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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 경계] - 세계교회협의회(WCC)를 알아본다
1. 일시: 2009년 1월 18일(일) 오후 4시
뉴에이지운동과 W.C.C W.C.C.는 1948년 암스텔담에서 44개국 147교회의 351명이 모여 제1차 총회를 가졌다. 당시 세계는 제1, 2차 세계대전의 쓰라린 전쟁의 고통이 분열된 교회 때문이라는 책임을 통감하고, 세계교회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하나됨'에 대한 감격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이 총회는 성경만이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은 아니며, 구원의 보편화를 인정하고, 회개는 일종의 인식이며, 구원은 지상에서의 '평화'를 가리키는 것임과 개인의 도덕적 영적 생활과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을 결의하여 많은 실망을 주었다. 이것은 1910년 에딘버러에서 열린 최초 세계선교사총회의 목적인 순수한 선교운동의 성격을 외면하는 변질된 에큐메니칼운동이었다.
그후 W.C.C.는 제2차 에반스톤 총회(1954년), 제3차 뉴델리 총회(1961년)를 거쳐 복음전파에 대한 선교추진 보다는 독재정권, 인종차별, 여성운동, 노동문제 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토의하였다. 특히,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은 집단적이고 국가적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성과 오는 세계의 한 시범적인 단체이며, 교회의 사명은 단지, 사회의 봉사라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신학을 주장하였으며, 아울러 교회와 세상사이, 기독교와 이방종교사이의 구별을 없애는 '보편구원설'을 W.C.C. 에큐메니칼 선교신학으로 채택하였다. 이어서 열린 제4차 움살라 총회(1968년)에서는 사회, 경제의 정의와 해방을 강조하며, 공산주의 게릴라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합법화하여 인종차별 투쟁사업에 물질적 지원까지 하는 등 복음적 선교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제5차 나이로비 총회(1975년)에서는 구원의 복음과 선교에 대한 성경적 교리를 '해방'이라는 말로 재 정의하였고 예수그리스도를 해방자로 묘사하여 해방신학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 총회에는 드디어 로마카톨릭,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이 참석하여 혼합주의의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제6차 뱅쿠버 총회(1983년)는 소련 및 동구 공산권대표들 까지 참석하여 막스주의적 사회주의 비전을 높이고 타종교와의 대화를 모색하고, 타종교도 역시 하나님께로 가는 또 다른 길임을 인정한 총회였다.
제7차 캔버라 총회(1991년)에서는 카톨릭,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외에도 점술가, 심령술사, 마술사, 무당 등을 포함한 세계의 15개 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하는 대규모 종교혼합집회를 갖고, 세계종교의 통합과 단일성을 외쳤다.
이와 같이 종교 통합 운동을 추구하고있는 W.C.C.를 과연 기독교 단체로 인정할 수 있을까? W.C.C. 산하에는 각 나라마다 이러한 정책을 지지하는 N.C.C. 가 있는데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 (K.N.C.C.)에 가입한 현 교단은 예장통합, 기감, 기장, 기하성, 구세군, 성공회, 복음교회, 한국정교회, 순복음이다. 한국교회는 정신차리고 사역자들을 유혹하는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몰아내고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큰 환난에 던지실 것이다(계2:20-23). 그리고 세계종교통합을 꿈꾸는 뉴에이지운동을 과소평가 하지 말고 그들과 대적하여 마지막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하나님과 부처님을 함께 부르는 기도(NCCK 가입 반대)/ 안희환목사
우리는 지금 다양한 종교가 한 사회 안에 공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 다양한 종교들이 혼재되어 있으며 어느 한 종교가 국교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어느 한 종교에게 특혜를 주는 경우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될 종교적 상황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서로가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해주는 것은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존중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의 필요에 따라 연합하는 것 역시 가능한 일이며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환경을 살리기 위해서 함께 연합한다든지, 가난과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이웃을 돕기 위해 함께 힘을 모은다든지, 건강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며 움직이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이루어지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기독교인들의 경우 성경이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도라고 하는 분명한 중심이 있는데 그것이 흔들리는 상황까지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성경을 떠나거나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기독교일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기독교의 정체성을 훼손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기도의 대상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 어디에서도 하나님 외에 어떤 대상에게 기도하는 것에 대해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홈페이지 기도자료실에 보면 하느님과 부처님을 동시에 부르면서 기도하는 기도문이 올려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래는 그 기도문 전문입니다.
생명의 강 살리기 종교여성 공동기도문
생각 없이 흩어져 살던 우리를 부른 것은 당신입니다. 고속의 기계덩어리에서 내려 맨발로 걸어오라, 짓궂게 부른 것도 당신입니다. 서러운 비수 하나 가슴에 품고, 견디며 삭히며 흘러왔건만 백두대간 몸통을 가르는 죽음의 대운하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당신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며 유언처럼 간곡히 부르십니다.
