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6세손으로 15세손 소정공(휘 곤坤) – 16세손 한성공(휘 희제希齊)- 17세손 참의공 휘 은垠 – 18세손 구방파 2방 집의공(휘 사석師皙)- 19세손 수의공(휘 욱礇)- 20세손 휘 은필殷弼(벼슬표기 없음) – 21세손 어모장군禦侮將軍(휘 규珪) – 22세손 사직司直(휘 효성孝诚) – 23세손 충의忠義(휘 형泂) ….. 후손입니다.
제가 봤던 족보책에 대하여 궁금한점이 있어 문의 드립니다.
문의에 앞서 설명을 드리면,
집의공(휘 사석師皙)께서 연산군의 폭정으로 관복을 찢고 청주 옥화대로 이거(移居)를 하셨고, 유훈으로 후손들에게 벼슬에 나가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후손들이 별로 뚜렷한 벼슬을 한 것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장남이신 수의공(휘 욱礇)께서는 조정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경북 예천군 용궁면(당시는 용궁현) 무이리로 이거(移居)를 하셨다고 합니다.
20세손 휘 은필殷弼(벼슬표기 없음) 께서는 김천 찰방공(휘 은좌殷佐)의 아우되시고,
21세손 어모장군禦侮將軍(휘 규珪)께서는 독자이신데, 족보에는 생몰년도와 묘소가 어디인지 적혀있지 않습니다. 22세손 세손 사직司直(휘 효성孝诚)께서는 휘 효충孝忠(벼슬표기 없음) 의 아우되시며, 형님이신 휘 효충孝忠께서는 경북 예천 용궁현 무이리에 사셨고,
사직司直(휘 효성孝诚)께서는 현재의 경북 상주군 청리면 청상리로 이거(移居)하여 마을 이름을 출사하지 않은 고려마지막 충신들이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는 두문동(杜門洞)의 이름을 따서 두속동(杜俗洞) 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첫째 : 15세손 소정공(휘 곤坤) 부터 23세손 충의忠義(휘 형泂) 까지의 생몰년도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둘째 : 21세손 어모장군, 22세손 사직, 23세손의 충의라는 벼슬이 있는가요?
그리고 과거시험(무과)에서 벼슬을 받았다면 있다면, 합격자 명단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지요?
(이런말씀 드리기에 그렇지만 족보를 만들때 조상님께서 벼슬이 없어서, 있어보이려고 일부러 족보에 그렇게 올려 놓으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후대의 25세손께서는 생몰년도가 나와 있어 (을유1645년 ~ 병진1676년)으로 나와 있어 윗대를 대충 유추하니
그때의 시대적 배경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년~1598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1628년,1636년)을 거치면서 의병으로 나서서 벼슬을 받은 것인가요?
집의공(휘 사석師皙)께서 “자손들은 벼슬에 나가지 말라”는 유훈때문인지 벼슬이 높지 않거나, 벼슬이 없습니다만,
아버님 살아계실때 따라서 벌초갔을때,21세손,22세손, 23세손 모든분이 비두(碑頭, 5000원 지폐의 율곡이 쓴 모자같이 비석위에 얹는 돌)를 얹혀 있었습니다. 비문은 풍화도 되었고, 한자를 잘 모르다보니 읽을 수도 없어서 내용 확인이 잘 안됩니다만....
당시 아버님 말씀으로는 벼슬이 없으면, 비석에 비두(碑頭)를 얹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맞다고 한다면
충의忠義(휘 형泂) 께서 하신 충의의 벼슬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글을 두서없이 올렸습니다만,
제가 올린글과 일치하는 내용이 족보책에 나와 있으신 분 계시면 답변 부탁드리오며,
벼슬에 대해서 아시는 분 계시면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소정공후 수의공파 36세손 윤종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