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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천호동에 살던 저의 집은 당시 장마로 삶의 터전을 봉천동으로 옮겼습니다. 몇 번 이사 다녔지만, 봉천동은 제가 사제서품을 받을 때까지 살던 동네입니다. 제가 살던 집은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살던 봉천동은 행정명의 변경으로 중앙동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당은 모습이 몇 번 바뀌었지만, 예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살던 집과 동네의 이름은 사라지고, 바뀌었지만 봉천동은 제 유년 시절의 추억이 깃든 동네입니다. 근엄하셨던 아버님, 가족들을 사랑으로 돌보셨던 어머니, 생각이 깊었던 큰 형님, 자유로운 영혼의 작은 형님, 아버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여동생이 함께 살았습니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났다는 낙성대로 놀러 가고, 관악산 계곡으로 수영도 갔습니다. 성당에서 첫영성체 교리를 했고, 주일학교 친구들과 성탄에는 예술제를 준비했습니다.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는 저와 형을 데리고 시장엘 가셨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꼭 넣고 어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서 시장을 구경했습니다. 늘 추웠고, 어떨 때는 눈도 내렸습니다. 시장 아저씨와 한참 흥정을 한 후에 어머니는 배추와 무를 한 손수레 가득 담고 무척이나 뿌듯해하셨습니다. 손수레를 뒤에서 밀면서 오는 저도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집안 형편이 어려울 때도 시장엘 갔었습니다. 그땐, 겨울바람이 유난히 더 차가웠고, 어머니의 뒤를 따르는 저의 모습도 그렇게 처량했습니다. 늦은 시간 시장이 파할 무렵에 버려졌지만 쓸만한 것들을 얻어온 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손수레도 없고 보따리에 메고 왔습니다. 그럴 때는 집에 오는 길도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넉넉한 가정형편은 아니었지만, 그 동네에서 자라고, 어른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모두 감사할 일이고, 고마운 일입니다. 제가 살던 동네와 가족은 제 삶의 못자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유년 시절은 어떠하셨는지요?
오늘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시메온은 마리아의 가슴은 칼에 찔리듯 아플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들 예수를 위해서 기도하지만, 늘 걱정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했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품에 안아야 했습니다. 재물, 명예, 권력, 성공이라는 기준으로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오늘을 ‘성가정 축일’로 지내는 것은 예수, 마리아, 요셉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나자렛 성가정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성모님은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며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요셉 성인은 남모르게 파혼하려는 마음을 바꾸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성모님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셨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하느님의 뜻이 함께한다면,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난다면 우리의 가정 역시 ‘성가정’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모든 ‘추억, 기억, 상상력’이 시작되는 ‘성가정 축일’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가정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소중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가족들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혀지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예전에 읽었던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비가 오는데, 키 큰 사람하고, 키 작은 사람이 우산 하나만을 가지고 비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키 큰 사람에게 우산의 높이를 맞추면 키 작은 사람이 비를 맞게 되고, 키 작은 사람에게 우산의 높이를 맞추면 키 큰 사람이 비를 맞게 됩니다. 서로가 키가 다른 것에 대해 한탄하거나 탓하면 둘 다 불행해집니다. 또 서로를 탓하다 갈 곳을 못 가게 될 수도 있죠. 해결 방법의 하나는,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을 업고, 키 작은 사람은 우산을 들면, 비 맞지 않고 갈 곳을 가게 될 뿐만 아니라, 둘이서 서로의 믿음과 나눔의 경험을 창출해 낼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문제는 함께 해결할 수 있고 또 함께 해결하면서 성장의 기회를 얻게도 됩니다.”
기도와 마음을 열어주는 대화, 그리고 신뢰를 통해서 성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조재형신부)
‘희망기도’로 유명한 대구교구 최봉도 신부님이 본당 사목하실 때 한 자매가 울면서 신부님을 찾아와 정말 하느님이 계시기나 한 것이냐고 따졌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본 즉 이렇습니다. 식구가 4명인데 월세로 한 방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알코올중독이라 일도 나가지 않고 술만 마시고, 큰 딸은 결핵에 걸렸지만 돈이 없어서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여 집에 있고, 작은 딸은 가출해서 소식도 없는데, 이번엔 자신이 다니는 직장이 부도가 나 그 자매까지 직장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월세를 내지 못해서 쫓겨날 판이고 이제 모든 식구가 길에 나앉게 되었다고 하소연하는 것이었습니다.
