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어라.”(루카21,19)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인내
흔적 없이 꼬리를 내리는 석양빛처럼, 구르는 낙엽에 영원을 담고 설레며 겨울을 부르는 해 끝!
임의 사랑에 목말라 생명의 봄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임을 바라본다.
가을이 겨울을 따라가고 겨울은 또 그렇게 봄을 그리워하듯 우리 삶이
비록 동토(凍土) 같아도 천상 고향을 향한 인고(忍苦)의 목마름을 키워가야 가리라!
예루살렘의 멸망을 알려주는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유다인들의 회당과 감옥에 넘겨지고, 이방인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입니다(21,12).
예수님께서는 감옥에 갇히고 법정에 끌려가고 모두가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죽이고
미워하더라도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21,16-18).
인생은 끝없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싸움 속에 괴로움으로 채워지는 고해(苦海)입니다.
누구나 고통이 없는 삶을 바라지만 인간인 한 그건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실존입니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들고 또 그런 것들이 충족된다 하여도
단 한 사람 때문에 삶이 지옥처럼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뿌리칠 수 없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선(善)이시고, 사랑이시며, 아름다움이시고 진리이시며
정의이신 하느님의 나라를 말씀과 행적을 통해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우리는 모든 사람이 겪는 고통과 더불어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고 박해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행복을 갈망하는 우리는 악을 추구하고,
이기심과 탐욕을 채우려고 거짓과 불의를 일삼는 이들과 맞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인내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어라.”(21,19)
성 프란치스코도 권고합니다. “갖가지 시련을 당할 때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영혼이나
육신의 온갖 괴로움이나 고생을 견딜 때 우리는 더 기뻐해야 합니다.”(인준받지 않은 수도규칙 17,8)
그렇습니다! 고통은 치워버려야 할 걸림돌이 아니라 행복으로 가는 디딤돌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에 고통과 시련, 슬픔, 병,
심지어 죽음마저도 견디어낼 수 있습니다
. '예수님 때문에' 극도의 고통과 절망이 밀려드는 상황에서도 영원하신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를 외치며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고통도 박해도 하느님 계획의 일부이며 그분을 만나고 증언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21,13).
고통은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고통과 박해를 견디어내는 힘은 사랑이며, 견딤의 과정은 하느님을 드러내는 은총의 계기입니다.
참으로 삶이 퍽퍽하고 힘들며 대다수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오늘의 한국입니다.
그러나 어떤 처지에서도 늘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고 바라보면서
불의에 맞서고 고통을 견뎌내야겠습니다.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겪은 만큼 성장하고, 견디어내는 만큼 관대해지며 순수한 영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인내로써 의미를 얻고, 우리를 위해 수난하신 예수님과 더욱 더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어떤 어려움과 괴로움 중에도 함께 해주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느님을 바라고 믿으며,
일상의 수고로움과 고통을 견디어냄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호흡하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