오, 하느님, 부처님! 살려 달라 매달려야 하는 건 우리 자신인데, 거꾸로 당신이 우리를 향해 애원하시다니요? 무력한 당신, 한없이 작은 당신, 아직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당신, 한 중생이라도 더 구제하기 위하여 극락 언저리를 서성대는 당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아래로 아래로 오랜 세월 흐르는 강물은 바로 당신의 눈물입니다,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모든 창조물은 당신의 선물, 천지에 어느 것 하나 당신의 모태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온 우주만물에 깊이 새겨진 하느님의 흔적, 부처님 말씀하시기를, 세계가 한 송이 꽃이라 했거늘, 분별심을 내어 저 강물의 숨통을 틀어막는 자 누구입니까? 더 잘 살려는 무조건적 욕망, 더 많이 가지려는 부질없는 바람, 빠르게 성공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것만이 능사라고 부추기는 거짓진리에 속아 당신을 배반해온 우리를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십시오.
무릇 사람은 어머니 뱃속 양수에서 유유히 헤엄치다가 세상에 나옵니다. 사람의 한 생에 온생명의 계통발생이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그래서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어느 철학자가 그랬습니다. 굽이쳐 흐르는 강물 없이는 생명도, 문화도, 역사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 갸륵한 생명의 순환이 예서 끊어지지 않도록, 오고 올 세대 역시 강물 따라 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살림의 지혜를 허락해 주십시오.
인디언들은 사람 다니는 길에서 바윗돌 하나를 치울 때조차도 그것이 일곱 세대 후에 미칠 영향을 따져본다고 합니다. 말을 타고 부지런히 달리다가도, 문득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조급증에 걸린 우리, 이러한 인디언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강물의 리듬에 맞추어 천천히 걷노라니, 편의주의와 실용주의와 이기주의의 삼독(三毒)에 찌든 우리의 자화상이 떠오릅니다. 하늘의 뜻쯤이야 가볍게 능멸하고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양 으스대는 우리의 오만방자함이 가슴을 찌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생명 걸음 걸음마다 참회의 눈물을 뿌립니다. 이 눈물이 바리데기 생명수 되어 죽어가는 어머니를 살릴 수만 있다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눈물샘인들 파지 못하겠습니까?
종교는 달라도 진리의 뿌리는 하나, 만물이 한 배(胚)에서 나와 한 사랑을 먹고 사는 식구(食口)요 생구(生口)인 것을 믿습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일은 나를 모시는 일이요, 너를 모시는 일입니다. 녹색별 지구를 살리는 일이요, 만물의 어머니를 살리는 일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님과 소태산 대종사님의 마음에 연하여 오늘 4대 종단의 종교여성이 일심(一心)으로 간구하오니, 부디 이 땅에서 죽임의 굿판 대신에 신명나는 살림의 굿판이 벌어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은 신기루일 뿐, 모두가 골고루 가난해지는 것만이 생명세상으로 나가는 유일한 선택인 것을 깨닫게 해 주십시오. 이제 4대 종단의 종교여성들이 가부장적 개발의 망령에서 벗어나 사랑과 자비, 정의와 평화가 한 데 어우러지는 후천개벽의 새 세상을 열기로 결단하오니, 모쪼록 이 믿음의 싹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수 있도록 우리를 지키고 돌보아 주십시오. 받들어 비옵나니,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아멘.
구미정(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겸임교수, 서울복음교회 교육목사)
위의 기도문은 아무리 보아도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기도의 내용이 아닙니다. 더구나 목사라고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기도의 내용은 더욱 더 아닙니다. 그러나 버젓이 목사의 이름을 걸고 하느님과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며, 성모 마리아님과 소태산 대종사님을 찾고 있으니 놀랄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결코 나무아미타불 아멘으로 기도를 마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명확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가 사함 받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인 것을 믿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혹시 위 기도문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문을 올린 이가 NCCK로 되어 있습니다. 2008년 5월 21일에 올린 내용인데 그 동안 그 기도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결국 위의 기도문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정체를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성결교단을 가입시키려고 하는 이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이런 기도문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위의 기도문에 동의하는지 자신들의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하고 싶습니다. 만약 알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리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면 다시는 교단을 어지럽히는 행동이 없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안희환 목사