최봉도 신부님은 그 자매에게 그러면 일주일간 속는 셈 치고 ‘감사기도’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알코올중독인 것도, 딸이 하나는 결핵으로 죽어가고, 또 하나는 가출하여 집에 없는 것도, 또 자신이 직장을 잃게 된 것도 다 하느님의 은총이니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하였답니다. 그 자매는 불난데 기름 붓느냐며 화를 내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그자매가 환한 얼굴로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습니다. 신부님께 화를 내고 집에 돌아가서는 할 것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한풀이를 할 겸 하루 종일 방에서 큰 소리로, “남편이 알코올중독이라 감사합니다. 내 딸이 결핵에 걸려 감사합니다. 막내가 가출을 해서 감사합니다. 제가 직장을 잃어서 감사합니다.”라며 계속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 날도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본당 빈첸시오회에서 오더니 오스트리아 선교사 하 마리아가 운영하는 결핵요양소에서 딸을 무료로 받아주겠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러니 진짜 감사의 기도가 나오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문 밖에서 “엄마!”하는 작은 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집에 돌아온 것입니다. 정말 감사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남편이 생전 처음으로 술을 안마시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하며 아예 술을 끊었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자매도 옆에 병원이 새로 생겨서 거기에 주방근무자로 취직이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일주일 안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만약 내가 마귀라면 교회를 먼저 파괴할까, 가정을 먼저 파괴할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마귀라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가정을 먼저 파괴하겠습니다. 가정이 파괴되면 교회는 자연히 붕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가정을 파괴할까를 생각해봅니다. 서로서로 미워하게 만들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미워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어려운 일이 닥치게 하면 됩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상대의 탓을 하게 되면 가정은 자연적으로 붕괴됩니다. 아이는 못생겨서 결혼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부모 탓을 하게 만들고 아내는 돈을 못 버는 남편 탓을 하게 만들며 남편은 바가지만 긁는 아내 탓을 하게 하면 됩니다. 이 모든 것은 걱정과 두려움을 줌으로써 해결됩니다.
집안의 걱정과 두려움이 있고 그것 때문에 서로 싸움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싸움의 상대를 잘못 고른 것입니다. 마귀와 싸워야하는 것을 모르고 마귀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이 파괴되는 이유는 이렇게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성가정’이 나옵니다. 성가정을 파괴하려는 마귀도 등장합니다. 여기서는 헤로데 왕입니다. 자신이 왕을 하고 싶어서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 합니다. 이 두려운 상황에 요셉이 이집트로 피신하자고 말합니다. 천사가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는 두말도 하지 않고 요셉의 말을 따릅니다. 하느님의 뜻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아기들은 다 죽었지만 성가정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화로울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이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가정을 파괴하려는 헤로데, 즉 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그것들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알아야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은 다른 것이 없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가정은 순종하는 가족입니다.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느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부산교구 허성 야고보 원로 신부님이 법원 옆에 있는 부산의 모 성당에서 본당신부를 하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마침 이혼하기 위해 법원에 온 부부가 법원이 점심시간이 된 터라 갈 곳이 없어 성당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둘 다 신앙인이어서 성당에 잠깐 앉아 있다가 기도가 되지 않아 다시 나왔습니다.
신부님은 그들을 보고 무엇 때문에 이혼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이 먼저 “이 사람은 제가 무슨 일만 하려고만 하면 반대를 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자매가 “당신이 잘했어봐라. 내가 반대하나?”라고 하며 언성이 높아집니다. 신부님은 “아니, 싸우다가도 어른이 오시면 싸움을 멈추는 법인데 신부님 앞에서 이게 뭐 하는 것입니까?”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들은 용서를 청했고 신부님은 그러면 보속으로 두 시간 동안 함께 성체조배를 하라고 했습니다.
두 시간 뒤 두 사람이 눈물이 범벅이 되어 사제관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두 시간 동안 성체 앞에 있다 보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가 잘못했다고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신부님이 보는 앞에서 이혼서류를 찢어버렸고, 신부님은 바로 혼인갱신 예식을 해 주었습니다.
기도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집안이 잘 되는 것일까요? 남편이 승진하고 자녀가 성공하는 것일까요? 기도를 통해 오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사랑이시고 사랑은 일치시킵니다. 그러니 기도하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순종이 가능할까요? 하느님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요셉은 아들을 잃게 되었을 테고 그러면 부부간의 사랑도 그렇게 끝나버렸을 것입니다. 요셉은 항상 하느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장으로서 하느님께 순종해야 가정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영성으로는 요셉이 자신보다 못하지만 가장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요셉에게 순종할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습니다.
이 순종은 기도 없이는 실천이 불가능합니다. 기도하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부부가 함께 두 시간만 기도해도 수십 년 동안 말로 풀어도 안 되는 것이 해결됩니다. 순종하기 위해 기도한다면 사탄이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가정 안에 하느님께서 머무시게 됩니다. 누구와 싸워야 할 줄 아는 사람은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사탄의 두려움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함께 기도하지 않으며 가정이 화목하기를 바라는 것은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뭉쳐서 스마트폰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전삼용신부)
2019년 12월 29일 일요일
[백]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가정 성화 주간)
대영광송신경교중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은 나자렛의 성가정을 기억하며 이를 본받고자 하는 축일이다. 1921년 이 축일이 처음 정해질 때에는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첫 주일이었으나, 1969년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로 옮겼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2001년부터 해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부터 한 주간을 ‘가정 성화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가운데 진정한 사랑이 넘치는 보금자리로 가꾸어 나가게 하려는 것이다.
