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쓰는 외계에 던져졌다면 어떻게 그곳의 주민들과 의사소통을 할 것인지를 밝히시오. 단, 이 외계는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개념이 하나도 적용되지 않는 곳이다. 예컨대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노인도 없으며, 먹고 배설하고 휴식하는 생명체의 기본적인 행위조차도 벌어지지 않는 곳이다.
- 우선, 그 외계인들이 날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야겠다. 그들이 날 죽이려고 맘먹은 상태라면 내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어떠한 행위를 하던지 그들은 내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선하디 선한, 나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외계인이라고 하고 방안을 생각해보겠다.
그들은 일단, 우리가 언어생활에 있어 사용하는 기본 개념이 통하지 않는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도 감정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의사소통의 실마리를 감정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그들앞에서 무작정 히죽히죽 웃어본다.
여기에서의 웃음은 상대를 무시하는 비웃음도 아니고 변태가 주로 즐기는 음흉한 웃음도 아니다. 순수하게 어린아이가 웃듯이 웃는 것이다. 이러한 웃음 뒤에 그들의 표정이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그들 역시 즐겁고 행복할 때 우리처럼 양 입 꼬리가 올라가고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지는 것이라면 대 성공이다. 일단 웃음이라는 감정은 공유하게 될 것이다.
둘째, 매우 짜증나는 표정을 지어본다.
그들이 표정을 이해하는 기미가 보인다면 이것 또한 성공이다. 이 짜증나는 표정은 응용이 가능한데, 머리를 긁는다거나(씻기 귀찮음을 표현할 수 있다.) 하품을 곁들여준다면 (동시에 티셔츠를 살짝 올려 배를 긁어주는 행동을 더한다면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다.) 매우 지겹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순수해서(순전히 내 전제에 불과하다) 내 행동을 따라하며 즐거워할 것이다. 그때 즐거워하는 모습이 첫 번째에서 말한 우리 인간과 같다면 그야말로 대 성공이다.
마지막으로 울어보는 것이다. 엉엉 울었을 때의 그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그들은 눈물이 없다거나, 슬픔을 느낄 때 땀이 난다거나, 극단적으로 우리의 우는 모습이 그들은 즐거울 때 보이는 행동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고, 그들의 감정 표현을 익히고, 감정을 공유한다면 그 이후의 의사소통은 수월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외국인들과의 대화에서 아무것도 공유되는게 없다 하더라도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면 바디랭귀지를 통해서 의사소통이 이루어 질수 있다는 사실에서 착안한 것이다. (외국인의 경우, 우리의 언어와 짝을 이루는 단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화가 좀더 수월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방법의 단점은, 하는 도중 그들이 지루해하거나 불쾌함을 표현한다고 뺨을 때려 나를 당황시킬 경우 연기하는 내가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진심을 전달할 수 없어서 오해받았던 경험을 쓰고, 그 때 어떻게 오해를 풀었는지를 자유로운 형식으로 알려주시오.
- 얼마 전, 시험 기간의 일이다. 내가 속한 동아리의 정기공연이 끝나고 동아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나는, 동아리의 선배 동기들은 물론이고 동아리의 앞날에 대해서(해체의 위험이나 내년에 선배가 될 우리가 어떻게 동아리를 꾸려나갈지 등) 한참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혼자 계속 생각한 탓인지, 생각은 깊고 깊어졌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생각들을 동기나 선배들과 공유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에게 말해봤자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화근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던 내게 동아리의 한 동기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는데 한동안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게 힘들 것 같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들은 순간, 그 친구가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한 것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나는 그 친구를 앞에 두고 펑펑 울었다.
(이것이 두 번째 화근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울기 시작하자 그 친구는 내 눈물의 원인이 자신인줄 알고 자기 자신을 자책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대로 친구의 사정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쪼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활동을 했는지, 이렇게 중요하게 여길만큼 그야말로 동아리 활동에 모든 것을 할애했는지 회의감이 든다는 이야기를 그 친구에게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 하면 내가 보낸 시간이 헛된 것이 된다는 생각과, 내가 좋아서 열심히 한 행동을 남의 탓으로 돌리게 되는 비겁한 사람이 되는 듯한 느낌이 계속 나를 괴롭힐 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나는 그저 그 친구가 내 마음을 알아서 헤아려 주길 바랬지만(그리고 위로의 말을 해주기도 바랬지만) 사실 그것은 내 욕심이였다. 그 친구는 내가 아니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서는 내 행동에 비추어진 자신의 판단 만으로 내 진심을 오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이다. 몇일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그 친구에게 대화를 청했고, 긴 대화를 통해 내 진심을 솔직히 이야기 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상대가 진심을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그에 맞는 대화나 표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경험이였다.
[3] 언어가 없어도 생각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 언어가 없어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네이버 사전을 참조하자면 언어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 주는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 언어를 가진 것은 오직 인간뿐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동물들이 주고 받는 신호들은 언어라고 볼 수 없다는 전제가 성립된다.) 언어는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언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반드시 언어가 있어야만 생각을 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인류가 태초에 언어를 만들어 내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인류 발생 이후 언어가 만들어 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언어를 만드려는 의지나 구성원리는 바로 생각인 것이다. 그들이 생각했기에, 필요했기에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또한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언어를 발명하게 된 것이다. 언어의 정확한 뜻을 살펴보면 ‘사람의 생각을 소리로 나타낸 것. 곧 사람의 사상, 감정을 나타내는 음성적 부호.’라고 해석되는 것처럼, 생각이 우선시 되고 언어가 발생 했기에 언어가 없이도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언어를 통해서 생각이 발전하고 깊이 있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언어의 기록을 통해서 사람들은 문화와 기술을 축적할 수 있었고 지금의 모습과 같은 엄청난 것들을 일구어 낼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언어를 통한 것이지만, 반드시 언어가 있어야 생각이 가능하다는 구성은 잘못된 것이라 여겨진다.
첫댓글 [3] 좀 더 참신한 예를 들어주셨으면 더욱 좋았을것 같네요.수고하셨습니다.
[3] 잘 읽었습니다. 제시해주신 근거에 좀더 논리적 성격을 부여하셨다면 좋았을 듯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3]물음에 대한 님의 독창적인 의견이 더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잘읽었습니다..
[2]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전개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재미있는 생각이지만 아예 개념틀이 다르면 통용되지 않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