, 때로 이런 의심이 들 때가 있을 수 있다. “과연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닐까? 혹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우리들의 느낌일 뿐이다.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과 상관없이 자녀된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친히 준비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많은 성경말씀들을 통해서 이미 약속해 주셨다. 이사야 49장 15절에서는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러하신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모든 길을 친히 인도하고 계신다는 ‘하나님 임재의식’을 같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한문으로는 여주동행(與主同行, 주님과 함께 동행함)이라고 한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여주동행의 확신 속에서, 주님이 주신 꿈을 품고 한 평생을 살았던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요셉이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믿음의 선진들 가운데 특별히 요셉은 생애를 보면, 신앙적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신앙적인 흠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늘 주님과 동행 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현실적인 삶의 여정을 보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었다.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요셉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어왔다. 그의 어린시절 가정의 상황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화목한 가정을 꿈꾸기에는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네 분이나 되었고, 그의 친모인 라헬은 어린시절 동생 베냐민을 출산하면서 세상을 떠났고, 친어머니의 사랑없이 성장하면서, 위로는 열 명이나 되는 배다른 형들의 미움을 받았다. 그는 형들의 손에 의해 구덩이 속에서 죽을 위기에도 처했었고,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다. 노예의 삶을 비참한 것이다. 노예에게 인격이란 없는 존재와도 같은 것이다.
더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억울하게 옥에 갖히고, 감옥 안에서 어쩌면 인간적으로 볼 때, 유일한 희망의 끈처럼 느껴지는 술맡은 관원장이 출소한 후에는 요셉을 잊어버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잊었더라”(창40:23)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창세기 41장 1절에 보면 그로부터 “만 이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었다. 그러니까 술맡은 관원장이 출소한 후에서부터 바로가 꿈을 꾸기까지 2년이라는 기간의 모습을 성경에는 생략하고 있는 것이다. 짐작해 보건데 그 기간은 인간적으로 볼 때는 모든 소망이 끊어진 기간이다. 모든 사람에게 잊혀진 기간... 모든 사람에게 잊혀졌던 사람 요셉...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으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나는 잊혀진 존재라는 느낌이 드시는 분 계시는가? 잊혀진 나의 이름, 깨진 유리잔과 같이 망가진 인생, 깨어진 꿈, 다시 재기할 용기가 나지않는 나이, 견딜 수 없는 슬픔의 시간들... 심지어 수면제나 술을 의지해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지금 옆에 계신다. “세상이 당신을 모른다 하여도 주님은 그 이름 마음에 새겼네...”라는 찬송가사처럼 하나님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은 감옥 속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더 지연시켰을까? 그리고 요셉은 그 기간 동안 그는 감옥 안에서 대체 무엇을 했을까? 아직도 그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있었을까?
오늘 또 하나의 본문인 시편 105:16-20에서는 이 당시 요셉의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6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20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시105:16-20)
여기서 요셉을 감옥에서 끌어내어 그 신분을 수직상승 시키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을 더 지연시킨 이유를 알 수 있다(19절).
첫째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이다. 19절에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라고 했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인지 요셉 자신은 알 수 없었다. 오늘 우리들에게 인간의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같은 상황들, 사도 바울이 말한 “살 소망이 끊어지고, 사형선고” 받은 것 같은 상황들이 나를 엄몰한다해도 믿음의 인내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오늘 본문을 묵상해 보면 술맡은 관원장이 잊은 것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정하신 때까지 그에게 잊게 하신 것이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요셉은 감옥 안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감옥 밖에서 일하고 계셨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 준비하고 계신다. 응답이 오고 있는 중이다.
창세기22장 8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 오를 때 그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번제할 어린양을 보지 못했지만, 그 아들 이삭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22:8)
그렇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누구를 위하여? 가장 근본적으로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준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대로 하나님은 그들이 모리아산의 또 다른 방향에서 양 한 마리를 길을 잃게 하시고, 정상으로 몰아오고 계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또다른 방향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몰아오시는 응답이 우리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다. 그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감안 안에서 2년 동안이나 지연시킨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단련시키기 위해서 이다. 시편 105편 19절은 말씀하시기를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라고 했다.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 요셉에게는 청소년의 시기에(17살,창37:2)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비전이 있는데, 그 약속의 말씀, 비전이 그를 단련했다는 말이다.
왜 요셉이라고 갈등이 없었겠는가? 술맡은 관원이 감옥 밖에서 자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점점 실감날 때, 그에게 엄습해 오는 불안과 고통과 갈등들이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그가 결국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었다.
“하나님 그래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합니다”
“하나님 저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절망적인 상황까지도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계획하심 속에 제가 있음을 믿습니다”
이것이 말씀이 그를 단련했다는 말의 의미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억지 추측인가? 아니다. 실제로 요셉이 애굽왕 바로를 만났을 때나, 후에 형들을 만나서 고백하는 말들을 보면, 이러한 믿음이 요셉에게 있었다는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종살이의 경험을 오히려 총리직분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용하셨다. 보디발의 총무일을 보면서 애굽의 경제학 공부를 하게 하셨고, 감옥 안에서 떡맡은 관원장과 술맡은 관원장과 함께 있으면서 애굽의 정치에 대한 정치학 공부를 하게하셨다. 오늘 우리들이 겪는 크고 작은 인생의 어려운 상황들까지도 하나님은 더 좋은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실 것이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찬양 중에 “이 믿음 더욱 굳세라”라는 곡이 있다. 이 곡에 보면 중간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다.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사랑과 말씀들이 나를 더욱 새롭게 하니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노라.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주가 지켜 주신다 어둔 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하여 주신다”
요셉은 이 과정이 반복되는 동안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며, 여주동행하였고, 하나님의 뜻 안에 자신의 삶이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술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잃어버리고, 2년이라는 기간동안 인간적인 모든 소망이 차단된 상태와 같은 상황이 우리에게도 있다. 관계가 차단되고, 재정이 차단되고, 건강이 차단되고, 혼자라고 느껴질 때 바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시며, 늘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신앙을 단련하며, 여주동행해야 하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요셉이 믿음을 지키고, 마침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은 신속히 요셉을 끌어내셨다. 창세기 41:14절에 “이에 바로가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낸지라...”라고 했다. “급히”라고 했다. 요셉은 급히 옥에서 나와서 총리의 자리에 오른다. 수직상승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하나님의 성취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이 준비가 다되었을 때, 우리를 이렇게 만드실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 주님의 뜻이 성취되는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도 여주동행하며,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멘트) 지금 여러분은 어떤 상황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지금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준비는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위하여 친히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과 같이 써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기 바랍니다. 더욱더 하나님의 인도와 말씀의 확신 속에 거합시다. 이 시간 이렇게 될 수 있도록 다함께 합심하여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