성탄 팔일 축제 주일
또는, 팔일 축제 안에 주일이 없으면 12월 30일
신경은 이 축일을 주일에 지낼 때 바친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온갖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오롯한 믿음을 간직하는 가정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올 한 해의 마지막 주일 미사를 봉헌하는 오늘은 ‘가정 성화 주간’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각자의 가정을 주님께 봉헌하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가정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마음 모아 기도합시다.
입당송
루카 2,16 참조
목자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보았네.
본기도
하느님,
성가정을 통하여 참된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시니
저희가 성가정의 성덕과 사랑을 본받아
하느님의 집에서 끝없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말씀의 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상쇄하는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콜로새의 신자들에게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답게 살아가라고 권고한다(제2독서). 이집트로 피신하였던 요셉은 헤로데가 죽었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돌아와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는다(복음).
제1독서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한다.>
▥ 집회서의 말씀입니다.
3,2-6.12-14
2 주님께서 자녀들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보장하셨다.
3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는다.
4 제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5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6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장수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제 어머니를 편안하게 한다.
12 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13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14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화답송
시편 128(127),1-2.3.4-5(◎ 1)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 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을 받으리라. ◎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 풍성한 포도나무 같고 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 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
제2독서
<주님과 함께하는 가정생활>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3,12-21
형제 여러분, 12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17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18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19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20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21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복음 환호송
콜로 3,15.16
◎ 알렐루야.
○ 그리스도의 평화가 너희 마음을 다스리게 하여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여라.
◎ 알렐루야.
복음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5.19-23
13 박사들이 돌아간 뒤, 꿈에 주님의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9 헤로데가 죽자, 꿈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21 요셉은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를 다스린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떠나,
23 나자렛이라고 하는 고을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는 나자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
<각 공동체 스스로 준비한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성가정의 모범을 따르려는 교회를 굽어보시어,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세상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의 향기와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분쟁과 분열이 끊이지 않는 이 세계를 굽어보시어, 인류가 지구촌의 한 가족으로 서로 화합하고 일치하며,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이루게 하소서.
3. 어려운 가정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은총이신 주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들을 어여삐 여기시어, 그들이 성가정의 모습을 본받아 힘을 얻고, 이웃들과 더불어 기쁘게 살아가게 하소서.
4.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위로의 샘이신 주님, 저희가 기쁘고 즐거운 일을 기억하며, 슬프고 괴로운 일을 이겨 내고,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게 하소서.
예물 기도
주님,
화해의 이 제사를 드리며 간절히 청하오니
동정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 가정을 주님의 은총과 평화로 굳건하게 지켜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감사송
<주님 성탄 감사송 1 : 빛이신 그리스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의 신비로
저희 마음의 눈을 새롭게 밝혀 주시어
하느님을 눈으로 뵙고 알아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저희 마음을 이끌어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또는><주님 성탄 감사송 2 : 강생으로 온 세상이 새로워짐>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성탄을 경축하는 오늘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인간으로 나타나시고
영원하신 분께서 이제는 이 세상에 들어오셨나이다.
그분께서는 타락한 만물을 당신 안에 일으키시어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버림받은 인류를 하늘 나라로 다시 불러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 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바룩 3,38 참조
우리 하느님이 세상에 나타나시어, 사람들과 함께 사셨네.
영성체 후 묵상
▦ 성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삼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 공동체에 들어오시기를 바라십니다. 그리하여 성체의 모습으로 우리 각자에게 오신 것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신 우리는 가정에서 서로서로 예수님을 대하듯 사랑을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지극히 인자하신 아버지,
저희를 천상 성사로 길러 주시니
저희가 언제나 성가정을 본받아
현세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마침내 영원한 천상 가정에 들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오늘의 묵상
한 가정의 행복은 하느님의 선물이므로 가정의 일원들에게 헌신과 애정이 요구됩니다. 이러한 행복은 서로를 사랑으로 감싸 줄 때 충만해집니다. 모든 이의 공동선을 위한 헌신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아기와 그 어머니의 목숨을 살리고자 전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요셉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동방 박사들에게서 메시아의 탄생 이야기를 들은 헤로데 임금은 베들레헴과 그 인근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입니다. 예수님에게도 그런 위험이 닥쳐오자 주님께서 요셉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요셉은 일어나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밤에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서둘러 피신합니다. 부리나케 떠나면서 그동안 공들여 쌓은 성과와 집과 친구들을 모두 버립니다. 그의 행복은 아기와 그 어머니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헤로데의 아들이 다스리는 유다로 들어가지 않고 갈릴래아의 작은 고을, 나자렛으로 갑니다. 요셉의 태도는 하느님의 부성에 대한 반영과 동참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기와 그 어머니를 참으로 걱정하시고 천사를 보내시어 요셉에게 해야 할 일을 일러 주십니다. 요셉의 배려는 하느님의 배려를 가리킵니다. 하느님에게서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나오고 요셉의 가정은 그분의 인도를 받습니다.
가정에서 애정이 이기적으로 변하면 나쁜 감정과 관계 때문에 불목이 가정을 지배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요셉이 아기와 그 어머니와 함께하였던 것처럼, 가장 힘없는 이들, 가장 작은 이들, 가장 소홀히 한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