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3명의 서울대학교 교수진이 전하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문·사·철학을 아우르는 ‘나이듦’에 관한 깊고 매력적인 이야기
‘영원할 것 같았는데…!’ 다 쓴 줄도 모르고 누른 샴푸 통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난다. “퓨~욱!” 어느 날 아침 욕실을 울리는 저 소리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김병준 교수는 문득 나이듦을 떠올린다. 이 몸의 평온한 일상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언제인지도 모르게 비어버리는 샴푸 통처럼 노년이 찾아온다면 어찌해야 할까? 누구나 나이가 드는데 왜 다들 젊음만을 외치고 나이듦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보지 않는 걸까?
『나이듦에 대하여』는 이런 의문에 답해보려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13명의 교수들이 ‘나이듦’이라는 주제로 벼린 13편의 담론을 담고 있다. 문학, 언어, 철학, 역사학, 미술사학 등 각 분야 최고 학자들이 동서양의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며 나이듦에 관한 풍요로운 이야기를 쏟아낸다. 눈앞에 놓인 노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고담준론이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관한 방대한 인문학적 연구를 흥미진진하게 고찰하는 이 책은 누구나 ‘나이듦’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인간과 삶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목차목차
발간사 / 강창우
서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노년 / 김병준
제1부 나이듦의 의미를 찾아서
1 유럽사에 나타난 나이듦의 다양한 이미지 / 장문석
2 노년에 관한 네 가지 불평과 반론: 키케로의 설득 / 강상진
3 노인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과 그 역사성 / 김병준
4 나이듦, 그 나이다운 삶에 대한 사유와 통찰 / 김월회
5 박완서와 오정희의 노년소설 속 ‘견딤’의 감각 / 손유경
제2부 노년, 가장 전위적인 시간
6 노년의 거대한 예술적 실험: 정선의 〈인왕제색도〉 / 장진성
7 고야의 〈결혼〉과 나이듦의 알레고리 / 박정호(68회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8 늙음을 받아들이는 지혜 / 이종묵
9 늙어가는 파우스트: 20대 괴테와 80대 괴테의 투영 / 오순희
제3부 나이듦을 공부하다
10 나이듦에 대한 공자의 인식 / 이강재
11 나이를 나타내는 단어의 의미장 / 박진호
12 노인 돌봄의 의미와 본질 / 서은영
13 나이듦을 읽다 / 민은경
[출판사 리뷰]
‘대체 나이가 든다는 건 무엇일까?’
인간이라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질문에 인문학이 답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나이 들어간다. 그러나 나이듦에 관해서는 남의 일처럼 여기다 노년이 코앞에 다가오고 나서야 부랴부랴 생각하기 시작한다. 나이듦을 생소한 대상이 아니라 익숙한 내 것으로 만들면 무엇이 달라질까? 철학과 강상진 교수는 나이듦에 대한 당혹과 의문은 결국 인간성(humanity)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곧 인간의 삶에 관해 근본적으로 질문하는 일이다. 인간에 관해 깊게 이해한다면 삶은 분명 달라진다. 이미 다 써버린 물건이야 다시 사면 그만이지만, 내 몸과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이 책은 오랫동안 인문학 내에서 깊은 고민이 축적되어온 ‘나이듦’이라는 주제에 관해 다양한 시선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책은 서울대학교 인문학 공동연구 총서의 일환이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은 인간에 대한 사유의 장을 넓히면서 삶의 실용적인 문제와 긴요하게 연결될 ‘지금 가장 필요한’ 담론을 선정해 심포지엄을 열고, 여기서 발표한 교수진의 글을 모아 매해 총서를 발간한다. 이번 책의 주제는 바로 ‘나이듦’이다.
나이듦의 의미를 찾아서
1부에서는 우선 ‘나이듦’이란 대체 뭔지 그 의미부터 찾아 나선다. 모든 연령층이 나이 들어가는 존재이지만, 보통 ‘나이듦’은 ‘노년’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과거의 사유 속에서 인생에서 노년이라는 시간이 어떠한 특징을 지녔는지를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 1장을 쓴 서양사학과 장문석 교수는 유럽사에 나타난 ‘나이듦’의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흔히 갖게 되는 노년에 대한 천편일률적이고 고정적인 이미지가 어디서부터 생겨났는지 짚어본다. 2장에서는 철학과 강상진 교수가 노년의 가능성을 발견한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이야기를 전한다. 키케로는 사람들이 가지는 노년에 관한 불평, 곧 젊었을 때 할 수 있었던 일을 못하게 되고, 신체가 약해지며, 즐거움이 없고, 죽음과 멀지 않은 시기라는 노년의 결함에 대해 조목조목 반론한다. 앞서 장문석 교수는 “키케로는 노년의 결함을 네 가지로 정리하여 반박했는데, 반박보다는 결함이 더 기억에 남는다.”라고 애석해했지만 말이다. 강상진 교수 역시 키케로가 펼친 반론의 근거가 현대에 이르러서도 과연 유효한지에 관해서 질문하고 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노년에 대해 가지는 불평들에 대해 어떻게 반론할 수 있을까?
