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다만 지금 한 번뿐이네.
소원을 이루어주는
여의주보다 더 귀하다네.
다시 받기 너무 어렵고
잃기는 너무 쉽다네.
번개처럼 잠깐이라네.
이를 안다면
세간의 일을 털어 버리고
밤낮으로 생의 정수를 찾기에 정진하세.”
위의 말씀은,
티베트의 성자 “쫑카파”스님께서
후학들을 위해
남겨주신 경책의 말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리석은 범부 중생은
삶이 영원한것처럼 착각하고 삽니다.
오늘 이루지 못하면
내일 이루면 됀다는 식으로
살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삶은,
한 호흡지간에 있읍니다.
화살보다 더 빠르게 지나고 짧은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습니다.
하루가 지나가면 그만큼 우리 삶을,
영적인 향상을 꾀할수 있는
기회가 줄어 듭니다.
그래서 옛날 선사들께서는,
날이 지면 다리를 뻗고
오늘 하루가 헛되이 지나 갔음을
통곡 하셨읍니다.
이생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을 받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천상에 태어나는것 보다 어렵습니다.
천상은 흔히 인간계보다
더 좋은 세계라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석가도 말씀하셨읍니다.
고통이 없는 천상계는 향상하고자 하는,
수행해서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하는 정진력이
인간계보다 못하기 때문에
인간계가 수행하기에 가장 좋다고 하셨습니다.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자기를 살피면
많은 허물을 피할 수 있습니다.
탐내는 마음을 관찰하여 욕심을 줄이고,
화내는 마음을 살펴서 자비심를 기르고,
어리석은 생각을 돌이켜서 지혜심를 키운다면
수행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수행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이리저리 끄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끄달리는 삶을 살게되는 것은
일과 사람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쫑카파 스님께서 위에 하신 말씀처럼
세간의 일을 털어 버리라는 말씀도
이 때문입니다.
사바의 세속에 사는 한
세간의 일에 전적으로 무관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필요 이상으로 세간사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일에 치이고 저 일에 치이고,
이 사람에 얽매이고
저 사람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래서,
자연히 과도한 욕망을 추구하게 되고,
어리석음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러한 삼독의 삶에 물들게 되면
이 생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고
허비하다가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지 않습니다.
오직 한 번뿐인 이 생을 헛되이 보내면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지나온 자취를 살펴서
앞으로의 허물을 피하고
탐내는 마음을 뒤돌아 보아
욕심을 줄이고,
화내는 마음을 살펴서
자비심를 기르고,
어리석은 생각을 돌이켜서
지혜심를 키운다면
수행은 저절로 이루어질것입니다.
마음 한번 돌이켜,
탐심(貪心), 분심(憤心), 치심(癡心)을
줄여 나간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습니다.
생사가 따로없는
부처가 됄수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