발췌끝 (출처: 선지자와 예언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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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간의 밀접한 협동.예언>1915년이전 엘렌지화잇의 생전에는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 사이의 어떤 협동도 차단하는 듯이 보이는 큰 구렁이 놓여 있었고. 반카톨릭주의가 개신교회들 가운데 맹위를 떨쳤지만 . 지금은 그렇지 않지요 엘렌지화잇도 개신교내의 주요 변화들이 종교 개혁의 신앙으로부터 그들을 이탈시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개신교와 카톨릭 사이의 차이점은 점점 줄어들어 둘을 분리시키고 있는 심연에 이제는 다리를 놓기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지금은 점점 그 예언대로 되고 있습니다
리베라박사는 에큐메니컬(종교연합)운동의 출발은 1961년 2차 바티칸 공의회라고 말합니다.그 운동에 꼭두각시로 오순절파의 성령운동(방언.치유.은사)과 축제식(밴드.테크노.싱코페이션)예배를 선두지휘한다라고합니다.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것은 사랑과 연합이라고 합니다.사랑과 연합 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진리안에서 사랑과 연합은 문제가 없겠지만.무분별한 사랑과 연합은 문제가 있겠지요.저는 88년에 처음 입교를 하였읍니다.그러나 언제(대략90년대중반)쯤 부터인가 사랑과 연합이 우리교회 슬로건으로 자리를 잡더군요.참으로 무서운 현실입니다.리베라박사의 말처럼 교단규모에 관계없이 가장많은 수의 제수이트를
침투시키고 가장 많은 시간과 돈과 공을 들인다고 하더군요.리베라박사는 우리 교인은 아니지만 전직 제수이트신부로서 그에 말은 생각할 이유는 있다고 봅니다.내가 다니는 교회를 사랑하는 한사람으로서 이 교회에 촛불이 꺼지지않기를 기도할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천주교 제수잇 신부로서 있다가 탈퇴한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말에 의하면 오래전부터 안식일교회에도 천주교 비밀요원들이 성도를 가장하고 (입교하고) 살고 있다고 했지요 외국에는 충분히 그렇게 되어 간다고 느껴집니다 많이 타락하고 또 천주교와 협력적인 나라들이 많지요
고로 어서빨리 기성안식일교단에서도 나오셔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저희 개혁운동교단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할일이지 이미 선택을 받은양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저는 개혁에는 찬성하지만 개혁교단이라는 분파가 따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 봅니다.
길선님의 입장을 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성소시대 초반에는 당연히 기성sda가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이것은 부인할수없습니다 그러나 1914년이후 즉 지성소시대 중반 이후의 역사와 사건 동향을 면밀히 더 검토해 주십시오 1888기별거절과 1914년 1차대전시 신실한 안식일성도 4,000명 출교사건등 을 연구해 보셔야 합니다 계18장천사의 시작이 언제시작되었는지? 그 영향과 결과를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교묘합니다 또 아직도 재림이 있기전이므로 우리는 깨어서 남은무리의 탄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깊히 연구해야 할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시말하지만 자기들이 스스로 나가서 만든 분파교회는 인정할수가 없습니다 (견고한토대나 기타 sda분파들). 그러나 진리를 높이다가 교단이 자기교인을 출교하고 고로 저절로 분리와 연합이 일어난것은 하나님의 섭리라는것입니다 저희 개혁운동은 이런 시대마다 남은무리들이 걸어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 비교해 주셔야 합니다 /사단은 오늘날 sda를 속이는 방법은 자기교단내의 변화와 이런사건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건들을 잘모르더라도 언뜻 외모를 보더라도 알수있지 않습니까,,, 안식일교회는 타락하고 있고 표준이 내려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의 기별을 받아들이면 현저히
뒤로 물러가는 교회가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 끝으로 저는 길선님을 세째천사기별을 전하는 형제동지로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여년전쯤 입산하신 저와 같이 교회를 다니시던분이 시골생활을 가시면서 작은 책을 하나 선물로 주었지요.물론 그분은 출교된상태입니다.평신도운동에서발행한 전애심씨의 책이였읍니다.화잇여사의 글"흔들림에 채질이있은후 큰외침이 있을것이다"전애심씨는 촛대의 옮김에 대하여 흔들림(교회안에 혼란)에 과정중 이러나는 사건으로 이해를 하더군요.그 흔들림은 현재 진행중이라고 말하고요.제가 오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님에 글을 읽다보면 그 흔들림이 과거 1888년과 1914년에 마처짐으로보임니다.화잇여사는 흔들림은 교회안에 사건으로 큰외침(늦은비)은 세상밖에 사건으로 말했는데.100년이 지나는 이시점에서 큰외침이 업다면
흔들림또한 현재 진행형이지 과거 1888년과 1914년에 사건으로 한정하여 과거에 머물러 개혁을 표방한 진정한 개혁인 전진에 무리가 있는것은 아닌지 그런생각이 듬니다.물론 이 카페를 접하면서 1914년 사건을 처음 접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이 교회가 1914년과같은 똑같은 생황에 처해지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장담을 할수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흔들림은 미국인만이 아닌 독일인만이아닌 전세계적인 사건으로 이해를 하는데요 저에 견해와 생각이 잘못되었는지요?
흔들림에는 크게 2가지가 있음을 아셔야합니다 1)진리에로의 흔들림과 2)이설과 오류에로의 흔들림' 입니다 저가 말하는 것은 교단이 1888년 하늘의 기별로 인해 흔들림(분리)가 일어나게 되는 과정과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1)번의 과정이지요/그리고 그것말고 오류로 떨어지는 흔들림은 지금도 항상 있지요 향후 일요일 휴업령때에는 핍박의 흔들림도 있고요 이것은 전세계적이지요 /이것을 상황별로 잘 분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