이어서 3장에서는 동양사학과 김병준 교수가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노인의 사회적 위치를 어떻게 바꾸는지 중국 고대 역사를 통해 고찰한다. 역사적으로 노인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이 존재해왔으며,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노년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넓은 가능성이 열린 영역이라는 점을 김병준 교수는 은근히 말하고 있다. 4장을 쓴 중어중문과 김월회 교수는 ‘나이듦’과 ‘나이다운 삶’, ‘노년’과 ‘노년다움’의 사이를 잇는 유용한 생각들을 동양사상을 중심으로 찾아본다. 나이가 드는 것은 인간 모두가 동일하게 겪는 일이지만, ‘나이다운 삶’을 사는 것은 동일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5장에서는 국어국문학과 손유경 교수가 박완서와 오정희의 소설 속 노년의 인물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노년에 관한 우리의 감각을 재구성해본다.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박완서와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탐색해온 소설가 오정희의 작품은 노년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이들에게조차 그 시간의 의미를 절절하게 느끼게 해줌으로써 인간에 관한 더 넓은 사유로 우리를 안내한다.
노년, 가장 전위적인 시간
‘나이듦’의 의미를 생각하는 과정은 노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생각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2부에서는 노년에 가장 뛰어난 예술성과 통찰을 보여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6장에서는 고고미술사학과 장진성 교수가 76세의 노인이었던 겸재 정선이 완성한 〈인왕제색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노인이었지만 아방가르드였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이 글에서 노년에 이르러서야, 정확히 말하자면 ‘노년에 이르렀기 때문에’ 비로소 예술성의 절정에 도달할 수 있었던 화가 정선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7장을 쓴 고고미술사학과 박정호(68회) 교수는 사회적 통념에 도전했던 화가 고야의 〈결혼〉에 담긴 노년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파헤친다.
8장에서는 국어국문학과 이종묵 교수가 노쇠함을 공부거리로 삼은 과거 속 인물들을 통해 ‘나이듦’이 주는 다양한 성찰의 방법을 탐구한다. 조선 후기 최고의 시인 김창흡이 나이가 들어 이가 빠진 것을 두고 깨달음을 얻은 것에 비춰 이종묵 교수는 노년의 시간을 “담박한 음식을 먹고 조용히 정신을 편하게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입을 다물어 허물을 줄여나갈 때”라고 정리했다. 물론 이와 같은 정의가 노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지만 말이다. 이어서 9장에서는 독어독문학과 오순희 교수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통해 작가의 ‘나이듦’이 작품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살핀다. 흥미롭게도 『파우스트』는 괴테가 20대 청년기에 집필을 시작하여 80대 노년기에 완성한 작품이다.
나이듦을 공부하다
3부에서는 모두가 알아야 할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다룬다. 10장에서 중어중문학과 이강재 교수는 중국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만난 공자의 이야기를 통해 잘 나이 들기 위한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이강재 교수는 옛 사유들을 명료하고, 실용적인 메시지로 해석하여 준다. “타인을 원망한다고 해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끝까지 재물을 독점하면 결국 사람이 떠난다.”, “가치판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더욱이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어떤 사안을 절대적인 선악으로 단정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식이다. 11장을 쓴 국어국문학과 박진호 교수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분석하여 나이에 관해 형성해온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들여다본다. “인간은 나이에 얼마나 민감한가?”, “‘old’인 것과 ‘young’인 것은 대등한가, 그렇지 않은가? 동등하지 않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등이 그의 물음들이다.
12장에서는 간호대학 서은영 교수가 참여하여 국내 노인 돌봄 정책에 관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노인 돌봄과 관련한 정책을 살펴보고 초고령 사회를 대비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노인 돌봄 시스템 마련을 위해 몇 가지 요양 정책을 제안한다. 마지막 13장에서는 영어영문학과 민은경 교수가 ‘나이듦’에 관한 다양한 논점을 다룬 다른 책들을 소개한다. 키케로의 『노년에 대하여』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노년』, 마르크 오제의 『나이 없는 시간』, 마사 누스바움과 솔 레브모어의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마거릿 크룩생크의 『나이듦을 배우다』, 전희경·메이·이지은·김영옥의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리사 바레이처의 『견디는 시간』 등을 통해 독서를 통해 나이듦과 공존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알아본다. 이 책에서 시작된 ‘나이듦’에 대한 논의가 끝나지 않고 이 시대에 의미 있는 담론으로 이어지기를 의도하고 있다.